잔디가 보기 좋게 무성해지고 뻐꾸기 울음소리가 처음 들려올 무렵, 연보라색 잎맥을 가진 꽃냉이가 우아하게 꽃을 피운다. 이즈음이면 봄이 한창 무르익었을 때다. 꽃냉이가 모습을 드러내는 시기는 봄에 뻐꾸기가 아프리카에서 날아오는 시기와 거의 일치한다. 그래서 뻐꾸기 꽃(cuckoo flower)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초원의 매력적인 야생화이자 우리 식탁에도 올릴 수 있는 꽃냉이는 새싹과 잎, 꽃을 먹을 수 있다. 매콤한 겨자 맛이 나는데, 성숙한 식물일수록 더 강하다. 어린잎은 샐러드에 넣어 먹는다. 순한 맛이 나는 꽃은 소박한 봄철 밥상을 아름답게 장식해준다.
---「p.18, 〈꽃냉이〉」중에서
남근처럼 생겨 노골적으로 외설스러운 이 버섯은 썩어가는 나무만 있으면 어디서든 생겨날 수 있다. 종명인 임푸디쿠스(impudicus)는 라틴어로 음란하다는 뜻이다. 겉모습이 매우 충격적이어서 빅토리아 시대의 독실한 신자들은 아마도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들이 보고 타락하기 전에 숲속 산책로에서 이 버섯들을 싹쓸이했을 것이다. 파리를 유인하기 위해 썩은 고기와 오수 냄새 비슷한 악취를 풍기는 말뚝버섯을 보면 요즘 사람들은 기분이 상할 가능성이 더 높다. 한마디로 입맛 떨어지게 하는 버섯이다. 하지만 말뚝이 나오기 전, 알처럼 생긴 유균 상태일 때 흔치 않은 별미를 선보인다.
---「p.32, 〈말뚝버섯〉」중에서
민들레가 흔하다고 생각하겠지만, 팔다리가 좀 더 긴 큰형뻘의 방가지똥 역시 어디서나 볼 수 있다. 방가지똥은 매우 좁은 틈바구니에도 자리를 잡는데, 심지어 도시 한가운데 가장 시끄러운 교차로의 도로 표지판 아래서도 잘 자란다. 전형적인 잡초 중 하나인 이 식물은 가시 돋친 잎으로 스스로를 지킨다. 어린잎은 놀라울 정도로 식욕을 돋운다. 달달한 상추 맛이 나고 비타민 C가 시금치보다 두 배 정도 많다. 줄기 껍질을 벗기면 아스파라거스 대용으로 이용할 수 있다. 단, 이 식물이 자라는 곳을 잘 살펴야 한다. 방가지똥은 가로등 기둥 밑에서 잘 자라는데, 그런 장소는 개가 오줌을 싸기 좋은 곳이다.
---「p.50, 〈방가지똥〉」중에서
어떤 사람에게는 잡초인 식물이 다른 사람에겐 야생화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거의 모든 사람이 큰메꽃에 대해서는 잡초라고 입을 모은다. 정원에서 뿌리 뽑기 어렵기로 악명 높은 이 식물은 뿌리의 작은 조각만 있어도 번식할 수 있고, 씨앗은 30년 동안 싹을 틔우지 않고 때를 기다릴 수도 있다. 다른 식물체를 빠르게 감고 오르면서 빛을 차지하고 결국에는 그 식물을 질식시킨다. 그러나 큰메꽃이 정원사들을 마음고생시킬지는 몰라도 순백의 나팔 모양 꽃은 곤충들에게 풍부한 먹이 공급원이 되어준다. 큰메꽃의 억센 줄기를 가지고 즉석에서 훌륭한 끈을 만들 수도 있는데, 장미를 휘감은 그 줄기들을 풀어내느라 들인 시간에 대한 작은 보상이다.
---「p.68, 〈큰메꽃〉」중에서
영국의 자생 난초 가운데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꿀벌난초를 풀이 무성한 도롯가나 철로변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경험은 정말 특별하다. 속임수의 여왕을 알현한 셈이라고 할까. 꿀벌난초의 벨벳 같은 꽃은 특정 암벌을 놀랍도록 완벽하게 모방했다. 운 나쁜 수벌을 유혹하기 위해 심지어 암벌의 냄새까지 흉내 낸다. 희망에 찬 수벌들이 날아들어 꽃가루를 옮겨주지만, 그 벌들은 짝도 만나지 못하고 꿀도 얻지 못한 채 빈손으로 떠난다. 마지막에 웃는 건 이 난초뿐이다. 하지만 꿀벌난초가 모방한 벌은 이제 영국에 없다. 따라서 꽃가루를 옮겨줄 수벌도 오지 않는다. 그러니 영리하고 아름다운 이 난초를 도와줄 겸 정원에서 길러보면 어떨까.
---「p.90, 〈꿀벌난초〉」중에서
자신을 그린핑거(green-fingers, 식물을 잘 기르는 사람)라기보다는 버터핑거(butterfingers, 물건을 잘 떨어뜨리는 사람)라고 소개한다면 셈페르비붐 텍토룸을 추천한다. 속명인 셈페르비붐(Sempervivum)은 영원히 산다는 뜻으로, 이 식물은 죽이기도 어렵다. 원래 혹독한 산악 환경에서 자라는 셈페르비붐 텍토룸은 몹시 건조한 도시 정원의 오래된 담장 갈라진 틈새의 햇빛 드는 곳을 천국처럼 여길 것이다. 버터핑거인 식물 집사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이 식물은 앙증맞은 분홍색 꽃을 피우며 인간이 내어준 어떤 공간에서든 로제트 형태의 다육질 새잎을 내며 자란다. 고대 전설에 따르면, 셈페르비붐 텍토룸이 지붕에 자라면 화재, 번개, 질병으로부터 집을 지켜준다고 믿었다. 서로 ‘윈윈(win-win)’인 셈이다.
---「p.94, 〈셈페르비붐 텍토룸〉」중에서
헬레보루스 비리디스는 겨울 추위 속에서 꽃가루 매개자들을 유혹하기 위해 말 그대로 완벽히 난방을 한 꽃 안에 따뜻한 알코올음료를 준비해놓는다. 꿀 안에서 효모가 발효하면서 약간의 알코올 성분이 생기고, 꽃의 온도가 6℃ 정도 상승한다. 초록빛 헬레보루스 바 안에 준비된 벌들을 위한 따뜻한 알코올음료라니!
---「p.124, 〈헬레보루스 비리디스〉」중에서
흰무늬엉겅퀴의 대리석 무늬 같은 하얀 잎맥은 에스프레소에 우유 거품을 얹어 개성 있는 무늬를 낸 마키아토를 연상케 한다. 바리스타에게는 달갑지 않게 들릴지 모르지만, 광란의 밤을 보낸 후에는 진한 커피보다는 뜨거운 흰무늬엉겅퀴 차를 한 잔 마시길 권한다. 자주 과음하는 사람들의 간 기능을 높여주는 약초 처방인 셈이다. 항산화 물질이 풍부한 구수한 차는 간경변부터 황달까지 간 질환을 예방하고, 소화기 계통의 순환을 촉진해 신체가 빠르게 회복하도록 돕는다. 그뿐 아니라 장에도 아주 좋다. 다만, 수확할 때는 가시에 손이 찔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p.150, 〈흰무늬엉겅퀴〉」중에서
질경이는 뿌리부터 식물체 끝까지 각종 질병 치료용 비타민과 화합물이 풍부하여 항산화제, 항바이러스제, 당뇨병치료제, 지사제 등으로 쓰일 뿐 아니라, 신체에 활기를 북돋고 심지어 암을 퇴치하는 효능이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래도 질경이를 잡초라고 하는 사람이 있을까?
---「p.164, 〈질경이〉」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