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당시에는 아직 가이아 가설(Gaia Hypothesis)이라는 이름도 붙여지지 않은 그저 검증되지 않은 아이디어에 불과했다. 몇 년 후 노벨상 수상자인 윌리엄 골딩(William Golding)이 이 가설은 고유한 이름이 필요할 만큼 중요하다고 말하며 가이아라고 부르자고 제안했다. 골딩이 가이아란 이름을 선택한 이유는 고대 그리스어로 그것이 ‘땅’, 곧 ‘대지’를 지칭하는 단어였고 과학자들 역시 지구를 줄여 부르는 표현인 Ge를 지구과학 분야, 즉 지질학(geology), 지리학(geography) 등의 학문을 이르는 명칭의 뿌리로 받아들여 왔기 때문이다.
---「p.10, 2016년판 서문」중에서
예전의 가이아는 스스로를 보호하고 태고의 세월 동안 안온한 삶을 유지해왔던 존재였다. 그녀는 대기와 해양, 토양 등을 두루 살피며 모든 조건이 자신에게 적합하도록 조절해왔다. 그런 가이아의 존재는 그 누구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리라. 나는 가이아에 관한 이 첫 번째 책을, 우리가 이제까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한적한 시골길을 걸을 때의 기분을 그대로 느낄 수 있도록 가능한 한 생생하고 흥미롭게 쓰고자 노력했다. 이 책에서는 명백히 임의로 발생한 대규모 산불이 어떻게 지구 대기권의 산소 농도를 21%로 유지하는 데에 기여하는지, 그리고 그 농도가 우리에게 얼마나 안전한 것인지를 가급적 쉽게 설명하고 있다.
---「p.29, 2000년판 서문」중에서
그로부터 우리는 가이아를 지구의 생물권, 대기권, 대양 그리고 토양까지를 포함하는 하나의 복합적인 실체(complex entity)로 정의하기 시작했다. 가이아는 이 지구상의 모든 생물들이 살기 적합한 물리·화학적 환경을 조성할 수 있도록 피드백 장치나 사이버네틱 시스템을 구성하는 거대한 총합체라고 할 수 있다. 능동적 조절에 의한 비교적 균일한 상태의 유지라는 것은 ‘항상성(homeostasis)’이란 단어로 표현할 수 있다.
---「p.56~57, 1. 서론」중에서
지금으로부터 지상에 처음 생물체가 출현했던 약 3.5이언 이전의 지구는 과연 어떠했을까? 어떻게 지구는 자신과 가까운 자매 행성인 화성이나 금성과 달리 생물체를 번성시킬 수 있었을까? 어떠한 위험과 재난이 이제 막 태어난 생물권에 영향을 끼쳤으며, 또 가이아의 출현은 생물권이 번창하는 데 어떠한 도움을 줄 수 있었을까? 이런 흥미로운 문제들의 해답을 찾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처음 지구가 탄생되었던 4.5이언 전으로 돌아가서 그때의 상황을 더듬어보기로 하자.
---「p.63, 2. 태초에는」중에서
사이버네틱 시스템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는 관건은 그것들을 마치 하나의 생명체와 같이 간주하여 부분들의 집합체가 각 부분들의 단순한 합 이상의 존재가 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데에 있다. 그것들은 오직 현재 작동 중에 있는 시스템으로서 간주되어야만 이해될 수 있는 대상인 것이다. 오븐의 스위치를 끄거나 오븐을 분해한다고 해서 오븐의 잠재적 효용성을 밝혀낼 수는 없다. 마치 죽은 시체를 해부해 본다고 인간의 속성을 알아낼 수 없듯이.
---「p.124, 4. 사이버네틱스」중에서
수억 년이라는 오랜 기간 별다른 진화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살아왔던 생물들을 현재의 시점에서 조사해보면 바닷물의 염분 농도가 과거 그 어떤 경우에도 6%를 넘지 않았다는 것을 명백히 알 수 있다. 현재 바닷물의 염도가 3.4%라는 점을 감안할 때, 만약 과거 한때 염도가 4%에만 이르렀더라도 해양생물은 우리가 현재 화석 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는 종류들과는 전혀 다른 진화의 길을 걸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빗물과 하천에 의해 육지에서 바다로 씻겨 들어가는 염분의 양은 매 8000만 년마다 한 번씩 바닷물을 현재 수준의 염도로 만들 수 있을 정도가 된다. 따라서 이런 작용이 바다가 만들어진 이래 계속 진행되었다고 한다면 오늘날의 모든 대양은 아주 높은 염도로 인해 생물들이 전혀 살 수 없는 곳이 되었을 것이다.
---「p.187, 6. 해양」중에서
우리 인류가 생존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가이아의 범주 내에서 인간이 차지하고 있는 지역적 경계가 어디까지인지 명백히 이해하고 있어야 하며, 또 여기에 대해 충분한 지식을 축적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서 우리는 범지구적으로 가이아의 건강을 유지시키기 위해서 꼭 필요한 핵심 지역들을 적절한 수준에서 보전해야 하며, 여기에 인류의 주도면밀한 보살핌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p.252~253, 8. 가이아와의 공존」중에서
잘 정돈된 상태를 아름다움으로 느끼는 우리 자신의 본능이 인류의 생존에 기여했으리라는 가정을 실험으로 증명해 보이기는 지극히 어려운 일이겠지만 한 번쯤은 시도해볼만한 가치가 있을 것이다. 나는 아름다움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사람의 주관적 시각보다는 어떤 객관적인 척도를 갖는 것이 가능하다고 항상 생각하곤 했다. 이미 우리는 엔트로피를 크게 감소시키는 기능, 또는 정보이론의 용어를 빌리면 삶(life)에 대한 질문의 해답에서 불확실성을 크게 낮추는 기능이 생물성(life)의 척도라는 점을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그런 생물성의 척도에 동등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아름다움도 역시 엔트로피를 낮추는 것, 불확실성을 감소시키는 것, 불명료함을 적게 하는 것 등과 연관해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p.275~276, 9. 마무리」중에서
하지만 가이아의 관점에서 본다면 인간이 생물권을 책임지고 보살펴야 한다는 논리를 정당화하려는 그 어떤 시도도 시혜적 식민지주의와 마찬가지로 설득력을 잃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런 시도들은 모두 인간이 이 지구의 지배자라거나, 또는 비록 소유자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집주인 정도는 된다는 생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이 풍자하는 것은 모든 인간사회는 여하튼간에 세상을 자기들의 농장으로 간주한다는 점이며, 우리는 이 사실을 반드시 깨달아야만 한다. 그러나 이와 달리 가이아 이론이 암시하는 바는, 인류는 바로 가이아의 파트너이자 그의 한 부분이며 우리는 가이아의 일원으로서 매우 민주주의적인 실체 속에서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p.279, 9. 마무리」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