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손자병볍』에 담긴 통찰과 지혜로 오십에 직면하는 다중 위험 구간을 순조롭게 뚫고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마치 손자가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기 위해(百戰不殆, 백전불태) 지피지기를 통해 이길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놓고 싸운 것(先勝求戰, 선승구전)과 맥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들어가며 _인생의 다중 위험 구간을 순조롭게 나아가기 위해」중에서
결론적으로 ‘변중변 지피지기’입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변화’란 단순히 상대를 알고 나를 아는 것의 변화가 아닙니다. 그것으로는 백전불태를 하기에 2퍼센트 모자랍니다. 상대와 나를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주변 상황까지 감안해서 변해야 합니다. 손자는 〈지형〉에서 “지형과 상황이 달라지면 태도와 행동도 달라져야 한다”라고 했습니다. 상대의 변화와 상황의 변화에 따라 나를 변화해야 합니다. 나아가 잘 변화하고 좋은 방향으로 변화해야 합니다. 그래야 안전하고 위태롭지 않습니다.
---「상황에 맞춰 나를 바꾼다 _변중변」중에서
결론적으로 실전에서 백전백승은 없습니다. 그래서 손자는 백 번의 싸움에서 한두 번, 열 번, 20번, 설령 완패하더라도 결코 무너지지 않고 끄떡없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최상이라는 의미로 불태라는 단어를 선택했습니다. 이기는 것보다 위태롭지 않은 것이 현실적으로 최상의 전략이라고 본 것이죠.
---「위태롭지 않은 것이 최상이다 _불태」중에서
이순신 장군의 승리 비결에 여러 분석이 있지만 그가 이길 가능성이 높은 전투를 했다는 점이 가장 설득력 있습니다. 바로 지피지기로 “선승구전(先勝求戰)”한 것이죠. 『손자병법』의 “선승구전”은 말 그대로 ‘먼저 승리할 수 있는 조건을 설계해 놓고 전투를 한다’는 뜻입니다. 먼저 이길 수 있는 구조를 짜 놓는 것이죠. 사실상 승리를 세팅해 놓고 승리를 확인하기 위해 전투를 벌인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손자병법』의 승리는 드라마틱하지 않습니다. 당연한 것이고 예정된 결과물일 뿐입니다. 장수와 병사들은 그저 설계한 대로 움직이기만 했을 뿐 승리는 저절로 따라온 것이죠. 이에 반해 지는 군대는 일단 전투를 시작한 뒤 그때부터 승리하는 방법을 찾습니다.
---「내게 유리한 상황을 만들어라 _준비」중에서
한마디로 당시 전쟁은 일대일 데스 매치가 아니라 다수 대 다수의 팀 대결 양상이었고 팀 멤버 중 하나가 갑자기 어느 쪽으로 튈지도, 어떻게 상황이 변할지도 모르다 보니 영원한 혈맹도 영원한 적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상대의 멸(滅)보다는 나의 불태를 더 중요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돼 버린 것입니다. 따라서 그 시대에 필요한 것은 상대와 공존하면서 내가 강하면 공격하고 내가 약하면 연합하거나 피하거나 항복하면서 내가 강해질 때까지 시간을 버는 전략이었습니다. 단순하게 ‘승리하는 것’, ‘상대를 멸하는 것’ 등 승패의 이분법이 아니라 멸할 수 없는 상대와의 공존을 전제로 하는 다분법 전략을 수립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죠.
---「뜻이 같으면 얼마든지 함께한다 _공존」중에서
사실 교만만큼 짜릿한 쾌감도 없습니다. 교만심은 마약과 유사합니다. 중독성이 있고 한번 맛보면 점점 더 하고 싶고 양을 늘려 가면서 빠져듭니다. 인간은 상대방이 내 앞에서 무릎을 조아리는 것을 즐깁니다. 기분 좋은 원초적 본능입니다. 일부는 ‘설마 나도? 절대 그럴 일 없을 거야’라며 손사래를 칠 테지만 막상 현실에서 실제 느낌은 다를 것입니다. 손자의 비이교지는 인간의 심연에 자리 잡은 교만의 본질을 보고 이용하려는 것입니다. 즉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거나 의도적으로 계략을 써서 상대방을 교만하게 만들어 내가 의도하는 대로 상황을 만드는 고도의 심리 전술입니다.
---「승리를 외치는 순간을 경계하라 _교만」중에서
또 다른 측면에서 축적의 의미로 승적이익강이 있습니다. 작은 성공과 자신감의 축적으로 큰 성공을 이뤄 나가는 것입니다. 통상 세상은 작은 승리보다는 큰 성공을 가르칩니다. 어른들은 꿈을 크게 가져야 한다고 강요합니다. 누구나 선망하는 중요 인물이 되라거나 엄청나게 많은 돈을 벌 목표를 세우라고 강요합니다. 그래야 세상에 태어난 보람이 있고 삶의 의미를 찾는다는 것이죠. 하지만 목표가 거창하면 목표를 이루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이룰 수 없습니다. 목표가 너무 크면 목표의 무게에 짓눌린다는 것이죠. 목표는 작아야 이루기 쉽습니다. 쉽게 목표가 이뤄져야 또다시 다른 목표를 이루고 싶어집니다.
---「자주 감격하라 _자신감」중에서
결론은 상대의 궤도, 특히 속임수에 내가 당하지는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전쟁 상황에서는 속임수로 뒤통수를 치는 일이나 야습, 기습 등이 너무나 당연히 비일비재하게 벌어집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죠. 이것을 두고 전쟁 통에 페어플레이와 협정을 위반했다고 따지거나 항의해 봤자 소용없는 일입니다. 전쟁을 실감하지 못하는 현대 실생활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전쟁과 마찬가지로 적용할 수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소송은 개인 간 전쟁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온갖 감춰진 사연이 다 나오며 아니면 말고 식의 재판 지연 전략과 변칙, 술수 등 ‘법꾸라지(법률+미꾸라지)’가 난무합니다. 이때 설령 내가 그런 속임수를 쓰지는 않더라도 상대가 변칙, 반칙, 속임수, 교란, 회피 전략 등을 사용할 경우 대처할 수 있는 능력과 멘털을 갖추고 있어야 합니다. 마키아벨리는 “천국으로 가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지옥에 가는 길을 잘 아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알아야 이깁니다.
---「운명은 상대와 내가 함께 만드는 것이다 _궤도」중에서
손자는 “모든 곳을 지키면 모든 곳이 약해진다”라고 했습니다. 이제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때입니다. 지금까지 친구가 주어진 관계에다가 ‘더하는’ 것이었다면, 오십 이후부터 친구는 ‘빼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정이 양이었다면 이제부터 우정은 질입니다. 영화 〈자산어보〉에는 “벗을 깊이 알면 내가 더 깊어진다”라는 대사가 나옵니다. 한 명의 친구일지라도 깊이 있게 사귀는 것이 좋겠습니다.
---「선택하고 집중하라 _우정」중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성공과 실패에서는 그 자리에 안주하려는 구심력과 벗어나려는 원심력 간의 갈등이 생깁니다. 그 상태를 벗어나려면 현재의 흐름을 넘거나 깨부술 수 있는 힘이 필요하겠죠. 즉 용기가 필요합니다. 이를 두고 『손자병법』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용맹과 비겁을 결정하는 것이 기세다.”
성공이든 몰락이든 그 흐름에 한번 들어서면 빠져나오기 힘들 수 있습니다. 실패도 성공도, 좋은 일도 나쁜 일도, 행복도 불행도 습관입니다. 이왕이면 실패보다는 성공, 불행보다는 행복의 흐름을 타십시오. 단어의 뜻은 180도 다르지만 글자 수는 같습니다. 상황을 견디는 고민의 부피도 같습니다. 그러니 이왕이면 다홍치마, 행복의 흐름에 올라타십시오.
---「약세는 강세로 전환한다 _기세」중에서
“끝났다고 끝난 것이 아닙니다(終而復始, 종이부시).”
오십, 이제 막 인생의 오후가 시작됐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마치 경기 종료 휘슬이라도 울린 것처럼 낙담하고 경기장을 떠나려고 합니다. 그리고 육십, 퇴직 후에는 오로지 먹고 마시고 산과 바다를 찾고 팔도 관광 유람을 하며 마지막 한순간이라도 더 즐겨 보려는 생각으로 다들 부산합니다. 노는 데 포한이 맺힌 사람들처럼 미친 듯이 집중합니다. 놀고 마시고 쉬는 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지레 경기장에서 빠져나오려고 서두르지는 말자는 것입니다. 괴테는 유명한 장편 희곡 〈파우스트〉를 23세에 집필하기 시작해서 죽기 1년 전인 82세에 이르기까지 무려 60년에 걸쳐 완성했습니다. 지금 여러분이 하고 있는 일들도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끝났다고 끝난 것이 아니다 _인생의 오후」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