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꺾여도 그냥 하는 용기

: 섭식장애와 심리적 외상을 이겨낸, 작은 변화를 일으키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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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10월 10일
쪽수, 무게, 크기 256쪽 | 286g | 128*188*15mm
ISBN13 9791186963562
ISBN10 1186963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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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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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지는 과정은 물음표를 느낌표로 바꾸는 작업이었다. 물음표가 느낌표로 바뀔 때마다, 어딘가로부터 새로운 느낌표가 추가될 때마다 나는 조금씩 더 괜찮아졌다. 내가 궁금했던 것들, 전혀 몰랐다가 알게 된 사실들, 과거가 어떻게 현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어떤 ‘삽질’을 하고 있었는지, 그래서 그 이후로는 어떻게 했는지, 괜찮아지고 나서는 어떻게 되었는지 같은 아주 사소하지만 조금씩 나를 나아지게 만드는 그런 느낌표들이 점점 쌓여갔다. 오늘 만난 느낌표는 ‘중꺾그마’라는 말이다. 방송인 박명수가 ‘중꺾마(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라는 유행어를 언급하며 ‘더 중요한 건 꺾였는데도 그냥 하는 마음’이라고 했다. 기껏 세웠던 느낌표가 다시 꺾여 물음표가 될 때가 있었다. 흔들리는 물음표를 붙잡아 세우고 느낌표를 만들려고 울면서 애썼던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그 물음표를 그냥 옆에 둔다. 그리고 해야 할 일을 한다. 언젠가는 반드시 느낌표가 될 것을 믿는 마음만 남긴 채. 이런 느낌표들을 모으고 기록하다가 누군가에게 작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 책을 쓰게 되었다.

용기를 내는 게 어려운 이유는 ‘용기’ 그다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아무리 첫 용기를 내더라도 다시 ‘반복’될 것을 알기 때문에 용기 내기를 망설이게 된다. 나도 여러 차례 용기를 내보았지만, 다시 반복되는 ‘먹토’와 ‘씹뱉’에 더 큰 상처를 받았다. 진정한 용기는 ‘반복’의 두려움까지 견디겠다는 마음에서 비롯한다. 아직도 가야 할 길이라면, 꺾일 수밖에 없는 일이라면, 꺾여도 그냥 가겠다고 마음먹고는 조금씩 마음이 회복되어 갔다.

언제부터였을까. 어느 순간부터 자아가 두 개로 나뉘어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 같았다. 하나는 먹고 싶지 않다고 했고, 다른 하나는 먹으라 했다. 먹으라는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나는 아무 저항도 하지 못하고 전적으로 그 목소리에 따라야만 했다. 빵을 먹으라고 하면 빵을 먹었고, 과자를 10박스씩 먹고 죄다 토하라고 하면 그렇게 했다. 아빠의 퇴직 후 식비마저 걱정하는 엄마가 오랜만에 장을 본 걸 두 시간 만에 다 먹어 치우라고 하면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그렇게 해야 했다. 먹고 싶지 않다는 목소리는 다른 목소리에 눌려 힘을 잃었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편의점에 들어서자 빵 하나만 먹자던 목소리는 간교하게 말을 바꿨다.

공기 중에 흩어지는 담배 연기가 나의 시험 결과인 것만 같았다. 담뱃재와 함께 좋은 경찰이 되겠다는 의지도 발밑으로 툭툭 떨어졌다. 담배 한 개비가 타들어가며 지난 1년을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그럼 나는 이제 뭐가 되는 거지? 경찰이 되지 못하면 내 인생은 어떻게 되는 걸까? 두려움이 파도처럼 밀려들어왔다.

공포에 질려 들고 있던 아이스크림에 피우던 담배를 지져버렸다. 담뱃갑에 남은 나머지 담배도 다 똑똑 분질러 아이스크림에 꽂았다. 아이스크림에 담배가 박혀 있는 것이 꼭 고슴도치 같았다. 먹을 것도, 담배도 모두 다 싫었다. 술 취한 취객들이 아이스크림에 담배를 분질러 꽂고 있는 나를 한 번씩 무신경하게 쳐다보고 갔다. 그들은 술에 취해 즐거워 보였다. 작별 인사를 하고, 이제 집에 간다며 택시를 탔다. 그들은 갈 곳이 있었고, 뭘 해야 할지 알았다. 나 혼자만 어디로 가야 하는지, 이제 뭘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유리창 너머 편의점에 걸린 시계가 새벽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평소 친절하지 않은 그가 어쩌다 한 번씩 무심한 듯 다정한 모습을 보이면 그 다정함은 원래의 태도와 대비되어 오히려 더 따뜻하게 느껴졌다. 이렇듯 불안과 안정감의 대비를 통해 한 번의 따뜻한 태도를 더 인상 깊게 남기고, 그것을 원하게 만드는 것이 그가 타인을 대하는 방식이었지만, 나는 이 방식이 건강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나는 그가 나를 야단치거나 면박 주더라도 그것을 부모님과 선생님이 나에게 주었던 애정 섞인 타박과 같은 것으로 받아들이고 말았다.

반짝거리는 대리석 바닥, 은은한 향기, 예쁘게 화장한 직원들이 인사를 건네왔다. 접수대로 걸음을 옮기는 내 옆으로 또래로 보이는 여자와 그녀의 어머니로 보이는 사람이 지나갔다. 그녀는 마취에서 덜 깨어난 것인지 아프다고 중얼거리면서 몸을 가누지 못했고, 그녀의 어머니가 그녀를 부축하여 내가 방금 타고 올라온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수면마취가 다 풀리지 않았는지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발을 질질 끄는 그녀의 모습은 아름답기보다는 기괴하다는 표현이 더 적절해 보였지만, 그런 것은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역시 수술을 해야겠다. 살아 나오는 것을 봤으니까. 죽지만 않는다면 아무래도 상관없다. 뚱뚱한 몸뚱이로 살아가면서 경멸과 무시를 받느니 어떤 부작용이 찾아오더라도 날씬하게 살아가는 것이 훨씬 낫다. 날씬해지기만 하면 그 누구도 나를 만만히 볼 수 없을 테니.

치료를 시작할 때의 결심과 달리 섭식장애는 무 자르듯 잘라 던져버릴 수 없었다. 구토하는 주기는 늘어났으나 이것이 구토가 곧 마법처럼 사라진다는 뜻은 아니었다. 매일 하던 구토를 3일 동안 멈췄을 때는 순수하게 기뻐했고, 2개월이 지나자 완치를 속단했으며, 3개월 동안 멈췄던 구토를 다시 했을 땐 절망했다. 누가 뇌를 주물러 강제로 음식을 먹게 하는 것만 같은 폭식의 시간이 지나면 지난 몇 개월간의 노력은 완전히 물거품이 되고, 남은 일생은 섭식장애의 그림자 밑에서 살게 될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혔다. 다시 6개월을 구토 없이 살다가 증상이 일어났을 땐 이것도 내 일부이며, 한동안 나와 함께 해야 하는 존재라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내성도 중독성도 무척 강한 약이었다. 하루에 두 번 약을 먹자 잠깐은 처음 약을 먹었던 때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졸음과 싸워야 했다. 하루 1알은 1.5알이 되고, 1.5알에서 2알이 되었다. 2알이 3알이 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하루치 복용량의 세 배나 먹고 있다는 사실에 겁이 났으나 멈추지는 않았다. 약만 먹으면 매 순간 행복했기 때문에. 눈에 띄게 가늘어진 허벅지, 쪽지시험과 모의고사에서의 좋은 성적, 그리고 딱히 별일이 일어나지 않아도 이상할 정도로 들뜨고 설레는 기분은 포기하기 어려운 것들이었다.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내가 느끼고 있는 이상할 만큼 행복한 기분이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것을. 약을 먹기 전후 감정 기복이 심해지고 있다는 것을. 밥 먹을 돈을 아껴서 식욕억제제를 산다는 것은 내가 점점 약에 중독되어 가고 있다는 신호라는 것을.

나는 이틀은 먹지도 않고 12km를 뛰었고, 다음 날은 밀려오는 허기를 주체하지 못하고 먹어대기를 반복했다. 허기가 밀려오면 나는 마치 그리스신화에서 절대 허기가 가시지 않는 형벌을 받은 에리식톤(Erysichthon)처럼 먹어댔다. 어느 순간부터는 그것이 먹을 수 있는 것인지 아닌지조차 가리지 않았다. 곰팡이가 핀 빵이 있으면 곰팡이가 있는 부분을 잘라내고 먹었고, 꽝꽝 얼어 있는 해산물을 그냥 씹어먹기도 했다. 먹지도 않고 뛰는 것은 괴로운 일이었다. 나는 정말이지 그만 뛰고 싶었다. 닥치는 대로 입에 밀어 넣으면서도 먹은 것에 대한 벌을 받듯 뛰어야 할 다음날을 생각하면 가슴이 턱 막혀 오곤 했다. 뛰지 않기 위해 그만 먹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으나 일단 먹기 시작하면 통제력을 잃었다. 그만 먹는 것도, 그만 뛰는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는 굶기와 뛰기, 그리고 먹기의 쳇바퀴에 갇혀 버리고 말았다.

팽만감에 몸을 가누지도 못해 소파에 누우려다 양치는 하고 자라는 엄마에게 등 떠밀려 화장실에 들어갔다. 벽을 짚고 숨을 헐떡거리며 칫솔을 들어 대강 이를 닦았다. 혀를 닦기 위해 혀 안쪽 깊숙한 부분에 칫솔이 닿은 그때였다. 욱하고 뭔가 치밀어 오르는 순간 변기로 고개를 돌렸고, 무섭게 먹어 치운 음식들이 차례차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숨이 막혀 고개를 들고 싶었지만 토사물을 다시 삼킬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변기에 고개를 처박은 채로 숨을 한번 쉬고, 역류하는 토사물을 토해내고를 반복했다. 먹은 것을 거의 다 토해내고 나서야 구토가 멈췄다. 코는 매웠고, 너무 오래 허리를 굽히고 있었던 탓에 허리가 시큰거렸다. 얼굴은 실핏줄이 다 터져 엉망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어딘지 개운했다. 팽만감에 움직이기 힘들었던 몸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숨도 헐떡이지 않고 정상적으로 쉴 수 있었다. 혹시…?

윗옷을 조심스레 걷어 올렸다. 임산부처럼 부풀어 올랐던 배가 다시 원상태로 돌아가 있었다. 보고도 믿기지 않아 살금살금 체중계로 향했다. 56.5kg. 아, 이거구나. 뛰지 않아도 되는 방법. 살 빼는 것은 너무나도 쉬웠다. 음식의 유혹에 굴복해 정신줄을 놓고 먹어버린 날에는 재빨리 토하면 되는 일이었다. 굶는 것에도 토하는 것에도 익숙해지자 체중 그래프는 가파른 우하향 곡선을 그렸다.

예쁘단 말에 안 먹어도 배부른 느낌이 들어서 그랬을까. 나는 점점 더 심하게 굶었다. 지방 흡입 수술을 하고 식욕억제제를 먹었을 때보다도 더 마른 몸매가 되었을 때조차 나는 욕심을 버리지 못했다. 사람들은 나에게 ‘얼굴이 안되어 보인다’, ‘그만 빼는 게 좋겠다. 살이 좀 더 쪄야겠다’라며 걱정 섞인 말을 건넸지만, 나에게는 그 말이 예쁘다는 말보다 듣기 좋은 말이었다. ‘살 좀 쪄야겠다’는 예쁘다는 말에 더해 나의 자제력과 자기관리 능력까지 칭찬받는 듯한 최고의 칭찬이었다. 마르면 마를수록 예쁘다는 생각은 어느덧 신념으로 자리 잡았다. 월경이 멈추고 손톱이 매일 깨지기 일쑤였지만 그것은 별문제가 아니었다. 밥은 두 숟가락 이상 먹지 않았고 그마저도 먹으면 토해버리는 것이 일상이었지만, 나는 구토하는 나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그저 자기관리를 조금 열심히 할 뿐이었으니까.

습관처럼 교통카드를 두고 현관을 나섰다. 목적지는 없었다. 그냥 습관적으로 칼로리를 소비하기 위해 걸을 뿐이었다. 나도 모르게 직장과는 반대쪽으로 방향을 잡고 걷기 시작했다. 햇살이 따뜻했다. 매일 꼭두새벽에 출근해서 몰랐는데, 꽃샘추위가 완전히 지나갔는지 포근해진 봄바람이 불어왔다. 출근하는 직장인들도, 등교하는 학생들도 없는 오전 10시의 도로는 한산하고 조용했다. 길거리는 막 피어나기 시작해 올망졸망한 개나리와 진달래로 새롭게 물들고 있었다. 어느샌가 봄이 와 있었다. 한적하고, 따뜻하고, 평화로웠다. 왠지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나는 왜 봄이 오는 것도 모른 채 이 겨울을 지났을까. 무엇을 얻기 위해 햇살을 받으며 잠깐 걷는 것조차 어색해질 지경으로 나를 몰아넣었을까. 내 마음대로 잠시 걷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질 수 있는 나를, 무엇 때문에 스스로 그리도 고통스럽게 만들었을까. 봄바람이 겨우내 얼어붙은 것들을 녹이듯이, 내 마음도 3월의 햇살과 봄바람에 속절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시냇물처럼 내 마음도 얼어붙어 있었나 보다. 무엇이 그렇게 얼어붙어 응어리져 있었는지 눈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마치 시냇물이 녹아 졸졸 흐르듯이. 뭘 위해서 지금껏 자신을 괴롭혔는지에 대해 답을 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마른 몸, 많은 돈. 내가 지금까지 초점을 맞추고 있었던 것은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이자, 조건이 붙은 미래의 행복이었다.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것들.

나를 알아간다는 것은 내가 원하지 않는 모습도 인정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내 모습이 아니라고 하고 싶은 것을 ‘나’라고 인정하는 일은 어려웠지만,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간 그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의심하고 매달리는 내 모습을 그대로 인정하지 않고 내 행동을 정당화하려고 애를 썼기 때문에 남자친구의 마음을 잃었고, 체중이 증가한 내 모습은 진짜 내 모습이 아니라고 부정하며 내가 원하는, 이상적인 모습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에 폭식과 구토의 늪에 점점 더 깊게 빠져들었다. 나는 더 이상 대가를 치르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전혀 사랑스럽지 않은 내 모습 또한 나의 일부임을 인정하기로 마음먹었다.

부모님을 바라보던 칼날 같은 시선에 변화가 생긴 것은 스스로 의심 많은 내 모습을 직면하고 받아들이기로 마음먹었던 날 이후였다. 부모님과 내 행동이 별반 다르지 않았다는 것은 충격적이었지만, 내 의도가, 나라는 사람이 전부 악했는가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 좋아하는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몰라서, 부정적인 감정을 세련되게 갈무리하는 방법을 몰라서 그릇된 표현 방식으로 상처 입혔을 뿐, 그를 해치려고 일부러 그런 행동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내 행동이 타인에게는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모르는 미숙한 사람이었을 뿐. 나라는 사람을 악하다는 한마디로 설명할 수 없음을 알게 되고 나서야 나는 부모님과 ‘절대 악’이라는 단어를 분리할 수 있었다.

상처받은 마음을 무시하고 부모님을 감싸라는 뜻이 아니다. 그저 상처받은 것은 상처받은 일로, 감사한 일은 감사한 일로 분리하여 두자는 것이다. 사실을 왜곡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은 어렵지만 결국 당신을 보호할 내면의 단단함이 되어줄 것이다. 그리고 내가 받고 싶은 대로 상대방에게 행하는 것이다. 부모님도 실수할 수 있는 사람임을 상기하면서 말이다.

나는 지금껏 섭리를 거스르기 위해 버둥대왔음을 깨달았다.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는 일이라 착각하고, 왜 불가능한 일을 해내지 못하느냐고 애먼 자신만 들들 볶아댄 것이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극히 일부였다. 그냥 하루를 살아내기. 할 수 없는 일이 있음을 인정하기.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 구분하기. 조금 더 나아간다면 할 수 없는 일에 집착하기보다는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할 수 없는 일에 매달리는 것이 습관이 되었기 때문에 지금 당장 다이어트를 내팽개치는 것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목표가 애초에 실현 불가능한 것이었음을 인정할 수는 있었다.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에 도전하다 실패한 사람에게 미련하다고 말할 수는 있어도, 실패자라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 또한 나에게 실패자라고 필요가 없었다. 못 할 만한 일이라서 못한 것뿐이니까.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그 책임에서도 함께 벗어난다는 것이었다.

퉁퉁 붓든 말든, 출근하기 싫든 좋든 해는 뜨는구나. 돌이켜보니 꼭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그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던 무수한 날들 동안에도 내 기분과 상관없이 아침은 오지 않았던가. 체중이 49kg이든, 65kg이든 나는 매일 아침을 맞이해야만 했다. 오늘도, 내일도, 그 후로도 마찬가지일 것이었다. 숨이 붙어있는 한 나는 해가 뜨는 것을 봐야 하고, 매일 할당된 하루를 살아가야만 했다. 그 자명한 사실을 20년을 넘게 살고 나서야 경험에 근거하여 다시 깨닫게 된 것이었다. 나는 왜 지금껏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고,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을까. 너무나도 당연한 불변의 법칙 안에서 의지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아침이 오는 시간을 미룰 수도 없었고, 출근하는 한 시간 반 동안 전날의 폭식과 구토가 없었던 일인 것처럼 말끔하게 부기를 뺄 수도 없었다. 시간이 흐르는 것은 바꿀 수 없는 불변의 법칙이었고, 부기가 빠지는 것 또한 신체의 순환기관이 작동하며 일어나는 자연의 섭리였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지금처럼 부기가 조금이라도 빠지길 바라며 걷는 것뿐이었다. 좌절이나 무력감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자연의 섭리라는 커다란 존재와 나는 비교 대상이 될 수조차 없기에 오히려 위로가 되었다.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해내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라서 하지 못한 것뿐이었다. 남은 출근길을 좀 더 편안한 발걸음으로 걸어가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생각했다.

학창 시절 고맙거나 미안하다고 말하지 못한 동창에게 10년 만에 연락해 그때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했고, 부모님께 그간 마음에 상처 주는 말을 해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크건 작건 신경을 써야 하고 용기를 내야 하는 일들이었다. ‘그땐 그럴 수밖에 없었어’라고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근거 없는 자기 합리화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같은 기억으로 이불킥 횟수는 줄어들었다. 10년 만에 연락하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않을까 걱정했던 동창들은 먼저 연락했다는 이유만으로도 몹시 반가워하며 만나자고 했다.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부모님의 마음을 녹이는 데도 성공했다. 작은 일의 성공은 조금 더 큰 일에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불러왔고, 홀가분해지고자 시작한 일들이 관계에서 오는 만족감까지 가져다주었다. 나를 둘러싼 세상이 조금씩 따뜻해지고 있었다. 세상에는 걱정하는 만큼 무서운 일보다는 해낼 수 있는 일이 생각보다 많았다. 신경을 쓰고 용기를 낸 만큼 나는 자유로워졌다.

의지로 이룰 수 있는 것은 극히 작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는 관심사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기왕 하루를 살 거라면, 할 수 없는 일에 매달리면서 쓸데없이 나를 비난하는 하루를 살기보다 좀 더 나은 기분으로 하루를 지내고 싶었다. 그러나 작은 깨달음을 얻었다고 해서 체중에 대한 집착을 내던진 것도 아니었기에 운동을 멈추지는 못했다. 그 대신 뛰던 것을 걷는 것으로 바꿨다. 뛰는 것이 복잡한 생각들을 잠시 옆으로 밀어놓을 수 있게 해준다면, 걷는 것은 복잡한 생각 더미 안으로 들어가 그것들을 하나씩 차근차근 매듭지을 수 있게 해주었다. 책들을 크기별로 책장에 꽂듯이 생각을 분류하고 생각의 책장에 하나씩 꽂다 보면, 정리된 생각은 한동안 나를 성가시게 하지 않거나 오히려 생각지도 못한 결과를 선물하기도 했다.

의무를 이행하지 않을 수는 없다. 이뤄야 할 일도, 해야 하는 일도 산더미처럼 많을 것이다. 쫓기듯 허덕대는 날이 대부분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내 마음, 내 기분이 먼저다. 내 마음을 돌보는 건 선택사항이 아니라 의무를 다하기 전 그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하는 필수조건이다. 무엇보다, 다 이룰 필요 없다. 아무도 그렇게는 못 산다.

만약 다이어트만큼이나 몰입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면, 집념과 끈기로 거기에 몸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치열한 노력을 다이어트라는 밑 빠진 독이 아닌 실현 가능하고 가치 있는 일에 쏟는다면, 마른 여자는 아니더라도 멋진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타인의 시선에 대한 걱정 대신 나만의 목표로 시선을 돌렸다. 몰입은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나를 보호해 주는 최고의 방어막이었다. 걸으면서 책을 보는 것이 남들이 보기에는 조금 이상할지언정, 강박을 가지고 있음에도 강박에 붙잡히지 않고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했던 나만의 속도, 나만의 방식이었다.
만약 남의 시선이 걱정돼서 걸으면서 책보기를, 기록하기를 포기했더라면 그 시간의 성장은 없었을 것이다. 강박 따위 무시하고 자리에 앉아서 책을 보려고 했더라면 오히려 그때의 나는 오래 책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 나는 그날들 또한 나만의 속도로, 나만의 방식으로 내 삶에 최선을 다했다.

이제는 달라지고 싶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자원들을 좀 더 나를 이롭게 하는 것들에 차근차근 써보고 싶었다. 그래서 결국에는 가치 있고 오래오래 사랑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아무 길이나 갈 수는 없다고 생각했기에 내가 선택한 방법은, 역설적으로 아무 길이나 가보는 것이었다. 어떤 일이 나와 맞는 일인지 여부를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 부딪혀 보는 것이 아닐까.

삶이 너무 복잡하고 고단해서, 하루를 살아낼 힘조차 없어서, 지금 삶의 끈을 놓아버리면 편안해질 수 있을 것 같아서. 우울의 정점에서 삶을 저버리고 싶다는 충동을 참아내는 것은 엄청난 인내력을 요구한다. 그 인내력은 고단한 삶의 하루를 또다시 살아내겠다는 책임감에서 비롯한다. 살아 숨 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다음의 일은 취사선택의 문제일 뿐이다. 오늘 하루 눈을 뜬 것만 해도 기본 이상을 했다. 오늘을 어떻게 살아내든, 먹든 눕든 토하든 살아있다는 것만으로 이미 인내력과 책임감을 발휘했다는 것이다.

한숨 돌리고 싶을 때, 내가 좋아하는 것으로 가득한 곳에서 그간 열심히 달려온 것에 대한 보상을 받고 싶을 때가 있다. 예쁜 브이로그 영상에 나오는 것처럼 햇볕 좋고 한적한 카페에서 좋은 원두로 만든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독서를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겠지만, 사실 내가 한숨 돌릴 때 하는 일은 야심한 밤, 집 앞 편의점에서 라면을 한 봉지(배고프면 두 봉지) 사 와서 밀린 웹소설을 보며 먹는 것이다. 다음날의 부기와 식도염이 조금 걱정되긴 하지만, ‘가끔은 괜찮아’라고 슬쩍 합리화하며 먹자마자 침대로 기어들어 간다. 등 따뜻하고 배부르니 잠도 잘 온다. 완벽한 휴식이다.

하지만 괜찮다. 지금 내 모습이 정말로 마음에 든다. 몸매에 집착하지 않고 자유롭게 먹는 것, 남들이 자는 시간에 나도 잠드는 것이 간절한 꿈이었기에. 몇 년 전만 해도 폭식과 구토로 하루를 다 보냈던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라면을 두 개씩이나 끓이는 모습이 좋다. 체중이 증가한 것 같으면 은근슬쩍 체중계를 외면하는 모습이 자랑스럽다. 마른 몸매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난 것이 나를 나답게 했다. 결국 나의 목표는 ‘나’다워지는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이다. 마음도 마찬가지이다. 도망치지 않고 꾸준히 맞서기만 해도 마음의 힘이 향상된다. 자존감은 현실 세계에 발 붙이고 설 수 있도록 튼튼한 자아를 만들어 준다. 높은 자존감과 튼튼한 자아는 세상 풍파에 흔들리지 않게 해준다. 작은 바람에 흔들리지 않으면 더 큰 목표도 도모해 볼 수 있다. 해결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문제들은 삶의 곳곳에 도사리고 있고, 그것들로부터 도망치지 않는 힘은 하루 이틀 만에 길러지는 것이 아니다. 지는 날도 있고, 이기는 날도 있겠지만 도망치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괜찮다. 그것만으로도 성과는 있다. 이기는 날이 점점 많아지고, 전리품은 자기효능감이라는 이름의 작은 성취감과 깨달음들이다. 그 작은 것들이 모여 해결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문제를 해결해 내면 조금 더 큰 성취감과 깨달음을 가져다준다. 그리고 그것들은 점점 더 큰 문제도 해결하게 해준다.

만약 그 후회의 순간들이 없다면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정말 내가 생각했던 대로 완벽한 인생을 살고 있을까? 아마 아닐 것이다. 오히려 더 늦은 시기에 비슷한 일이 다가왔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몰라 허둥거릴지도 모른다. 시행착오 없는 인생은 없다. 장애물 달리기에서 허들에 여러 번 걸려 넘어져 본 사람만이 능숙하게 허들을 넘을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삶의 초반에 몸으로 체득해서 알게 된 것들이기에 잃어버릴 염려가 없다.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 이후의 선택을 잘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조금 더 단단한 나로 만들어 준다. 결과적으로 삶이 완벽에 가까워지는 것은, 반짝반짝 빛나는 것은 그 일들이 없을 때가 아니다. 겪고, 아파하고, 소화해 더 단단해졌을 때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이다. 인생을 리셋하고 싶었던 가장 본질적인 이유는 내 인생이 최선이 아니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분명 더 나은 선택지가 널려 있었는데 그것을 선택하지 않았다는 데서 오는 아쉬움이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은 이전의 경험으로 인해 더 나은 선택을 할 줄 알게 된 까닭이다. 아팠던 기억을 발판으로 이미 성숙해졌다는 뜻이다. 그 아쉬움은 그 일로 인해 더 성숙해진 현재의 나로서 삶을 돌아보기 때문이다. 만약 지금의 내가 아닌 그 시절의 나로서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과연 더 나은 선택을 할까? 아마 아닐 것이다. 그때는 그것이 최선이었다. 지금 돌아보았을 때 후회되는 순간순간 우리는 최선을 다해 선택해 왔다. 그런 의미에서 삶은 내가 최선을 다한 선택의 집약체라 생각한다. 최선을 다했기에 그 자체로 이미 아름다우며, 경험을 더하기에 더욱 아름다워질.

“예헌 씨가 아까 ‘그때로 돌아간다면 믿지 않겠다’라고 말했잖아요. 지금 스물네 살의 예헌 씨는 그 말이 신뢰할 수 없는 말이란 걸 알아요. 하지만 갓 성인이 된 스무 살의 예헌 씨가 스물네 살의 예헌 씨와 똑같이 생각할 수 있나요?”
“아뇨.”
“마찬가지예요. 스무 살의 예헌 씨와 스물네 살의 예헌 씨 모두 예헌 씨지만, 스무 살의 예헌 씨는 지금보다 어렸어요. 예헌 씨가 지금 그 말을 믿지 않게 된 것 또한, 스무 살 때의 사건을 비롯한 여러 경험을 통해 내린 결론 아닌가요?”
“선생님과 대화하다 보니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요.”
“그러면, 스무 살의 예헌 씨를 좀 더 위로해 줄 수도 있나요?”
“바로는 힘들겠지만, 노력해 볼게요.”

그는 예쁘고 마른 사람들에게 상당히 저자세였다. 그리고 그것은 곧 내가 예쁘고 마르지 않아서 학대당했다는 뜻과도 같았다. 내가 예쁘고 말랐다면, 그런 일을 당하지 않았을 텐데. SNS를 떠도는 건 한 시간 남짓이었지만 그렇게 하고 나서도 손에서 핸드폰을 놓지 않았다. SNS를 켜둔 채 생각 없이 핸드폰 화면을 내리다 보면 사람들의 일상이 눈에 들어왔다. 친구들과 다녀온 여행 사진, 남자친구에게 받은 선물 사진, 적금 스크린샷, 학교 잔디밭에서 동기들과 피크닉을 즐기는 사진. 자랑하려야 할 것도 없는 나의 일상과 달리 그들의 일상은 매일 다른 종류의 즐거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즐겁지 않은 사람은 나뿐인 듯했다.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행복해 보였다. 침대에 누워 낡은 핸드폰으로 남의 사진이나 보고 있는 내 모습은 그들의 행복한 모습과 확연히 대비되었다. 타인들의 일상을 보면 볼수록 나는 초라해졌지만, 멈추지 못하고 계속 화면을 내렸다.

남자친구나 가족과 말다툼을 하면 2~3일을 넘기지 못하고 폭식하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폭식과 구토가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은 아니었지만, 주변 사람과의 다툼이 폭식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나니 내 폭식에도 이유가 생겼다. 폭식하는 순간에도 ‘내가 지금 화가 나서 먹는구나’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변화의 시작이었다. 다툼이 끝나고 나면 ‘오늘이나 내일 중으로 폭식할 수도 있겠다’라고 예상했다. 여전히 폭식과 구토는 고통스러운 일이었으나, 느닷없이 찾아온 고통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것과 ‘고통이 찾아오겠구나’ 하고 눈을 질끈 감고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일기가 쌓여갈수록 나는 내 문제에 대해 더 많은 것들을 알아갔다. 화가 날 때, 외로울 때, 나 혼자 해결할 수 없는 사건을 만났을 때. 나는 많은 순간 취약했지만 내가 취약해지는 시점을 알고 나서는 눈을 질끈 감고 고통을 맞이할 준비를 하게 되었다. ‘그 시간이 왔구나. 잠시 통제력을 잃긴 하겠지만 이 시간도 지나가겠지’라고 생각하면서.

먹고 자는 것조차 마음대로 되지 않을 줄 알았다면 하지 않았을 ‘해야만 하는 것들’이었다. 그래서, 반대로 해보기로 했다. ‘해야만 하는 일’보다는 ‘하고 싶은 일’을 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도 문제가 있었다. 나는 너무 오랜 시간 해야만 하는 일을 하는 것에 익숙해진 나머지 뭘 하고 싶은지조차 몰랐다. 나는 ‘하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는 일’로 조금씩 관심을 옮겨갔고, 곧 바람직한 일을 하기 위한 몇 가지 기준을 만들었다. 뭔가 시도하기 전에 세 가지 질문을 먼저 던졌고, 웬만하면 모두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많이 하려고 노력했다.
1. 실현 가능한 일인가.
2. 의무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 자발적으로 하는 일인가.
3. 하면 기분이 좋아지는가.

첫 번째, 실현 불가능한 일을 하려고 억지로 노력할 땐 좌절과 무력감이 생긴다. 좌절과 무력감은 자기비하로 이어지므로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라면 아예 시도하지 않는다. 두 번째, 보통 의무적으로 하는 일들의 바탕에는 마땅히 그래야만 한다는 ‘당위’가 있기에 의무적인 일들은 ‘밑져야 본전’이다. 성공하면 그냥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이고, 실패하면 그것도 못 하는 멍청이가 된다. 해야 하는 일보다 하고 싶은 일에 성공했을 때 더 뿌듯한 반면, 실패했을 때는 정신적 타격이 더 작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해야 하는 일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더 이득이다. 마지막으로 ‘기분이 좋아지는지’는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중요하다. 기분은 마음의 미리 보기이다. 기분이 안 좋다는 것은 마음도 마찬가지일 확률이 높다. 나는 주로 기분 나쁠 때, 다시 말해 마음이 안 좋을 때 폭식했다. 지금은 폭식하지 않기 위해서 극한까지 굶으면서 달리는 것보다 나 자신을 살살 달래서 기분을 최대한 좋게 유지하는 방법을 택한다.

다리는 후들거리고 눈알이 튀어나올 것 같았지만 남김없이 토해내는 것에 정신을 집중하려 노력했다. 욕실 바닥에 아무렇게나 토사물이 묻은 칫솔을 던져버리고 입안의 라면을 손가락으로 잡은 후 천천히 잡아당겼다. 절대 중간에 끊어지면 안 돼. 다 꺼내야 해. 목구멍에 걸린 마지막 한 가닥까지 완벽하게 잡아뽑고 나니, 차단되었던 공기가 한꺼번에 폐로 들이치며 쉴 새 없이 기침하기 시작했다.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엉덩방아를 찧어 토사물이 묻은 칫솔을 깔고 앉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손 안 가득 쥔 라면 가닥을 세었다. 손안에 가득 들어찬 라면 가닥은 꽤 많았다. 라면 반 개는 족히 되어 보이는 양에 희열까지 느꼈다. 기침이 멈춰 숨을 고르자 입가와 손에서 나는 위액 냄새가 코를 찔렀다. 침과 토사물이 섞인 채 팔꿈치로 흘러내렸다. 세면대 앞에 서서 손을 씻으려다 거울에 비친 나와 마주했다. 퉁퉁 부은 눈코입과 턱밑, 충혈된 눈동자, 입가에 덕지덕지 붙은 토사물, 압력으로 실핏줄이 다 터져버린 피부…. 그리고 고작 목구멍에 걸린 라면을 다 꺼냈다고 뿌듯해하는 표정. 지금 뭐 하는 짓이지. 그 뿌듯해하는 표정이 방금 게워 낸 토사물보다 역겨워 손에 쥔 면발을 변기 안으로 내팽개쳤다.

중간에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싶거나 음식을 먹고 싶을까 봐 애초에 카드는 들고나오지도 않았다. 집에 돌아가고 싶으면 나온 만큼 뛰든 걷든 맨몸으로 돌아가야 했다. 더 이상 뛸 수 없을 지경이 되어서야 뛰는 것을 멈추고 걷기 시작했다. 걸어서 집에 돌아가려면 세 시간 이상 걸리는 거리. 속이 울렁거리고 온몸의 관절들이 비명을 질러댔지만 세 시간 동안은 아무것도 먹을 수 없다는 것이 너무 기뻐 마음은 가벼워졌다.

“정예헌님. 식욕억제제를 처방받고 싶으시다구요?”
“네 맞아요. 저는 식욕억제제를 먹지 않고서는 도저히 식욕을 통제할 수가 없어요. 단 한 끼도요.”
“펜터민을 여러 번 복용하셨다구요? 펜터민은 3개월이 최대 복용 기간이기 때문에 지금은 제가 처방을 해드릴 수가 없어요. 향정신성 의약품이기 때문에 휴약기를 지켜주셔야 해요. 이건 어느 병원에 가셔도 마찬가지예요.”
식욕억제제를 처방받을 수 없는 상황은 생각해 본 적 없었는데, 단호한 의사의 대답에 얼어붙었다. 최선이자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약의 도움마저 받지 못하게 되자 정상적으로 생각할 수 없었다. 오늘을, 또 내일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망연자실해 서 있는 지금 이 순간조차도 입에 무언가 쑤셔 넣고 싶은데.

집에 도착할 무렵에는 제대로 걸을 수조차 없어 발을 질질 끌며 집에 들어섰다. 한 번에 총 33km를 뛰고, 걸었다. 여섯 시간 동안 운동을 했는데 체중은 얼마나 빠졌을까? 목이 타는 듯했지만 물 무게까지 체중계에 반영이 되니 신경이 쓰여 먹지 않았다. 몸의 고통과 갈증을 해결하고 휴식을 얻으려면 최대한 빨리 체중계 위에 올라가 체중을 확인해 봐야만 했다. 53.3kg. 마이너스 1.5kg. 수분이 빠져서 나온 일시적인 몸무게라는 것을 알지만 나에게는 여섯 시간의 고행과 맞바꿀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는 숫자였다. 운동이 끝났으니 허기가 밀려오는 것을 방지해야 했다. 수분을 공급하라고 몸이 비명을 질렀지만 붓고 싶지 않아 정확히 500ml를 계량해 마시고 침대에 누웠다. 허기도 식욕도 느끼고 싶지 않아 그대로 눈을 감았다. 아침도 점심도 먹지 않는 데에 성공했다는 사실이 뿌듯함과 성취감을 안겨주었다.

한 번. 두 번. 여기서 더 씹으면 잘못하면 목구멍으로 넘어갈 것 같다. 위험한 상황이다. 음식은 아직 식도로 넘어가지도 않았는데 헛구역질부터 난다. 음식물을 최대한 식도와 멀어지도록 앞니 바로 앞으로 붙인다. 화장실로 향하는 발걸음은 점점 빨라진다. 음식물이 섞인 침이 고여 식도로 넘어가는 것이 걱정되어 최대한 빨리 뱉어내고 싶다. 화장실 칸막이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문도 채 제대로 잠그지 않고 변기에 입안에 있던 것을 뱉어낸다. 급하게 뱉느라 변기 물이 얼굴로 몇 방울 튀었지만 뱉는다는 목적을 달성한 것이 만족스러워 개의치 않는다. 얼굴에 튄 물방울만 닦아내고 나가서 다시 식사를 시작한다. 다시 한번 속으로 되뇐다. 물과 야채 먼저, 말은 많이. 실수로 음식물 일부를 삼켜버린다. 구역질이 난다. 삼키지 못한 나머지라도 얼른 뱉어내기 위해 화장실을 들락거리기를 반복한다. 앞에 앉은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볼지보다 그것이 더 중요하다. 먹지 않기 위해 너무 신경을 곤두세운 나머지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온다.

뱉어낸다 하더라도 입에 남은 크림은 침을 삼킬 때 조금이라도 넘어갈 수밖에 없잖아. 한입씩 먹는 만큼 더 살찌는 거야. 맛봤으면 됐지 뭘 삼키려고 해. 안돼. 그만 먹어. 한입 씹어봤으니까 나머지는 얼른 버려. 통째로 변기에 넣고 물을 내려. 머리는 계속 버리라고 명령했지만 손은 크림빵을 꽉 쥐고 놓을 생각이 없었다. 입은 삼키지도 않을 크림빵을 씹고 뱉어내기를 반복할 뿐이었다. 혹시라도 식도로 크림빵이 넘어갈까 극도로 긴장하면서. 팽팽한 긴장 상태는 크림빵을 한 개를 다 씹고 뱉어낸 후 변기 물을 내리고 나서야 끝났다. 나름대로 성공이었다. 어쨌든 제대로 먹은 건 김밥 한 줄밖에 없지 않은가.

라면 물을 올린 다음 과자봉지를 마구 찢었다. 손에 한 움큼 쥐고 한입에 밀어 넣은 뒤, 다 씹지도 않고 한 번에 삼켰다. 먹은 것이 많아질수록 숨이 가빠오지만 나는 여전히 배가 고팠다. 아, 오늘도 중간에 멈출 수 없겠구나.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냄비에 물을 더 부었다. 엄마가 숨겨둔 라면 두 봉지를 한꺼번에 까서 끓였다. 라면까지 먹고 나서도 허기는 가라앉지 않았다. 냉장고를 열었다. 남은 밥이 없었다. 밥도, 반찬도, 라면도, 과자도 빵도 모두 해치우듯 먹어버린 탓에 남은 게 없었다. 정말 더 먹을 것이 없을까 하고 잠시 숨을 고르듯 주변을 둘러보았다. 반쯤 눈이 뒤집혀 먹을 것을 찾던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엄마가 버리려고 비닐봉지에 묶어둔 곰팡이가 핀 빵과 상한 과일이었다. 안 돼. 그러지 마. 배고픈 게 문제가 아니야. 사람으로서의 품위를 버리지 마. 아무리 혼잣말을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몸은 머리를 따라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나는 비닐봉지를 풀고 곰팡이가 핀 빵을 우걱우걱 입에 밀어 넣기 시작했다. 모두가 자는 밤, 아무도 없는 부엌에서 나는 사람이 아니었다. 인간으로서의 품격은 내팽개쳐 버린 채 음식에 대한 갈망만이 남은 한 마리의 아귀가 되었을 뿐이다.

무너지는 생활패턴을 다잡기 위해 침대에 누웠지만 잠이 올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뒤척이며 누워있는데 배에서 꼬르륵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신호탄과도 같았다. 그 소리를 듣자마자 일주일간 이를 악물며 참아왔던 과자, 빵들이 머릿속을 점령했다. 딱 빵 하나만 먹고 잘까? 이대로라면 배고파서 잠이 오지 않을 거야. ‘빵 하나만’으로 시작해서 두 개가 되고 다섯 개가 되고 과자에 빵에 라면에 밥까지 처먹은 지가 열흘도 채 되지 않았는데도, 머릿속은 순식간에 빵을 먹어야 하는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며 합리화하고 있었다.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래. 고민할 바에는 그냥 하나만 먹고 자버리는 게 낫지. 어차피 편의점도 바로 밑에 있으니 빨리 다녀오자. 답은 정해져 있었다. 생각을 끝마치기도 전에 이미 신발을 신고 있었다. 그럼 그렇지. 어차피 하나로 못 끝낼 거면서…. 오늘 밤도 망했다. 긴장으로 뒷목이 뻐근했고, 입이 바짝바짝 말라왔다. 편의점 문손잡이를 잡는 손바닥이 땀으로 축축했다.

나는 빵조각과 빵가루를 쉬지 않고 집어먹었고, 그걸로는 부족해서 판매할 소보로빵에 붙은 가장자리를 조금씩 뜯어 먹기 시작했다. 빵을 좋아하던 것도 아니었다. 스스로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았고, 판매할 빵을 뜯어 먹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빵을 뜯어 먹으면서도 당장 멈추라며 속으로 절규했다. 이건 빵가루를 도둑질하는 거잖아. 정상적이지도, 적절하지도 않아. 누군가가 나를 본다면 얼마나 이상하고 궁상맞게 볼까. ‘본다면’이라고 가정할 것도 없이 바로 옆에 있는데 보였겠지. 그러니 제발 그만두자. 왜 체면과 빵가루 따위를 맞바꾸고 있는 것인가.

이 행동을 멈춰야 할 온갖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이유를 생각해 내며 나를 설득했지만 손가락은 전날과 다름없이 독단적으로 입으로 빵조각들을 가져가는 행동을 계속했다. 누군가가 나를 볼까 초조함에 계속해서 사방을 둘러보기를 반복하고 있을 때였다. “예헌 씨, 잠깐 얘기 좀 해요.” 가슴이 철렁했다. 등 뒤에서 오븐이 240도로 돌아가고 있는데도 목 뒤는 서늘했다. 이어진 말은 얼굴을 화끈거리게 하기 충분했다.

“판매해야 할 빵인데 너무 손이 많이 닿아서 며칠째 내놓기가 힘들어요. 나가는 빵에는 손대지 말아 주세요.”
어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수치심과 안도감이 동시에 들었다. 이제 누군가가 나를 막아줬으니 이 미친 짓을 그만둘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이렇게 수치스러운 경험에도 여전히 빵 냄새가 너무 달콤했다. 빵을 입에 넣고 계속 씹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머리가 어떻게 된 것 같았다.

책을 보는 시간보다 허벅지를 살펴보는 시간이 더 많아진 채로 3개월이 흘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방흡입 수술은 대실패였다. 3개월간 하루도 빠짐없이 식단일기를 쓰고, 아침저녁으로 허벅지 둘레를 기록하고, 변화를 느끼기 위해 한 시간에 한 번씩 거울을 들여다보며 허벅지 사진을 스무 장씩 찍어댔음에도 내 다리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었다. 여전히 허벅지 안쪽은 답답하게 붙어 있었고, 허벅지 앞쪽은 둥글게 튀어나와 있었다. 굳이 달라진 점을 꼽자면 수술 부작용으로 왼쪽 엉덩이 밑에 주름이 생겨 더 쳐져 보이고, 허벅지 안쪽으로 울긋불긋한 흉터가 생겼다는 것 정도. 50cm는커녕, 도무지 56.5cm 밑으로 줄어들지 않는 허벅지를 볼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 절로 한숨이 나왔다. 엄마 아빠가 ‘그러게 뭐랬어’라는 투로 도대체 허벅지는 언제 가늘어지는 거냐고 물어올 때마다 아직 부기가 다 빠지지 않은 것뿐이라고 바득바득 우겨댔지만, 사실 수술 결과가 썩 좋지 않다는 것은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차마 400만 원 할부를 아직도 갚고 있는 엄마에게 수술이 잘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었을 뿐.

나 혼자 그를 좋아하고, 그는 나를 귀찮아했다는 나만의 생각이 마치 진실인 것처럼 믿어지기 시작했다. 부정적인 생각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나를 잠식해 갔다. 게다가 마른 여자가 취향이라고 했었는데, 나 혼자서 무슨 기대를 한 걸까 싶어 자책했다. 내 연락이 귀찮고 부담스러웠으니까 안 받았겠지…. 이런 뚱뚱한 모습을 하고 언감생심 누굴 좋아했다니. 수치스러워서 도망치고 싶은 순간 옆에 놓인 라면 봉지가 눈에 들어왔다. 역시 이렇게 뚱뚱한 몸을 가지고는 아무에게도 사랑받지 못할 것이 분명해. 그뿐만 아니라 그 누구에게도.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을 텐데, 다이어트 따위 해서 뭐해?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생각을 하면서 라면 봉지를 뜯었다. 라면 봉지가 뜯겨나가는 소리가 어울리지 않게 경쾌했다.

참을 수 없는 식욕에 교통비로 쓸 돈마저 다 써버린 날이었다. 엄마한테 용돈을 더 달라고 하기엔 눈치가 보여 12km를 걷고 뛰었다. 다리가 좀 아프긴 했지만 1년 내내 음식으로 그득히 차 있어 무거웠던 몸이 다소 가벼워진 듯한 느낌이었다. 꽤 많이 뛴 것 같다는 생각에 별 기대 없이 올라간 체중계 위에는 63이라는 숫자가 나를 반기고 있었다. 하루 만에 2kg라니. 뜻밖의 선물을 받은 듯한 기쁨과 함께 깨달음을 얻었다. 10km 넘게 달리면 살이 빠지는구나. 그날부터 달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매일 12km를 달렸다. 아니, 멈출 수 없었다. 매일 줄어드는 체중을 보면 비를 맞으며 뛰는 것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자발적으로 시작한 공부는 재미있었고, 그 과정에서 발견한 새로운 사실은 나도 앉아 있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재미있는 일을 찾자 자원들을 좀 더 나를 이롭게 하는 일에 쓰겠다는 목표에 가까워져 갔다. 체력의 도움으로 몇 시간씩 내리 앉아 글을 쓸 수 있었고, 끈기는 안 써지면 안 써지는 대로 단 한 문장이라도 써낼 때까지 앉아 있게 해주었다. 자원은 쓰기 나름이었다. 시간이 흐르며 내 자원을 내가 원하는 곳에 쓰는 것에 점점 익숙해졌다. 한계에 부딪히자 주의산만함까지 끌어다 쓰기 시작했다. 공부를 잘하는 사람들은 중간에 맥이 끊기는 것이 싫어서 한 가지를 시작하면 끝을 봐야 한다고도 하는데, 산만한 나에게는 맥이라고 할만한 것이 없었다. 끊길 맥이 없으니 공부가 잘되지 않으면 글을 쓰고, 글쓰기가 잘 안되면 다시 공부를 했다. 나는 나에게 더 이상 무언가를 ‘잘’ 하기를 바라지 않았다. 먹고 토하던 것이 일상이던 사람이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대견한 일이었다. 6년 동안 필기 합격조차 못 하던 사람이 공부가 재밌다고 느꼈다면 이미 그것은 최고의 성과였다. 그냥 뭐라도 하고 있으면 잘하는 것이었다. 이 선택이 나의 최종 선택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뭐라도 했기에 즐거운 일을 찾을 수 있었다.

체중에 대한 글을 쓰다가 문득 현재 체중이 궁금해졌다. 소파 밑에 넣어둔 체중계를 꺼내려 발을 집어넣었는데 잡히질 않았다. 깊숙이 들어갔나 보다. 영 귀찮지만 소파 밑으로 손을 넣었다. 쪼그려 앉아 좁은 틈에 손을 넣는 수고로움을 감수했는데도 잡히지 않는 체중계에 슬쩍 짜증이 올라왔지만, 뺨을 바닥에 붙이고 소파와 바닥 사이를 들여다봤다. 아무것도 없었다. 엄마에게 체중계의 행방을 묻자 이미 한 달 전에 고장 나서 버렸다고 했다. 그 말은 체중을 잰 지 한 달이 넘었다는 것이었다. 엄마의 말은 내가 이전에 계획했던 많은 것을 떠올리게 했다. 앞자리 4의 몸무게, 25인치의 허리, 50cm 둘레의 허벅지, 천만 원의 월급. 그리도 간절히 원했지만,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들.

약속 시간이 다가올수록 마음은 조급해졌다. 머릿속은 ‘어떻게 하면 뱃속에 들어간 초콜릿을 토해낼 수 있을지’로 가득 찼다. 토하기 전에 걸어 다니다가 초콜릿이 소화되어 버리면 어떡하나 하는 고민에까지 이르러 옴짝달싹 못 하고 있던 내 눈에 들어온 것은 한 동물병원의 간판이었다. 머릿속에 환한 전구가 켜진 듯했다. 강아지들이 초콜릿을 먹으면 동물병원에서 과산화수소를 먹여서 구토시킨다던데…. 가장 가까이에 있는 약국을 찾아 들어갔다, “과산화수소수 하나 주세요.” “1,000원입니다.” 과산화수소가 식용인지 아닌지, 화학약품인지 따위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이렇게 살이 덕지덕지 붙은 모습으로 그를 만날 수는 없었다. 코를 막고 과산화수소수를 벌컥벌컥 삼켰다.
--- 본문 중에서

줄거리 줄거리 보이기/감추기

고등학생 때부터 시작한 경찰공무원 시험을 제대로 준비하기 위해 고시학원에 들어간 스무 살, 그곳에서 만난 한 남자에게 가스라이팅과 심리적 물리적 학대를 당하며 심각한 심리적 외상을 겪게 된다. 자신이 당한 불행의 원인을 외모라고 예단하고 지방흡입술을 감행하지만 실패한다. 심리적 외상으로 인한 우울감과 자기 자신에 대한 불만, 그리고 부모와의 불화가 트리거가 되어 섭식장애의 굴레에 빠지게 된다. 불안과 불만이 분노를 만나 폭식을 유발하고, 다이어트에 대한 부담은 구토와 과도한 운동으로 이어진다. 결국 중독성이 있는 식욕억제제에까지 의존하면서 공시를 준비하던 스물셋 6년 차 공시생은 우울증의 정점을 찍고 공시를 포기하면서 폐쇄적인 시공간에서 벗어나게 된다. 그렇다고 사정이 바뀌지는 않는다. 쉬운 일은 없었다. 취업한 제과점에선 폭식증의 습관으로 빵부스러기를 주워 먹다가 좌절감에 빠지고, 어렵게 들어간 스포츠센터에선 부당행위를 당한다. 우여곡절 끝에 인연이 닿은 남친과도 낮은 자존감으로 인해 위기를 맞는다.

그러던 어느 봄날 햇살의 따사로움에 삶의 한 장면이 바뀌게 되고, 미술 심리치료를 시작하면서 새로운 자기 발견의 전기를 마련한다

변화의 시작 - 의지를 넘어선다
의지로 이룰 수 있는 것은 극히 작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는 관심사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기왕 하루를 살 거라면, 할 수 없는 일에 매달리면서 쓸데없이 나를 비난하는 하루를 살기보다 좀 더 나은 기분으로 하루를 지내고 싶었다.

변화의 시작 - 용기와 그냥 한다
용기를 내는 게 어려운 이유는 ‘용기’ 그다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아무리 첫 용기를 내더라도 다시 ‘반복’될 것을 알기 때문에 용기 내기를 망설이게 된다. 나도 여러 차례 용기를 내보았지만, 다시 반복되는 ‘먹토’와 ‘씹뱉’에 더 큰 상처를 받았다. 진정한 용기는 ‘반복’의 두려움까지 견디겠다는 마음에서 비롯한다. 어차피 가야 할 길이라면, 꺾일 수밖에 없는 일이라면, 꺾여도 그냥 가겠다고 마음먹고는 조금씩 마음이 회복되어 갔다.

작은 변화
작은 일의 성공은 조금 더 큰 일에 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불러왔다. 나를 둘러싼 세상이 조금씩 따뜻해졌다. 세상에는 걱정하는 만큼 무서운 일보다는 해낼 수 있는 일이 생각보다 많았다. 신경을 쓰고 용기를 낸 만큼 나는 자유로워졌다.

변화의 시작 -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이다. 마음도 마찬가지이다. 해결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문제들은 삶의 곳곳에 도사리고 있고, 그것들로부터 도망치지 않는 힘은 하루 이틀 만에 길러지는 것이 아니다. 지는 날도 있고, 이기는 날도 있겠지만 도망치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괜찮다. 그것만으로도 성과는 있다. 도망치지 않고 꾸준히 맞서기만 해도 마음의 힘은 향상한다. 이기는 날이 점점 많아지고, 전리품은 자기효능감이라는 이름의 작은 성취감과 깨달음들이다. 그 작은 것들이 모여 해결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문제를 해결해 내면 조금 더 큰 성취감과 깨달음을 가져다준다. 그리고 그것들은 점점 더 큰 문제도 해결해 준다.

변화의 시작 - 아무 길이나 가본다
이제는 달라지고 싶었다. 가치 있고 오래오래 사랑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아무 길이나 갈 수는 없다고 생각했기에 내가 선택한 방법은, 역설적으로 아무 길이나 가보는 것이었다. 어떤 일이 나와 맞는 일인지 여부를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직접 부딪혀 보는 것이었다.

변화의 시작 - 내 기분이 먼저다
이뤄야 할 일도, 해야 하는 일도 산더미처럼 많을 것이다. 쫓기듯 허덕대는 날이 대부분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내 마음, 내 기분이 먼저다. 내 마음을 돌보는 건 선택사항이 아니라 의무를 다하기 전 그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하는 필수조건이다. 무엇보다, 다 이룰 필요 없다. 아무도 그렇게는 못 산다.

변화의 시작 - 식단일기
식단일기를 쓴 지 몇 주 지나지 않아 그 말뜻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남자친구나 가족과 말다툼을 하면 2~3일을 넘기지 못하고 폭식하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폭식과 구토가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은 아니었지만, 주변 사람과의 다툼이 폭식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나니 내 폭식에도 이유가 생겼다. 폭식하는 순간에도 ‘내가 지금 화가 나서 먹는구나’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변화의 시작이었다. 다툼이 끝나고 나면 ‘오늘이나 내일 중으로 폭식할 수도 있겠다’라고 예상했다. 여전히 폭식과 구토는 고통스러운 일이었으나, 느닷없이 찾아온 고통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것과 ‘고통이 찾아오겠구나’ 하고 눈을 질끈 감고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일기가 쌓여갈수록 나는 내 문제에 대해 더 많은 것들을 알아갔다. 화가 날 때, 외로울 때, 나 혼자 해결할 수 없는 사건을 만났을 때. 나는 많은 순간 취약했지만 내가 취약해지는 시점을 알고 나서는 눈을 질끈 감고 고통을 맞이할 준비를 하게 되었다. ‘그 시간이 왔구나. 잠시 통제력을 잃긴 하겠지만 이 시간도 지나가겠지’라고 생각하면서.

변화의 시작 -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 구분하기
나는 지금껏 섭리를 거스르기 위해 버둥대왔음을 깨달았다.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는 일이라 착각하고, 왜 불가능한 일을 해내지 못하느냐고 애먼 자신만 들들 볶아댄 것이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극히 일부였다. 그냥 하루를 살아내기. 할 수 없는 일이 있음을 인정하기.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 구분하기. 조금 더 나아간다면 할 수 없는 일에 집착하기보다는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할 수 없는 일에 매달리는 것이 습관이 되었기 때문에 지금 당장 다이어트를 내팽개치는 것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목표가 애초에 실현 불가능한 것이었음을 인정할 수는 있었다.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에 도전하다 실패한 사람에게 미련하다고 말할 수는 있어도, 실패자라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 또한 나에게 실패자라고 필요가 없었다. 못 할 만한 일이라서 못한 것뿐이니까. 내가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그 책임에서도 함께 벗어난다는 것이었다.

변화의 시작 - 기분이 좋아지는 일을 한다
‘해야만 하는 일’보다는 ‘하고 싶은 일’을 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도 문제가 있었다. 나는 너무 오랜 시간 해야만 하는 일을 하는 것에 익숙해진 나머지 뭘 하고 싶은지조차 몰랐다. 나는 ‘하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는 일’로 조금씩 관심을 옮겨갔고, 곧 바람직한 일을 하기 위한 몇 가지 기준을 만들었다. 뭔가 시도하기 전에 세 가지 질문을 먼저 던졌고, 웬만하면 모두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있는 일을 최대한 많이 하려고 노력했다.
1. 실현 가능한 일인가.
2. 의무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 자발적으로 하는 일인가.
3. 하면 기분이 좋아지는가.

섭식장애는 입체적인 심리적 외상이다
섭식장애는 폭식과 구토, 과격한 운동 등의 증상을 동반한 심리적 장애인데, 이는 결과적인 증상에 해당한다. 섭식장애 치유를 위해서는 증상 그 자체보다 그 기저에 깔린 심리적 요인, 주변 환경 요인 등 입체적 접근이 필요하다. ??꺾여도 그냥 하는 용기??는 섭식장애 극복 하나에만 매달리지 않고, 작가의 그 당시 삶을 종합적이고 입체적으로 조망하여 심리적 상처들을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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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작가는 미술 심리치료와 식단일기를 통해 지속적으로 자아를 성찰하고 그 과정을 글로 적어 다시 한번 자기객관화를 시도하는 방식으로 심리적 고통을 극복하고 내면의 갈등을 승화해 냈다. 이 과정에서 넘어져도 주저앉지 않으며, 꺾여도 그냥 하는 마음을 배웠고, 그 마음을 담은 이 책은 지금도 홀로 어딘가에서 마음의 상처로 괴로워하고 있을 누군가에게 마음을 일으켜 한 걸음 내디딜 수 있는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 복진배 (인천사랑병원 정신건강임상심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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