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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봄날에 다시 만나면

: 나는 죽음을 돌보는 수행자입니다

능행 | 김영사 | 2024년 04월 30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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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4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92쪽 | 376g | 135*195*16mm
ISBN13 9788934939634
ISBN10 893493963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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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살님은 합장한 채로 니르바나에 들었다. 복수도 다 빠지고 메마른 얼굴에는 홍조가 돌았다. 어디에선가 향기가 진동했다. 나무아미타불. 필시 극락정토의 향기이리라. 나는 간호사들과 임종실에 수시로 들어가 그 그윽한 향기를 맡았다. 여덟 시간 정도 퍼지던 그 향기는 정말 감미롭고 향기로웠다. 임종을 맞은 보살님의 모습에 거룩함이 깃들어서 얼굴을 덮을 수가 없었다. 잘 살아야 잘 죽는다는 걸 다시금 마음에 새겼다.
--- pp.32~33 「어머니 떠나던 날」중에서

“시님! 내 부탁 하나 들어주소, 꼭!”
“네, 스님. 말씀하세요.”
“나는 이렇게 느무 병원 십자가 아래서 누워 죽지만, 우리 시님들 늙거나 병들면 편히 죽을 수 있는 병원 하나 지어주소. 스님은 할 수 있어.”
나는 너무 놀라고 당황해서 손사래를 쳤다.
“스님, 난 못 해요. 내가 의사도 간호사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슨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닌데…… 안 돼요! 스님! 병원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닐 거예요.”
그러자 스님은 내 손을 더욱 세게 잡으며 말했다.
“원願을 세워요, 스님! 부처님이 계시니까.”
“못 해요! 스님! 난 지금 스님을 뵙는 것도 가슴이 아파 찢어질 것 같은데…… 못 해요, 절대로. 그냥 이렇게 하면서 살래요.”
스님은 말려 들어가는 혀로 끝까지 나를 설득했다.
“부탁허요, 이런 일이 있어서는……”
곁에 서 있던 수녀님은 마음이 안 되었는지 안쓰럽다는 표정을 지으며 자리를 떴다. 점점 목소리에 힘이 빠지면서 끝까지 부탁하는 스님의 말씀이 간곡했다.
“내가 죽어서라도 도와줄게. 원만 세워! 원만 세우면 다 돼.”
스님의 눈물이 내 승복 바지에 젖어들었다.
--- p.96 「별이 되어 빛나는 스님을 기억하며」중에서

우주의 수많은 별 중에 초신성은 폭발 후 작은 부스러기들과 다시 만나 또 다른 별을 만들어낸다. 마찬가지로 인간도 육신은 부서졌지만, 업이라는 잔해들이 모여서 또 다른 삶을 구축해낸다. 소멸은 또 다른 시작이라는 우주의 진리를 통해 인간의 삶과 죽음을 돌아보았으면 한다.
--- p.104 「별처럼 아름답게」중에서

거사님은 또다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죽을 둥 살 둥 허덕이며 모아둔 재산과 가족들 때문에 꼭 살아야 한다고 울먹이던 큰오빠 같은 환자였는데, 근심걱정 다 어찌하고 가시려는지……
새벽이 되자 사대가 점점 흩어져가고 혀가 굳었다. 다만 눈동자만 살아서 곁에 있어 달라고 말할 뿐이었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흘렀을까…… 거사님은 오전 11시경에 눈 한 번 크게 뜨고 나를 바라보다가 눈을 뜬 채로 그대로 숨을 거두었다. 가족 한 명 없이 쓸쓸한 병실에서. 훗날 어머니가 아시면 얼마나 원통해하실까.
--- p.166 「새털처럼 가벼운 인생」중에서

환자의 임종을 돕는 의료진과 영적 돌봄가는 환자의 상태에 따라서 적절한 간호와 돌봄을 제공해야 한다. 무엇보다 환자의 영적인 상태가 안정되고 안전하게 유지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특히 환자의 종교에 따른 종교적 돌봄이 절실하다. 죽음이란 다리를 이용해 또 다른 삶으로 가는 여정인데, 이때 좋은 삶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종교의 역할이기도 하다. 그래서 정토마을 자재병원에서도 이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우리는 지금 존재하지만 언젠가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나도 언젠가 이 세상에서 사라질 것이다. 이 책을 읽고 있는 독자도 마찬가지이다. 삶이 아름답기 위해서는 죽음이 아름다워야 한다. 생의 가장 마지막 순간, 깨끗하고 안락한 돌봄의 환경이 필요하다. 따뜻하게 손을 잡아줄 가족 혹은 친구가 있다면 죽음은 아름다울 수 있다.
--- pp.194~195 「아름다운 돌봄」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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