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글쓰기를 하면서 하는 내 공부는 외국어 공부인 것은 물론이지만, 사실 다른 무엇보다도 모어 공부다. 외국어를 공부하다 보면 모어의 본질과 특성을 더 잘 알 수 있게 된다. --- p.10
생각(生覺)이라는 말은 그야말로 ‘살아 있음의(生) 깨달음(覺)’을 뜻한다고 할 만하다. 루돌프 슈타이너가 설명하는 인간 본연의 세 가지 능력, 즉 느낌과 사고와 의지의 여러 작용들을, 한국어의 ‘생각’만큼 거의 완전하게 아울러서 표현하는 말도 없을 것이다. 이러한 생각하기의 연습을 가장 집중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바로 글쓰기다. --- p.19
아리스토텔레스, 칸트, 헤겔, 야스퍼스, 니시다 키타로 등의 철학자, 괴테, 베토벤, 랭보, 카프카 등의 예술가들이 늘 자연 속에서 산책을 하며 사색을 했고, 이러한 산책의 사색을 통해 자신의 사상과 작품의 영감을 얻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리고 다른 누구보다도 무위당 장일순의 사색을 도와 생명사상을 낳은 것도, 작고 보잘 것 없는 풀들이 자라나 있는 원주천 방축 가의 한적한 길이었다. 이처럼 자연 속에서 산책하며 사색하기는 그들의 사상과 예술 작업과 글쓰기에서 없어서는 안 될 원동력이었던 것이다. --- p.51~52
묘사와 서사가 주로 느낌과 감성을 표현하는 글쓰기 방법이라면, 설명과 논증은 주로 사고와 지성을 사용하는 글쓰기 방법이다. 따라서 이 두 부류 또는 네 가지 방법 가운데 어느 하나가 우월하거나 우선적인 방법이라고 보는 것은 어리석다. 네 가지 방법을 자유자재로, 필요에 따라 잘 결합해서 쓸 수 있어야 어떤 글쓰기든 잘할 수 있다. 이것은 왼 뇌와 오른 뇌를 균형 있게 모두 잘 써야 한다는 것과 똑같은 이치다. --- p.106
수필은 가장 정직한 글쓰기 형식이라고 생각한다. 학생들에게도 늘 하는 말이지만, 시나 소설 등 다른 문학적 글쓰기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글쓰기 형식은, 통념과는 달리 그 기술을 연습하면 최고로는 쓰지 못한다 하더라도 흉내는 낼 수 있다. 그러나 수필은 남의 것을 흉내도 낼 수 없다. 수필은 글에 등장하는 ‘나’와 글을 쓰는 ‘나’를 완전히 일치시켜야 쓸 수 있는 글이기 때문이다. 물론 수필 역시 문장 쓰기의 기본적인 기술을 연마하지 않고는 잘 쓸 수 없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수필 쓰기를 잘하기 위해 특별히 강조해야 할 점은, 글을 쓰는 ‘나’가 온전해야 글 속의 ‘나’에게서도 깊은 향기가 배어난다는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해야 수필을 잘 쓸 수 있겠는가? 앞서도 말했듯이, “잘 살아야 한다.” --- p.126~127
나는 슬픔과 따뜻함과 은근한 의지가 단순한 형식 속에 배어 있으면서도 깊은 울림을 주는 김민기 노래의 원천이 무엇일지 늘 궁금했다. 그런데 그가 한마디로 “아버지 같은 분”이라고 고백하는 이가 바로 무위당 장일순 선생이다. --- p.177~178
잡지 샘터에 연재되고 있던 법정 스님의 말씀에 감화된 대원각의 주인 길상화 김영한 여사가, 법정 스님에게 그 요정을 받아 맡아서 절로 만들어 줄 것을 오랜 시간 끈질기게 요청한 끝에 길상사라는 절이 탄생했다는 것은 너무도 유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나는 김영한 여사가, 한국 근대의 최고 시인들 가운데 한 사람, 백석의 옛 연인인 자야라는 사실 앞에서, 법정 스님이 말하는 인간의 업과 인연에 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가끔씩 바쁜 일상 속에서 시를 읽으라는 스님의 말씀을 새삼 떠올린다. --- p.219
대량 소비를 부추기기 위한 대량 생산 추구의 경제학, 그 핵심 토대인 거대 기술, 그리고 그 경제학과 거대 기술을 실제로 가능케 한 ‘자연 자본’ 석유 에너지, 이 세 가지가 현대 문명의 실체라는 사실에 대한 통찰에서 멈추지 않고, 슈마허는 현대인의 물질주의가 발원한 철학적 원천을 추적한다. 현대인의 물질주의는 인간과 자연에 대한 현대인(정확히 말해서 현대 서구인) 특유의 사고방식과 마음가짐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 슈마허의 생각이었다. 따라서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그 물질주의의 근원을 알아내서 문제의 해결책을 찾는 것이었다. 그래야 불교 경제학과 중간 기술도 실행할 수 있을 터였다. 슈마허가 보기에, 그 문제의 근원에 근대철학의 시조라 일컬어지는 데카르트의 사고방식, 즉 데카르트의 인간관과 자연관이 있었다. --- p.254~255
그렇다면 이 책이 지닌 이러한 미덕들의 궁극적 비밀은 어디에 있을까? 이 역시 찰스 코박스 선생이 친절하게 말씀해주고 있다. 어린아이 같은 마음 상태에서 나오는 신선한 관점, 살아 있는 진실한 관심, 꿈꾸듯 자유로이 뛰노는 상상력이 바로 그 비결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에 끝까지 몰입한 독자라면, 코박스 선생의 이야기를 자신의 이야기로 경험하며 귀 기울인 독자라면, 이 한마디에도 자연스럽게 동의할 것이라 생각한다. 찰스 코박스야말로 순수하고 자유로운 상상력을 지닌 현대의 파르치팔이다. --- p.294
그에게 성경 말씀(종교)과 글쓰기(예술)와 살림살이(경제)는 완전히 하나다. 신이 천지를 창조한 이후 인간에게 자연의 소유자 또는 지배자가 아닌 관리자 역할을 맡겼다는 것, 신이 부여한 자연의 관리자 역할이란 무엇보다도 자기가 스스로 붙박아 살고 있는 땅을 건강하게 잘 관리하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올바른 경제라는 것, 그리고 글쓰기를 포함한 모든 예술은 그러한 살림살이를 잘 표현할 뿐만 아니라 돕는 것이지 그와 무관하게 별난 천재들만 외따로 누리는 것이 아니라는 그의 확고한 ‘믿음’이 바로 그것이다. --- p.328
번역을 포함한 외국어 공부는 외국어뿐만 아니라 한국어 실력도 키워준다. 거꾸로 말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 좋은 외국어 공부다. 슈마허 식으로 말하자면, 지식의 제4영역인 ‘너(외국어)의 바깥’뿐만 아니라 제3영역인 ‘너(외국어)의 안’까지 보려는 외국어 공부를 하다 보면, 결국 제2영역인 ‘나(한국어)의 바깥’은 물론 제1영역인 ‘나(한국어)의 안’을 깊이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다. 결국 또 다시, ‘나의 안’을 잘 알아야 ‘너의 안’을 잘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외국어 공부를 통해서도 깨닫게 되는 것이다. --- p.382
--- p.3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