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거리들은 어디로 갔단 말인가. 나는 그저 술과 밤에 취한 어리석은 방랑객일까? 지구 한복판을 통과해 반대쪽으로 나온 사람처럼 모든 것이 낯설었다. 간신히 국경시장에서 탈출한 나는 망연히 주저앉아 도리어 지난밤의 일들을 떠올리고 있었다. 기억을 너무 많이 팔아버린 내게 그리워할 것이라고는 그곳밖에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인가? 눈을 감았다. 눈꺼풀 안에는 아직 국경시장의 모습이 남아 있으니까. 소경이 자기 어둠 속에서 만들어낸 풍경에 머무는 것처럼 나는 눈을 감은 채 풀숲에 누워 잠이 들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어제와 비슷한 달이 내 몸을 비추고 있었다. 그러나 이지러진 달은 나를 국경시장에 데려가주지 않았다. ---「국경시장」중에서
소년은 눈을 깜박거리며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말을 걸어왔다. 옆 좌석에 앉은 그의 엄마가 흐뭇하게 웃으며 이 모습을 바라보았는데, 차도르 아래로 보이는 그녀의 턱 역시 툭 튀어나와 있었다.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안고 있던 아기를 보여주었다. 아기 역시 그 종족의 축소된 얼굴이었다. 역겨운 우연을 맞닥뜨리자 ‘위험하다’는 신호가 머리에서 울려퍼졌다. 나는 버스를 세워달라고 말하기 위해 운전사에게 다가갔다. “무슨 일이죠?” 무슨 일이라고 말해야 할까. 운전사의 얼굴 또한 똑같았다. 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이 버스의 모든 승객들이 같은 얼굴을 하고 있으리라는 것을. 정말,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이것이 죽어가는 폭군이 내게 걸어둔 저주인가? 넌더리나는 현실과 감당 못할 환상 속에서 서성거릴 것, 영원히 나무 힘줄 피아노의 자동 연주를 들을 것…… 내 입에서 신경질적인 웃음이 나왔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나는 ‘내 자리에’ 돌아가 앉았다. 야간 버스는 다음 악몽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