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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물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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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6년 10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264쪽 | 238g | 118*190*20mm
ISBN13 9788972757894
ISBN10 89727578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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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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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이란 게 다 마음먹기에 달렸거든요.” 제인이 말했다. “요즘 날씨가 엄청나게 추웠잖아요. 그래서 당신 마음이 어쩌면 감기에 걸릴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한 거고, 그 메시지가 당신의 몸에까지 전달되면서 결국에는 감기에 걸리고 만 거죠. 집게손가락을 양쪽 관자놀이에 가져다 대고, 내가 하는 말에 집중하면서 그대로 따라 해 보세요. ‘난 감기에 걸리지 않았다. 난 건강하고 기분도 좋다’.”
“싱거운 소리 말아요.” 해미시가 뿌루퉁하게 말했다.
“바로 그거예요.” 제인이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방금 당신이 한 말이 딱 내가 예상하던 대답이라니까요.”
“당신이 싱거운 소리 한다고 했던 말요?” 해미시가 무례하게 대꾸했다.
“아니, 아니요. 당신은 감기에 걸려서 다른 사람이 당신을 안쓰럽게 생각하도록 만들고 싶었던 거예요.” 그녀가 몸을 뒤로 기대더니 꼬고 있던 다리를 풀었다가 반대로 다시 꼬았다. 해미시는 시선 둘 곳을 찾지 못해 천장을 바라봤다.
“곤란한 문제라는 게 뭡니까?” 해미시가 화제를 바꾸려고 물었다. 눈앞에서 오르락내리락하는 제인의 종아리와 허벅지 때문에 계속 신경도 쓰이고 불편하기도 했다.
“누군가 날 죽이려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해미시의 녹갈색 눈동자가 그녀를 빤히 바라봤다. “혹시 다른 사람에게도 감기를 떼어 버릴 방법을 얘기해 줬나요?” --- p.19~20

해미시는 감기가 심해지는 기분이었다. 이마는 뜨거웠고, 귓속에서도 소리가 울려 댔다. 제인의 존재가 밀실 공포증을 더 악화시키는 듯했다. 해미시는 현기증에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그녀에 관한 모든 것이 감당하기 버겁다는 생각을 했다. 검은 부츠를 신은 다리도 감당하기 버거울 만큼 길었고, 폭풍 소리보다도 더 크게, 무자비하게 질러 대는 숨소리 섞인 매력적인 고함 소리도 감당하기 버거웠다.
“이혼한 이유는,” 제인이 말을 이었다. “우리 둘 다 자기만의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이에요. 결혼 생활에서도 자기만의 공간을 갖는다는 건 정말 중요한 일이거든요. 안 그래요?”
“나야 모르죠.” 해미시가 대답했다. “결혼을 해 본 적이 없으니.”
제인의 커다란 눈이 마치 모퉁이를 돌아가는 전조등처럼 휙 돌더니 그를 빤히 바라봤다. “사람마다 각자 취향이 다른 거니까요.” 그녀가 쾌활하게 말했다. “그럼 남자 친구는 있어요?” --- p.37~38

디어미드 토드는 화장대 앞에 앉아서 손톱을 다듬고 있었다. 아내 헤더는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노동계급의 탄압』을 읽고 있었다. 그녀는 겨우 두 쪽 분량을 읽고는 책을 덮어 버렸다. “당신은 제인의 새 남자 친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디어미드가 잠시 하던 일을 멈추더니, 마치 화장실에 들어가 앉아 깔끔한 체하는 고양이처럼 다시 세심하게 손톱을 자르기 시작했다. “누구 말이에요?” 그가 물었다.
“그 고지에서 왔다는 해미신가 뭔가 하는 남자 말이에요.”
디어미드가 가죽 재질의 손톱 정리 도구 주머니에 가위를 집어넣더니 오렌지 우드 스틱을 꺼내 손톱을 다듬기 시작했다. “난 그가 친구 이상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헤더. 그러니 당신도 괜히 다른 사람들에게 쓸데없는 소문 내고 그러지 말아요.” 평소 무난하던 그의 스코틀랜드 억양이 약간 날카롭게 흘러나왔다.
“그래요, 아닐지도 모르죠.” 헤더가 말했다. “제인은 굉장히 매력적인 외모의 여성이지만, 바람기가 많은 사람은 아니니까요. 사실 성적인 매력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 무성(無性)의 느낌이잖아요.” 그녀가 아주 만족스럽다는 듯이 자신의 탄력 있는 곱슬머리를 매만지더니 다시 책을 집어 들었다.
디어미드의 긴장한 손가락 사이에서 갑작스럽게 우드 스틱이 툭 하고 부러지자, 그는 아내를 향해 순전하고 가감 없는 증오의 시선을 던졌다. --- p.71~72

“우리 여기서 나가요.” 해리엇이 그의 팔꿈치를 잡아끌었다.
해미시는 슬프게 그녀의 뒤를 따라 나갔다. 물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두 사람은 나란히 서서 하얀 모래 위를 걸어 바다 쪽으로 나아갔다. 모래사장은 3센티미터 깊이쯤 되는 낮은 조수로 덮여 있었고, 이내 평평한 섬이 그들 뒤로 사라졌다. 두 사람은 거울 같은 물 표면을 가로질러 걸어갔다. 커다란 구름이 머리 위와 발아래로 동시에 흘러갔다. 땅 위에 서 있는 것 같지 않은 묘한 느낌에 해리엇은 현기증을 느꼈다. 그들은 걸음을 멈추고 함께 서 있었다.
“기분이 정말 이상해요.” 해리엇이 부드럽게 말했다. “망망대해에 서 있는 것 같아요. 도시로 나가면 사방에 불빛과 사람과 소음이잖아요. 가여운 조디가 미친 것도 이상한 게 아니에요. 이 섬에 그렇게 오랫동안 살면 나라도 미칠 것 같아요.”
“내 생각에는 그게 내 기지에도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해미시의 말소리에 치찰음이 강하게 섞여 나왔다. 그가 심하게 괴로워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심지어 그는 살인범을 찾겠다고 거의 광분한 채 뛰어다니느라 프리실라에게 전화 한 통화도 하지 않고 있었다. 잊어버리자, 그의 마음이 말하고 있었다. 사고사야, 이제 그만해.
--- p.192~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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