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희들 안 춥니?
- 추워요. 선생님, 술 사주세요.
- 술? 무슨 술이야, 대낮부터.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에서 유지태가 학교 운동장에서 우연히 축구를 하고 있던 제자들과 만나 대화
LEE 감독님 영화 속의 장면 중 빼놓을 수 없는 게 술자리 장면입니다. 거의 베드신만큼 자주 나오죠.(웃음) 제가 세어보니, 아홉 편에서 모두 마흔두 번의 술자리가 펼쳐지는 것으로 파악되더군요. 그중에서도「잘 알지도 못하면서」와「강원도의 힘」에서 가장 많이 등장했습니다. 각각 아홉 번과 여덟 번 나오거든요. 전체 횟수가 42회보다 약간 적거나 많을 수도 있겠지만,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겁니다. 이만하면 술자리 설정을 특별히 애용하신다고 해도 되겠죠?(웃음)
HONG 디테일이랄까, 에피소드랄까, 그런 영화적 살을 만드는 과정에서 자연히 술자리가 떠오르는 것 같습니다. 감독으로서 디테일은 짜내는 듯한 느낌으로 만들게 되는데, 사실적이고 재미있으며 의외로 여겨지는 것들을 짜내면 좋은 디테일이 되는 거죠. 지향점을 확실히 가진 채로 디테일을 짜낼 때 술자리가 무척 유용해지는 것 같습니다. 저는 디테일을 구상할 때 논리적인 추론으로 만들지 않아요. 특정 상황을 염두에 두면, 순서와 상관없이 디테일이 제게 막 오는 거죠. 좀 모호하지만 이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어요. 그렇게 콘텍스트와 상관없이 떠오르는 디테일들을 취사선택한 후 순서를 매기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 같습니다. --- pp.72-73, 「비루한 삶과 부조리한 세계, 허위의식과의 치열한 싸움 : 홍상수」중에서
- 이야, 예술이야 예술. 내 딸이라서가 아니라 정말 예술이다.
「괴물」에서 변희봉이 방송으로 생중계되고 있는 양궁 경기에서 딸이 10점 과녁을 맞히자 흥분하면서
LEE 감독이라면 완성하고 나서 부끄러운 장면도 있을 테지만, ‘내가 만들었지만 진짜 훌륭하다’고 스스로 느끼시는 장면도 분명히 있겠죠. 제가 방금 인용한 이 대사에서 예술이란 말이 세 번 나오니, 그렇게 스스로 ‘예술’이라고 생각하시는 장면 세 개만 꼽아주시죠.「마더」는 뚜껑을 연 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이전 세 작품에서 하나씩 골라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BONG 이거, 도저히 빠져나갈 수가 없게 질문하시네요. 제 영화 대사에서 질문을 하시니 발뺌할 수도 없고요. 보통 이와 유사한 질문을 받게 되면 “전부 다시 찍고 싶어요. 그러니 그 대신에 가장 아쉬운 장면 세 개를 말씀드릴게요”라는 식으로 피해 가는데 말이죠.(웃음) 글쎄요, 우선「괴물」에 나오는 부분인데, 가족들이 합동분향소에서 뒤로 일제히 자빠지는 모습을 직부감으로 찍은 장면이 떠오르네요. 두번째로는「살인의 추억」에서 극 초반 피살된 시체가 발견된 논두렁에서 한바탕 해프닝이 벌어지는 모습을 찍은 롱테이크 장면이에요. 그리고 세번째는 「플란다스의 개」에서 교수가 되기 위한 뇌물로 돈 다발을 바닥에 까느라고 정작 케이크의 위에 놓인 딸기가 상자에 들어가지 못하고 걸리는 장면이겠네요. --- p.262, 「섬세한 질감과 풍부한 양감, 끝까지 지켜낼 이미지를 향하여 : 봉준호」중에서
- 자넨 역시 현장 체질이야.
「다찌마와 리」에서 과학자인 김영인이 새로 개발한 신무기에 대해 임원희가 질문하자 칭찬하며
LEE 감독님의 영화들을 보면 언제나 사무실에서 머리로 만들지 않고 현장에서 몸으로 만들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듭니다. 그건 데뷔작인「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를 처음 보았을 때부터의 인상이었죠. 저는 그게 류승완 작품세계의 특징 중 하나라고 보기도 합니다.
RYOO 그렇게 느끼셨다면 제게는 큰 찬사예요. 저는 몸으로 영화를 만들려고 노력해요. 갈수록 점점 더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좀더 지적인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시절도 제게 있었죠. 그런데 그렇게 할수록 지적을 많이 당하고 영화가 엉키게 되더군요. 남의 영화를 베낀다는 소리나 듣고요. 이제는 갈수록 현장이 제게 중요하게 느껴집니다. 지금까지 나름대로 쉬지 않고 열심히 영화를 만들어왔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저는 제 일을 연출 노동으로 봅니다. --- pp.412-413, 「장르의 쾌감과 삶의 비감 사이, 걸음을 멈추지 않는 장남의 영화 : 류승완」중에서
- 야, 명근아. 너는 민간인도 아닌 것이, 건달도 아닌 것이, 반달이냐?
「비열한 거리」에서 검사인 권태원이 조폭과 일을 하는 기업체 회장인 천호진에게 비아냥거리면서
LEE 시인과 영화감독의 정체성을 모두 갖고 계십니다. 처음에는 영화계가 어색하기도 하셨을 텐데, 언제부터 스스로가 완전히 직업적으로 영화감독이 되었다는 생각이 드셨습니까.
YOO 세 번째 영화「말죽거리 잔혹사」를 끝내고 나서입쾴다. 그때부터 사람들이 저를 영화감독으로 온전히 대하는 느낌이더라고요. 솔직히 말하면 개인적으로는 지금도 영화계가 여전히 불편해요. 아는 사람도 많지 않은데다가, 여전히 손님인 것처럼 느껴지거든요. 그런데 또 요즘은 문단에서도 제가 손님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양쪽 세계 모두에서 국외자의 느낌을 받고 있어요. --- pp.551-552, 「비주얼보다는 리얼리티 탈출이 아닌 발견의 영화를 위해 : 유하」중에서
- 야, 아까 베이스 치는 형 봤냐? 자세가 예술 아니냐?
「와이키키 브라더스」에서 음악에 열정을 느끼기 시작한 고교생이 인기 록밴드 공연을 보고 나오면서 친구에게
LEE 몇몇 특징을 잡아낼 수 있지만, 기본적으로 감독님은 영화의 스타일에 대한 욕심이 많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감독님 영화들 속에는 형식에 대한 자의식을 강하게 드러내는 장면들이 별로 없으니까요.
YIM 저는 형식에 대한 욕심이 없어요. 굉장히 뛰어난 예술가가 특정한 형식을 제공하면 그 형식 자체에서 예술적 감흥이 일어나는 경우도 많죠. 그런데 저는 그런 경지까지 가지 못하는 감독이에요. 어설픈 자의식이 있는 예술가들이 형식을 과도하게 드러내면 관객이 피곤해요. 텍스트에 집중하지 못하고 불필요하게 형식에 유인당하다가 끝나고 마는 거죠. 저는 상징적으로 이야기하고 중층적으로 꼬아서 말하는 화법도 좋아하지 않아요. 할 말이 있다면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게 낫다고 봅니다. 쉽게 전달하고 싶어요. 작가적이든 대중적이든, 저는 많은 이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 p.629, 「살펴보는 자의 연민, 함께 울어주는 영화의 위로 : 임순례」중에서
- 선생님, 다시 한 번만 재요. 제발요. 다시 한 번만요.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의 신체검사 장면에서 자신의 키가 146센티미터로 측정되자 한 번 더 재보게 해달라고 사정하는 여학생
LEE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나「가족의 탄생」중에서 다시 찍고 싶은 생각이 드는 장면이 있으신가요.
KIM 다시 찍고 싶은 장면은「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에 더 많습니다. 완성 후에는 그런 마음이 적지 않았는데 지금은 그게 어떤 장면들이었는지 생각이 잘 나지 않기도 해요. 아마 제가 일부러 잊어버리려고 했기 때문일 수도 있는 것 같아요. 지금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것은 시은이와 효신이가 옥상에서 격렬하게 싸우는 장면입니다. 당시에 그 장면을 찍을 때 제대로 완성하지 못해서 실제 영화에서는 플래시백처럼 잠깐만 썼어요. 서로를 정말 많이 아꼈던 두 아이가 어떻게 해서 서로의 가슴에 비수를 꽂게 됐을까에 대해 감독으로서 고민을 많이 했는데, 그런 점에서 그 신이 매우 중요한 거죠. 그게 효신이 죽기 전에 두 사람이 마지막으로 대화하는 장면이니까요. 다시 촬영할 수 있다면 제 자신이 궁금해서라도 그 장면을 좀더 구체적으로 찍어보고 싶어요.
--- pp.714-715, 「유연한 태도와 깊은 감수성 뜻하지 않은 선물 같은 영화 : 김태용」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