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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스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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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스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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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8년 07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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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기기 크레마,PC(윈도우 - 4K 모니터 미지원),아이폰,아이패드,안드로이드폰,안드로이드패드,전자책단말기(일부 기기 사용 불가),PC(Mac)
파일/용량 EPUB(DRM) | 26.22MB ?
글자 수/ 페이지 수 약 11.7만자, 약 3.8만 단어, A4 약 74쪽?
ISBN13 97889546518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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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스피드

“좋아.”
하고 그가 반말로 내게 말했을 때, 나는 그와 자게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었고 틀릴 거라면 예감하지 않았다. ---「컬리지 포크」중에서

그러니 이제는 말할 것이다. 도리 없이 지체 없이. 내가 가진 모든 패를 다 보여주지 않고서는 시작할 수 없다. 그건 페어한 게임도 나의 방식도 아니었다. 부디 나보다 나의 글이 더 진실할 수 있기를. 그의 뒷모습을 생각하면, 조금 더 그럴 수 있는 기분이 되었다. ---「컬리지 포크」중에서

내 옷을 입은 당신이 저기 걸어간다, 내 옷을 입은 남자를 보는 건 언제나 행복하게 야릇하고, 이 숨막히게 덥고 사람으로 가득찬 광장 속에서 오직 아는 사람이 너뿐이라는 사실이 어이없게 든든한데 그가 다시 돌아 손을 흔드는 모습을 나는 언젠가 보았던 것만 같고, 그건 반복되는 토포스거나 사실 나는 당신을 이미 마흔 번쯤은 사랑해본 적이 있는 것이고, 언제나 기대했던 기시감으로 넘쳐나는 지금 이 순간, 그런 기시감과 패턴만을 사랑해왔던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고,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생각하고 사랑해버린다. ---「디스코 멜랑콜리아」중에서

상경 후, 내적 갈등을 끝낸 스물네 살 겨울 이후로 나는 단 한순간도 내가 게이라는 사실을 잊고 산 적이 없었다. 과장이 아니라 내가 바라보는 모든 사물과 사람과 사실과 사정과 사건이 내가 게이라는 걸 지시하거나 게이가 아님이 아님을 지시했으니까. 나는 그 생각에서 벗어나 사고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건 좋았다. 정말 좋았다. 그게 내 기쁨이었다. 매분 매초, 이제껏 나를 가려왔던?내가 가려왔던 베일을 벗고 선명하게 세상을 바라보는 것. 이면을 발견하고 조명하는 것. 그건 다시 한번 사는 것과 마찬가지였고 나는 언제나 더 많이 살고 싶어했으므로 그건 내게 축복이나 다름없었다. ---「라스트 러브 송」중에서

기적 같다고는 생각하지 말아야 했다. 그건 비단 나의 지난 연애에서뿐만이 아니라 보편적인 패착이기도 했다. 당신과 내가 만난 건 기적이에요. 거기에다 당신과 내가 게이일 확률을 곱해버리면 그 기적은 무한대가 되어버렸다. 그 환상이 사그라들 때쯤 혹은 그 환상이 일방적으로 폐기되었을 때 패착은 집착으로 변해버린다. 끝은 천차만별로 다양했지만 하나같이 끔찍했다. 이번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우린 확실히 좀 다르지 않은가, 아니다 우린 다를 게 하나도 없어, 다른 거 하나 없이 우리 뻔하게 남들처럼 오래 하자 운운. ---「라스트 러브 송」중에서

굳이 국립국어원에서 ‘이성 간의 그리워하고 좋아하는 마음’을 ‘사랑’으로 정의하더라도 우리의 사랑은 존재한다. 나 역시 도저히 사랑이 아니라고 할 수 없는 그것을 하고 있으며, 나와 나의 남자친구는 이 세계에서 여전히 사랑하며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이런 군색한 상태로 내버려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사랑처럼 사랑을, 사랑이라는 단어를, 그 어떤 속박에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 시작이어야 하지 않을까? 사랑이 언제나 재발명되어야 하듯, 사랑에 대한 정의도 재발명, 재정의될 필요가 있다. 함부르크 스테이크가 햄버거가 되었듯, 더 이상 ‘Films=영화’는 아니듯, 그리하여 언젠가는 퀴어가 퀴어가 아니게끔.
---「Auto」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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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생각 많은 화자가, 이토록 관계를 예민하게 분석하는 인간이, 자기도 모르게 풍덩 들어갔다 나온 곳에 남긴 흔적을, 바닥을 적신 물기를 바라봅니다. 어쩌면 프루스트가 말한 종이꽃, 수중화水中花가 피어나는 곳의 성질도 이와 같았을까요. 그럼 작가의 문장이, 문장 속 과거가 현재의 독자를 만나 천천히 부풀 때, 그 문장은 예전 것일까요, 지금 혹은 미래의 것일까요. 정확히 답할 순 없지만 ‘타인의 몸’이라는 아주 먼 장소에서 온 문장이 이렇게 또 당신을 만납니다. 삶을 두 번 사는 방식으로, 수중화가 됩니다. _김애란(소설가)

그는 사랑의 글쓰기 이외에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그러니까 사랑에 미친 사람처럼, 무엇보다 사랑이라는 것이 제어불가능하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처럼 보인다. (…) 이런 통로를 만들어두지 않는다면, 우리가 어떻게 죽음이라는 굴욕을 완화시킬 수 있을까. 감각적이고 감정적으로 우리를 전율케 하는 삶의 풍요로움이 없다면, 저 지혜롭고 찬란한 사회적 의미며 가치가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_권희철(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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