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꽃비의 이름을 알려드렸을 때 엄마는 발음이 어렵다며 겨우 ‘뽀삐’라 부르시더니 느닷없이 ‘깜돌이’도 ‘깜식이’도 아닌 ‘깜순이’로 비약적인 개명을 감행하셨다. 그렇게 본가의 두 녀석은 순돌이와 깜순이라는 정겹고 구수한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은 엄마에겐 하루에도 수없이 둘의 이름을 부를 일이 생긴다. 때때로 격한 추격전과 레슬링을 벌이는 녀석들이 하나라도 다칠까 걱정인 엄마는 호통치듯 이름을 부르는 것으로 말려보려 했다. 특히 에너지 넘치고 호기심 많은 꽃비의 이름은 더 큰 소리로 부르시곤 했다. 하지만 엄마가 수없이 부르는 두 고양이의 이름은 사랑의 또 다른 표현이다. ---「깜순이가 된 꽃비」중에서
몸도 마음도 한껏 움츠러들어 위로가 절실한 순간, 고양이들이 유난히 보고 싶은 그런 날이 있다. 작은 털뭉치들의 포슬포슬한 머리에 이마나 볼을 비비면 힘든 상황을 견디게 해줄 에너지가 충전되는 것 같다. 고양이 곁에 가만히 눕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안정되는 효과가 있다. 이건 고양이 집사가 누리는 특권이다. ---「너는 나의 힘」중에서
엄마 옆에 누웠다가도 늘 정해진 제 자리에서 잠이 드는 독립적인 순돌이와 달리, 애교 많은 꽃비는 엄마 등에 제 몸을 붙이거나 엄마 베게를 나누어 베고 잠이 든다. 그런 꽃비 때에 잠자리가 불편할 법도 한데, 엄마가 전하는 꽃비 이야기에는 흐뭇함과 애틋함만 가득하다. 첫정을 준 고양이라 그런지 엄마에겐 무조건 순돌이가 최고다. 하지만 말썽꾸러기여도 애교 많은 꽃비 역시 미워할 수 없다 하신다. ---「등을 맡기는 사이」중에서
한평생 가족들 식사를 챙기셨으니 이제 엄마도 다른 사람이 챙겨주는 한 끼가 간절하셨을 것이다. 난 그런 엄마 마음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고 “식사를 챙겨 드셔야 건강을 지킬 수 있다”며 뻔한 잔소리만 늘어놓았다. 본가에 가면 여전히 엄마가 차려주는 밥상을 받아먹기만 했으니 죄송한 마음뿐이다.
그래서 얼마 전 엄마 생신을 앞두고 미역국 요리법까지 공부했건만, 배탈이 나신 바람에 준비한 쇠고기로 국을 끓였다. 내가 탈이 날 때면 엄마가 무수히 해주셨던 일을, 엄마를 위해 처음 해보았다. 나이 많은 딸이 될 때까지 연로하신 엄마의 무한한 사랑과 보살핌 속에 살았음을, 부끄럽게도 이제야 조금이나마 깨닫는다. ---「밥상을 차려보고서야 깨달은 일」중에서
요즘 꽃비가 유난히 아버지께 애교를 부린다고 했다. 엄마 설명으로는 아버지가 꽃비를 우포로 보내겠다고 선언한 직후부터라며, 아무래도 분위기를 파악하고 아버지께 애정 공세를 하는 것 같다고 하셨다.
과장 섞인 말씀이려니 했는데 며칠 뒤 본가에 갔더니 아니나 다를까 꽃비가 아버지 곁에 꼭 붙어 앉아 있다. 안기라도 하듯 짧은 앞발을 뻗어 아버지 배를 감싸는가 하면, 사랑 가득한 시선으로 눈 맞춤을 하기도 했다. 원래 아버지를 좋아했지만, 분명 애교의 강도가 높아진 것 같았다. ---「꽃비의 애정 공세」중에서
입이 짧은 순돌이는 평소 엄마가 애써 챙겨주어도 먹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러면 어르고 달래고 순돌이 곁에 간식 그릇을 요리조리 옮겨주며 조금이라도 먹여 보려 애쓰셨다. 그래도 먹지 않으면 끝내 노여워하시는데, 굳이 역정 낼 일은 아닌데 왜 그러실까 의아했다.
그런데 요즘 나야말로 엄마가 잘 드시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화를 낸다. 밥상을 직접 차려보고서야 알게 되었다. 엄마가 화내셨던 건, 가족이 잘 먹고 건강했으면 하는 애타는 마음을 달리 표현한 것이었음을. ---「잘 먹을 때 제일 예뻐」중에서
좋은 건 아버지만 드신다며 푸념하고, 평생 일방통행인 아버지 때문에 마음고생하시고도 엄마는 항상 당신보다 아버지를 더 챙기셨다.
그래서 나는 엄마의 홍삼 사탕이 웃기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식구들 몰래 혼자만 드시겠다고 비밀창고에 숨겨놓은 것이 고작 사탕이라니. 이제는 엄마가 누구보다 엄마 자신을 가장 아끼고 챙겼으면 좋겠다. 그래서 다음에는 깜짝 놀랄 만한 것들을 거기서 발견할 수 있었으면. ---「달콤한 비밀창고」중에서
엄마와 아버지가 나의 첫 번째 가족이라면 길고양이였던 순돌이는 두 번째 가족이 되어 주었다. 결혼과 함께 남편과 꽃비, 봉순이도 새로운 가족으로 맞이했따. 꽃비와 함께 지내면서 내가 알던 고양이에 대한 상식이 전부가 아님을 알게 되었고, 우포 집에서 봉순이를 키우며 개의 충직함과 다정다감함에 대해 배워갔다.
삶의 연륜이 깊어지고 관계가 넓어지면서 가족의 범주도 확장되는 것 같다. 피로 맺어진 관계만이 가족일 리는 없을 것이다. 혈연과 상관없더라도, 가장 가까운 곳에서 마음을 나누는 존재가 진정한 가족이 아닐까.
---「가족이니까」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