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일 년간 독일 라이프치히에 연구년으로 가 있을 동안, 라이프치히 역 구내 슈퍼에서 한 주 동안 마신, 배낭 가득 빈 맥주병을 현금으로 바꾸어 다시 파울라너 몇 병 구입. 털레털레 별다방으로 가곤 했다. 한국에서 온 유학생들도 눈에 띄었다.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음악 공부를 하는 유학생만 해도 2, 3백 명 된다고 하니 코리아, 참 유별난 나라다. 커피 한 잔 앞에 놓고 빈둥거리다 비치된 신문을 보았다. 스페인의 어느 시장이 확성기를 들고 시민들을 선동해 슈퍼마켓을 약탈했다는 기사가 눈에 띈다.
“시민들은 누구나 먹을 게 있어야 한다!”
시장님이 고래고래 연설을 했다고 한다. 아이코, 멋있어. 그 시장 국내로 수입하고 싶다. 그 멋쟁이 시장님은 결국 재판에 회부되었다. 지금쯤 그 양반 뭐 하고 있을까. 유럽의 일부 국가가 디폴트 위협에 시달리고 있을 때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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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아파트 상가에서 철물점을 하는 황 사장. 인상이 쫌 우락부락해 별로 믿음이 가지 않았다. 샤워기 같은 게 고장 나면 와서 곧잘 고쳐 주곤 하는데도 왠지 무뚝뚝하기만 했다. 얼마 전에 가게에 들러 우리 집 형광등이 불이 안 오거나 희미하거나 깜박거려 이참에 엘이디등으로 왕창 바꿔 달라고 부탁했다.
재료와 연장을 들고 금세 나타난 황 씨. 방마다 쓰던 형광등을 떼어 내고 새 등으로 바꾸는데 그 손놀림이 어찌나 민첩하고 정확한지. 보고만 있는데도 절로 기분이 상쾌하다. 의자 위에 올라가 일하며 요거 저거 챙겨 달라는 대로 거들어 주며 싱거운 이야기를 나누는데 유머 감각도 능숙한 손놀림 못지않다.
집 안이 이래 어둠침침하도록 왜 그냥 두었냐고 싱글거리며 말하길래, 뭐 게을러서 그렇지요, 했더니, 뭐든 미루지 마이소. 중요한 건 그때그때 필요할 때마다 “액션”이지요. 우와, 정곡을 찔리고 말았다. 낄낄거리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능동적이고 실천적이고 밝은 사람이라는 느낌이 확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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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독일에 갈 일 있으면 프랑크푸르트 공항을 이용한다. 몇 년 전이던가.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내려 라이프치히행 기차를 탔다. 아니, 이 차분한 분위기. 어, 왜 이렇지. 다시 보니 승객의 절반 정도가 독서를 하고 있다. 여기가 도서관인가. 내 자리를 찾아가니 중년의 아주머니가 두툼한 책을 읽고 있었다. 슬쩍 보니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다. 아, 그렇지. 저런 뚝심이 독일 사회의 바닥을 지탱하고 있는 거다. 인간의 행위 중에 영혼을 울리는 저런 텍스트를 읽는 것보다 더 섬세하고 더 치밀하고 더 배려 깊은 게 어디 있겠는가. 저런 정신이 독일을 세계 최고의 마이스터 국가로 만들어 놓은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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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번역한 책을 홍보할 때 가끔 써먹는 수법. “내가 서면 책방에 들렀다가 《파우스트》 번역본이 보이길래 선 채로 주욱 읽어 봤더니 너무 실감나게 이해가 잘되데요. 아니 이렇게 섬세하고 박진감 넘칠 수가. 그래서 와- 이거 누가 번역했지 하고 번역자를 봤더니 장희창이더라고요.” 푸하하. 웃음의 도가니. 일부는 피씩. “《파우스트》 읽어 보이소. 인간의 욕망이란 게 얼마나 무시무시하고 끈질긴 것인가를 괴테가 평생을 추적하며 피와 땀으로 갈고닦고 또 갈고닦은 대작이니까요. 나는 내 이웃을 《파우스트》를 만나 본 인생과 못 만나 본 인생으로 나눕니데이.” 노골적인 선전. 반은 농담, 반은 진담이다. (…)
일단 메피스토펠레스는 세상을 돌아다니기에 너무 늙어 버린 파우스트를 젊게 만들어 준다. ‘마녀의 부엌’ 장면에서 별의별 요란한 과정을 거쳐 조제한 회춘 약을 먹고 파우스트는 30년 젊어진다. 책상물림의 서생이었던 파우스트는 젊어지자마자 여성을 밝힌다. 괴테는 파우스트를 우선 관능의 영역에 빠뜨려 놓고 ‘인간에게 관능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이리저리 타진하는 것이다.
오늘의 관점에서 보면 마녀의 부엌은 비아그라 제조 공장이고, 마녀는 공장장, 메피스토펠레스는 자본가에 해당한다. 어쨌거나 메피스토펠레스는 돈이 많다. 파우스트의 평생에 걸친 편력을 뒷바라지했으니, 메피스토펠레스 마술의 본질은 결국 돈인 셈이다. 그 돈으로 성형수술도 시키고, 회춘제를 먹여 파우스트를 강남의 다운타운으로 진출시킨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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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가 약혼자 펠리체 바우어에게 바친 단편 〈선고〉도 같은 맥락이다. 자본의 대리자인 아버지가 ‘사랑’ 어쩌고저쩌고 하며 약혼하겠다는 순진해 빠진 아들더러 나가 죽어라!고 선고해 버린다. 사랑 타령하는 아들보다, 현재 실적은 형편없어도 업무에 충실한 직원을 더 신뢰하는 아버지. 아버지 맞나?
사랑에 눈뜬 아들을 아버지는 빈정댄다. “몇 년 전부터 나는 네가 이런 문제를 들고 오지 않나 지켜보고 있었지. …… 네가 이렇게 철들기까지 무척 오래 기다렸어. 네 엄마는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었구나. 이런 기쁜 날을 보지도 못하고.”
‘자기’라는 이기적인 중심을 놓아 버리면 자본주의는 성립할 수 없고, 사랑은 그 자기를 버리는 것이므로 아버지로서 아들에게 사형선고를 내리는 건 당연한 귀결. 돈이 사랑에게 빠져 죽으라고 선고한 거다. 《변신》에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사과를 던져 상처를 입히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 p.85
브레히트의 익살은 브루노가 감옥에 갇히고 나서부터 시작된다. 브루노는 투옥되기 전 한 재봉사에게 외투를 외상으로 맞추었는데, 투옥된 뒤 재봉사의 아내는 외상값을 받기 위해 부리나케 교황청을 들락거린다. 아닌 밤중에 날벼락을 맞은 게 아닌가. 그 비싼 외투값을 못 받다니. 엉엉. 망했다 망했어.
브루노가 무슨 연유로 감옥에 갇혔는지는 상상조차 못 한다. 무지와 이해, 그 사이의 무한한 간격은 있는 듯 없는 듯 독자의 마음을 아프게도 슬프게도 우습게도 만든다.
--- p.95
누군가가 소로에게 무슨 음식을 가장 좋아하느냐고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가장 가까이 있는 거.” 어쩌다가 예기치 않은 공돈이 생겼을 때의 심경을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어디다 쓸지 생각하기 귀찮았다.” 하하. 해도 해도 너무하시네 정말. 삶의 방식을 송두리째 바꾸지 않고는, 국가와 천민자본주의라는 기계를 멈추는 데 한몫하긴 힘들다는 것이다.
내가 무슨 책을 번역하거나 쓴다고 말하면 금방 이렇게 반응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거 돈 되나? 순간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 나를 어떻게 보는 거야? 그래 놓고는 나중에 그 책의 판매 부수가 제법 올라가면 빙그레 웃는다. 이런 모순 덩어리. 소로는 바로 이 모순을 직시한다.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바퀴가 순조롭게 돌아가는 것을 저지하는 모래 알갱이 역할을 자처한다.
--- p.104
2002년 3월 독일 뤼베크에서 귄터 그라스의 작품 《게걸음으로》 번역 세미나가 열린 적이 있다. 20여 개국에서 온 번역자들과 작가 그리고 편집자가 3박 4일 동안 텍스트를 둘러싸고 열띤 토의를 벌였다. 독일에서도 책이 나오기 전이라 출판사에서 각 나라의 번역자에게 가제본한 책을 미리 보내 줘서 나도 읽어 봤더니 헷갈리고 모르는 데가 참 많았다. 이거 영업 비밀인데. 연필로 밑줄을 죽죽 그어 놓았다.
세미나 장소는 토마스 만 형제가 살았던 붓덴브로크하우스 지하 홀. 오전 아홉 시부터 돌아가면서 각자 소개를 한 뒤 본게임 시작. 귄터 그라스를 옆에서 도와주던 편집자가 말문을 열었다.
“첫 페이지 첫째 단락에 모르는 게 없나요?”
첫 페이지가 아니었다. 이크, 큰일 났네. 저렇게 꼼꼼하게 할 건가. 슬렁슬렁 놀러 왔는데 이거 잘못 걸렸네. 나흘 동안 강행군이었다. 그렇게 시달리고 또 시달렸더니 몰라서 밑줄 쳐 놓았던 것들을 지우개로 거의 다 지울 수는 있었다. 자신의 책을 외국 독자들에게도 제대로 읽히겠다는 책임감 또는 자부심 하나는 알아줄 만했다. 마지막 날 저녁. 이별의 포도주 파티야 없을 리 없지. 해방이다. 부어라 마셔라. 내일은 당장 알프스로 튈 거야.
헤어지면서 작가가 내게 한마디 툭 던졌다. 미스터 장, 두 달 후 한국에서 봐요. 내가 평양으로 갔다가 ‘휴전선을 넘어’ 서울로 갈 테니까. 나는 속으로, 사정을 잘 모르시는군, 잘 안 될 건데 생각하면서도 아, 예, 그러세요, 하고 대답했다.
--- p.138
에드워드 사이드는 서구의 학문과 정치를 상징하는 두 인물, 마르크스와 디즈레일리의 말을 첫머리에 인용함으로써 서구인들의 동양에 대한 편견의 정곡을 찌르고 있다. 이스라엘과 그 지원 세력인 서구 사회로부터 자기 민족이 당하고 있는 수난을 뼈저리게 체험한 팔레스타인 출신의 학자로서 사이드는 과연 이 시대에 동과 서의 화해라는 것이 가능하기나 한 것인지 묻고 있는 것이다.
그런 그에게 공감하며 동지로서 협력의 손을 내민 것은 현존하는 최고의 지휘자 중 한 사람이자 피아니스트인 다니엘 바렌보임이었다. 그는 유대인 출신이다. 두 사람 사이의 우정,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평화를 모색하려는 눈물겨운 시도는 아름답다.
1999년 그렇게 탄생한 것이 이스라엘과 아랍의 젊은 음악도들이 참여한 ‘서동 시집 오케스트라’다. 사이드와 바렌보임은 괴테가 페르시아의 시인 하피스에게서 영감을 받아 쓴 시집의 이름을 딴 오케스트라와 함께 해마다 음악 캠프를 열어 두 민족 젊은이들의 마음에 맺힌 적대감과 원한을 씻어 내려고 시도했다. 특히 2005년 무장 군인들이 공연장을 에워싼 채 팔레스타인 자치 지구 라말라에서 진행된 연주는 지상의 폭력과 평화, 그 두 얼굴의 대비를 극명하게 보여 주는 장면이었다. 혈통과 국가를 넘어서는 그 어떤 보편성, 세계시민주의는 도대체 가능하기나 한 것인가?
--- p.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