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훔쳐가는 노래

[ 포함 문학 3만원↑ '자수파우치' 증정(포인트차감) ] 창비시선-349이동
진은영 | 창비 | 2012년 08월 17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리뷰 총점8.0 리뷰 4건 | 판매지수 7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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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출간일 2012년 08월 17일
쪽수, 무게, 크기 114쪽 | 166g | 125*200*20mm
ISBN13 9788936423490
ISBN10 8936423495

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2000년 『문학과 사회』로 등단한 후 낯선 화법에 실린 선명하고 감각적인 이미지와 독창적인 은유의 세계를 펼쳐 보인 시인 진은영의 세 번째 시집 『훔쳐가는 노래』가 출간되었다. 4년만에 선보이는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현실세계에 대한 치열한 문제의식 속에 사회학적 상상력과 시적 정치성이 어우러진 새로운 감각의 세계를 펼친다.

'사회참여와 참여시 사이에서의 분열'을 창작과정의 문제로 고민해온 시인은 "아름답고 동시에 정차지거인 시에 도달할 가능성이 있는 몇 안되는 시인"(신형철)으로 꼽힌다. 2000년 이후 등단한 많은 젊은 시인들이 그렇듯이 '무엇을 말하느냐'보다 '어떻게 말하느냐'에 관심을 보여온 시인은 이번 시집을 통해 '무엇'과 '어떻게'를 적절하게 결합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문학적 글쓰기와 현실정치의 간극 속에서 문학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을 어떻게 만나게 할 것인가에 대한 치열한 고민의 흔적을 여실히 볼 수 있다.

목차 목차 보이기/감추기

제1부 이 모든 것
있다
오필리아
아케이드
이 모든 것
청춘 4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
쓸모없는 이야기
영화처럼
훔쳐가는 노래
망각은 없다
음악
예언자
토끼를 조심하라구?
그 머나먼
아름답게 시작되는 시

제2부 공정한 물물교환
인식론
후크
공정한 물물교환
방법적 회의
오월의 별
그런 날에는
노을
전생
어떤 보병
불안의 형태
갇힌 사람
시인의 사랑
N개의 기억이 고요해진다
파리에서의 한 달
지도를 찾아서
슬픔의 작은 섬
세상의 절반

제3부 지난해의 비밀
그냥, 판도라 상자
기적
오래된 이야기
단식하는 광대
우리에게 일용할 코를 주시옵고
지난해의 비밀
고백
빌뇌브의 피에타
죽은 이의 평화
거리로
몽유의 방문객
돈 후안
Bucket List
아주 커다란 호박에 바치는 송가
멸치의 아이러니

그리하여, 어느날
자스민

시인의 말

저자 소개 (1명)

회원리뷰 (4건) 리뷰 총점8.0

혜택 및 유의사항?
진은영 시집 『훔쳐가는 노래』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오르페우스 | 2017.08.20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부드럽고 위태로운 저 이야기들     진은영의 세 번째 시집인 『훔쳐가는 노래』(창비, 2012)는 수많은 이야기들로 꾸며진 향연장을 방불케 한다. 그런데 그녀가 시화하는 이야기는 기승전결이 뚜렷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녀는 기억 속의 이야기를 되풀이하여 시의 세계로 불러내고 있지만, 그것은 “천부적인 더러움”(「나의 아름다운 세탁소」)으로 뒤덮여
리뷰제목

부드럽고 위태로운 저 이야기들

 

 

진은영의 세 번째 시집인 『훔쳐가는 노래』(창비, 2012)는 수많은 이야기들로 꾸며진 향연장을 방불케 한다. 그런데 그녀가 시화하는 이야기는 기승전결이 뚜렷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녀는 기억 속의 이야기를 되풀이하여 시의 세계로 불러내고 있지만, 그것은 천부적인 더러움”(나의 아름다운 세탁소)으로 뒤덮여 있는 쓸모없는 이야기”(쓸모없는 이야기)와 다르지 않다.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에 두드러지게 표현되는 천부적으로 더러운 세계는 무엇보다 혼자 두고 나간다고 이층 난간까지 기어와 몸 기대며 악을 쓰던 할머니에 대한 기억과 긴밀하게 연동되어 있다. 악을 쓰던 할머니는 휘날리던 욕설을 퍼붓던 우리 할머니로 이어지고 내가 읽다 던져둔 미국단편소설집을/ 너덜거리는 낱장으로 고이 간직했던 여동생으로 변주된다.

 

한편으로 기억 속의 그 할머니는 시인, 선생 그 짓 그만하고 돈 벌어 우리도 분당 가면, 여전히 아이처럼 조르시는 나의 아버지의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세탁소에 걸린 숱한 얼룩()의 주인들인 이 가족들로 하여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가 변함없이 유지된다. 따라서 나의 이 천부적인 더러움은 가족들의 옷에 묻은 얼룩들의 처연한 삶을 표현한다. 가족들의 그러한 삶들이 이야기를 낳고 표백제 냄새 그득한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를 낳는다. 가족들의 소망과는 다른 꿈을 꾼 화자의 낡은 외상장부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와 미국단편집과 중론(中論), 오래된 참고문헌들과/ 물과 꿈 따위만 적혀 있다”.

 

자본주의 사회의 지형도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인문학적 사유의 장을 시인은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라고 명명한다. 일상의 욕망을 끊임없이 욕망하며 저마다의 꿈을 지피는 사람들에 비한다면, 세탁소를 운영하는 시인의 내면에는 일상의 현실에서는 실현할 수 없는 아름다운 꿈이 스며들어 있다. 그것이 아름다운 이유는 일상인이라면 걷지 않는 길을 기꺼이 자신의 길로 받아들이는 미덕이 거기에는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길은 한편으로 또 다른 길을 포기하는 대가로 시인 앞에 펼쳐져 있다.

 

표제작인 훔쳐가는 노래에 나타나듯 지금 주머니에 있는 걸 다 줘야만 가난한 아가씨는 당신(-)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 그렇다면 가난한 아가씨의 이 사랑은 현실일까, 아니면 상상일까? “눈의 흰 입술들처럼/ 그때 우리는 살아 있었다라는 이 시의 결구를 참조한다면, 모든 것을 주는 행위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사랑을 갈구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다시 그렇다면, 목숨을 걸면 사랑을 쟁취할 수 있는가? 가난한 아가씨의 마음을 홀리는 훔쳐가는 노래는 사실 그녀의 마음속에서 울리는 텅 빈 노래인지도 모른다. 가난한 아가씨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과 같은 존재. 인식론에서 몰라요라는 말을 끊임없이 중얼대는 시적 화자처럼, 그녀는 사연이라고는 전혀 없는 텅 빈 세계를 오래된 이야기”(오래된 이야기)로 기억하며 드넓게 세워진 죽음의 건축학적 강둑 위에”(슬픔의 작은 섬) 조각처럼 서 있는 셈이다.

 

세상을 모르는 여인의 시적 상상의 여정은 그리하여 지금 이곳으로부터 멀어지는 여정을 쉼 없이 반복한다. “좋았다라는 시어가 반복되는 그 머나먼이란 시에서 시인은 멀리 있으니까 여기에서를 그 좋음의 원인으로 내세우고 있다. 지금 이곳에서 멀어진다는 것은 돌려 말하면 바슐라르의 󰡔물과 꿈󰡕의 세계처럼 언어로 걸러진 추상의 세계를 의미한다. 아름다운 세탁소에서 이룩된 탈일상의 비의는 똑같지도, 그렇다고 다르지도 않은 비슷한사물들의 건축물로 현현된다. 진은영은 무엇보다 이러한 추상의 건축물 위에 아슬아슬하게 서서 오래된 이야기들을 지금 이곳으로 하염없이 불러내고 있다. 시인의 이러한 행위는 물론 실패들상처들”(자스민)로 얼룩져 있다. 하지만 그러면 어떤가?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같다라는 비유로 연결(이 모든 것)될 수 있듯, 이 세상의 사물들은 있다라는 현상의 이면에서 여여하게 제 갈 길을 가고 있을 뿐이다. 이를테면,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인 때가 있다

여기에 네가 있다 어린 시절의 작은 알코올램프가 있다

늪 위로 쏟아지는 버드나무 노란 꽃가루가 있다

그 울음이 비에 젖은 속옷처럼 온몸에 달라붙을 때가 있다

 

확인할 수 없는 존재가 있다

깨진 나팔의 비명처럼

물결 위를 떠도는 낙하산처럼

투신한 여자의 얼굴 위로 펼쳐진 넓은 이마처럼

집 둘레에 노래가 있다

- 있다4~5

 

 

여러 사물들이 제시(묘사)되고 있지만, 이 시는 사물들 자체의 현상에 주목하고 있다.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인 때가 있다는 시적 정황은 있다라는 익명적인 상황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사물들의 면목을 에둘러 드러낸다. 창백한 달빛 아래서 자신의 여윈 팔과 다리를 만져보고 있는 사람이 여기에 있고, 어린 시절의 작은 알코올램프 또한 여기에 있다. 확인할 수 있는 것만 있는 건 아니다. “확인할 수 없는 존재가 있다”. 확인할 수 없지만 노래로 들을 수 있고,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것, 이를테면 깨진 나팔의 비명이나 투신한 여자의 얼굴 위로 펼쳐진 넓은 치마와 같은 사물들을 향한 시인의 노래는 이렇게 하나의 중심으로 환원되지 않는 사물들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낳는다. 이렇게 보면 오래된 이야기는 오래된 이야기라고만 할 수는 없다. 오래된 이야기는 말해지는 순간 새로운 이야기가 되어 이 세상을 떠돈다. 숱한 실패들과 상처들이 뒤섞여 이룩된 오래된 이야기의 세계는 그것을 발설하는 화자(이야기꾼)를 통해 상상을 거부하는 이 세상으로 한없이 밀려든다.

 

오필리아에서 시인은 어느 눈먼 자의 젖은 손가락을 위해” “해변으로 떠내려간 심장들이/ 뜨거운 모래 위에 부드러운 점자로 솟아난다고 이야기한다. “모든 사랑은 익사의 기억을 가지고 있다는 시적 진술을 참고한다면, 사랑은 죽음의 반대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죽음과 더불어 이 세상의 어딘가에 변함없이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부드럽고 위태로운 장소”(몽유의 방문객)에서 꿈꾸는 시의 세계는 이렇듯 삶과 죽음의 경계로부터 생성되는 오래된 이야기와 정확하게 맞닿아 있다. 진은영은 꿈길을 걷듯 그 오래된 이야기의 세계 속으로 기꺼이 들어간다. “혼자서 다 가질 수 없는/ 이 달콤한 죄”(아주 커다란 호박에 바치는 송가)를 너무나도 일상적인 이 세계에 퍼뜨리기 위해 그녀는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에서 바슐라르의 꿈을 꾸고, 프로스트의 꿈을 꾼다. 용수의 󰡔중론(中論)󰡕을 곱씹으며 라는 관념으로는 이를 수 없는 세계를 상상하기도 한다. 그러한 세계를 실현하기 위해서라면 그녀는 제 주머니의 모든 것을 바칠 준비가 이미 되어 있다. 뜨거운 모래 위로 솟아나온 부드러운 점자를 젖은 손가락으로 만지는 어느 눈먼 자의 초상이 있다. 생의 환멸을 표현한 자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과연 어떨까? 눈먼 자의 점자 속에서 이 세상은 어떻게 다시 그려질 수 있을까? 진은영이 쓸 이후의 시가 기다려지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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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문화리뷰 [훔쳐가는 노래] 문학은 사방 널려있는 것들을 훔쳐서 시로, 노래로 만들게 한다. 내용 평점5점   편집/디자인 평점5점 문학소녀 | 2016.09.19 | 추천7 | 댓글18 리뷰제목
훔쳐가는노래문학은사방널려있는것들을훔쳐서시로노래로만들게한다
구입한 지 한참 되었고, 읽은 지도 꽤 되었는데, 기록을 해놓지 않으면 기억이 나질 않는다.그래서 휙휙 정신없는 무협지만 읽던 나날들 속에서 잠시 쉬는 마음으로 시집을 폈다.얼마 전에 읽었던 [시시하다]를 엮었던 진은영 시인의 시집을...무덥던 날을 슬며시 덮어버린 이 아름다운 가을 밤에 시집을 읽는 행복이란,다정한 시인과 한적한 오솔길에서 데이트하는 기분
리뷰제목

구입한 지 한참 되었고, 읽은 지도 꽤 되었는데, 기록을 해놓지 않으면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래서 휙휙 정신없는 무협지만 읽던 나날들 속에서 잠시 쉬는 마음으로 시집을 폈다.

얼마 전에 읽었던 [시시하다]를 엮었던 진은영 시인의 시집을...

무덥던 날을 슬며시 덮어버린 이 아름다운 가을 밤에 시집을 읽는 행복이란,

다정한 시인과 한적한 오솔길에서 데이트하는 기분이라고 해야할까,

아님 근사한 찻집에서 그윽한 차향에 취하며 도란도란 얘기하는 기분이라고 해야할까. 

시인... 시어를 발견하는 사람... 행을 짓고, 연을 가꾸고, 시를 다듬는 고독한 예술가, 시인...

 

시인은 아름답고, 시시하고, 작고, 하찮은 많은 것들 속에서 빛나는 그 무엇을 발견하는

재주가 있는 사람들인가보다. 어떻게 보통 사람의 생각에서는 할 수 없는 것들을 깎고 다듬어서,

혹은 진열방법을 바꾸기만 하는 것으로 우아한 행을 만들고 연을 만들까. 지독하게 집중해서

찾아내기도 하고, 슬쩍 스쳐가면서 시의 재료를 휙 낚기도 하는 시인은 모든 것이 완벽한 천상에서 

불완전한 지상을 감히 꿈꾸다가, 지상의 진정한 보물을 찾아내라는 벌을 받고

이 허접한 세상에 하강한 천사들임에 틀림없다. 그러지 않고서야 왜 똑같이 바라보는 곳에서

똑같이 보물을 훔쳤는데, 누구는 죄인이 되고, 누구는 시인이 되겠는가.      

 

 

훔쳐가는 노래

 

지금 주머니에 있는 건 다 줘 그러면

사랑해주지, 가난한 아가씨야

 

심장의 모래 속으로

푹푹 빠지는 너의 발을 꺼내주지

맙소사, 이토록 작은 두 발

고요한 물의 투명한 구두 위에 가만히 올려주지

 

네 주머니에 있는 걸, 그 자줏빛 녹색주머니를 다 줘

널 사랑해주지 그러면

 

우리는 봄의 능란한 손가락에

흰 몸을 떨고 있는 한그루 자두나무 같네

 

우리는 둘이서 밤새 만든

좁은 장소를 치우고

사랑의 기계를 지치도록 돌리고

급료를 전부 두 손의 슬픔으로 받은 여자 가정부처럼

 

지금 주머니에 있는 걸 다 줘 그러면

사랑해주지, 나의 가난한 처녀야

 

절망이 쓰레기를 쓸고 가는 강물처럼

너와 나, 쓰러진 몇몇을 데려갈 테지

도박판의 푼돈처럼 사라질 테지

 

네 주머니에 있는 걸 다 줘, 그러면

고개 숙이고 새해 첫 장례행렬을 따라가는 여인들의

경건하게 긴 목덜미에 내리는

 

눈의 흰 입술들처럼

그때 우리는 살아 있었다                       p.26-p.27

 

 

시인이 내게 주머니에 있는 것을 다 달라고 했다면 뭐가 있든 다 줬을 것 같다.

상당히 도발적인 발상이지만, 그 누구도 아닌 시인이기에 난 다 줘도 아깝지 않았을 것이다.

나를 사랑해 주지 않는다 해도 그냥 내가 사랑하는 것으로 충분히 만족했을 것 같다.

원한다면 없는 것도 만들어다 줬을 것이다.

왜 내 주머니에 있는 것을 다 달라는 시인은 여태까지 없었을까.

어쩌면 없었던게 다행일까.

시에 약하고, 시인에 약한 나는, 나의 모든 것을 다 원하는 지상에 하강한 천사들에게

나의 노래, 타인의 노래, 지상의 노래, 천상의 노래까지 다 훔쳐다 줬을지도 모를 일이다.

 

 

 

멸치의 아이러니

 

멸치가 싫다

그것은 작고 비리고 시시하게 반짝인다

 

시를 쓰면서

멸치가 더 싫어졌다

안 먹겠다

절대 안 먹겠다

 

고집을 꺾으려고

어머니는 도시락 가득 고추장멸치볶음을 싸주셨다

그것은 밥과 몇개의 유순한 계란말이 사이에 칸으로 막혀 있었지만

뚜껑을 열어보면 항상 흩어져 있다

 

시인의 순결한 양식

그 흰 쌀밥에서 나는 숭고한 몸짓으로 붉은 멸치를 하나 하나 골라내곤 했다

시민의 순결한 양식

그 붉은 쌀밥에서 나는 결연한 젓가락질로 하얘진 멸치를 골라내곤 했다

 

대학에 입학하자 나는 거룩하고 순수한 음식에 대해

밥상머리에서 몇달간 떠들기 시작했다

문학과 정치, 영혼과 노동, 해방에 대하여, 뛰어넘을 수 없는 반찬 칸과 같은 생물들에 대하여

잠자코 듣고만 계시던 어머니 결국 한 말씀 하셨습니다

"멸치도 안 먹는 년이 무슨 노동해방이냐"

 

그 말이 듣기 싫어 나는 멸치를 먹었다

멸치가 싫다, 기분상으로 구조적으로

그것은 작고 비리고 문득, 반짝이지만 결코 폼 잡을 수 없는 것

 

왜 멸치는 숭고한 맛이 아닌가

왜 멸치볶음은 죽어서도 살아 있는가

이론상으로는, 가닿을 수 없다는 반찬 칸을 뛰어넘어 언제나 내 밥알을 물들이는가

왜 흔들리면서 뒤섞이는가

 

총체적으로 폼을 잡을 수 없다는 것

그 머나먼 폼

왜 이토록 숭고한 생선인가, 숭고한 젓가락질의 미학을 넘어서 숭고한가

멸치여, 그대여, 아예 도시락 뚜껑을 넘어 흩어져준다면,

밥알과 함께 쏟아져만 준다면

그 신비의 알리바이로 나는 영원토록 굶을 수 있었겠네

 

두 눈 속에 갇힌 사시(斜視)의 맑은 눈빛으로

다른 쪽의 눈동자를 그립게 흘겨보는 고독한 천사처럼                     p.106-p.108

 

 

멸치볶음이 시가 되었다. 그것도 고추장멸치볶음이...

도시락 반찬으로 어머니가 싸주셨는데, 넘지말아야 할 칸을 넘어서 흰밥에 뒤섞인 멸치볶음.

흰밥은 붉어지고, 흩어진 멸치는 하얘지는...

총체적으로 폼을 잡을 수 없어서 싫다는 멸치볶음.

시인에게는 맛보다 폼이 중요하고,, 대충 뒤섞이는 것보다 아예 쏟아지는 게 폼이난다.

결국 숭고한 맛이 없어서 먹기 싫은 멸치볶음이지만,

사시의 눈빛으로 한쪽 눈이 다른 쪽 눈동자를 그립게 흘겨보듯이,

어머니의 채근에 먹을 수 밖에 없고 영 폼이 안나는 멸치를 흘겨볼 수 밖에 없다는

시인의 철없는 투정... 이제 시인은 멸치를 먹고 노동해방을 외치러 나가려나.

멸치의 아이러니라니... 난 멸치볶음이 먹고 싶다.

노동해방을 외치러 나갈 계획도 없고, 거룩하고 순수한 음식을 따지고 싶지도 않지만,

작은 멸치 하나하나의 폼나지 않는 작은 반짝임을 눈여겨 보며,

평범하고 시시하며 작게 반짝이는 시어를 건져봐야겠다. 

내일 낮에 시장에 가서 멸치 한 봉지 사와서 식구들 함께 맛나게 먹도록

비리고 시시하고 고소하고 반짝이게 달달 볶아야겠다.

 

 

좋은 시들이 많았는데, 따뜻하고 신선한 시들이 많았는데, 딱 두 편을 골랐다.

내 눈에 딱 들어온 시, 내 맘에 딱 꽂힌 시, 내 삶에 딱 적용할 수 있는 시를...

오랜만에 시와 함께 하는 시시(詩時)한 가을 밤, 열어놓은 창으로 서늘한 바람 한 줄기가 들어온다.

오소소 돋는 소름, 추석이 지나고 나자 성큼성큼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댓글 18 7명이 이 리뷰를 추천합니다. 공감 7
진은영, 훔쳐가는 노래. 내용 평점4점   편집/디자인 평점4점 율리Julie | 2014.02.13 | 추천0 | 댓글0 리뷰제목
시집에 대한 리뷰는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모르겠다.아니 어떻게 시를 읽어야 하는지 모르겠다.그저 눈으로 읽고....소리내어 읽고....옮겨 적으며 읽고...다시 또 읽는다.(장소를 옮겨가며 읽고 또 읽었다.)진은영 시인의 시들이 좋아서 선택한 책이었다.시집과 동명의 시 하나만큼은 꼭 기억해야 한다 생각하며조심스럽게 <훔쳐가는 노래>(p.26~27)를 옮겨둔다.그 언젠가&
리뷰제목

시집에 대한 리뷰는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아니 어떻게 시를 읽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저 

눈으로 읽고....

소리내어 읽고....

옮겨 적으며 읽고...

다시 또 읽는다.

(장소를 옮겨가며 읽고 또 읽었다.)


진은영 시인의 시들이 좋아서 선택한 책이었다.

시집과 동명의 시 하나만큼은 꼭 기억해야 한다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훔쳐가는 노래>(p.26~27)를 옮겨둔다.


그 언젠가 

천연덕스럽게 

'내가 이 시를 어떻게 읽었냐 하면...'하고 

술술 말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ㅎㅎ





훔쳐가는 노래

                         -진은영


지금 주머니에 있는 걸 다 줘 그러면

사랑해주지, 가난한 아가씨야


심장의 모래 속으로

푹푹 빠지는 너의 발을 꺼내주지

맙소사, 이토록 작은 두 발

고요한 물의 투명한 구두 위에 가만히 올려주지


네 주머니에 있는 걸, 그 자줏빛 녹색주머니를 다 줘

널 사랑해주지 그러면


우리는 봄의 능란한 손가락에

흰 몸을 떨고 있는 한그루 자두나무 같네


우리는 둘이서 밤새 만든

좁은 장소를 치우고

사랑의 기계를 지치도록 돌리고

급료를 전부 두 손의 슬픔으로 받은 여자 가정부처럼


지금 주머니에 있는 걸 다 줘 그러면

사랑해주지, 나의 가난한 처녀야


절망이 쓰레기를 쓸고 가는 강물처럼

너와 나, 쓰러진 몇몇을 데려갈 테지

도박판의 푼돈처럼 사라질 테지


네 주머니에 있는 걸 다 줘, 그러면

고개 숙이고 새해 첫 장례행렬을 따라가는 여인들의

경건하게 긴 목덜미에 내리는


눈의 흰 입술들처럼

그때 우리는 살아 있었다





p.s. 사실 가장 마지막에 실린 <자스민>이라는 시가 제일 처음 마음에 닿았었다.

(너무 많은 시를 자꾸 옮겨다 놓으면 저작권 때문에 시인님께 죄송해지니까 이만.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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