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빠지는 것은 바나나 껍질을 밟고 훌러덩 미끄러지는 사고 같은 것입니다. 불시에 일어나고 그로 인해 다칠 수도 있죠. 차이점이 있다면 바나나 껍질은 한 번 잘못 밟는 것으로도 충분히 교훈을 얻을 수 있지만 사랑의 실책은 늘 또렷하게 이해되지만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색한 실수를 자꾸만 반복하게 되죠. 하지만 나는 ‘사랑의 실패가 인생의 실패는 아니라는 점’도 보여줄 것입니다. 사랑에 멍이 들었다 해도 사랑 때문에 이전보다 더 궁핍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의 최대 강점 가운데 하나는 멍이 들었다고 해서 썩지는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 p.17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내가 이 세상에 드러내지 않는 나의 은밀한 모습을 만져봐달라고 누군가를 초대하는 일입니다. 사랑을 할 때 생기가 도는 것은 평소에 잘 드러나지 않는 우리 존재의 면면들을 사랑이 일깨워주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우리를 깨지기 쉬운 무방비 상태로 만듭니다. 그런데 수많은 연애서들은 여자들에게 아주 이상한 조언을 합니다. 남자가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자신에게 빠져들게 한 뒤 정작 그렇게 한 여자더러는 냉정하고 무관심한 태도를 유지하라고 하니까요. --- p.29
부와 명예가 매력적일 수 있다는 점은 인정합니다. 그리고 빛나는 눈과 피부결이 호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남자들이 돈 많은 여자를 좋아할 수 없을 것처럼 혹은 여자들이 머릿결 좋은 남자를 좋아할 수 없을 것처럼 사실을 왜곡해서는 안 됩니다. 여자가 --- p.일부) 남자들만큼이나 돈과 권력을 가지게 된다면 월스트리트의 투자전문가보다는 가난한 가수를 더 좋아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우리 문화가 더 이상 젊음과 미모를 숭배하지 않게 된다면--- p.가능성은 별로 없지만 뭐 꿈꾸는 데 돈 드는 거 아니니까요) 남자들은 당장에 나이가 좀 있고 덜 반짝이는 여성을 고르기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 p.78
남녀에 관한 집단적 통념은 남녀를 이편과 저편으로 갈라놓습니다. 이는 한쪽이 다른 쪽보다 더 낫다는 전제를 내포하죠. 그리고 둘의 관계를 본디 적대적인 것으로, 즉 내가 ‘이기기’ 위해서는 상대가 어떻게든 ‘져줘야’ 한다고 느끼게 합니다. 게다가 엄청난 노력만이 둘의 차이를 좁힐 수 있다고 암시합니다. 우리는 평생 동안 서로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하도록 운명지어져 있다고 말입니다. 이것은 맞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정녕 남녀만의 문제일까요? 두 여성이 서로 사귄다면 두 사람은 서로를 완벽하게 꿰뚫어 볼 수 있을까요? 단지 두 사람이 성별이 같다는 이유로요? 여자 커플은 애정에서 생겨나는 문제들을 자동적으로 비켜가게 될까요?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 pp.80-81
자아도취형 남자들은 현재 가진 것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언젠가 다가올--- p.또는 그래야 ‘마땅한’) 것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이죠. 이들은 결코 실현되지 않을 환상에 기대고 있기 때문에 현재의 순간 속으로 완전히 들어서지 않습니다. 일부 남성들이 가진 ‘헌신에 대한 공포’는 자아도취형 사랑의 또 다른 얼굴입니다. 자아도취형 남자들은 그래야만 완벽한 여자가 나타날 ‘가능성에 대비할’ 수 있으니까요. --- p.115
남자의 환상 속에서 나는 그의 숨겨진 천재성을 일깨워주는 뮤즈이자 세상의 모든 악을 없애주는 성모, 그의 가장 에로틱한 욕망을 채워주는 창녀이자 그의 근심을 덜어주는 어머니, 그리고 그의 ‘행복 추구’가 진지하게 받아들여지는 나라로 이끌 자유의 여신상이 되는 것입니다. --- p.160
진화생물학자들은 남자의 은행 잔고나 직업에 대해서 말하기를 좋아하지만, 여러분은 남자의 고르지 못한 턱선이나 또 다른 ‘결점’에 이끌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자신의 결점을 없애려는 그의 노력은 그래서 실수가 되기도 합니다. 연인이 될지도 모르는 사람이 여러분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은 여러분의 결점 때문일 수도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합니다. --- p.165
처음 만났을 때처럼 전율이 느껴지지 않는 이유가 뭐지 잘 모를 때가 많습니다. 욕망의 스러짐이란 욕망의 탄생만큼이나 그 원리가 오리무중이죠. 우리가 특정한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이유를 모른다면 우리가 사랑에서 빠져나오는 이유 또한 알 수 없습니다. 욕망이 지속되려면 더 이상 평범한 것과 특별한 것을 반대말로 봐서는 안 됩니다. 사랑하는 남자가 평범하면서 동시에 특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 pp.174-175
이 정도가 되면 슬픔을 내려놓는 것만큼 무서운 일도 없습니다. 그 반대는 완전한 공허함이기 때문입니다. 비참함도 공허함보다는 낫습니다. 나는 앞서 삶의 한가운데 놓여 있는 근본적인 결핍에 대해 얘기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달아날 수 없는 결핍입니다. 사랑이 실패로 돌아간 뒤에 우리가 느끼는 정서적 공허함은 이 결핍과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가 잃은 것은 우리에게 ‘그것’을 돌려주기로 약속했던 사람이니까요. 우리는 온전성을 약속했던 사람을 잃어버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