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차를 들면서 지난날의 실패의 고통에 대해 생각할 때가 많다. 지금 현재를 생각하려고 해도 과거로 돌아갈 때가 많다. 그럴 때 굳이 과거로 끌려가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계속 차를 들고 있으면 내가 끌려갔던 그 과거의 분노와 상처에 대해 그만 무덤덤해지고 만다는 것이다. 차는 내 마음속에서 강물과 바닷물이 만나듯 내 과거를 현재의 세계와 중화시킨다. 강물이 바닷물을 만나면 결국 바닷물이 되어버리듯 차를 드는 동안 나는 과거에 있는 듯하지만 늘 현재에 있다. --- p.26
스테인드글라스는 맑은 통유리로 만들지 않는다. 조각조각 난 색색의 유리를 붙여서 만든다. 그 조각조각 난 색유리를 통과한 햇살이 그토록 아름다운 색채의 문양을 만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내 인생이 산산조각 난 까닭 또한 내 인생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한 것이다. 나를 아름답게 하기 위해서 내 인생에 고통이 존재하는 것이다. --- p.166
신병훈련을 마치고 자대 배치를 받기 위해 ‘낙엽도 직각으로 떨어진다’는 춘천 보충대에서 대기하고 있을 때였다. 전방 지역 어디로 배치받게 될지 몰라 두려움과 초조함에 떨고 있을 때, 이등병인 나를 누가 면회왔다고 했다. 나는 함박눈이 펑펑 내리는 넓은 연병장을 숨 가쁘게 달려갔다. 멀리 면회실이 있는 정문 위병소 옆에 조그마한 한 사내가 외투 깃을 올리고 서 있었다. 아버지였다. 뜻밖에 아버지가 대구에서 그 먼 춘천까지 면회를 오셨다. “춥제?” 아버지가 외투 속에 넣어두었던 손을 꺼내 고된 훈련으로 거칠게 상한 내 손을 잡아주셨다. “배고프제?”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빵 먹을래?” 면회소에서 아버지가 사주신 단팥빵을 연달아 몇 개나 급히 먹으면서도 핑 도는 눈물은 어쩔 수가 없었다. --- p.358
나도 타이탄 트럭을 타고 참으로 이사를 많이 다녔다. 얼핏 손가락으로 꼽아봐도 열댓 번은 더 한 것 같다. 그 까닭은 바로 가난했기 때문이다. 전세 임대차계약 기간이 2년인 요즘과는 달리 예전에는 6개월이 계약 기한이었다. 그러니 잘못하면 1년에 두 번을 이사하게 되고 만다. 이사할 때 타이탄 트럭에 짐을 다 싣고 나면 내가 탈 자리가 없어 어떤 때는 트럭에 짐짝처럼 실려 서울 시내를 달리게 된다. 그때 바라보게 되는 거리의 풍경은 쓸쓸하다 못해 참으로 서러웠다. 그래서 그때 타이탄 트럭에 짐짝처럼 실려 도시 한복판을 달려보지 않은 사람과는 인생을 논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지금도 내 마음속에는 가난한 가장이 운전하는 타이탄 트럭이 바다를 배경으로 달리고 있다. 멀리 암벽이 있는 해안까지 달려갔다가 다시 돌아오기를 몇 차례나 반복한다. 타이탄 트럭까지 아름답게 해주는 봄바다가 고맙다. 바다는 가난의 추억까지 아름답게 해준다. --- p.392
나도 한때 그런 약속을 한 적이 있다. 첫눈이 오는 날 신설동 로터리 돌다방에서 만나자고, 첫눈이 오면 하루 종일이라도 기다려서 꼭 만나야 한다고 약속을 한 적이 있다. 그리고 하루 종일 기다렸다가 첫눈이 내린 밤거리를 밤늦게까지 팔짱을 끼고 걸어본 적이 있다. 걷다가 눈을 뭉쳐 눈싸움을 해본 적도 있다. 너무 많이 걸어 배가 고프면 눈 내린 거리에 카바이드 불을 밝히고 하나의 풍경이 되어 서 있는 군밤 장수한테 다가가 군밤을 사 먹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약속을 할 사람이 없다. 그런 약속이 없어지면서부터 나는 젊음을 잃기 시작했다. 약속은 없지만 지금도 첫눈이 오면 나는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 눈 내리는 거리를 서성거린다. --- p.461
오래전 이야기이지만, 한번은 구두를 닦으러 구두닦이 집에 들렀다가 누가 종이에 볼펜 글씨로 써서 붙여놓은 시 〈구두 닦는 소년〉을 본 적 있다. 구두 밑창과 이런저런 수선 도구들이 널브러져 있는 그 좁은 공간 벽면 한 귀퉁이에 붙어 있는 시를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시 좋네요. 자작시예요?” 나는 짐짓 모른 척하고 말을 붙였다. “아니요. 누가 이런 좋은 시가 있다고 보내줬어요. 나한테 딱 어울리는 시라고 하면서요. 그래서 이렇게 붙여놓고 매일 읽어봅니다. 나도 구두를 닦을 때마다 별을 닦는다고 생각하면 은근히 마음이 좋아져요.” 나는 그의 말에 가슴이 뭉클해져 자칫 내가 쓴 시라고 말할 뻔했다. “하하, 그렇게 생각하면 구두를 닦아달라고 부탁한 내가 별이 되는 거네요.” 내가 그 시를 쓴 시인이라고는 하지 않고 그저 환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는 말없이 웃기만 했다. 그때 내 가슴속에서 시를 쓴 보람과 기쁨이 느껴졌다. 시는 쓴 사람의 것이 아니고 읽는 사람의 것이라는 것을 그때 처음 알게 된 게 아닌가 싶다. 다른 사람의 구두를 닦고 수선하는 고단한 노동에 한 편의 시로 웃음과 기쁨을 줄 수 있다는 것, 그 얼마나 소중한 가치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