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이후 교회는 건물이나 공간 중심 모임에서 온라인상의 시간 공유 공동체로 변해 갈 것입니다. 구원이라는 개념도 개인 중심에서 사회나 환경을 포괄하는 쪽으로 확대해야겠지요. 목회도 성장을 위한 행사 위주에서 균형 잡힌 치유나 회복으로 방향 전환이 이루어지리라 봅니다. 한국 교회가 지금까지 추구해 온 ‘행동주의 중심의 영성’이 ‘안식과 평화를 추구하는 영성’으로 바뀌어 가리라 전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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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후반 근대 과학지식의 확산 시기에 영국 종교계는 어떻게 대응했을까? 제가 내린 결론은 대체로 소극적이고 방어적이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서유럽의 탈기독교화는 장기 지속적인 추세이기는 하지만, 19세기 후반의 시기가 매우 결정적이고 중요했다고 생각합니다. 서유럽의 사례가 오늘날 한국 교회의 현실을 진단하는 기준은 될 수 없지만, 과거의 사례를 통해 오늘을 진단하고 성찰하는 것은 비단 역사학뿐만 아니라 종교계의 책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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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회는 성범죄에 굉장히 관대합니다. 저도 복음주의 운동 단체에서 일하고 있지만, 교회에서 성폭력 피해를 당한 여성을 제대로 상담하고 지원하는 변변한 단체가 없습니다. 일반 사회에는 ‘한국여성의전화’ 등 오랜 역사를 가진 기관이 있지만, 기독교 영역에서는 너무 없어요. 그리스도인들이 성폭력 피해를 당하면 일반 지원 단체에 연락해서 도움을 요청합니다. 일반 지원 단체에서 일하는 분들은 “기독교인들 상담 사례가 너무 많아요”라고 이야기합니다. 성폭력 피해를 담당할 부서나 기관이 한국 교회 내에 없다는 점을 부끄럽게 여겨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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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스트가 전문성을 함양하고 계속 훈련해야 한다는 말씀도 맞지만, 전문가들이 저널리스트의 글쓰기나 전달 방식을 배워서 저널리스트가 되는 것이 더 바람직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합니다. 그 방향으로 저널리즘이 가야 한다면, 저널리스트라는 직업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더 고민해야 하겠지요.…전문가들이 대중과 직접 소통하는 시대에 저널리스트의 역할은 무엇인지를 고민하게 되고, 이것이 요즘 기자들에게 던져진 과제가 아닌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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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제가 하는 말은 이렇습니다. “괜찮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당신이 병에 걸렸다고 해서 이걸로 저는 당신을 판단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당신의 인생을 잘 모르고, 당신 입 안에, 당신 주변에 어떤 원인이 있어서 이 질병이 생겼는지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냥 이제부터 이 병을 고쳐 나가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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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이지만 종교적이지 않은” 것을 추구하면서, 기성 종교 특히 제도 종교에는 발을 담그지 않겠다는 사람이 많이 늘어나고 있습니다.…탈종교 현상이나 기독교 인구의 감소를 개인의 실수나 불만 차원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급변하는 세상에 종교가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라는 과제로 이해하고 고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교회도 바뀌고, 종교도 바뀌고, 또 개인도 바뀌면서 좀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기대합니다.
--- p.174-175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 없이’라는 단락은 본회퍼 신학의 가장 매력적인 대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는 우리가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처럼, 무신론자처럼, 비종교인처럼 살면서, 동시에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하는 존재임을 강조합니다.
--- p.194
기독교가 세상을 향해 예언자적 증언을 할 수 있는데, 그때는 세상이 알아들을 수 있게 하라고 충고합니다. 계시의 목소리나 복음의 목소리가 아니라 세상과 우리가 공명하고 있는 부분으로 예언자적 증언을 하라는 거죠.
--- p.221-222
좋은 사회인이 되기 위해 평생 훈련받아 온 청년들은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병행이 어려운 현실 앞에서 비혼과 비출산을 선택하게 됩니다. 청년들의 이런 고민과 삶을 헤아리지 못하고, 하나님이 주신 소명의 영역은 ‘아빠-직장, 엄마-가정’이라고 가르치면, 청년들은 교회를 떠나거나 교회는 우리 삶과 동떨어져 있고 삶의 중요한 문제에 더는 답을 주지 못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 p.264
프로테스탄트(protestant)를 ‘저항’이라고 많이 번역하는데, 저는 그 말보다 순수한 한국말인 ‘개긴다’라는 표현을 잘 씁니다. 교회야말로 그런 프로테스탄트 정신이 필요하지요. 단순히 혼자 저항하지 말고, 뜻을 품은 사람들이 함께 수평적으로 소통하면서 뜻을 모아야 합니다. 이것이 소통입니다. 그다음에 성경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하나님의 나라 공동체를 일상에서 구현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 루터의 종교개혁이 우리에게 주는 가르침이고, 루터교회가 추구하는 가치입니다.
--- p.282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은 14세기 유럽 흑사병의 내습을 피해 모여든 사람들이 털어놓은 서로 다른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간 들리지 않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생긴 것입니다. 르네상스 유럽이라는 새로운 세계와 새로운 인간관이 펼쳐지는데, 낯설고 새로운 목소리들의 등장은 작지 않은 역할을 했습니다. 우리 앞에 전개될 팬데믹 이후의 세상은 익숙함을 넘어서는 다른 관점으로 사회현상을 골똘히 들여다보는 수고를 더 많이 요구할 것입니다.
--- p.297-2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