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이 속한 반야부는 무엇인고 하니, “네 한마음이다. 네 한마음 밝아야 한다.” 그래서 반야부를 ‘영지보물令知寶物’이라 하는데, ‘자기 몸속에 있는 보배를 알게 해 준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네 마음이 곧 부처다. 밝으면 부처다. 네 마음이 미迷하면 중생이다.” 이런 것을 얘기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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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네 마음이 밝아야 하겠다. 또 심지어 너희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형상 있는 것은 다 아니다. 그것은 네 마음을 가린 것이다. 오직 모든 것이 실상이 없는 줄 알 때, 네 마음이 밝을 것이다. 이렇게 하면 곧 밝은 이를 구경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얘기들은 아마 이 세상 인류가 창조된 이래 참 듣기 어려운 말이었고, 앞으로도 그런 말이 없을 것이고, 현재에도 그런 말은 거의 없습니다. 우레가 치고 비가 오면 모두 하느님의 장난이라고 그랬지 “네 마음의 소산이다”라는 말을 한 이도 없었고, 또 그러려고 하지도 않았고, 지금 이 시대에도 여러 사람이 그런 거 잘 믿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금강경》의 골자라고 할 수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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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사람들은, 골치 속이 복잡하고 그 복잡한 것을 비교해서 판단을 내리는 것을 ‘안다, 깨닫는다’라고 했어요. 골치 속을 복잡하게 해 놓고, 그 밑에다 볼 견見을 할 것 같으면, 깨달을 각覺 자입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어떻게 했는고 하니, 골치 속을 탕탕 비워 버렸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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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다 무슨 소리인고 하니, 자기 마음속의 망념을 자꾸 부처님을 향한 마음으로 바꿨는지라, 실지로 제 마음속의 망념이 밝은 마음으로 바꾸어졌을 것 같으면 제 마음은 비었을 것입니다. 제 마음이 빈다는 것은 곧 다시 말하자면 지혜가 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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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고로 법을 취하지도 말 것이며, 법 아닌 것[非法]을 가지지 말아라.”
말 들었거든 그대로 실행을 하지, 그것이 무슨 좋은 것이라고 하지도 말라. 왜 그러냐? 마음 닦는 방법도 가지지 말라는데, 마음 닦지 않는 방법을 가졌다간 더 안 되겠죠. 그래서 옛날 사람들이 이렇게 말했어요. “유불처에 부득주[有佛處不得住]” 하고, 즉 부처 있는 곳에도 머물지 말고, “무불처에 급주과[無佛處急走過]” 하라, 즉 부처 없는 곳에서는 급히 달아나라. 무슨 뜻인고 하니, 부처를 상대하면 자기 마음이 가린다. 어떻게 가려지는고 하니, “누대 월색을 운수거[樓臺月色雲收去]”, 즉 좋은 집에 달이 비쳤는데 [구름이] 그 달빛을 막아 버리는 것과 같다는 뜻입니다. ‘부처님’ 생각을 해도 그래요. 그러니까 내가 부처님을 생각한다면 [부처님과 오히려] 더 멀어지겠지, 뭐. 그럼 부처 없는 데는 어떻게 하나? 그건 아주 탐진치 삼독이 그대로 있어서 컴컴한 마음이니까, 그것은 근본 닦을 형편이 없게 돼요.
--- p.96
“수보리야, 이른바 불법이라고 하면 곧 불법이 아니니라.”
내가 시방 얘기해 준 이 법이 여기서 마음 닦는 방법이라고 [집착]하면, 그것은 마음 닦을 수 없는 것이 된다, 그 말이야. 왜 그러냐? 이 ‘불법佛法’이라고 하는 뜻이 ‘마음 밝히는 방법’이라는 말이겠지, 만약 이것을 가지고 마음이 컴컴하다면 그것은 불법의 뜻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수보리야, 말한바 불법이라는 것은 곧 불법이 아니니라” 했던 겁니다.
--- p.113
세 번째는 인욕忍辱바라밀. 어리석은 마음을 위해 말씀하신 거예요. 어리석은 마음[癡心]이란, 제 잘난 생각입니다. 제 잘난 생각이면 우주가 정지되니까, 항상 자기가 못난 줄 알고, 자기가 자꾸 배우려고 들면, 지혜가 무한대로 발전이 돼요. 자기가 배우는 마음을 가지려면, 남이 무슨 말을 하든지 탓하지 말아야 되겠다. 그것이 욕된 것을 참는 방법[즉 치심을 닦는 인욕바라밀]이다.
--- p.121
자기가 배우는 마음을 낼 것 같으면 제가 잘난 생각은 없어질 것입니다. 제가 잘난 생각이 없어지면 남이 욕보인다고 그다지 뭐 고통받을 일이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들은 모두 우리가 몸뚱이를 가졌기 때문에 그런 일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 p.138
‘반야’라는 것은 ‘지혜’라는 말이고 ‘바라밀다’라는 것은 ‘고생의 이쪽 언덕에서 고생을 여의는 저 언덕에 간다’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이 경 이름을 다시 말하자면 ‘마음을 닦아서, 그 마음을 밝게 하여 다시 컴컴해지지 않는 법’입니다.
--- p.168
여기 32상이라는 새로운 술어가 나옵니다. 마음이라는 것이 어떤 작용을 내느냐? 자기 몸뚱이가 있는지라 탐심貪心에 의지해서 작용을 내고, 또 자기 몸뚱이 보호한다는 입장에서 성내는 마음[嗔心]으로 자기를 보호하고, 또 자기를 자랑하기 위해서 어리석은 마음[癡心] 곧 자기가 안다는 그런 마음, 이 세 가지[三毒心]로서 자기를 나타내게 되니까, 만일에 그것을 바꾸면 모양이 다르겠지요.
--- p.174
모든 것이 원인 지어서 결과라면, 남이 복 지어서 잘되는 것을 보고 시기할 것이 없어요. 자기가 하는 것이 좋고, 또 자기도 할 수 있다면 그것이 좋은 것이 아니겠어요. 그러니까 언제라도 무슨 생각이 들거나 무슨 일을 만날 적에 제 마음 들여다보고 해결하면 퍽 좋고, 제 마음 들여다보고 해결할 수 있을 만큼 [닦아서] 준비되면, 이 세상은 사실 낙樂의 세계이지 고苦의 세계는 절대로 아닐 것입니다.
--- p.200
은혜를 갚을 수 있는 사람에게 베풀면, 그 순간부터 ‘이 사람이 이걸 잘 갚아야 하겠는데…’ ‘잘돼야 하겠는데…’ 하여 그때부터 그 사람에게 그만 물질과 마음이 붙어 가서 자기 자유를 전연 얻을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무슨 일을 행할 때 어떤 보수를 기다렸거나 어떤 목적이 있어서 한다면, 마치 사람이 컴컴한 데 들어가 있는 것 같아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자기 마음도 컴컴해지고 주위도 컴컴해진다는 것입니다. 그건 왜 그러냐? 자기 마음이 한군데로 들어가니까 절대로 자유가 있지 않은 것입니다.
--- p.210
남을 제도한다는 것보다도 ‘나’와 ‘남’이 그냥 없어지게 되고, 곧 자기 행동이 우주에 그냥 통하게 되는 것, 이것을 대승[흰 소 수레]이라 하고 최상승最上乘이라고 말하게 되었어요. 이 우주라는 것은 모두 원인 지어서 결과가 되기 때문에 서로 이렇게 마주쳤거든요. 자기가 아무리 수도를 해서 이걸 뺀다고 하더라도, 여기 이것 자체는 있어서, 언제라도 자기가 약할 때 이것이 들어와집니다. 그러니까 애당초에 이것을 맞푸는--- p.동시에 해결하는) 일은 무엇이냐 하면, 내 마음을 닦는 동시에 밖의 그 고생스러운 것을 자기가 실지로 침투해서 해결을 해 보고, 해결하면서 제 마음을 닦는 것입니다.
--- p.223
여기서 ‘모신다’는 것은 그이 시중을 들어서 그이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니까 진심嗔心을 닦는 것이죠. ‘공연히 지낸 것이 없다’는 것은 자기의 그 제 잘난 생각을 없앴다는 말입니다. 공양供養(음식과 예를 바침), 승사承事(받들어 섬김), 무공과無空過(헛되이 지냄이 없음), 이것은 탐?진?치 삼독[의 수행]을 말하는 거예요.
--- p.244
석가여래가 이십 년 설법하고 나서 보니까, 그 사람들은 마음이 그냥 부처를 향하면 그냥 부처거든. 이제 고정만 되면 그냥 성리 밝겠단 말입니다. 모두 보니 참 모두 부처란 말입니다, 그냥 석가여래를 향하고 앉았는 것이. 그 수천이 죄 부처거든. 그래서 ‘아하! 한마음 닦아 성불成佛이로구나!’ ‘한마음이 그냥 부처를 증證하면 그냥 밝구나.’ 이렇게 말이 뚝 떨어지니까, 이 사람들 마음이 ‘옳지 내 마음이지’ 이러니까, 모두 캄캄해 버리거든. 저를 향向해 버렸으니까. 그런데 오직 한 사람이 유난히 밝더라 그 말입니다, 그 마음이. 그런데 그 사람은 어째서 그런가 하니까, 다른 사람들은 모두 “제 마음 닦아 성불하는구나” 그렇게 말하니까 좋아서, 모두 ‘내 마음이지’ 그래서 제 마음 들여다보니, 제 마음이 캄캄하니까 모두 캄캄한 마음인데, 오직 한 사람이 ‘참 고맙습니다. 이런 말은 이건 밝은 이가 아니면 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앉았다, 그 말입니다. 그 사람을 보니까 그냥 안팎이 없이 그대로였어요. 그 사람이 그냥 밝아요. 그래서 그 사람에게 “너는 내 뒤를 이어서 부처가 될 것인데 네 이름은 ‘미륵존여래彌勒尊如來’라 하리라” 했다 그랬거든.
--- p.258
‘보살’이란 무엇이냐? 위로 부처님 지혜를 구하고 아래로 모르는 이를 가르쳐 준다. 그러면 모르는 이를 가르쳐 준다는 것이 어떤 것이냐? ‘부처님의 마음을 즐겁게 하려고’ 모르는 이를 가르쳐 줄 것 같으면, 제 마음에 ‘밝은 이’를 증證(새김)할 것입니다. 그러나 ‘모르는 이를 자기가 가르쳐 주겠다’ 할 것 같으면, 제 마음에 ‘모르는 이’를 증하니까, 결국은 자기가 모르는 사람이 되게 됩니다. 남을 제도한다는 생각을 일으키면, 저는 모르는 사람이 되게 되니까, 부처님 국토는 장엄할 수가 없어요.
--- p.266
“닦는 보살이 어떻게 그 마음을 머무리까? 닦는 보살이 어떻게 (그렇게) 항복을 받으리까[云何應住, 云何降伏其心]?” 그럴 적에 “모든 세상 사람을 다 부처 만들겠다고 해라. 그렇게 만들고 나면 한 중생도 제도 받은 자 없느니라.” 그 소리는 무엇인고 하니, ‘네 마음속에서 한 생각이 일어나면 한 중생, 두 생각 일어나면 두 중생, 이런 것을 전부 부처 되게 하겠다고 해라. 그래 그것이 죄 부처 된다면 그럼 한 중생도 제도 받은 자 없느니라’ 한 것은 네 마음이 그만큼 비었느니라, 그 말입니다.
--- p.283
“그러니까 복덕이 없다. 그러니까 여래가 복덕이 많다고 하느니라.”
이런 것도 《금강경》이 어려운 부분입니다. ‘복덕이 있다. 복덕이 없다. 복덕이 있다.’ 이거 쉽게 이해하기 어려울 겁니다. 그러나 이게 마음 닦는 것인 줄 알면 여러분들도 해석이 잘될 것입니다.
--- p.293
탐내는 마음, 성내는 마음, 제 잘난 마음이 있으면, 아무리 불법佛法을 하더라도 밝아지지 않는다, 껌껌해진다. 그러니까 너희가 불법이라고 해도 그것이 탐/진/치 삼독을 연습하는 한, 불법이라고 할 수가 없겠다. 탐진치 삼독만 없다면 무엇이든지 다 불법일 것이다.
--- p.358
자꾸 부처님께 바치면 참은 궁리가 하나도 없거든. 자, 그 말을 들어 보니 《금강경》이 맞는 것이, “다 부처님 만들겠다고 해라, 다 만들고 나면 한 중생도 제도 받은 자 없느니라” 그러거든. 왜 그러냐 하면, 궁리를 자꾸 바치면 결국은 어떻게 돼요? 제 궁리라는 건 컴컴한 거거든. 컴컴한 걸 밝은 곳으로 드러내 내놓으면 어떻게 될까요? 컴컴한 것이 없어지지요. 컴컴한 것이 없어지니까 자기가 궁리했던 것 또한 사라질 겁니다.
--- p.361
《금강경》을 처음 열면 마음을 항복 받는 것, ‘항복기심降伏其心’이 나오는데, 항복기심, 이 넉 자만 1,000일만 전념해서 연습하면, 자기에 대한 불만이라는 것은 어떤 근거가 없기 때문에, 다 알아지고 마는 거예요. 이것을 처음 입문이라고 할 것 같으면, 두 번째 단계는 무엇이냐? “마음을 어떻게 쓰리까?”
마음을 어떻게 쓰는고 하니, “어디든지 주함이 없이 그 마음을 내 봐라.”
--- p.363
지금 우리가 이 《금강경》을 놓고 읽는 것은, 3,000년 전 석가여래를 향해서, 우리가 자꾸 아침저녁으로 시간 있는 대로, 자꾸 연습하는 것입니다. 이 연습을 하면 어떻게 되느냐? 마치 장님을 보고서, 자꾸 해를 향해서 환한 생각을 해 보라고 하는 것과 같아요.
《금강경》 읽는 사람들은, 첫째 그것을 믿어서 의심치 말 것. 둘째는 자신이 그 석가여래 제자들 틈에 끼어서 석가여래 말씀을 듣되 그 내용을 알려고 노력할 것. 셋째는 안 것을 실행하도록 노력할 것.
--- p.366
남의 얘기를 들으면 다 아는 것 같아요. 다 아는 것 같지만, 글로 받아 써 보면 우리가 들어서 아는 것하고는 엄청나게 거리가 멉니다. 또 글로 써 봤다가도 실제로 실행해 보지 않으면 그 내용을 잘 모르는 겁니다. 처음엔 알려고 하고, 알고 나거든 실행을 해 봐야 합니다. 실행해 봐야 자기가 어떤 위치에 있었으며, 《금강경》 말씀이 어떻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 p.371
그러나 《금강경》 읽는 거로는 만족스럽지 않아요. 《금강경》을 읽고 또 그 《금강경》을 실행해 보자는 겁니다. 실행해 보면 아주 재밌는 일이 많이 있는 겁니다. 아마 한 1,000일 실행을 하다 보면, 어떤 때는 자기가 모르는 사이에 지혜가 폭발하는 걸 많이 보게 돼요.
--- p.380
여기서는 색다른 것이, 실행을 한다는 거예요. 장엄불토莊嚴佛土라는 것도 실행이고, 《금강경》을 펼쳐 보면 모두 실행할 것이에요.
--- p.381
그래서 현재 현재가 진실하면, 미래 미래는 완전할 겁니다. 그건 누구든지 부인 못 할 겁니다. 현재 현재에 자꾸 일어나는 생각을 “부처님, 부처님” “미륵존여래불” 해 보라는 겁니다. 모르면 몰라도 부처님이 밝은 뜻이라면 우리가 밝지 않을 수 없고, 만약 우리가 밝는다면 컴컴한 것한테 미혹 당하지는 않을 거예요.
--- p.387
다른 사람을 미워하면 왜 자기가 다치는가 하면, 다른 사람이라고 하는 그 생각은, 그게 자기自己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 말입니다. 남을 미워하는 것은 곧 자기를 자꾸 미워하는 것이거든. 이런 것을 ‘미迷한 짓’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제(자기)를 아무리 좋게 하려고 해도 곧이들리지 않고 안 될 적에는, “모든 세상 사람이 이렇게 이렇게 하길 발원” 이러면 마음이 선[立]다 그 말이에요.
--- p.398
그래서 이거 《금강경》을 실행만 하면, 실행하는 한 번 한 번에 자꾸 이利해요. 그러고 재미있는 것이, 처음에는 도무지 막연해서 알 것 같지 않은데, 자꾸만 하면 느닷없이 알아져요. 이건 내가 경험을 해 본 것이고, 여러분도 경험을 쌓으면 얼마나 편안한지 알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저 아침저녁 부지런히 《금강경》 읽고 무엇이든지 부처님께 바치자 그 말입니다.
--- p.3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