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서 성폭행을 직접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이런 남자들에게 먹잇감을 던져주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예전에 나는 이야기를 위해서라면 아무리 고통스럽다고 해도 어떤 내용도 가능하다고 믿었다.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내가 순진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폭력 장면이 스토리의 내적 논리에 충실하다고 해도 저런 자들에게 먹이를 공급하는 순간 영화는 포르노가 된다.
--- 「듀나, 〈죽어야 하는 여자들〉」 중에서
영화 〈더 이퀄라이저〉를 드라마로 리부트하면서, 덴젤 워싱턴 역할을 퀸 라티파로 바꾸고 10대 싱글맘의 역할을 맡겼다고 해서 엉망인 스토리와 조악한 캐릭터가 살아나지는 않습니다. 각각의 장르와 스토리에 꼭 필요한 캐릭터를 창조하려는 전방위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저 윤리적 도그마에 갇혀 독자를 설득하려는 것은, 장르 자체의 고유한 특성을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올 뿐입니다.
--- 「한이, 〈추리 소설의 여성 캐릭터를 어떻게 창조할 것인가〉」 중에서
“대림동은 분지예요. 아무 건물이나 옥상에 한번 올라가 보세요. 신도림동, 신길동, 신대방동, 구로동의 고층 아파트가 사방을 둘러싸고 있어요. 거인의 성벽처럼요. 대림동은 아파트가 거의 없잖아요. 그래서 그 성벽 바깥에 있는 사람들은 여기서 누가 뭘 하면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보지 못하는 거예요.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거죠.”
--- 「김형규, 〈대림동 이야기〉」 중에서
거울 속 여자의 얼굴 옆에 아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얼굴이 점점 어른의 것으로 변하더니 성인 여성의 얼굴이 되었다. 아이의 어머니이자 남자의 전부인. 아이보다 더 아름다운, 한 여성의 얼굴.
여자는 그 얼굴과 자신의 것을 나란히 보며 생각에 빠졌다. 남자는 정말 나를 사랑하는 걸까. 저렇게나 아름다웠던 부인을 잊고 나를 사랑하는 게 과연 가능한가.
--- 「홍선주, 〈자라지 않는 아이〉」 중에서
“오무라는 그런 나를 보며 큰 소리로 외쳤소. 야마모토 벌써 잊었나? 우린 주군에게 충성을 맹세한 사무라이다.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이었소. 사무라이. 한때는 나도 사무라이로서 주군에게 충성을 하며 살았지만, 여기에 있으면서 그것이 얼마나 하찮은 일인지 깨닫게 되었소. 난 오무라에게 말했소. 오무라, 난 지금 누구보다도 행복하다, 내겐 돌봐야 할 사람이 있고 뼈를 묻고 싶은 고향이 생겼다고 말이오.”
--- 「김유철, 〈산〉」 중에서
“남자는 능력이 많을수록, 여자는 나이가 어리고 예쁠수록 점수가 높습니다.”
5월의 여왕 대표는 인간의 여러 가지 특성을 쉽게 계량화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것 같았다. 오 과장은 대표의 얼굴에서 교통범죄 수사팀장의 뺀질뺀질함이 느껴졌다. 오 과장은 속에서 심술이 올라왔다.
--- 「김세화,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 중에서
그날 밤 억병으로 취해 말했다. 법의학 의사가 된 이유 중 하나는 수술 도중 사람이 죽을 염려가 없어서라고.
이후로 나는 대놓고는 아니지만 그를 경멸하기 시작했다.
“장 선배님, 준비 끝났습니다.”
닥터 최가 불렀다. 죽음과 맞부딪치는 순간이다.
--- 「류성희, 〈인간을 해부하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