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곳곳에서 국경의 역사는 문명 및 제국의 역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리고 이후, 16세기에서 17세기에 근대 국민국가가 탄생할 무렵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로마인들은 최초로 여권(passport)을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계를 넘나드는 사람의 숫자를 제한하는 권한은 시민적 특권을 근거로, 또는 유대인이나 그 밖의 소수집단을 제한하려는 일반 대중의 정서를, 또는 원거리 노예무역을 근거로 뒷받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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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타적 주권이라는 신화와 고정된 국경이라는 신화는 위험하다. 우리는 국경에 대해 전혀 다른 견해를 도입해야 한다. 국경이란 살아 있는 것이며, 자연의 변화가 가져오는 복잡한 현실에 열려 있어야 한다. 그리고 기후변화와 국제 갈등이 깊어지는 지역에서 일어나게 될 사람들의 집단 이주도 수용하는 것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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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국경을 단지 정적인 국경 장벽이나 지도상의 수동적인 경계선으로 여기기보다 어떤 ‘활동’(activity)으로 여기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건 무슨 뜻일까? 실제로 국경 안보 투자의 배후에는 여러 중요 추진세력이 있다. 그리고 이와는 모순되게도, 굳이 그 방위력을 철통같이 만들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는 이유도 많다.
그런 추진세력은 문화적이거나 경제적이거나 정치적일 수 있다. 가령, 이민자들이 토착 문화를 말살해 버리지나 않을까, 갈등과 테러를 저지르지 않을까, 전염병을 퍼뜨리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다. 또 자주 논의되지는 않지만, 재정적 문제도 있다. 국경 인프라와 안보시설을 둘러싼 유럽과 북미의 경험은 산업-법률-정치-군사 복합체가 번성하면서 방위 담당관, 국경 수비대원, 변호사, 정책결정자, 밀수꾼, 민간 위탁업체, 시민사회 단체와 정치 지도자들 같은 사람들이 활개를 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여기서 국경 안보와 통제는 아주 수익이 좋은 비즈니스가 된다. 2019년 3월에 나온 보고서에서, 경영분석 그룹인 프로스트앤설리번(Frost and Sullivan)은 국경안보 관련 시장이 2025년에 1,680억 달러 규모까지 성장할 것으로 보았다. 새로운 투자는 실시간 데이터 분석에 집중될 것이며, 국경 안보 기구는 이로써 사람과 물자의 비정규적인 움직임을 포착하고 예방하는 역량을 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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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 안보산업이 발달한 국가는 그 안보 기술과 디지털 감시 역량을 수출하고 싶어 한다. 가령, 군사용 드론의 세계시장은 2020년대에 계속 성장하여 매년 5억 달러씩 가치를 늘려갈 것으로 여겨진다. 이는 유럽과 북미 같은 이민자들이 많이 몰려드는 지역에서 수익이 쏠쏠할 것이며, 그 밖에 국경 분쟁이 ‘실제 상황’인 곳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남아메리카에서는, 베네수엘라와 가이아나 사이의 분쟁 지역 같은 곳에 고정익 드론을 그 어느 때보다 대량으로배치했다. 고정익 드론은 분쟁 지역을 폭넓게 오래 감시할 수 있으며, 국경 감시 임무에도 뛰어나다. 드론 산업은 매우 잘 나가는 중이며, 스위스 같은 나라는 스스로 ‘드론의 나라’라 부를 정도로 적극적으로 마케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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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 때문에 빙하와 만년설이 녹아내려 알프스 국경이 바뀌고 있다는 뉴스는 입법 대응을 부추겼다. 2006년,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 정부는 ‘움직이는 국경’ 개념을 법제화하기로 합의했다. 이는 2009년, 스위스와의 비슷한 협정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움직이는 국경’은 지정학적 논쟁을 피하기 어려워 보였다. 기후변화의 장기적 영향에 따라, 더 국가주의적이거나 포퓰리즘적인 정부는 “빙하를 구해야 한다”고 선언할 수 있다. 영토 손실 이야기는 “우리 땅이 이웃으로 넘어가고 있다!”는 실존적 고뇌로 빠르게 바뀔 수 있다.
앞으로 국가들이 다가올 스키 시즌에 대비해 눈과 얼음을 지키려 스키 리조트 등에 많은 기계설비를 투자하리라고 예상된다. 국가가 그야말로 빙하를 융단처럼 깔고(이미 스위스는 론 빙하에 그렇게 하고 있다) 인공 눈을 살포해서 빙하의 후퇴나 소멸을 방지하려는 시나리오를 상상할 수 있다. 그것이 군사분쟁으로 이어지지는 않더라도, 자원이 많은 나라는 그 빙하지대를 열공학(thermal engineering)의, 심지어 군사적 보호 대상으로 여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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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통틀어 제국과 국민국가는 ‘국경을 만드는 하천’, 산맥, 해안선 같은 천연의 장벽들을 찾아내어 그것을 국경으로 삼는 것이 매우 유용하고 영토를 표시하는 매우 설득력 있는 장치라는 점을 깨달았다. 두 제국이 서로 마주쳤을 때, 그 경계선은 대개 강, 호수, 해안, 산길 등이었다.
지난 200년 동안 지형 조사, 지도 제작, 국경 협정, 국제사법재판소에의 제소 등 국가 간에 땅과 바다를 나누는 일에 전례 없는 노력이 기울여졌다. 아프리카와 아시아를 지배했던 유럽의 제국주의자들은 지도를 작성하면서 하천의 흐름을 국경으로 삼곤 했다. 그런 하천의 구획은 정확히 이루어지기 어려울 수도 있지만, 하천, 호수, 바다 등은 제국주의 통치권의 눈에 보이는 경계선으로 활용되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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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수층은 지하수를 함유한 지층을 말한다. 이 눈으로 볼 수 없는 수자원은 국경 간 협력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전 세계적으로 600곳 이상의 대수층이 하나 이상의 국토에 걸쳐 존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아주 최근까지, 그 규모나 범위는 불확실했다. 그러나 지하 지형의 지도화와 지리 시각화(geo-visualisation)는 지하 세계에서 흐르고, 저장되어 있는 물에 대한 이해도와 관심도를 현격히 높였다. 광산 개발이 (18세기와 19세기에 그랬듯) 국가의 ‘수직적 영토’에 대한 관심을 높였다고 한다면, 이후에는 탄화수소와 수자원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특히 지하 공간에서 흐르는 물은 더욱 그런데, 이는 규제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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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세기 동안, 세계의 해양과 대양을 ‘관리’하는 원칙은 ‘자유’ 뿐이었다. 가령, 최소한의 간섭을 받으면서 세계 각지로 항해할 자유 같은 것이다. 제국주의 국가들은 이 자유에 근거해 무역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미국 같은 강대국은 항행의 자유를 관철하고자 힘을 행사했으며, 항해의 주요 길목을 배타적으로 지키려는 자국의 의도를 (국제법상 선박은 간첩 행위, 쓰레기 투기, 밀수, 군사적 행동 등을 하지 않는 한 타국의 영해를 항해할 권리가 있다는 점을 들면서) 문제가 없다거나 (바다와 바다, 또는 대양과 대양을 오가는 흐름을 지속하여 보장해야 한다면서) 항해에 필요하다고 변명했다.
캐나다는 대서양에서 북아메리카 북쪽 해안을 따라 태평양에 이르는 북서항로(Northwest Passage)를 “우리 영해”라고 주장했지만, 미국과 기타 국가들은 이를 자유항행에 필요한 길목이라 보았다. 그 차이는 컸다. 어떤 바다가 필수 항로의 일부라면, 제3국은 그 연안 국가의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그 영해를 다닐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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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디브는 해수면 변화와 그것이 국경들과 주권국가의 승인에 미칠 영향에 관한 논란의 한가운데에 있다. 이 나라의 산호초가 사라지고 사람 살 곳이 없어진다면, 다른 나라들이 그곳에는 이제 누군가의 영토권도 없다고 볼 가능성이 농후하다. 1993년의 몬테비데오 협정은 ‘승인 가능한 국가’를 네 가지 범주로 분류했다. 국가 승인을 받으려면, 영구적으로 거주하는 인구, 확실한 영토, 제 기능을 하는 정부, 다른 국가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능력이 인정되어야 한다. 영토의 상실은 일부 국가들이 범람에 희생된 국가를 승인하지 않는 일로 이어질 수 있으며, 그것으로 그 국가는 타국과 관계 맺는 능력도 부정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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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땅을 포기하는 일이 다른 부유한 나라들에 기회를 주는 것임도 인지할 필요가 있다. 남중국해를 보면 앞으로 환초들과 저지대 섬나라들이 어찌 될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중국 같은 나라들은 일부 섬 국가가 포기한 땅을 활용하기로 하고, 준설선 함대를 동원해 수몰된 땅을 다시 수면 위로 드러내려 할 수 있다. 한 나라의 불행이 다른 나라의 기회가 되는 셈이다.
수몰된 영토는 제3자에게 두 가지 기본 선택지를 준다. 문제의 나라를 도와서 주거지구와 사회 인프라를 고지로 올려 주든가, 한때 그런 나라의 영토였던 곳을 점거하여 ‘우리 영토’라고 주장하든가. 인도적 개입이 끝나면, 제3자가 영토를 빼앗아 군사 또는 전략적 우위를 얻기 위해 활용할 수 있다. 몰디브가 중국에 거액의 빚을 지고 있으며, 국채 비중만 약 30억 달러에 이른다는 사실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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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이래, 남극 영유권을 주장한 나라는 아르헨티나, 칠레, 노르웨이, 프랑스, 뉴질랜드, 호주, 영국으로 모두 7개국이었다. 이 극지에 대한 영토권을 처음 주장한 나라는 영국이었으며 가장 규모가 큰 주장자는 호주였다. 두 남미 국가들, 아르헨티나와 칠레가 남극은 자국의 영토가 뻗어나간 연장선상에 있다고 주장하는 동안, 유럽과 오세아니아의 영토권 주장자들은 그들이 옛날 수행한 탐험과 발견, 자원 채취 그리고 과학 탐구 목적으로 계속해서 자국민이남극에 정주해온 사실을 내세웠다. 남극을 춥고, 바람이 매섭고, 말라붙었으며 머나먼 곳에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기 쉽겠지만, 실제 정책결정자들의 상상 속의 남극은 유달리 자원이 넘쳐나는 변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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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의 달 조약은 달이 국제 불화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규정했으며, 그것은 앞서 1959년의 남극 조약과 1967년의 우주 조약의 정신과 상통하는 것이었다. 달 조약의 제11조 개요는 다음과 같다. “달과 그 부존자원은 인류의 공동 유산이다. 달은 어떤 주권 주장에 따르든 특정 국가에 귀속되지 않는다. 달의 표면도, 지하도 어떤 국가의 소유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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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중국 달 탐사 계획의 수장인 예페이젠(葉培建)은 이런 말을 했다. “우주는 대양이다. 달은 댜오위다오(釣魚島)이며, 화성은 황옌다오(黃岩島)다. 우리가 갈 힘이 있는데도 지금 그리로 가지 않으면, 후손들의 비난을 받을 것이다. 다른 이들이 그리로 가면, 그곳들을 차지할 것이며,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로써 우리가 우주로 진출할 이유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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