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크. 하고 싶은 말은 너무 많지만, 우린 서로 대화하는 게 늘 쉽지 않았지. 안 그러니? 한밤중의 신사. 바닥의 그 남자애. 나비들. 이상한 옷차림을 한 그 여자애. 그리고 당연히 위스퍼 맨에 관해서도.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우선 네게 미안하다는 말부터 해야겠다. 그동안 줄곧, 난 네게 겁낼 건 아무것도 없다는 말을 참 많이도 했었지. 괴물 같은 건 세상에 없다고. 거짓말해서 미안하다. --- pp.10~11
낯선 이에게 아이를 유괴 당한다는 것은 온 세상 부모들의 가장 끔찍한 악몽이다. 지금 황무지에서 여섯 살짜리 닐 스펜서를 몰래 따라가고 있는 남자는 그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남자는 닐이 돌멩이 하나를 집어 들고 버려진 텔레비전의 유리를 향해 있는 힘껏 던지는 모습을 홀린 듯 바라보았다. 뻑. 요란한 소리가 주위를 뒤덮은 침묵을 깨뜨렸다. 돌은 유리를 박살내지 못했지만, 화면을 관통해 가장자리에 마치 총알 자국 같은 별 모양 구멍을 냈다. 닐은 다시 돌멩이를 집어 들어 같은 동작을 되풀이했지만, 이번에는 빗나갔다. 다시 시도하자 화면에 구멍이 또 하나 생겼다. 아무래도 아이는 이 놀이가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그리고 남자는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이 가벼운 파괴행위는 아이가 학교에서 보이는, 점점 커져가는 공격성과 흡사했다. 자신의 존재 따위 알지도 못하는 듯한 세상에 충격을 주려는 행위였다. 제발 날 봐달라는, 내 존재를 알아달라는, 날 사랑해달라는 외침이었다. 세상 모든 아이가 원하는 건 그게 전부였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원하는 건. 그 생각을 하자 마음이 아파 왔다. 이제 심장이 한층 더 빨리 뛰고 있었다. 남자는 아이 등 뒤의 덤불에서 가만가만 걸어 나와 아이의 이름을 속삭였다. --- 「1부」 중에서
남자는 어둠 속에 서서 몸서리를 쳤다. 머리 위의 맑고 검푸른 하늘에는 별들이 점점이 찍혀 있었다. 밤은 낮의 열기와 날카롭도록 싸늘한 대조를 이루었다. 하지만 남자를 떨게 만드는 것은 기온이 아니었다. 남자는 그날 오후 자신이 한 일 생각을 일부러 피했지만, 그 행위가 남긴 충격은 아직 남아 있었다. 시야 바로 바깥에, 피부 밑에 숨어 살금대고 있었다. 남자가 살인을 저지른 건 오늘이 처음이었다. 남자의 심장이 약간 너무 세게 뛰고 있었다. 고개를 가로저은 후 억지로 자신을 진정시켰다. 다시 숨을 고르며 그런 생각들을 머릿속에서 밀어냈다. 오늘 일어난 일은 혐오스러웠다. 혹시라도 그 일이 오만 감정과 더불어 나름의 기묘한 만족감을 가져왔다 해도, 그건 끔찍하고 잘못된 것이다. 맞서 싸워야만 하는 잘못된 감정이었다. 남자는 그 대신 그전 몇 주간 느낀 평온함에 매달려야 했다. 아무리 그게 결국은 거짓이었다 해도. 남자는 대상을 잘못 골랐을 뿐. 그게 전부였다. 그 남자애는 실수였고, 그 실수는 다시 되풀이되지 않을 것이다. 다음번 남자애는 완벽할 것이다. --- 「2부」 중에서
나는 문 앞에 도달했지만 문턱에서 멈춰 섰다. 계단 밑의 목재 위에 피 묻은 발자국이 잔뜩 문대져 있었다. “제이크?” 나는 집 안을 향해 외쳐 불렀다. 집 안은 조용했다. 나는 조심조심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귓가에서 심장이 거칠고 빠르게 뛰고 있었다. 캐런이 날 따라잡았다. “무슨…, 아, 맙소사.”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거실을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거기에서 날 기다리는 광경은 도무지 말이 되지 않았다. 담당형사가 창가에서 마치 잠든 것처럼 등을 내게 돌리고 몸을 웅크린 채 누워 있었다. 피 웅덩이가 그분의 몸을 둘러싸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위층 층계참에도 피가 묻어 있었다. 아래층에서 그 끔찍한 짓을 저지른 누군가가 카펫을 밟고 간 자국이었다. 나는 아들의 방 안에 들어섰다. 침대 시트는 말끔히 개켜져 있었다. 제이크는 거기 없었다. 거기엔 아무도 없었다. 나는 그대로 얼어붙은 채 서 있었다. 공포가 살갗을 스멀스멀 기어갔다. 이건 악몽이 아니다. 실제 상황이다. 내 아들이 사라졌다. 그게 내가 첫 비명을 내지른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