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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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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2년 04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184쪽 | 252g | 135*205*11mm
ISBN13 9791155814598
ISBN10 11558145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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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임 편집자로서 신인 작가들이 출판사로 보내오는 원고를 읽다보면 매일같이 시점 위반 사례를 발견한다. 경험이 많은 작가라 해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 출판사에서는 이런 원고를 대부분 거절한다. 시점은 소설의 모든 측면에 너무 큰 영향을 끼치며, 시점에 대한 근본적인 실수들을 고치려면 지나치게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서문」중에서

책을 읽는 경험은 영화나 TV 드라마 같은 다른 이야기 전달 매체보다 훨씬 더 친밀하게 느껴진다. 책에는 시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단편이든 장편이든 소설을 읽을 때 독자는 그저 외적으로 드러나는 활동을 지켜보고 대화를 듣는 데 그치지 않는다. 독자는 등장인물의 내면 깊숙이 들어가 인물의 눈을 통해 사건들을 경험하고 인물의 감정을 공유한다. 이야기가 펼쳐지는 모습을 그저 지켜보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어 그 삶을 직접적으로 경험하는 것이다.
---「1장 시점의 정의와 중요성」중에서

독자는 어차피 시점이 무엇인지 모를 텐데 무슨 상관이냐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독자는 시점 문제가 일으키는 ‘결과’를 알아챌 수 있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그것이 시점 문제 탓이라고 정확히 짚어 말하지는 못할 테지만 그 대신 주인공에게 마음이 안 간다거나, 이야기 안에 몰입하기가 어렵다고 말할 것이다.
---「1장 시점의 정의와 중요성」중에서

1인칭 시점 소설의 핵심은 이야기의 처음부터 끝까지 독자의 관심을 사로잡을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흥미를 자아내는 인물에 있다. 화자가 강렬하고 매력적인 목소리를 가지고 있지 않다면 독자는 단조롭고 지루하게 말하는 사람의 이야기에 몇 시간이나 억지로 귀를 기울여야 하는 셈이다.
---「3장 1인칭 시점」중에서

3인칭 객관적 시점은 다른 말로 ‘영화적 시점’, ‘비개인적 시점’, ‘관찰자 시점’이라고도 불린다. 화자는 인물 내면에 들어가지 않고 인물의 외부에 존재하며 오직 카메라가 기록할 수 있는 사실만을 드러낸다. 이 시점에서 독자는 마치 벽에 붙은 파리가 된 기분이 들 수 있다.

독자는 정보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감정을 경험하기 위해 읽는다. 독자가 소설을 읽는 것은 등장인물의 감정과 생각, 동기를 함께 경험하기 위해서이지, 영화를 볼 때처럼 그저 외부에서 인물들을 관찰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러므로 객관적 시점을 엄밀하게 지키며 쓴 소설은 책 전체에 걸쳐 이런 독자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한다.
---「5장 3인칭 객관적 시점」중에서

여기서 명심해야 할 가장 중요한 점은 전지적 화자는 1인칭 시점에서의 화자와 마찬가지로 나름대로 개성을 지닌, 강렬하면서도 고유한 목소리로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화자의 어투는 엄숙할 수도 익살스러울 수도 있으며 냉소적이거나 감탄조일 수도 있다. (...)

이런 강렬한 화자의 목소리를 설정하지 않고 그저 여러 인물들의 머릿속을 들여다보기만 한다면 그건 전지적 시점으로 소설을 쓰는 것이 아니라 ‘머리 넘나들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머리 넘나들기란 시점 인물이 여러 명인 3인칭 제한적 시점을 엉성한 방식으로 사용하는 것을 가리킨다.

오늘날에는 소설 전체를 전지적 시점으로 쓰는 일이 드물지만 어떤 작가들은 소설의 서두 혹은 장의 서두에서 독자가 배경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전지적 시점을 사용하기도 한다. 장 첫머리의 한 문단, 혹은 한두 문장 정도를 전지적 시점에서 쓴 다음 마치 카메라를 줌인 하듯이 어떤 인물의 3인칭 제한적 시점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그리고 소설의 나머지 부분을 전부 3인칭 제한적 시점으로 쓴다. 이런 방식을 쓴다면 설정 장면을 짧게 끝낸 후 독자를 재빨리 시점 인물의 머릿속으로 데려가는 것이 좋다.
---「6장 3인칭 전지적 시점」중에서

3인칭 다중 시점으로 소설을 쓰면 몇 가지 장점이 있다.(...)
긴장감과 서스펜스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미스터리나 스릴러 소설이라면 작가는 범인의 시점에서 어떤 장면을 쓰면서 주인공은 미처 알지 못하는 범인의 계획을 독자에게 알려줄 수 있다. 예를 들어 범인이 주인공의 자동차 아래에 폭탄을 설치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다음 장면 혹은 다음 장에서 주인공의 시점으로 전환한 다음 주인공이 자동차에 올라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로맨스 소설에서는 주인공들이 상대에 대해 편견을 쌓아가는 장면을 보여주면서 서스펜스를 조성할 수 있다. 이 편견들은 두 사람이 처음 마주하는 순간 서로 충돌하게 될 것이다.

이 장면에서 누가 가장 많은 것을 얻거나 잃게 될 것인가? 대부분의 경우 가장 잃을 것이 많은 인물의 눈을 통해 각각의 장면을 풀어나가야 한다.
---「9장 3인칭 다중 시점」중에서

소설의 서두 혹은 장의 시작 부분에서 광각 숏으로 마을 전체의 모습을 찍듯이 서술적 거리를 멀리 유지한 채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다. 그다음 카메라를 좀 더 가깝게 움직이며 마침내 근접 촬영을 하듯 인물에게 밀접하게 다가가는 것이다. 이야기의 초점을 전환하기 위해 한발 뒤로 물러났다가 다시 다른 무언가로 밀접하게 다가갈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서술적 거리를 마음 내키는 대로 이 단계에서 저 단계로 마구 건너뛰어도 좋다는 뜻은 아니다. 아마도 소설 전반에 걸쳐 앞에서 설명한 3단계 혹은 4단계로 서술적 거리를 유지하게 될 것이다. 서술적 거리를 지나치게 자주, 서둘러 바꾼다면 독자는 혼란스러워할 것이다. 그러므로 서술적 거리를 전환할 때는 한 단계씩 차근차근 바꾸도록 유의해야 한다. 예를 들어 1단계에서 갑자기 3단계로 건너뛰어서는 안 된다.

키가 큰 여자가 숲속을 달렸다. 셔츠가 나뭇가지에 걸리면서 그녀는 비틀거렸다. 이런 젠장.

첫 문장의 서술적 거리는 아주 먼데, 다음 문장에서 바로 인물의 내면으로 들어간다. 이처럼 1단계에서 4단계로 바로 건너뛴다면 독자는 신경을 거슬린 나머지 이야기에 몰입하지 못할 것이다.
---「11장 서술적 거리」중에서

머리 넘나들기는 간단히 말해 장면 중간에 시점을 전환하는 걸 뜻한다. 아무런 경고도 없이 갑자기 독자를 이 인물의 내면에서 끄집어낸 다음 다른 인물의 내면에 집어넣는 것이다. 그 결과 독자는 자신이 누구의 시점에 있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혼란스러워할 수 있다. 머리 넘나들기가 일어날 때마다 이야기의 몰입이 깨지게 되며 계속 이런 실수가 반복된다면 독자는 아예 책을 덮어버리고 말 것이다.
---「13장 머리 넘나들기 함정」중에서

1인칭 시점과 마찬가지로 3인칭 깊은 시점으로 소설을 쓸 때도 내적 독백을 작은따옴표로 묶거나 다른 방식으로 구분하여 표기할 필요가 전혀 없다. 생각 꼬리표를 달아줄 필요도 없다. 이 시점에서 작가는 인물의 내면 깊은 곳에 들어가 있기때문에 독자는 이미 자신이 읽는 것이 인물의 생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이 시점에서는 내적 독백에서도 3인칭과 과거 시제를 유지해야 한다. 1인칭 현재 시제로 바꾼다면 화자와 생각하는 주체 사이의 거리감을 조성하게 되며 독자에게 그 둘이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인상을 준다. 깊은 시점 소설에서는 바람직하지 않은 일이다.
---「15장 내적 독백」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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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학으로 소설을 배운 나는 이 책 같은 작법서를 마주치면 어쩔 수 없이 이런 말이 튀어나온다. “왜 더 일찍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았단 말이냐!”
데뷔작부터 세 번째 소설까지 1인칭 시점으로 작업했다. 이유는 오직 하나, 다른 시점으로 작업할 실력이 부족했다. 9년간 다섯 편의 장편소설을 완성하고 나서야 시점을 오가는 소설을 쓰게 된 나로서는, 이 책의 뒤늦은 도착마저 반갑고 기쁠 따름이다.

청소년 소설은 1인칭 시점이 적절하다고, 로맨스 소설에는 전지적 시점을 쓰지 않는 것이 좋다고, 서술적 거리를 서둘러 바꾸면 독자의 혼란을 유발할 수 있으니 한 단계씩 차근차근 바꾸라고 이 책은 조언해준다. 무엇보다 독자들이 시점 같은 걸 모르고도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도록, 작가들이 시점에 대해 알아야 한다는 진실을 알려준다. 부디 『시점의 힘』을 읽고 배워 독자의 시선을 빼앗는 작가가 되길 바란다.
- 김호연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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