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된 다섯 살 때부터 무슨 트집이든 잡아서 뺨을 때리고, 머리채를 잡고 흔들었다. 팔꿈치 뒤쪽이나 허벅지 안쪽, 가슴, 배 등 안 보이는 부위의 살을 골라 꼬집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같은 반 남자아이가 눈이 내리는 마을이 그려진 오르골을 선물로 주었다. 그걸 받아 왔다고 양어머니는 ‘화냥년’이라며 나를 발로 마구 밟으며 온몸을 때렸다. 옷을 다리다가 화가 나면 뜨거운 다리미를 들고 위협했다. 요리를 하다가 화가 나면 식칼을 내 목에 대고 “목을 푹 쑤셔 버릴라!”라고 말했다.
---p.26, 「태어났지만, 태어나지 못한 무적자」 중에서
가네코 후미코의 글을 읽으며 알게 된 것은 ‘이 모든 일은 내 잘못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가네코 후미코가 무적자인 것이 본인의 잘못이 아니듯, 할머니에게 미움받은 것이 본인 잘못이 아니듯, 혼나지 않기 위해 거짓말한 것이 본인 잘못이 아니듯, 나의 어릴 적 삶도 내 잘못이 아니다. 가네코 후미코가 내게 말한다. “네 잘못이 아니야.” 100년 전에 죽은 그녀가 나를 위로해 준다.
--- p.28, 「태어났지만, 태어나지 못한 무적자」 중에서
과거는 다시 오지 않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기에 나는 오늘을 살기로 했다. 내가 선택하고 책임지고 누리는,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내 삶을 수용하기로 했다.
--- p.61, 「엄마가 넷」 중에서
나도 내 친부모를 대상으로 ‘잘못된 삶 소송’을 하고 싶었다. 내 의사를 물어보지도 않고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로 태어나게 하고, 책임지지도 못할 거면서 굳이 낳아서 이렇게 아프고 슬픈 삶을 살게 한 것을 따지고 싶었다. 왜 태어나서 죄송하게 만들었는지, 나를 태어나게 한 손해를 물리고 싶었다.
--- p.88, 「노련한 삶」 중에서
부모가 없다는 것, 입양되었다는 것, 학대를 받는다는 것… 어린 시절에는 그것들이 나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그런 나를 살려 준 것이 바로 ‘책’이었다. 책을 읽는 순간에는 고아에다 양어머니에게 아동 학대를 받는 전안나가 아니라, 부모님을 다시 만나는 소공녀가 되었다가 입양된 집에서 사랑받는 빨간 머리 앤이 되었다. 요리를 하고, 집안 청소를 마친 뒤 다시 책을 펼치면 나는 나라를 세운 이성계가 되었다가, 충절을 지키는 정몽준이 되었다가, 살인 사건을 밝히는 셜록 홈즈가 되었다. 책이 있어서 나는 십 대를 살아 낼 수 있었다. 책은 나에게 동아줄이었다.
--- p.174, 「살기 위해 읽다」 중에서
이 책을 집필하면서 나를 드러내는 것은 이제 더 이상 피해자로 숨어 지내지 않겠다는 자기 선언이다. 숨겨 두었던 입양과 아동 학대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도 나와 같은 아픔을 가진 이들에게 내 품을 내어 주고 싶어서이다. 이렇게 타인과 사회와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가고 싶다. 더 이상 피해자가 아닌, 아동 학대 생존자로서 새로운 세계를 만들고 싶다.
--- p.224, 「낙타-사자-어린아이의 글쓰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