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위기의 시대 혹은 기후 재난의 시대가 시작되었다고들 합니다. 이런 위기와 재난이 자연스러운 것은 아닙니다. 인간 스스로가 초래한 것입니다. 말하자면 인간이 자기가 살고 있는 집(공동의 집)을 스스로 부수고 있는 셈입니다.
---「머리말 ‘신앙인은 누구나 생태 사도입니다」중에서
오늘의 신앙인은 누구나 기본적으로 ‘생태 사도ecological disciple’여야 합니다. ‘창조’ 신앙을 거부하는 ‘그냥’ 신앙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창조주 하느님의 창조 질서에 따라 이 세상을 잘 돌보고 가꾸는 생태 사도직eco-discipleship은 오늘날 우리 신앙인에게 필수적인 소명입니다. ---「머리말 ‘신앙인은 누구나 생태 사도입니다」중에서
기후 위기는 지구라는 우리 공동의 집에 불이 난 경우와 같습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지구를 버리고 어디로 탈출할 데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지구라는 집의 불을 끄거나 아니면 모두 죽거나 두 가지 가능성만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 공동의 집을 위기로부터 지키기 위해 모두가 나설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제1부 생태 사도의 길」중에서
필요 이상으로 많은 것을 만들어 내고, 많이 사들이고, 많이 사용하고 그래서 많은 쓰레기를 만들어 버리는 우리의 생활 습관이 결국 기후 위기를 불러왔습니다. 이런 현대 문명의 물질적 생활 양식에 젖어 버린 우리는 이런 문제에 무감각해졌습니다
---「제1부 생태 사도의 길」중에서
교황님은 우리가 소비주의의 노예에서 벗어나고, 내다 버리는 문화와 결별할 것을 요청하셨습니다. 어떻게 하면 단순 소박하게 살 수 있을까요? 그것이 자연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가난과 불의로 고통받는 형제자매들을 돕는 길이기도 합니다.
---「제1부 생태 사도의 길」중에서
다시 한번 온 세상을 창조하시고 온갖 피조물을 다양하고 풍요롭게 만드신 창조주 하느님을 바라봅시다. 그리고 그분이 만드신 이 세상, 지구와 모든 피조물을 사랑함으로써 복음의 비유에 나오는 ‘충직한 종’이 되기로 합시다. 창조 질서의 측면에서 보았을 때, 이 시대에 충실하게 생활하는 종은 기후 위기를 막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이는 종일 것입니다.
---「제1부 생태 사도의 길」중에서
현대의 생태 위기가 유다-그리스도교적 전통과 무관한 것이 아니며, 바로 성경에 근거한 인간 중심주의에서 비롯되었다는 비판이 1960년대부터 그리스도교 안팎에서 끊임없이 제기되었습니다.3 생태 위기가 그리스도교 때문에 생겼으므로 그리스도교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비판에 대하여, 일단의 학자들이 반론을 제기하면서 생태 위기의 원인과 그리스도교와의 관계를 더욱 자세히 규명하게 되었습니다.
---「제2부 생태 위기에 대한 그리스도교 책임 논쟁」중에서
생태 위기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책임을 강조하는 비판론의 핵심은 ‘사람과 자연의 관계’에 관한 것입니다. 창세기에 입각한 그리스도교의 유일신적 창조 신앙으로 인해 자연에 대한 인간의 관계가 인간 중심으로 왜곡되었고, 인간 중심의 그리스도교 이원론으로 인해 자연을 단지 인간을 위한 재료, 수단, 도구로 간주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제2부 생태 위기에 대한 그리스도교 책임 논쟁」중에서
성경의 지배 명령은 자연을 착취해도 좋다는 특별 허가가 아닙니다. 이것은 결코 사람이 자연을 무자비하게 다루기 위한 근거도 될 수 없습니다. 사람이 자연을 변형시킬 수 있다는 것보다는 오히려 자연에 대한 사람의 책임이 더 강조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특별한 지위도 자연에 대한 사람의 책임이란 의미로 이해해야 합니다. 이러한 새로운 지배 개념은 그리스도교의 유죄 추정에 대한 항변의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즉 창조 이야기는 원래부터 자연 적대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단지 해석이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제2부 생태 위기에 대한 그리스도교 책임 논쟁」중에서
생태 위기를 해결한다는 것은 곧 인간끼리의 평화가 실현되는 것이자 정의가 확립되는 것이고 동시에 하느님께서 주시는 평화와 정의가 도래함을 의미합니다. 역으로 말하면 일그러진 대인 관계와 대신 관계를 다시 올바로 세워야만 생태계의 치유가 가능해집니다. 이것이 곧 넓은 의미로 하느님께서 원래 주셨던 ‘창조 질서의 회복’인 것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생태 위기의 해결을 위한 가톨릭 교회의 작은 노력을 짚어 보고 그 의미를 되새기고자 합니다.
---「제3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교회 문헌에 나타난 환경 인식」중에서
「사목 헌장」은 현대 사회에 대한 이해를 집약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년) 문헌이지만, 현대의 생태 위기에 대한 본격 적인 논의를 담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적 인간관·자연관·세계관을 정리하여 현대 생태 위기 이해의 기초가 되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그리스도교적으로 설명해 줍니다.
---「제3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교회 문헌에 나타난 환경 인식」중에서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 문헌(「팔십주년」) 에서 비로소 처음으로 ‘환경 파괴 문제’가 시대적 현안으로 파악되고 언급된다는 사실입니다(21항 참조). 「사목 헌장」이나 「민족들의 발전」에서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어떠한 것인지를 밝히는 원칙론적인 차원에 머물렀다면, 이제 비로소 인간에 의해 자연환경이 파괴되고 인간 스스로가 위협받고 있음이 현실 문제로 인지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교회의 문제 인식 영역이 정의와 평화의 주제에서 환경으로까지 확대된 것을 의미합니다.
---「제3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교회 문헌에 나타난 환경 인식」중에서
지금까지 살펴본 교회의 환경 관련 문헌을 내용적으로 분류 하면 첫째, 환경 관점에서의 정의와 평화 문제, 둘째, 과학 기술 문제, 셋째, 그리스도교적 인간 중심주의 문제, 넷째, 도덕성 회복 문제 그리고 다섯째, 신앙 고백 문제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제3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교회 문헌에 나타난 환경 인식」중에서
생태 위기에 대한 교회의 관심에는 각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단순히 사회 운동에 대한 연대적 참여라는 의미를 뛰어넘습니다. 이는 신앙 고백 내지는 신앙의 증거로서 의미를 지닙니다. 그리스도교가 고백하는 대로 세상이 창조주 하느님의 작품이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자연도 하느님께서 만드신 것이기에, 그분이 만드신 자연을 인간의 손으로 파괴하는 것을 방치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만드신 분께 대한 도리가 아닙니다. 창세기에 언급된 대로 인간이 세상을 돌보고 가꿀 의무를 창조주로부터 부여받았다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제3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교회 문헌에 나타난 환경 인식」중에서
정의나 평화를 주제로 한 교황의 ‘회칙’은 여러 개가 있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의 회칙 「찬미받으소서」 반포 이전까지 ‘환경 회칙’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새 천년기를 위하여 창조 질서의 보전에 대한 더욱 포괄적이고 깊이 있는 교황 문헌이 나오기를 기대했던 것입니다. 교황 문헌이 갖는 교회 전체에 대한 영향력을 고려할 때 회칙 「찬미받으소서」는 인류가 생태 위기와 맞서 싸워 나가는 데에 유용한 지표가 될 것입니다.
---「제3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교회 문헌에 나타난 환경 인식」중에서
오늘날 생태 위기의 문제는 과거에는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죄social sin’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21세기 세계화 시대를 살아가는 신앙인은 가톨릭 교회가 생태 위기의 문제를 어떻게 진단하고, 문제의 극복을 위해 어떤 가르침을 제시하는지 분명히 알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현대의 생태 위기에 관한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을 살펴본다면, 오늘날 생태 위기의 시대에 이 문제와 연관하여 하느님의 뜻을 제대로 실천할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제4부 생태 위기 시대의 가톨릭 사회 교리」중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생태적 회개의 실천을 간곡히 호소하였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소비 지향적 생활 양식을 버려야 하는데, 그러려면 환경 교육과 영성을 강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합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얻은 심각한 생태 위기에 대한 자각이 새로운 생태적 생활 습관으로 형성되어 이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사소한 실천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학교, 교회, 수도회나 사회단체만이 아니라 가정이 가장 중요한 생태 교육의 ‘못자리’입니다. 생태적 회개는 공동체의 회개이기도 합니다. 감사와 무상성의 태도로, 가진 것이 적어도 기쁨과 평화를 누리는 것이 당장 우리에게 필요한 생태 영성이라고 교황은 강조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집에서 우리가 더불어 살아간다는 의식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주일은 곧 대신對神, 대인對人, 대자연對自然 관계를 치유하는 날이고 부활의 날이며, 새 창조의 첫날입니다.
---「제4부 생태 위기 시대의 가톨릭 사회 교리」중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핵심적 관심사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모든 인간의 공동의 집인 지구에 대한 염려(생태 문제)이고, 둘째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사랑(발전 문제)입니다. 그런데 교황은 이 둘이 별개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환경을 위한 투신과 가난한 이들을 위한 투신은 결코 분리될 수 없습니다. 생태적 불의와 사회적 불의가 별도로 취급될 수 없다는 점에서 교황은 ‘통합 생태론’을 강조하면서, 교황의 두 가지 기본 관심사를 하나로 묶어 주는 통합 생태론의 모범으로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을 제시합니다.
---「제4부 생태 위기 시대의 가톨릭 사회 교리」중에서
이상과 같이 네 교황을 중심으로 생태 위기 시대에 직면한 가톨릭 교회의 인식과 대응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시사적 의미를 얻어 낼 수 있습니다.
첫째, 바오로 6세 교황이 ‘생태 위기에 관한 구조적 문제’를 강조하였다면,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여기에 더하여 ‘생태 위기에 대한 윤리적이고 신앙적인 성찰’을 추가하였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인류가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필수적이라 할 수 있는 ‘구조적 차원과 의식적 차원의 동시적 접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우리에게 잘 보여 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둘째, 전임 교황들에 비하여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실제로 바티칸 건물 지붕에 태양광 발전을 위한 대단위 집열기를 설치할 만큼 ‘구체적인 행동’을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특별히 전 세계 모든 가톨릭 교회의 지도자들에 대한 ‘긍정적 압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백 마디의 말보다 구체적 실천으로 모범을 보여야 할 교회의 지도자상을 우리에게 제시한 것입니다.
셋째, 프란치스코 교황 이전까지는 생태 위기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관심과 가르침이 다양한 교도권 문헌들을 통하여 제시되기는 했지만, 생태 위기 문제만을 독립적 주제로 삼은 회칙이나 사도적 권고 등이 없었기에 아쉬움이 컸습니다. 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구적 발전 문제와의 연관성 속에서 처음으로 생태 위기를 핵심 주제로 다룬 회칙 「찬미받으소서」를 발표함으로써, 이런 아쉬움을 일거에 털어 버렸습니다. 생태 위기에 대한 윤리적이고 신학적인 연구와 가르침을 담은 회칙 「찬미받으소서」는 가톨릭 사회 교리의 발전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넷째, 생태 위기에 대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각별한 관심 덕에, 교황청 ‘온전한 인간 발전 촉진을 위한 부서’의 주도로 2020 년 5월 24일부터 2021년 5월 24일까지 한 해를 전 세계의 가톨릭 교회가 「찬미받으소서」 특별 기념의 해로 지냈습니다. 이어서 「찬미받으소서」 회칙을 실천하고 지속 가능한 지구 생태계를 만들기 위한 ‘7년 여정’에 전 세계의 가톨릭 교회가 돌입하게 된 것 은 생태 위기가 신앙생활에 있어서 더 이상 부차적인 문제가 아닌 본질적인 관심사로 자리매김했음을 의미합니다.
---「제4부 생태 위기 시대의 가톨릭 사회 교리」중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로 가톨릭 교회는 교황 문헌들을 통해서뿐만 아니라 국제 환경 회의에 교황청 대표가 참석하는 등 다양한 기회를 활용하여 환경 문제에 관한 입장을 피력해 왔습니다. 이처럼 부분적으로 언급되거나 흩어져 있던 생태 위기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을 모아 요약한 내용이 『간추린 사회 교리』(Compendium of the Social Doctrine of the Church, 2004년)입니다.
---「제4부 생태 위기 시대의 가톨릭 사회 교리」중에서
하느님께서는 그 도시에 하느님의 뜻을 거슬러 사는 사람들이 넘쳐 나더라도 의인 몇 명만 있다면 도시를 구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열 명을 보아서라도 내가 파멸시키지 않겠다.”라고 하느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생태 사도’는 창세기의 그 열 명만큼이나 중요합니다. 비록 주변에 생태 사도직을 실천하는 사람이 많지 않더라도 실망하지 말고 묵묵히 우리의 갈 길을 가야합니다. 그래야 희망의 불씨를 살려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회칙 「찬미받으소서」에서 우리의 ‘사소한 실천으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지 마라.’라고 격려하셨습니다. 우리의 작은 변화와 실천이 지구를 살리고, 창조주 하느님과의 깊은 체험을 선물해 줄 것입니다. 이 시대의 모든 생태 사도들에게 창조주 하느님께서 인내와 용기, 은총을 가득히 내려 주시길 빕니다.
---「맺음말」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