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희열의 라디오천국〉 음악작가의 첫 에세이
“반짝거리던 그때의 우리들 다들 잘 살고 있나요?”
먹고살 걱정만으로 하루가, 한 달이 눈 깜짝할 새 흘러간다. 사랑이 사치처럼 느껴지는 시대, 그럼에도 우리는 사랑을 한다. 그리고 뒤따라오는 이별에 오래 가슴 아파하는 사람들이 있다. ‘쿨한 태도’가 미덕으로 여겨지는 요즘이지만 연애의 끝이 담백하기만 할 수 있을까.
〈유희열의 라디오천국〉 음악작가였던 윤설야, 그가 사랑과 이별에 대한 자전적인 에세이를 들고 왔다. 사랑 앞에서 절대 담담해질 수 없어 미련투성이였던 자신의 경험담을 통해, 사랑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고 끝나버린 관계를 여전히 붙들고 있는 이들에게 가만히 손을 내민다. 한 사람과 한 사람이 만나 사랑에 빠지고 길게 이별하는 인생의 한 토막은, 비단 연인간의 사랑만이 아니라 가까운 사람의 부재와 상실을 오래도록 겪고 있는 이들에게 공감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의 노래 제목처럼 ‘결국 흔해 빠진 사랑 이야기’겠지만 그 순간만큼은 눈부신 젊음으로 가득했으리라. 지금은 ‘어떤 사람 A’가 돼버렸지만 그 사람은 영원히 잊지 못할 주연 배우였으리라. 반짝거리던 그때의 우리들 다들 잘 살고 있나요? _유희열 추천사 중에서
3년의 사랑 그리고 4년의 이별,
우리가 결국 내가 되기까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이별, 나는 언제나 너무 더디다”
한순간 사랑에 빠지고, 작은 스마트폰에 의지해 나라를 넘나드는 관계를 이어가고, 결국 4년에 걸쳐 헤어지는 이야기. 누군가에겐 흔하디흔한 사랑 이야기, 하지만 누군가에겐 삶을 뒤바꾼 이야기.
『너의 이야기를 쓰려던 건 아니었는데』는 헤어진 뒤 우리에서 내가 되는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실연투쟁기다. 사랑이 끝난 후 열정이 불안으로 불안이 현실로 나타나는 과정을 목도하고, 필연적으로 겪어야 할 실연이라는 구태의연한 시기를 견뎌내면서, 남겨진 사람의 하루하루가 어떤 식으로 변해가는지 응시한다. 또한 실연이라는 작은 비극 속에서도 여전한 일상의 반짝임에 주목하고, 외로움을 통과하며 회복해가는 헤어짐의 지난한 과정이 담겨 있다.
“다시 만나고 싶어.” 네가 내 손에 더운 손가락을 올렸다. 체온이 조심스럽게 스쳐 지나갔고 0.1밀리미터의 벽이, 스친 부분을 중심으로 허물어지듯 벗겨졌다. 흔적도 없이 미끄러진 벽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맘껏 솔직해지고 거리를 좁히고 싶었다. 상처 받을 것을 알아도 더 가깝게 다가가고 싶었다. 스며들고 싶었다. 사랑의 시작이었다. _24~25쪽에서
두꺼운 벽을 밀고 들어와 “애초에 선 하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시작된 연애는 서로 머무는 나라가 다른 것도 문제되지 않았다. 속수무책으로 “온 힘을 다해 녹아내리는 것밖엔 할 수 없”어 상대가 영원히 알지 못할 야심을 품은 채 사랑을 이어나가기로 한 두 사람. “픽셀이 깨진 직사각형 프레임”에 의존해 서로에게 인사하고 애가 닳으면서도 그리워하는 일쯤이야 쉽게 느껴질 정도로 애쓰며 만남을 이어간다. 그러나 그 빛나던 사랑도 결국 시간 앞에, 거리 앞에 굴복하고 만다.
“응. 얘기 잘하고, 내일 만나.” 만나긴 무슨. 하지만 중의적 표현이라 할지라도 너와 나는 내일도 화면 속에서 만날 것이다. 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실제로 만나는 것처럼 사랑할 것이다. _81쪽에서
그와 연락이 끊어지고 생활은 완전히 엉망이 됐다. 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파블로프의 개처럼 굴었다. 특히 그와 통화하던 자정 무렵만 되면 거울 한 번 들여다보고 전화나 문자를 기다렸다. 다른 일을 해보려 애쓰긴 했다. 늘 실패했지만. _93쪽에서
헤어지고도 여전히 연락하며 지내던 두 사람, 작가는 “이별의 인사 치고는 긴 연락을 지속”하며 이 시간을 멈추지 말아달라고 부탁하고 애걸한다. 그러나 시간은 야속하게 흘러가고 그사이 다른 사람을 만나보기도 했지만 여전히 그를 잊지 못하던 작가는 결국 인정한다. “그와의 이별은 아주 느린 사랑을 복습하는 과정”이었음을. 이별하고도 매해 그에게 생일 축하 메시지를 보내는 자신의 모습을 사람들에게 이해받지 못하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그런 사랑을 할 수 있다는 게 부럽다는 말을 듣기도 하며 이별을 향한 발걸음을 치열하게 이어간다.
앞의 숫자는 달라져도 날짜도 시간도 돌아온다. 올해도 어김없이 그의 생일이 눈앞이었다. 그가 내 곁에 없다는 것을 천천히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3년을 만났고 그보다 오래 헤어졌다. 더는 자학하듯 그의 행복이나 불행을 빌지 않는다. 무엇이 그를 특별하게 했을까. 어떤 이유로 그 사람은 지워지지 않을까. 묻고 또 묻던 날들도 버려졌다. 하지만 짝사랑은 가실 줄을 모른다. _227쪽에서
“언젠가 들어본 노래처럼 진부한 사량 이야기라 할지라도 어딘가의 당신이 나도 그렇다고 위안받는다면 이 글의 쓰임은 충분할 것 같다”라는 작가의 말처럼, 이 책은 헤어지고 4년이라는 시간을 거치며 한 사람이 아픔을 극복해가는 과정을 가감 없이 보여주며 상실로 인해 성장해가는 삶을 보여준다. 누군가는 그때의 내 사랑을 떠올리고, 누군가는 지금의 사랑을 굳건히 지키겠다 다짐하고, 누군가는 다가올 사랑을 준비할 테다. 복잡한 현실의 상황 따윈 접고 이 책을 펼쳤을 때만큼은 사랑 하나만 떠올릴 수 있기를. “네가 너라서, 너를 사랑하는 내가 나라서 위안이 되었던 순간들을” 기억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