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등과 연애남편은 왜 아내의 일을 질투하는가『서 있는 여자』에 나오는 작가의 말에서 박완서는, “아내가 한눈파는 게 외간 남자가 아닌 자신의 ‘일’일 때 우리의 미풍양속은 그 여자에게 어떤 벌을 내릴 것이며, 남편은 이 새롭게 대두된 라이벌에게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다루어보고 싶었다고 한다. 일-가정 양립의 문제를 이렇게 참신하게 표현하다니, 역시 박완서답다. 지금은 남자도 일하는 아내를 원하는 시대가 되었으니 남편에게 아내의 일은 더 이상 라이벌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하는 아내만큼 자신도 가사를 하는 남편이 드문 것을 보면, 역시 아직도 남편은 아내의 일을 라이벌로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심지어 아내가 일을 하지 않으면 먹고살기 힘든데도 집에서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 남편들을 보면, 아내가 한눈파는 ‘자신의 일’이라는 라이벌에 대한 남편의 질투는 제법 거센가보다.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서 있는 여자』(1985)의 연지처럼 “부부간의 대화 속에 남녀평등의 문제를 끌어들이는 매력 없는 여자”들로 살아간다. 연지의 그 매력 없음이 우리에게는 여전히 오히려 매력적이고 유효하다.섹스와 임신거부당한 것은 ‘엄마 될 권리’박완서는 딸 넷을 낳고 마지막에 아들을 낳았다. 적게 낳아야 하는 시국에 아들을 보겠다고 저렇게 많이 낳았는가 하는 시선을 느꼈음직하다. 그래서일까, 그는 성감별 낙태에 유독 민감했다. [해산바가지](1985), [꿈꾸는 인큐베이터](1993), 『아주 오래된 농담』(2000)에는 선택적 아들 낳기라는 ‘신기술’을 자기 이익을 위해 이용하거나 이용을 강요당하는 여자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요즘이야 아들딸에 대한 구분을 굳이 두지 않지만, 합법적으로 태아 성별을 확인하여 선택적 아들 낳기가 가능했던 시절이 있었다. 우리는 흔히 섹스를 충동적인 본능의 행위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섹스는 매우 계산된 행위이다. 특히 임신의 가능성을 생각할 때 더욱 그렇다. 『그 남자네 집』의 ‘그 여자’는 섹스를 하고 싶은 상대와 하지 못하고, 임신을 해도 괜찮은 상대와 섹스를 했다. 다행히 소설 속 그 여자의 다음다음 세대쯤 되는 여자들은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 피임법을 알기 때문이다.최근 몇 년간 낙태죄 폐지 혹은 낙태권이 여성계의 중요한 이슈로 떠올랐지만, 박완서의 소설을 읽다보면 낙태의 권리 이전에 우리에게 과연 엄마가 될 권리가 있었는지 생각하게 된다. 박완서의 소설 속에 비친 대한민국은 적어도 여자들에게 낙태를 거부하는 나라가 아니었다. 오히려 여자들이 거부당한 것은 엄마가 될 권리였다. 그래서 박완서는 뱃속의 아이가 남자든 여자든, 부자든 가난하든, 그녀에게 남편이 있든 없든―이 이야기는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1989)를 보라―여자들의 엄마 될 권리를 응원한다. 자신의 흙수저 인생을 대물림하고 싶지 않아서 출산을 포기하는 요즘 정작 우리가 박탈당하고 있는 것은 낙태의 권리가 아니라 엄마 될 권리인지도 모른다.들어줄 귀를 찾는 ‘트라우마’치유가 시작되는 순간트라우마는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반복되는 기억을 끝없이 말하도록 한다. 그래서 항상 이야기를 들어줄 귀를 찾는다. 박완서는 1992년에 펴낸 『박완서 문학 앨범』에서 자신이 소설가가 된 것은 결국 전쟁 경험의 트라우마 때문이라고 했다. 처음에는 전쟁 중 사망한 오빠의 망령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이었다가, 나중에는 이 전쟁 경험이 자신의 발꿈치에 붙어 다니며 떨치려야 떨칠 수 없는 기억이 되어 자신의 글쓰기를 지배했다고 했다. 들을 귀를 찾아 그토록 글을 써왔던 박완서였지만 인생 말년 고독감에 봉착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쉬운 답을 거부하는 트라우마의 속성 때문이다. 누가 더 참혹하게 당했는지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트라우마는 타자의 트라우마를 늘 사소하게 만들고, 그렇게 우리의 트라우마는 서로 만날 길을 잃는다. 트라우마는 언제나 스스로 풀어야하는 숙제임을 알게 한다.트라우마로 글쓰기를 시작한 박완서가 1년가량 붓을 놓았던 시간이 있다. “구원의 가망이 없는 극형”이라 표현했던 극심한 고통은 25세 아들을 사고로 잃은 사건이었다. 신마저 침묵하는 고통은 길기만 했다. 1993년에 발표된 단편집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은 화자가 한 사람이고, 처음부터 끝까지 그의 독백으로 이어진다. 게다가 그 독백은 전화에 대고 하는 독백이다. 공감도 답도 얻을 수 없는 독백은 고통 중에 가장 고독함을 보여준다. 고통은 묘한 성격이 있어서 누군가 알아주었으면 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그 누구도 내 고통을 이해할 수 없다는 절망이 공존한다. 그러나 마지막 장면에 이르러 타인의 쓰임은 예상치 못한 모습으로 드러난다. 절벽 같은 침묵 속에 들리는 흐느낌! 누군가 나와 함께 울어준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우리의 고통은 비로소 치유로 돌아선다. 트라우마와 고통의 무게로 보자면, 언제나 가장 큰 것은 자신의 것이다. 다만 박완서의 경험과 해법은 출구를 찾은 우리에게 담담한 울림을 건네 힘을 더해준다.중년 주부를 살아있는 여자로박완서의 글쓰기는 현재진행형마흔에 데뷔한 작가에게서 풋풋한 연애 이야기를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박완서에게는 오히려 그것이 힘이었다. 아무도 중년 주부에게 관심을 두지 않던 시절, 그들에게 개성을 입히고 목소리를 입혀 살아 있는 여자로 만들어냈다. 비단 자기 일을 가지는 것만이 아니라, 사랑에서도 제도에 매이지 않을 것을 과감히 피력하며 지붕 밑을 벗어난 여자의 진정한 독립을 이야기했다.작가가 표출해온 지붕 안팎의 평등과 연애, 여자들의 엄마 될 권리는 박완서가 1931년 생 여성 작가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신선하다 못해 파격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뿐만 아니라 전쟁이라는 한반도의 현대사 속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한 가족이 겪은 트라우마와 고독,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어미가 떠안아야 했던 극단의 고통, 그리고 중년여성의 홀로서기는 한 개인의 사유이면서 동시에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사회적 경험이기에 박완서의 글쓰기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며 우리 삶에 등대가 된다. 저자는 독자로 시작하여 박완서 연구자가 되었지만, 박완서를 학술적 연구 대상이 아닌 보다 일반 독자에게 다가갈 수 있는 존재로 그려내어 항상 우리 곁에 살아있기를 바랐다. 이야기의 효능을 믿었고 자신의 이야기가 다양한 효능을 발휘해 독자를 위로하고 웃기기를 바랐던 박완서의 뜻처럼.연구자나 소설가는 늘 그들이 알면 더 고통스러운 것들을 파헤친다. 하지만 그 애씀을 멈출 수 없는 이유는 별개의 몸으로 존재하는 인간들이 서로 연결되기 위해서는 그 방법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박완서 마흔에 시작한 글쓰기』에 고스란히 담긴 박완서의 고통은 우리 모두의 고통과 조우하고, 우리는 이렇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만으로 위로받고 서서히 치유로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