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대해 쓰는 것이 아니다
영화를 보는 나에 대한 이야기다
나 역시 내 인생의 영화가 있고, 영원히 각인되는 장면이 있다. 내 인생의 영화는 바뀌는 편이지만, 한 영화의 인상적인 장면은 거의 변하지 않는다. 이 책은 내가 영화를 볼 때 어느 지점에 착목하는가에 관해 말한다. 처음 영화를 볼 때 이런 관점으로 보겠다고 작정하고 보는 경우는 없다. 영화를 보고 나서야 내가 “이 영화를 이렇게 봤구나” 하고 어렴풋이 되새기고 의문을 품는다. 그리고 그 영화에 대해 쓰는 과정에서 조금 더 윤곽이 드러난다. …… 영화의 주장은 감독이나 다른 관객 혹은 평론가가 정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정한다. 각자가 정한 그 생각들이 모여 바람직한 공동체를 이룰 수 있다. - ‘머리말’에서
“영화에 대해 이야기할 때
나의 경험, 위치, 동일시한 부분을 중심에 두고 이야기하면
영화보다 더한 나의 영화가 만들어질 것이다.”
‘정희진의 글쓰기’ 시리즈 4권 《영화가 내 몸을 지나간 후》는 우리 시대의 가장 독창적인 비평가 정희진이 영화와 드라마라는 텍스트를 온몸으로 통과하며 치열하게 써 내려간 18편의 글을 담고 있다. 논쟁적인 다큐멘터리 〈아이 엠 낫 유어 니그로〉 〈기억의 전쟁〉에서부터 천만 영화 〈부산행〉 2022년 화제의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까지, 모든 영화와 드라마는 정희진을 거쳐 ‘나’에 대한 글쓰기로 재구성된다.
정희진에게 영화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삶의 중요한 영역’이자 ‘삶의 방도’다. 개인이 결코 다 알 수 없는 드넓은 현실을 비록 일부일지라도 영화가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감상자로서 자신의 위치를 확보하는 것이다. 자신의 자리를 분명히 할 때에만 무엇을 모르는지 가늠할 수 있으며 이로부터 앎의 가능성이 열리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영화나 드라마 자체의 내용보다 감상자의 위치와 목소리를 의도적으로 키운다. ‘누가’ ‘어디서’ ‘어떻게’ 보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문장에 살아 숨 쉬며 책 전체를 지배한다.
영화는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현실보다 더 현실을 정확하고 넓게 드러낸다. 영화의 힘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현실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영화는 모르는 현실을 알 수 있는 강력한 매체 중의 하나다. 그래서 영화 감상이나 독서는 취미가 아니라 삶의 중요한 영역이요, 삶의 방도다. - 26쪽
“글쓰기 과정이 ‘공개되는’ 글,
필자의 사고방식을 독자가 파악할 수 있도록 쓰인 글이
좋은 글이라고 생각한다.”
정희진은 영화 비평을 비롯해 ‘독창적’ 글쓰기를 위한 가장 중요한 전제는 부분적 관점(partial perspective)이라고 말한다. 부분적 관점은 모든 사람의 생각을 똑같이 ‘여럿 중의 하나’라고 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입장의 정치학을 분명히 하면서 인식하는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하는 실천”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영화에 대해 쓰며 여성주의, 마르크스주의, 생태주의, 탈식민주의 등 자신을 이루는 정체성, 사고방식을 적극적으로 공개한다. 자신을 있는 힘껏 설명할 때 타인과의 의미 있는 대화도 가능하다고 저자는 믿는다.
독창성은 벼랑 끝이라는 맥락, 부분적 관점에서만 가능하다. 부분적 관점은 사회에서 통용되는 지배적인 객관성 개념에 나의 목소리를 보내고 조율하고 틈새를 내는, 공동체의 생존을 위한 중요한 실천이다. - 21쪽
1장 갈증의 언어
“언어는 언제나 현실보다 늦게 당도한다”
1장에는 여성주의적 관점이 두드러지는 영화 비평들을 모았다. 가부장제의 논리에 적응하지 못하는 여성의 자기 분열적 텍스트 〈비밀은 없다〉, 피해와 피해자에게 공감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되묻는 〈암수살인〉과 〈스톱〉, 사회적 약자가 자신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어떻게 만드는지 보여주는 〈아이 엠 낫 유어 니그로〉, ‘문제적 감독’ 김기덕과 할리우드 미투 운동에 ‘연루된’ 배우들을 향한 날카로운 비평들이 흥미롭게 서술된다.
2장 통증의 위치
“나는 어디에서 말하고 있는가”
2장에는 우울과 외로움을 비롯한 몸의 통증을 사유하는 글들을 실었다. 정희진은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드러내는 장면을 결코 놓치지 않는 관객이다. 〈피고인〉에서 성폭력을 당한 조디 포스터가 엄마에게 전화를 거는 장면과 〈화양연화〉 속 ‘유명한’ 앙코르와트 장면을 통해, 저자는 누구에게든 무엇에게든 털어놓지 않을 수 없는 어떤 종류의 ‘외로움’에 대해 깊이 사유한다.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그래비티〉는 정희진에게 ‘내 인생 치유 영화’다. 정희진은 우울증 증상을 무중력 상태에 빗대 영화 속 우주 공간을 새롭게 창조해 나간다. 이외에도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밀리언 달러 베이비〉, 이마무라 쇼헤이의 〈나라야먀 부시코〉 등 거장의 명작들이 그만의 독창적 시선 속에서 또 다른 의미를 획득한다.
3장 ‘타자의 목소리, 나의 목소리
“다름은 진실을 해체한다”
마지막 3장에는 사회와 공동체의 역할을 성찰하는 다소 ‘무거운’ 비평들을 실었다. 일본 사회의 그늘을 비추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들이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의 만행을 증언하는 〈기억의 전쟁〉이 한국인의 잘못을 반성하는 ‘착한 텍스트’로만 읽히는 것이 왜 두려운 일인지, 일제 강점기 한국인 최초 여성 비행사 박경원을 다룬 〈청연〉을 ‘친일’ 영화로 낙인찍을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인지, 흔히 비장애인의 몸으로 비유되곤 하는 ‘정상 국가’의 모습을 〈작전명 발키리〉가 어떻게 전복하는지, 통렬하고 담대한 저자의 물음들이 끊임없이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