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22년 03월 11일 |
---|---|
쪽수, 무게, 크기 | 176쪽 | 174g | 112*184*12mm |
ISBN13 | 9791186274910 |
ISBN10 | 1186274913 |
발행일 | 2022년 03월 1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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쪽수, 무게, 크기 | 176쪽 | 174g | 112*184*12mm |
ISBN13 | 9791186274910 |
ISBN10 | 1186274913 |
프롤로그 책을 위한 변명 1. 박완서의 마흔 글쓰기를 시작하다 계기가 있었고, 시작했고, 끝까지 했다 자신에 대한 존중 2. 평등, 그리고 연애 개인이 된다는 것 중년 주부를 살아 있는 여자로 자기 마음의 기준 3. 섹스와 임신 딸과 아들 선택적 아들 낳기 무엇을 위한 섹스인가 엄마 될 권리 4. 트라우마 트라우마를 들어줄 귀 아무도 알아듣지 못한 말 쉬운 답을 거부한다 5. 고통 신마저 침묵하는 고통 스스로 이유를 찾고 납득되어야 다시 산 자의 자리로 그의 빈자리 6. 독립 감정적 독립 “틈바구니”에 서다 홀로서기 한 사람의 몫 에필로그 글쓰기는 계속된다 인용한 작품 및 단행본 목록 |
박완서. 그의 꾸밈없고 담백한 글들이 좋아 뒤늦게 그의 글을 조금 읽었다. (산문집 "두부"로 그녀를 읽기 시작했고, 그 뒤 몇 권의 책을 더 읽었다. 그리고 당근으로 박완서 전집 몇 권을 구해놓았는데 아직 손을 못 대고 있다.
2023년 독서 키워드 중 하나라는 "마흔"
박완서는 평생 주부로 살다가 마흔에 갑자기 글을 써서 작가가 되었다.
"우리의 몸은 제법 공평하게 마흔 줄에 이르면 신호를 보낸다. 혹 특별한 신호를 느끼지 못했다 하더라도, 만으로 마흔이면 국가가 생애 전환기 건강검진 안내서를 챙겨서 보내준다. 평균 수명을 여든으로 본다면, 마흔은 인생의 딱 중간 지점이다. 작가 박완서도 딱 여든까지 살았다." (35쪽)
저자는 말한다. 누구나 그렇게 인생 전반기와 후반기로 대조되는 인생을 살 필요는 없지만, 인생 전환기에 한 번쯤은 내가 인생에서 바라는 게 무언가 하고 진지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이제 100세 시대가 되었다고. 그렇다면 인생전환기는 마흔이 아니라 쉰이 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말한다. 이제는 120세가 평균 수명이 될 것이라고. 그렇다면 인생 전환기는 60세가 될 것이다.
그러니 마흔이든, 쉰이든, 예순이든, 언제든지 그 나이쯤 되면 인생 전환기가 될 것인데, 한 번쯤 진지하게 자신이 걸어온 삶을 되돌아보고, 남은 삶을 설계해 본다면, 나는 그 방법으로 글쓰기를 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자신이 살아온 삶을, 녹음기를 틀어놓고 담담하게 말해보라. 그리고 그것을 네이버 프로그램인 클로버로 돌리면 자동으로 글자로 바꾸어 준다. 그걸 가지고 다듬어 자신의 삶을 글로 써보라. 새로운 시작이 될 것이다.
1970년 여성동아에서 신인작가 응모가 있었고, 박완서는 처음에 박수근과의 일화를 바탕으로 글을 쓰려다 포기하고 그냥 자신을 글감으로 쓰기로 했다.
그렇게 3개월간 쓴 초고로 당선이 되고 작가가 되었다. 그러나 그 뒤 그녀의 삶은 달라진 게 없었다고 했다.
여성동아 기자가 당선 소식을 알리기 위해 박완서를 찾았을 때, 기자는 그녀를 앞에 두고도 그녀를 찾았다고 했다. 시모 진짓상을 차리고, 남편 출근 시키고, 도시락을 들러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세련된 도시 작가의 이미지는 어디에도 없었을 박완서 작가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마흔에 작가가 되었고, 여성의 삶을 조명하며 숨겨져 있던 문학의 끼를 한을 풀듯 풀어내기 시작했다.
박완서 작가 어머니는 당시 남자아이도 학교에 보내기 어려웠던 시절에, 시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박완서를 서울에 있는 대학에 보내 공부를 시켰다고 한다. 그런데 전쟁이 터지고 박완서는 국군과 공산군 사이에서 피난을 가지 못한 채 끔찍한 이데올로기 트라우마, 전쟁 트라우마, 인생 죽음의 트라우마를 겪게 된다.
"박완서의 오빠는 인민군에 의해 죽은 것도 아니고, 북에 동조한 행위로 몰려 죽은 것도 아니었다. (물론 그럴 뻔한 위기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살아남았다.) 군부대에 하룻밤 머물 때 당한 총상으로 피난도 못 가고 고생했지만, 직접적 사인은 총상도 아니었다. 상처는 나중에 아물고 조금씩 걸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1여 년이라는 시간을 끌며 시들시들 죽고 말았다.
오빠는 분명 전쟁의 피해자인데, 어느 쪽에 의해서 죽었다고 확실히 말할 수도 없고, 직접적 사인조차 전쟁의 상징인 총과 결부시키기 힘든 그런 죽음이었다. 이러한 죽음을 도대체 어떠한 언어로 표현해야 온전한 전쟁 피해자의 이야기로 들려질 수 있을까?
피난이 부럽고 차라리 졸지에 죽은 사람이 행복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박완서의 경험은 그래서 들어줄 귀를 찾아다니며 반복해서 말하게 되는 트라우마로 남았다." (96쪽)
전쟁 트라우마는 평생 박완서를 따라다녔고, 그는 평생 작품 속에 전쟁 트라우마를 펼쳐냈다.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글을 썼지만, 트라우마의 연은 질겼고, 어느 작품에서든 불쑥 튀어 나왔다.
"생사를 넘나든 사람에게 한 번뿐인 인생이라는 말은 사치다. 그것을 말로 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여유가 있다는 뜻일 거다. 전쟁 중 목숨이 오가는 사건을 몇 차례 겪고난 박완서는 거의 본능적으로 그 한 번뿐인 인생을 평범하게 살기로 했다. 너무도 비범한 일을 겪은 사람에게는 오히려 평범한 것이 간절하다. 그래서 평범하기가 가장 힘들다고도 한다." (32쪽)
그렇게 박완서는 대학을 포기하고 돌연 결혼을 선포하며 인생 주부로 자신의 삶을 숨기고 평범함을 유지하기로 했다. 마흔까지.
저자는 박완서 작가를 박사 학위 논문의 주제로 삼았다. 그러니까 저자는 박완서 전문가다. 저자는 자신이 왜 박완서에 푹 빠졌는지를 이렇게 얘기한다.
"내가 박완서에 빠져드는 이유 중 하나는 그의 연령과 그 시대의 차림새에서 느껴지는 거리감을 뒤집는 동시대적 감각 때문이다. 그와 함께 노인 문학이 탄생했다고 할 만큼 그는 나이 들어가는 자기 세대의 이야기들을 풀어냈지만, 그의 소설 속에서 나는 자주 나를 발견하다." (43쪽)
'거리감을 뒤집는' 이라는 표현에 주목하자. 박완서는 일흔을 넘긴 나이에 <그 남자네 집>을 집필했는데, 연애 세포 충만한 이야기를 썼다.
마흔에 주부에서 작가로 변신한 박완서는, 아내가 한눈파는 대상으로 남자가 아닌, 자기 자신만의 일,을 지목하고 <서 있는여자>라는 작품을 썼다. 어쩌면 그 '일'과의 데이트는 결국 자기 자신의 삶이 아닐까. 남자는 일에 한눈파는 여자를 어떻게 바라볼까. 지금과 다르게 그 시대에는 일과 한눈파는 여자를 곱게보지 않았다.
(고통과 치유에 대하여)
박완서는 둘째를 사산하고 첫째를 잃을까 노심초사했다고 한다. 그런데 박완서는 첫째가 25세가 되었을 때 사고로 잃고 만다. 박완서는 1년 동안 글을 쓰지 못했고, 이후 <한 말씀만 하소서>라는 책을 펴내게 된다.
"그래, 나는 주님과 한번 맞붙어보려고 이곳에 이끌렸고, 혼자돼보기를갈망했던 것이다. 주님, 당신은 과연 계신지, 계시다면 내 아들은 왜 죽어야 했는지, 내가 이렇게까지 고통 받아야 하는 건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 말씀만 해보라고 애걸하리라.
애걸해서 안 되면 따지고 덤비고 쥐어뜯고 사생결단을 하리라. 나는 방바닥으로 무너져 내렸고 몸부림을 쳤다. 방안을 헤매며 데굴데굴 굴렀다." (117쪽)
저자는 말한다. 예수가 십자가에 달려 신으로부터 아무런 소리를 듣지 못한 채 깊은 단절의 시간을 경험했다는 것은 단순한 종교적 교리가 아니라, 고통을 경험하는 인간의 실존적 상태의 반영이라고.
고통 중의 인간은 그렇게 세상과 그리고 신과 단절되어 있다고.
박완서의 <한 말씀만 하소서>는 성경 욥기를 떠올리게 한다. 고통 문학이다. 신의 침묵과 세상의 편견 앞에서 홀로 고통을 감당하는 억울한 인간의 항변문학이다.
저자의 이어지는 해석이 놀랍다. 통곡의 벽은 단단한 벽으로 서 있어야 그 역할을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벽이 같이 울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통곡의 벽은 우는 법이 없어야 한다"고.
"통곡의 벽이 우는 법은 없어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통곡의 벽이 나와 함께 운다는 것을 깨달을 때, 치유는 시작된다." (123쪽)
박완서는 중년의 어느날 남편과 성당에 나가 세례를 받고 종교생활을 시작했다. 박완서의 나이 57세가 되었을 때, 그는 남편을 폐암으로 떠나보낸다. 그때가 아들을 사고로 잃기 석 달 전이었다.
박완서는 지금 내 나이에 홀로 되었다. 남편을 잃고 아들도 잃었다. 저자는 중년의 나이는 죽음의 관점에서 삶을 살기 시작해야 하는 때라고 말한다.
중년부터는 죽음의 관점에서 현재를 살기 시작해야 한다고.
이 책은 한 손에 들어오는 매우 작은 문고판 책으로 200쪽이 채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박완서 작가를 거의 완전히 이해하게 해준다. 그녀의 삶, 그녀의 작품. 그리고 박완서 전문가 양혜원 작가의 삶과 생각까지.
이 책을 읽고나면, 집에 꽃혀 있는 박완서의 책들을 다시 꺼내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힌다.
그래. 4월은 박완서와 함께 가자.
4월의 작가는 박완서다.
그리고 나도 새롭게 글쓰기를 시작해보자.
~~~~~~
(선한리뷰)
나는 박완서 작가보다 조금 이른 나이인 37에 첫 책을 출간했고, 마흔 하나 때 첫 시집을 펴냈다. 나는 본격적인 작가가 되지 못했는데, 그건 전업작가로 살아갈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마흔에 작가의 삶을 시작하고, 끝내 작가로 삶을 마감한 박완서 작가를 보면서, 나도 작가로 삶을 마감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다.
은퇴하고 직장을 잃게 되면, 나는 그때서라도 직업으로 '작가'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컴퓨터 폴더에 쓰다 만 원고들을 꺼내어 하나씩 완성하고 발표하고, 책으로 묶여져 나올 수 있을까.
건강이 안 좋아졌을 수도 있고, 생계 유지를 위해 뭐든 다른 일을 해야 할 수도 있기에, 그도 쉽지 않은 미래임을 생각할 수 있다.
그래도, 박완서 책을 읽으며, 나름 단단하게 나를 단련시켜 본다. 그래. 나가자. 나는 작가가 아니던가.
예순에 다시 시작한 글쓰기, 이런 제목의 책으로 새 시작을 알리는 것도 좋겠다.
어쩌면 그것이 바로, 중년의 나이에, 죽음을 생각하며 현재를 살아가는 하나의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우리는 날마다 한 발 더 깊이 죽음으로 들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