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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머의 한국사 - 해외석학 3부작 세트

너머의 한국사 - 해외석학 3부작 세트

: 한국의 유교화 과정 + 조선왕조의 기원 + 미야지마 히로시의 나의 한국사 공부

[ 전3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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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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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3년 10월 14일
쪽수, 무게, 크기 1481쪽 | 1925g | 153*224*80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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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5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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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에서 소농사회가 성립함과 더불어 형성된 사회구조의 여러 특징은 종래 ‘전통’이라는 말로 일괄적으로 통칭되어왔다. 그리하여 전통과 근대, 이 둘 중에서 어느 것에 좀 더 높은 가치관을 발견할 수 있는지의 구별은 있더라도, 이 둘을 대립시키는 것이야말로 일본의 사회과학과 인문과학의 전제가 되어왔다. 그러나 이러한 전제는 다음의 두 가지 이유 때문에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먼저 첫 번째로, 전통이란 것은 동아시아의 오랜 역사에서 본다면 지극히 새로운 시대에 형성된 것으로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통이란 결코 아주 오래된 옛날부터 존재해온 것이 아니라 14~17세기에 걸쳐 일제히 형성된 것이며 세계사적으로 보면 그것은 오히려 근대로 이행하는 시기에 해당한다.

두 번째로, 전통은 근대에 의해 해소되거나 소멸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상은 오히려 그 반대이며 전통이라는 것의 대부분은 근대 속에서 끊임없이 되살아나고 때로는 강화되기도 했다. 원래 전통이라는 것이 의식된다는 것 자체가, 그것이 소멸해 버렸기 때문이 아니라 여전히 의미 있는 것으로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동아시아의 오랜 기간에 걸친 사회변동을 거시적으로 볼 때, 그 최대의 분수령은 전근대와 근대의 사이가 아닌 소농사회 성립의 전후에, 달리 말해서 전통의 형성 이전과 그 이후 사이에 두어야 한다. 그리하여 1990년대 중엽이라는 현재의 시점은 동아시아 역사에서 소농사회 성립기에 필적하는 제2의 대전환기의 출발점에 해당된다. ---p.81

매년 29.2명의 문과급제자가 배출되어 평균적으로 30년 생존했다고 가정한다면 어느 시점에서든 867명의 문과급제자가, 그래서 대략 계산하면 약 900명 정도가 존재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따라서 900명의 자리를 둘러싸고 양반들이 경쟁했다는 것이 되는데, 그 경쟁률은 어느 정도였을까?

양반의 전체의 수를 아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지만, 전체 인구수를 1천만 명, 인구의 5~10%가 양반 가문에 속했다고 가정하면, 50만~100만 명이라는 숫자를 얻을 수 있다. 이 가운데 과거 수험 자격이 없는 여성과 실질적으로 수험이 불가능한 어린 남자(17세로 문과에 급제한 것이 최연소 기록이다.)를 제외하면, 20만~40만 명 정도가 문과 수험 유자격자였다고 상정할 수 있다. 이들이 900명 중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 경쟁한 셈이다. 얼마나 격렬한 경쟁이 벌어졌을 것인지 짐작이 갈 것이다.

일본의 도쿠가와시대에 비유하면, 900명이라고 하는 최상층의 무사-300명 정도의 다이묘와 가장 유력한 하타모토의 수를 합치면 비슷한 인원수가 될 것이다-의 지위를 둘러싸고 수십만 명의 무사들이 경쟁을 펼쳤다고 상상해 보면, 조금은 실감이 느껴지지 않을까? 물론 일본에서 최상층 무사의 지위는 세습으로 유지되었기 때문에, 과거에 의해서 관료가 선발되는 조선사회의 양반과는 그 성격이 크게 다른 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격렬한 경쟁이 장기간에 걸쳐 가능했던 이유는 일본의 전국시대와 같은 ‘무’가 아니라 ‘문’에 의한 경쟁이었기 때문이다. ---pp.186-187

『심청』을 읽기 시작할 때 필자는 막연하게 이 작품의 시간적 배경이 16세기나 17세기쯤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동아시아를 무대로 심청을 쓴다고 할 때 16~17세기가 가장 알맞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선입견 탓일 것이다. 그 때문이었는지 이 책을 읽고 난 후에도 작가가 왜 19세기로 그 시기를 설정했는지 의문이 남는다.

한 가지 예를 들어보자. 앞에서도 언급했던 바이지만 심청이 편력을 가능케 한 것은 당시 국제적인 화폐의 흐름이었다고 생각되는데 이 책에 등장하는 화폐들은 거의가 은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동아시아 지역에 있어서 은의 폭발적인 유통이 시작된 시기는 16세기였다. 당시 은의 유통은 아메리카 대륙과 일본 열도에서 은이 대량으로 생산되면서 가능해졌는데 그 은은 아시아, 특히 중국의 상품인 차, 생사, 비단, 도자기 등을 구입하기 위해 필요했던 것이다. 당시 사람들에게 수연(垂涎)의 대상이었던, 이 세계적인 상품을 구입하기 위해 세계 화폐로서의 은이 지구를 돌아다녔던 것이며 이것이야말로 세계 경제의 탄생을 말해주는 사건이었다. (중략)

작가가 이 소설의 무대를 19세기 중엽으로 설정한 이유는, 구미의 존재를 중시하고 그것이 오늘날 동아시아의 많은 분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필자는 19세기 이후의 동아시아는 그 이전부터의 연속성을 강하게 가지고 있다고 본다. 따라서 작가가 전통과의 단절을 강조하고 더욱이 서양의 충격 이전의 시기를 심청으로 하여금 그립게 회상할 수 있는 시대로 묘사하는 시대 파악에 위화감을 느끼고 있다.
---본문 중에서
이런 가치 있는 연구에도 고려-조선의 왕조 교체에서 변화와 지속의 문제와 관련해 포괄적인 비판적 검토는 없었고, 내재적 발전론을 지지하는 학자들은 지방 향리 출신의 중소 지주라는 배경 아래 정주학을 이념으로 선택했으며 친명 대외 정책을 옹호한 신흥 사대부가 흥기한 결과로 그 사건을 해석했다. 그들은 부재의 대지주로서 사상적으로 불교에 찬동하고 친원 외교 정책을 추구했던 중앙에 기반을 둔 귀족들로 구성된 오래된 지배층을 전복시키고 권력을 잡았다고 해석되었다. 그러나 필자는 고려-조선의 이행에 관련된 여러 특징을 ‘신흥 사대부’론으로 해석할 수 없다는 생각을 점차 굳히게 되었다. 첫째 평양 조씨 출신의 조준과 황려 민씨 출신의 민여익처럼 고려의 주요 가문 출신의 여러 인물은 1392년 이후에도 고위 관직을 유지하고 있었다. 둘째 14세기 후반 조정을 장악한 이인임 같은 ‘구 귀족’은 명과 견고한 관계를 맺었고 그들에게서 거절될 경우에만 원에 귀부하는 유연하고 실제적인 외교 정책을 추구했다는 사실이었다. ---pp. 18~19

고려-조선 교체기의 주요 양반 가문이 그들의 영속적인 거주지를 어디에 유지했는가 하는 문제에 좀더 결정적인 대답을 제공하려는 목적에서 필자는 1392~1405년 동안 가장 주요한 10개 가문의 족보에서 묘소에 관련된 자료를 모아 분석했다. 필자는 고려 후기 관원 58명과 조선 전기 관원 39명의 묘소를 확인할 수 있었다. 고려 후기 관원 58명 중 45명은 우봉, 장단, 풍덕 같은 지역을 선호해 수도 주위에 묻혔고, 수도 주위에 묻히지 않은 13명 중 8명은 본관 지역(안동, 문화, 파주, 여주), 3명은 한양 주위, 2명은 청주에 묻혔다. 조선 전기 관원 39명 중 29명은 한양 일대에 묻혔는데, 이것은 옛 고려 수도와의 일정한 지역적 연결을 보여주며, 나머지 6명은 남쪽의 남원부터 북쪽의 평산에 이르는 다양한 지역에 안장되었다. 고려 후기와 조선 전기의 가장 유력한 양반은 수도 주위에 계속 항구적으로 거주한 것으로 나타났다. ---p.206

고문과 정주학이 결합된 접근이 14~15세기에 일반적인 사상적 경향이 된 까닭은 무엇인가? 어떤 학자들은 형이상학에 초점을 맞춰 고려 후기와 조선 전기의 정주학의 불일치가 두드러진 까닭은 정주학에 대한 이해가 미숙한 것을 반영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이런 해석에 따르면 한국인은 기대승, 이황, 이이 같은 인물들이 성리학의 형이상학과 관련된 담론을 발전시키기 시작한 16세기 중반까지 정주학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특히 14세기 후반 권근의 『입학도설』에서 신유학의 형이상학을 설명한 사실을 감안하면, 한국인이 성리학의 형이상학에 관련된 논쟁에 참여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정주학을 이해하는 데 250년 넘게 걸렸다는 것은 수긍되지 않는다. 같은 맥락에서 문학의 본질과 역할에 관련된 고문적 태도의 존속은, 정주학으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초기 사상적 전통의 흔적이 남아 있던 것일 뿐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이런 주장의 문제점은 한국의 양반에게 영향을 준 고문은 문학에 관련된 생각에 국한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14~15세기의 양반 개혁자들도 정주학보다 고문에 가까운 정치적 태도를 나타냈다.
---pp.370~371
이 책은 두 가지 중요한 가설을 검증하는 데 목적이 있다. 첫째, 조선 후기 한국의 사회상이, 윤곽을 대략 파악할 수 있는 고려시대 한국의 사회상과는 뚜렷이 다르다는 가설이다. 이렇듯 현저한 차이는 틀림없이 한국 사회가 고려 후기부터 조선 중기까지의 전환기에 일어난 근본적 변동에서 비롯했을 것이다. 두 번째로 이러한 변동을 일으키고 연출한 원동력은 정치적 또는 경제적 요소가 아니라-정치적 또는 경제적 영역에서는 지속성이 상당하다- 신유학이라는 가설이다. 고려 후기부터 중요한 지적 영향력을 행사해온 중국의 신유학은 한국의 학자 관료계급(사대부)에 사회조직에 대한 특별한 이상을 불러일으킴으로써 그들이 이것을 환경에 이식하는 데 필요한 기준이 되었다. 그리하여 새로 시작된 한국 사회의 재조직화는 다른 어떠한 곳에서도 사회적 행동으로는 도달하기 어려울 정도의 깊이와 넓이에 이르렀다. 이것은 시기나 연대를 산정할 수 있는 어떤 단일한 사건과 결부되지 않았으므로 특정 시기의 것도 아니고 명칭도 없다. 그런데도 한국의 유교를 기초로 한 변동은 한국 역사에서 획기적인 변화의 시대가 도래하였음을 알린 것이다.--- pp.21-22

고려에서 사람들이 성장하는 데 가장 있을 법한 사회 환경은 모친이 원래 출생한 집단에서 성장한다는 사실이다. 부친은 혼인하면서 정치적·경제적 이유에서 신부집으로 이주할지 선택하였다. 처가 거주제도〔婦處制〕는 고려에서 흔한 일이었다. 거주지를 선택하는 데 뚜렷한 제약은 없었다. 처가 거주제도냐 본가 거주제도〔夫處制〕냐에 관계없이 부모의 거주 형태가 아이들의 신분을 결정짓지는 않았을 것이다. 어머니의 집에서 아이들은 어머니 쪽 친족에 둘러싸였다. 어머니의 남자형제들은 출생 서열에 따라 각기 다른 혈연 용어로 구분되는데, 이들은 아마도 아이의 인생 초기에 중요한 인물이었을 것이다. 그중 한 사람이 아마도 미래의 장인이 되었을 것이다. 외사촌과 혼인하는 일이 적어도 고려 초기에는 보기 드문 일이 아니었으며 오히려 선호까지 한 것 같다. 집안의 연장자는 외조부모로, 이들의 사랑과 관대함에 상응하여 1년 동안 상복을 입는다는 것이 인상적이다.--- pp.116-117

서자 차별은 부분적으로 한국의 제사에서 사용되는 규제방식의 직접적 결과이다. 중국에는 이와 대응하는 것이 없었다. 아버지의 아들로 인정받더라도 서자는 모친의 지위가 낮아서 계보 면에서나 사회적인 면에서 유대가 약했으므로 서자 출계집단은 서자를 주변화했다. 그러므로 서자는 기껏해야 자신의 아버지 계통을 잇는다는 수준에서 받아들여질 수 있었으나, 조상을 돌보는 일을 맡을 수 있는 자격을 갖지 못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중략)
여성의 경우에도 비슷한 이유로 더 나을 것이 없었다. 조상들, 다시 말해서 그 자신과 남편의 조상에 대한 여성의 위치는 애매하였다. 여성이 그들 자신의 출계집단의 실제 일원이었던 조선 전기에는 남자형제들과 제사 책무를 나누어 맡는 것이 자연스러웠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여성이 남편 출계집단에 차츰 병합됨으로써 상징적으로나 때로는 지리적 거리에서도 자신이 출생한 집과 거리가 멀어졌다. 조상들에게서 분리된다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상속권 상실을 초래하였다. 혼인한 여성은 남편 조상에게는 낯선 존재였다. 그러므로 여성에게는 결코 자신의 인족의 사당에서 의례에 참여하는 자격이 부여될 수 없었다.
--- pp.385-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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