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일리치의 죽음」 고위관료의 아들로 태어나 법조인으로 출세가도를 달리며 남부러울 것이 없던 이반 일리치가 병에 걸려 사망하기까지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이반 일리치는 ‘쉽고 편하며 법도에 맞는 점잖은 삶’을 추구하며 그것이 제대로 된 인생이라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집안일을 하다 얻은 옆구리 통증이 중병으로 확대되자 지금까지의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기 시작한다. 결국 죽음으로 끝나는 투병생활을 하며 그는 지난 삶을 성찰하고 삶과 죽음의 문제를 생각하게 된다. 주위 사람들의 거짓과 위선에 절망한 그는 처음으로 자신이 살아온 삶이 잘못된 게 아니었을까 자문하게 된다. 죽음이 조금씩 현실로 다가오자 자신의 ‘쉽고 편하며 점잖은 삶’이 사실은 위선으로 가득한 인생, 물질적인 행복을 정신적인 행복으로 착각한 인생, 거짓된 삶이었음을 깨닫는다.
그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찾아보았으나 발견하지 못했다. 어디에 있는 거지? 죽음이라니? 그게 뭔데? 그 어떤 두려움도 없었다. 죽음도 없었기 때문이다. 죽음이 있던 자리에 빛이 있었다. “죽음은 끝났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아.” _「이반 일리치의 죽음」 중에서
「세 죽음」 귀부인, 마부, 나무의 죽음을 묘사하며, 죽음을 맞이하는 세 가지 서로 다른 자세를 보여준다. 먼저 귀부인은 자신의 병을 이해해주지 않는 주변 사람들을 끝없이 원망한다. 병이 깊어져 회복될 가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필사적으로 삶에 매달린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늙은 마부는 죽음을 삶과 마찬가지로 자연의 한 현상으로 받아들인다. 마부의 묘비를 만들기 위해 벌채되는 나무 역시 의연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날 죽음에 대비시킬 필요는 없어. 난 어린애가 아니에요. 기독교인인걸요. 난 다 알고 있어요. 내가 얼마 못 살 거라는 것도 알고요. 우리 모두 많은 죄를 짓고 살지요. 난 자신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있어요. 물론 나도 죄를 많이 지었어요. 그렇지만 그만큼 고통에 시달리기도 했어요. 난 인내심을 갖고 고통을 견뎌내려고 무진 애를 썼어요…….” _「세 죽음」 중에서
「주인과 하인」 이기적이고 탐욕스러운 인간이 자기희생을 통해 삶과 죽음의 의미를 터득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주인공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거짓말을 다반사로 하며 아랫사람들은 무식하고 무지몽매하다 하여 열등인간으로 취급하는 남자다. 그런 그가 눈보라 치는 벌판에서 하룻밤을 새우면서 얼어죽기 직전의 하인을 자신의 체온으로 데워 살려내고, 그 과정에서 여태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자기희생의 기쁨을 맛보고 하인을 대등한 인간으로 인식하게 된다. 결국 자신은 숨을 거둔다.
먼저 온몸이 심하게 떨려왔다. 뒤이어 경련이 사라지자 그는 조금씩 의식을 잃어갔다. 죽어가고 있는 건지 잠이 드는 건지 그는 알지 못했다. 그렇지만 어느 것이 되었든 자신은 그걸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_「주인과 하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