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은 어쩔 건데. 결론은?”
다키가와가 따졌다. “재검토고 뭐고 다 좋아. 다음에는 찬성 의견을 제대로 표명하겠지?”
다키가와의 강경론에 난다 긴다 하는 와키사카도 입술을 깨물고 생각에 잠기더니 이윽고 커다란 한숨과 함께 고개를 들었다.
“아, 알겠네. 영업부 의견에 따르도록 재검토해보겠네.”
완전히 백기를 든 것이다. 농담하나……. 기미시마는 당황했다.
“잠깐만요. 근거도 없이 찬성 의견을 쓸 수는 없습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논리에 굽히면 우리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사내 정치에 따라 결론을 바꾸는 의견서라면 경영전략실의 심사 같은 건 하지 않는 게 낫잖습니까. 이 의견서 그대로 내게 해주십시오. 반대 의견이 있다면 이사회에서 정정당당하게 논리를 펼치면 될 일입니다.”
“자네는 여전히 완고하군.”
기미시마에게 바늘 같은 시선을 보낸 다키가와의 낮은 목소리가 날아왔다. “기어코 그렇게 말하다니 완전히 비뚤어진 사람이야. 그런 태도라면 언젠가 설 자리가 없어질 거야.”
“사정에 따라 생각을 바꾸라는 말씀입니까?”
기미시마도 다키가와를 응시했다. “그랬다가는 올바른 여신 판단은 불가능해집니다.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상무님?”
기미시마의 옆에서 와키사카가 혀를 차면서 천장을 올려다보는 게 보였다.
“와키사카, 이번 건에서 이 남자를 빼! 말이 통하질 않잖아.”
--- pp.15~16
“기미시마 부장, 럭비는 아주 훌륭해.”
시마모토는 호쾌하게 말했다. “경기에서는 승리를 목표로 전력을 다해 싸우지. ‘원 포 올, 올 포 원’이라는 말, 아나?”
“One for all, all for one”일까. 기미시마가 처음으로 떠올린 것은 《삼총사》였다.
기미시마가 모른다며 고개를 젓자 시마모토는 오히려 기뻐하며 설명했다.
“개인은 팀을 위해, 팀은 개인을 위해. 멋진 말이지. 럭비 선수는 오로지 팀을 위해 헌신하고, 팀도 선수를 버리지 않아. 조직은 그래야 해.”
정말 단순한 조직론 아닌가. 그야말로 시마모토가 좋아할 만한 말이다. 시마모토는 말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또 하나 멋진 게 있지. ‘노사이드’ 정신이야. 이 말 아나?”
어쨌든 그 정도는 알고 있었기에 “네, 뭐”라고 기미시마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볼을 서로 빼앗는 격렬한 경기를 하다가도, 일단 종료 휘슬을 불면 적도 아군도 사라지지. 그러니까 노사이드(No Side)가 되는 거야. 그리고 서로의 건투를 빌어주지. 숭고한 정신이야. 이거야말로 진정한 스포츠 정신 아닌가? 여기에는 우리가 절대 잊어선 안 되는 인간의 존엄성, 삶이 있지 않을까?”
시마모토는 한껏 도취된 표정으로 말했다.
--- pp.23~24
“우승을 다투는 팀이 되길 바라고 있어.”
기미시마는 분명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우승하고 싶어.”
사이몬의 눈은 가만히 기미시마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윽고 질문을 던졌다.
“언제까지?”
“가능하면 3년 이내에.”
생각하는 듯 침묵이 끼어들었다. 사이몬 앞에는 자료로 건넨 선수와 스태프 명단이 있었다. 사이몬은 일단 거기에 시선을 떨어뜨리고 뭔가 생각하더니 고개를 들어 기미시마를 바라봤다. 그 눈동자를 향해 기미시마는 부탁했다.
“받아주지 않겠나? 우리에게는 사이몬, 자네 힘이 필요해. 부탁하네.”
숨을 멈춘 다에가 사이몬의 대답을 기다렸다. 조금 더 생각하던 사이몬의 입에서 나온 말은,
“3년은 너무 길어.”
한마디였다. “2년 계약으로 해줘. 2년 만에 우승을 다툴 만한 팀으로 만들지.”
--- p.105
더는 득점 차를 허용해선 안 되는 상황에서 과감한 선수 교체와 작전 변경의 효과는 곧 드러났다. 상대의 돌진을 재빨리 막아내 반칙을 유도한 것이다. 후반 5분에 페널티 골을 얻어낸 게 컸다. 10 대 21, 11점 차가 되었다. 두 번의 트라이와 한 번의 컨버전킥이 성공한다면 역전할 수 있는 차이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후반 들어 더욱 놀라운 점은 사사의 공 배합이었다. 기미시마가 보기에도 전반전의 사토무라 때보다 더 날카롭게 공격 리듬이 살아나는 듯했다. 사토무라가 유명 선수이고 스타임은 분명했다. 하지만 이 경기만 보면 사이몬의 선수 기용이 분명 옳았다. 상대 진영에서 공격이 시작되었다. 사사에게 공을 받아 날카롭게 파고드는 백스를 향해 상대 수비수가 맹렬하게 달려들었다. 도모베에게 패스가 넘어가자 스모 연습 때를 방불케 하는 돌진이 들어왔다. 쓰러지겠어.
바로 그때 멋진 패스가 나왔다. 도모베 본인은 태클을 당해 쓰러지면서도 어떻게 패스한 것인지, 붕 떠오른 공이 뒤에서 달려온 선수에게 건네진 것이다. 멋진 오프로드 패스였다. 환호성이 가을의 맑은 창공을 찌를 듯 솟았다. 아스트로스에서 후반 최초의 트라이가 나와 17 대 21, 점수 차가 4점으로 줄어든 것은 그 직후였다.
--- pp.176~177
“부장님, 어떻게 됐어요?”
기미시마가 돌아오자 총무부에서 기다리던 다에와 기시와다가 다가와 물었다.
“간신히 통과했어.”
겨울인데도 이마에 난 땀을 닦으며 기미시마가 말하자, 둘은 얼굴을 마주 보며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부장님, 얼마 전 우리 회사가 오일 전문 상사인 가자마상사를 인수한다는 기사가 났는데 기억하세요?”
기시와다가 뜻밖의 말을 꺼냈다.
“기억하지. 제일 처음 가자마상사의 인수에 문제를 제기한 게 바로 나니까.”
“정말요?”
놀란 표정을 짓고 기시와다가 말했다. “아니, 실은 연구소에 있는 제 동기와 얼마 전 밥을 먹었는데 그 건은 중단하는 게 좋다는 말을 들어서요. 지금은 소용없는 일일지 몰라도 일단 말이나 해볼까 싶어서.”
흘려들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 pp.198~1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