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내용 전반은 너무 어려운 화학반응 해설에 집중하기보다는 화학을 중심으로 요리에 직간접적으로 관계가 있을 만한 여러 가지 지식을 읽기 편하도록 엮어본 것에 가깝다. 그렇게 다양한 관점에서 이야기를 엮었을 때, 평범하게 지나가는 일상의 모든 순간 속에 다양한 분야의 지식이 모여 있고, 과학 기술의 원리와 연구 과정도 함축되어 있다는 사실이 더 잘 드러나리라 생각했다.
--- p.7
나는 한국에서 SI단위 문화가 자리 잡은 것이 분명히 한국의 발전에 기여했다고 생각한다. 한국이 다른 나라에 자랑할 만한 것이 있다면, 사람들이 SI단위를 잘 쓴다는 것이다. 심지어 맥줏집에서 맥주를 주문할 때에도, 3000이나, 1700을 달라고 말한다. 이때 3000이란 말은 3000시시 그러니까, 3000밀리리터라는 뜻으로 밀리리터는 국제 표준인 SI단위에서 나온 말이다. 온스, 파인트, 갤런 같은 비표준 단위는 술에 취해 주정을 부리고 있어도 쓰지 않는 것이 20세기 중반 이후 꿋꿋이 기술과, 과학과, 경제와, 문화를 발전시켜나가는 한국인들의 정신이다.
--- pp.89~91
나는 파운드케이크 대신, 혁명과 함께 탄생해서 세계의 표준으로 자리 잡은 미터법에 따라 케이크를 만드는 방법을 사용하면 어떤가 생각한다. 설탕 100그램을 시작으로, 버터 100그램, 달걀물 100그램, 밀가루 100그램 식으로, 네 가지 재료를 각각 100그램씩 섞어 반죽을 만들고 케이크를 만들면, 커다란 케이크는 아니지만 머핀이나 컵케이크 크기로 두세 개를 만들기에는 충분하다. 이 정도면 21세기의 저녁 식사에서 간단한 후식으로 준비하기에는 딱 좋은 양이다. 이름은 백그램케이크라고 하면 딱 맞는다.
--- p.102
한편으로 나는 전자레인지를 사용할 때, 한 번쯤은 기회의 사다리가 어떤 것인지도 생각해보면 어떨까 싶다. 퍼시 스펜서는 가난해서 학업을 포기하고 직장을 먼저 얻은 공장 노동자였지만, 신기한 기술에 관심과 흥미가 있었고 그것을 더 깊게 찾아볼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그 흥미를 살려서 군대에서 기술을 더 익혔고, 그 기술을 바탕으로 첨단기술 기업에서 일하면서 자신의 연구 성과와 창의력을 발휘할 기회도 얻었다. 이런 이야기를 보면, 세상은 어려서부터 신동이라고 불리던 천재에 의해서만 바뀌는 것도 아니고, 20대, 30대에 큰 시험에 합격하고 좋은 경력을 쌓는 데 성공한 앞서 나가는 사람들에 의해서만 바뀌어가는 것도 아닌 듯하다. 세상은, 적어도 가끔씩은, 50세 아저씨가 공장 기계 때문에 간식이 녹은 현상의 이유를 궁금해하는 바람에 바뀌기도 한다.
--- p.142
옛날 만화를 보면 상대방의 사고방식이 너무 단순하다는 의미로 “에라이, 말미잘, 짚신벌레, 유글레나 같은 놈아”라고 욕하는 장면이 있다. 가끔 그런 욕설 중에 “이런 박테리아만도 못한 놈”“세상의 바이러스 같은 놈”이라는 욕이 섞일 때도 있다. 따져보자면 박테리아는 세균을 영어, 라틴어로 부르는 이름이다. 그러므로 박테리아나 바이러스에 비유하는 욕에 비하면 짚신벌레나 유글레나 같은 놈이라는 욕은 너무나 격이 다를 정도로 좋은 말이다. 짚신벌레나 유글레나 역시 미생물이기는 해도 몸속에 핵이 있어서 사람의 세포와 구조가 크게 다르지 않은 생물이다. 효모와 비슷한 정도로 사람과 닮아 있다.
--- p.177
글루탐산은 조미료로 쓰기에 약간 불편한 점이 있었고 효과도 기대보다는 약했다. 그래서 이케다는 소금에서 나오는 소듐, 그러니까 나트륨을 집어넣어 글루탐산이 물에 더 잘 녹아 나오고 더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가루로 바꾸는 방법을 고안했다. 그렇게 해서, 소듐이 하나 들어간 글루탐산, 즉 모노소듐글루타메이트 monosodium glutamate가 탄생하게 되었으니, 이 물질을 알파벳 약자로 부르는 이름이 대단히 유명해졌다. 바로 MSG다.
--- p.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