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랫입술이 떨렸다.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할머니를 남겨 두고 떠난다는 게 믿기지 않아요.” 할머니가 내 뺨에서 눈물을 닦아 주었다. “네가 나를 떠나는 건 불가능해. 나는 네 일부란다. 너는 나와 내 이야기를 지니고 새로운 행성으로, 그리고 수백 년 미래로 가는 거야. 내가 얼마나 운이 좋은지 모르겠다.” --- p.13
“우리가 잘못한 부분을 기억하고, 우리 자녀와 손주들을 위해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될 거야. 서로의 차이를 감싸고, 평화를 이룰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해.” --- p.31
“네가 어디서 왔는지, 또는 네 조상들이 네게 가져다준 이야기를 절대 부끄러워하지 마라. 그걸 자신의 것으로 만들도록 해.” --- p.165
기억 없이는 살 수 없다. 기억을 잃어버린다면, 우리 가족은 결코 존재하지도 않는다. 얼굴을 타고 목으로 눈물이 줄줄 흘러내려 머리카락이 흠뻑 젖었다. --- p.171
나는 살짝 안심했다. 페더는 렌을 안타깝게 여기고 있다. 콜렉티브는 페더의 마음에서 감정이입을 완전히 없애 버리지 못했다. 나는 페더가 곧 ‘진짜 인간’을 되찾으리라는 희망을 품었다. 하지만 안도감은 즉각 사라졌다. 사령관이 페더의 이런 모습을 보면 어떻게 할까? --- p.209
긴장해 배가 옥죄어 왔다. 이제, 이야기를 들려줘야 한다. 바라건대, 지구의 이야기가 저 아이들에게 자신이 누구이고 가족이 누구였는지 상기시켜 줬으면 좋겠다. 하지만 기억한다 해도, 이 방 밖에 있는 누군가에게 들려주겠다고 마음먹지 않기를 나는 기도했다. 모두 나를 지켜보며 기다렸다. 이건 위험을 감수할 가치가 있다.
도나 바르바 이게라의 『마지막 이야기 전달자』는 루이스 로리의 『기억 전달자』의 메아리 같은 작품이다. 두 작품은 이야기의 힘이 우리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빼어난 솜씨로 보여 준다. 『마지막 이야기 전달자』의 배경은 2442년 먼 우주에 있는 행성 세이건이다. 주인공 페트라는 이 사회에서 유일하게, 핼리 혜성의 궤도 변화로 멸망한 옛 지구의 기억을 보유하고 있다. 행성 주민들은 지구를 탈출한 난민이다. 약 300년에 걸친 여행 끝에 동면에서 깨어난 사람들 기억은 모두 소거되고, 주어진 일만 수행하게 세뇌당해 있다. 차이를 없애면 분쟁도 없고, 일치만 있으면 불평등도 없다고 믿는 콜렉티브의 짓이다. 지옥은 대부분 천국의 가면을 쓴 채 등장한다. 일치가 한 사회의 기본 규칙이 되면, 평화와 행복의 꽃길이 열리는 대신 차이와 다양성을 제거하기 위한 일상적 폭력과 지속적 억압이 거듭된다. 홀로 옛 기억을 품은 채 깨어난 페트라는 시스템이 부여한 역할을 행하면서 조심스레 부모를 찾고 과거를 되돌리려고 노력한다. 괴롭고 힘들 때마다 페트라에게 지혜를 주고 기운을 불어넣는 것은 할머니의 목소리다. 다채롭고 풍부한 의미로 반짝이는 할머니의 이야기는 순간순간 페트라를 성장과 성숙으로 이끌면서, 규율하고 통제하고 지배하는 세계에 균열을 낸다. 좋은 이야기는 희망의 보루이자 용기의 동력이다. 이야기가 있는 한, 희망은 사라지지 않는다. 『기억 전달자』와 마찬가지로 『마지막 이야기 전달자』는 뉴베리상을 수상했다. 미국 도서관 협회가 수여하는 이 상은 그해 미국에서 출간된 어린이 책 가운데 가장 뛰어난 작품을 쓴 사람에게 주는 상이다. 100주년을 맞이해 뉴베리상이 SF 상상력을 통해 기억의 힘을 보여 준 신예 작가에게 돌아간 것은 무척 의미 깊다. 좋은 이야기는 언제나 나쁜 세상에서 인간을 구원한다. 어릴 때 이 사실을 아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