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목정보
발행일 | 2022년 11월 01일 |
---|---|
쪽수, 무게, 크기 | 552쪽 | 686g | 140*210*35mm |
ISBN13 | 9791191247275 |
ISBN10 | 1191247279 |
발행일 | 2022년 11월 01일 |
---|---|
쪽수, 무게, 크기 | 552쪽 | 686g | 140*210*35mm |
ISBN13 | 9791191247275 |
ISBN10 | 1191247279 |
첫 번째 책 1부 - 어미 거미의 거미줄 · 013 2부 - 여름 일기 · 049 전기적 요소 1 - 절대적인 책에 관한 세 개의 기록 · 135 두 번째 책 1부 - 우세누 쿠마흐의 유언 · 143 전기적 요소 2 - 떨림 속 세 번의 외침 · 221 2부 - 조사하는 여자들과 조사받는 여자들 · 235 전기적 요소 3 - 샤를 엘렌슈타인은 어디서 끝을 맞는가 · 283 3부 - 밀물에 취한 탱고의 밤 · 323 세 번째 책 1부 - 우정 - 사랑 × 문학/정치=? · 385 전기적 요소 4 - 읽지 못한 편지들 · 471 2부 - 마다그의 고독 · 479 감사의 말 · 541 옮긴이의 말 · 543 |
문학이 삶을 구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실의에 빠진 이에게 어떤 희망이나 길을 제시할 수는 있다. 반대의 경우가 될 수도 있다. 문학이 삶의 전체가 되거나 일부가 되는 건 지극히 사적인 일이 되었다. 그럼에도 문학을 특히 글쓰기를 갈망하는 이들은 많다. 무엇을 쓰는가가 중요할까. 아니면 쓰려는 자가 되려는 게 중요할까. 2021 공쿠르상 수상작 모하메드 음부가르 사르의 『인간들의 가장 은밀한 기억』은 복잡한 마음을 불러오는 소설이었다. 복잡하다는 건 소설이 어렵기도 했고 소설을 통해 작가 음부가르 사르가 말하고자 하는 게 많다는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다.
여타 소설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작품을 통해 문학의 시원이나 자신의 존재를 찾으려 노력하는 글을 쓰고자 하는 게 아닌가 싶은 느낌을 받게 된다. 그러니까 민족의 정체성을 다루거나 역사의 한 장면을 다루는 소설 말이다. 『인간들의 가장 은밀한 기억』의 경우도 다르지 않게 다가왔다. 1990년 세네갈에서 태어나 프랑스어로 정규교육을 받은 작가 음부가르는 소설 속 화자인 ‘디에간 라티르 파이’를 통해 자신의 이야기이자 세네갈의 문화와 역사를 말한다고 볼 수 있다. 현재의 그가 있기까지 지난 성장과정이나 환경이 중요한 역할을 하며 그것이 문학의 질료가 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까 작품과 작가를 일정 부분 동일시할 수밖에 없다.
‘디에간’은 음부가르가 그랬듯 세네갈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글을 쓰는 작가다. 아프리카 출신의 유망주 정도 되겠다. 타국에서 타국의 언어로 글을 쓴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문학적 재능으로만 판단하고 평가한다고 하지만 여전히 흑인과 아프리카란 꼬리표를 달고 있다. 그런 그가 세네갈 출신의 문학 선배라 할 수 있는 ‘T.C. 엘리만’의 소설 <비인간적인 것의 미로>을 알게 된다. 1938년에 발표된 소설, 단 한 권의 책을 끝으로 문학계는 물로 프랑스에서 사라진 사람, 엘리만을 추적하게 된다. 여러 방면으로 수소문을 했지만 책도 출판사도 찾을 수 없다. 실재의 인물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 돌 정도다.
그럴수록 디에간은 그에게 빠져든다. 그러다 운명처럼 세네갈 출신의 여성작가 ‘마렘 시가 D.’를 만나고 그에게서 <비인간적인 것의 미로>과 엘리만에 대해 듣게 된다. 출판 당시 책에 쏟아졌던 찬사와 엘리만을 ‘흑인 랭보’라 칭했던 이야기, 그 뒤를 이은 비판과 비평. 소설이 아프리카 세네갈의 기원 신화와 같고 심지어 엘리만이 여러 작품을 차용한 콜라주였다며 출판사를 상대로 소송을 했다고. 그러나 엘리만은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고 침묵만 고수하다 결국 자취를 감췄다고. 이쯤 되면 <비인간적인 것의 미로>의 내용과 엘리만의 묵묵부답의 진실이 궁금해진다.
『인간들의 가장 은밀한 기억』은 디에간이 엘리만의 흔적을 찾는 과정을 들려주는 동시에 그와 관련된 인물들이 들려주는 엘리만에 대한 기억을 다룬다. 파리에서 시작해 마렘 시가 D.를 만나는 암스테르담, 마렘 시가 D.에게 엘리만을 들려주는 아이티 시인의 부에노스아이레스, 세네갈의 다카르까지 그 여정은 엘리만 한 사람만의 인생이 아닌 다양한 세대의 인생 이야기라 할 수 있다. 그들이 어떤 시대를 살았고 어떤 문화를 경험하고 어떤 차별과 어떤 고통을 견디며 살았는지 말이다.
엘리만이 책을 쓴 1938년 아프리카 세네갈과 프랑스의 관계.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던 세네갈 사람들의 생각과 태도. 엘리만에게 프랑스는 어떤 나라였으며 어떤 의미였을까. 그것은 곧 디에고의 정체성과 문학에 대한 질문과 맞닿는다. 디에고뿐만 아니라 파리에 살고 있던 아프리카 출신의 작가들과 ‘마렘 시가 D.’에게도 마찬가지였다. 1930년대가 아닌 21세기에도 과거의 역사는 사라질 수 없으니까. 현재 프랑스 최고 권위의 문학상을 수상한 음부가르까지도.
참기 어려운, 추잡스러운, 부르주아적인 생각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어. 그게 바로 우리 삶이야. 문학을 하려고 애쓰는 것, 그리고 그와 동시에 문학에 대해 말하는 것. 말하는 것 역시 살아 있게 만드는 한 가지 방식이니까. 문학이 살아 있는 한 우리의 삶은, 아무리 무용하고 아무리 비극적인 희극이고 무의미할지언정 그래도 완전히 길을 잃어버린 건 아닐 수 있지. 우리는 문학이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것인 듯 굴 수밖에 없어. 이따금, 아주 드물겠지만 그래도 어쨌든 가끔 정말로 그럴 수 있으니까. 그리고 누군가는 그것을 증명해야 하니까. 우리가 바로 그 증인이야, 파이. (76쪽)
음부가르는 문학이 결코 무용하지 않다고 주장하고 싶었던 것일까. 아니면 프랑스의 식민지가 아닌 세네갈의 역사나 그들의 전통과 영혼을 세계에 알리고자 했던 것이까. 아니면 제국주의와 전쟁의 잔혹함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그는 엘리만의 목소리를 빌려 대신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엘리만을 만나 그의 재능을 발견하고 <비인간적인 것의 미로>를 편집하고 만든 샤를과 엘리만의 다툼에서 엘리만은 ‘문학은 원래 약탈의 유희라고, 자기 책은 바로 그걸 보여준다고 대답했고요. 독창적이지 않으면서 독창적이기, 엘리만은 그게 바로 자기의 목표 중 하나라고, 문학은, 심지어 예술은 그렇게 정의될 수 있다고 했어요. 그러면서 자기의 또 다른 목표는 창작의 이상을 위해 모든 게 희생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거라고’(271쪽)
프랑스가 세네갈을 지배하지 않았다면 엘리만 같은 인물은 존재할 수 있었을까. 미지의 땅을 발견하고 문명을 전파하는 과정에서 옳은 방법은 무엇일까. 서로 다른 문명이 만나 새로운 문화로 태어나는 건 불가능한 일인가. 반드시 식민지화가 진행되어야만 할까. 그 과정에서 발생한 상처와 고통은 제목 그대로 ‘인간들의 가장 은밀한 기억’으로 남았다. 소설 속 프랑스와 세네갈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세계 곳곳과 우리의 역사도 그러하다. 역사가 문학으로 재탄생되는 일이 의미를 지니면서도 아픈 이유다.
어쩌면 문학 속에는 아무것도 찾을 수 없을지 모른다. 문학은 시커멓게 반짝이는, 안에 뭐가 들어 있는지 알 수 없는 관과 같다. (526쪽)
그러니 문학은 삶의 일부이면서 전체가 될 수도 있다. 안타깝고도 아름다운 『인간들의 가장 은밀한 기억』 속 인물들에게 문학이 그러했듯. 문학은 스스로를 증명하는 도구이자 역사를 재조명하는 통로가 된다. 삶을 구원할 수는 없겠지만 정체성으로 혼란스러운 모두에게 글을 쓴다는 건 내면을 오래 들여다볼 수 있는 일이며 시시각각 변하는 나를 직시할 수 있는 길은 아닐까 싶다.
글을 쓴다는 것은 언제나 다른 것을, 또 다른 것을, 다시 또 다른 것을 요구한다고. 마침내 그 목소리가 조용해지면 당신은 다른 것, 굴러다니고 달아나는 다른 것, 당신 앞에 놓인 다른 것의 반향과 함께 길 위에, 고독 속에 남는다. 글을 쓴다는 것은 새벽을 기약할 수 없는 밤 속에서 언제나 다른 것을 요구한다. (60쪽)
《인간들의 가장 은밀한 기억》은 세네갈 출신 흑인 작가 모하메드 음부가르 사르가 과거 식민 지배의 가해국이라고 할 수 있는 프랑스로 건너가 쓴 소설이다. 작가의 네 번쩨 소설이었고 작가는 이 소설로 2021년 공쿠르 상을 수상하였다. 소설의 시작에 ‘얌보 우올로구엠을 위하여’라는 헌사가 붙어 있는데, 이는 소설 속 T.C. 엘리만의 모델이 바로 아프리카 출신 작가 얌보 우올로구엠이기 때문이다.
“... T.C. 엘리만은 고전이 아니라 컬트였다. 문학적 신화는 게임판과 같다. 그 판에서 엘리만은 세 가지 으뜸 패를 가졌다. 우선 알 수 없는 이니셜로 된 이름을 골랐다. 이어 단 한 권의 책을 썼다. 마지막으로 흔적 없이 사라졌다...” (p.18)
소설의 가장 바깥 껍데기는 미스터리로 둘러싸여 있다. 그리고 그 미스터리의 중심에 T.C 엘리만이라는 작가와 그의 단 하나 뿐인 작품 『비인간적인 것의 미로』가 있다. 소설은 세네갈 출신으로 프랑스로 와 소설가로 활동하고 있는 디에간 라트리 파이를 가장 먼저 일인칭의 주인공으로 삼는다. 오래전 관심을 가졌던 작가와 작품이 어느 순간 불쑥 나에게로 가까이 다가오면서 소설은 빠르게 물살을 타기 시작한다.
“... 아무 의미 없네. 내가 충고 하나 할게. 위대한 책에 대해서 그 책이 무엇에 대해 말하는지 절대 말하려 하지 마. 아니면, 할 거면, 가능한 대답은 단 하나야. 아무것도 아니다. 위대한 책은 아무것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아. 하지만 그 안에 다 들어 있지. 어떤 책이 위대하다고 느껴지거든 절대 그 책이 무슨 말을 하는지 말하려 하지 마. 그건 의견이란 것이 네 앞에 내미는 함정이야. 사람들은 책이라면 꼭 무슨 말이든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디에간, 뭔가에 대해 말하는 건 보잘것없거나 시시하거니 진부한 책들뿐이야. 위대한 책은 주제도 없고 그 어떤 것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아. 단지 무언가를 말하려고 혹은 발견하려고 애쓰지. 그 단지가 이미 전부야. 그 무언가가 이미 전부이고.” (p.54)
미스터리라는 겉껍질을 살살 벗겨내면 또다른 모양의 속살이 드러나게 된다. 나에게 엘리만의 소설을 건넨 것은 시가 D. 라는 소설가인데, 소설을 읽고 또 읽은 나는 그녀를 찾아 파리에서 암스테르담으로 향하고, 엘리만의 가계를 둘러싼 길고 긴 이야기를 듣게 된다. 우세누 쿠마흐와 아산 쿠마흐, 그리고 모산을 통하여 엘리만으로 이어지는 현대적인 설화와도 같은 이야기이다.
“... 내가 앞으로 엘리만의 이야기를 생각한다면 오직 글을 쓰기 위해서일 거야. 그 이야기를 나는 직접 살았잖아. 내가 오늘 밤 너에게 한 이야기는 글로 쓰이길 기다리고 있어. 한 권, 혹은 여러 권의 책이 되겠지. 언젠가 난 나의 책을 쓸 거야. 그 외는 전혀 관심 없어. 엘리만은 오래전에 죽었다. 엘리만은 살아 있고 103세다. 엘리만은 무언가 남겨두었다. 엘리만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 엘리만은 실제 인물이다. 엘리만은 신화다. 다 상관없어.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엘리만은 여전히 내 안에 살아 있어. 다른 어떤 삶보다, 심지어 내가 실제로 겪은 삶보다 더 강력한 삶으로 살아 있지. 그러니 실제가 어떻든 상관없어. 어차피 진리 앞에서 현실은 늘 너무 초라하잖아...” (p.381)
하지만 이 소설의 속살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서구의 식민 지배를 받았던 아프리카의 지식인이 그 가해국으로 넘어와 겪게 되는 양가 감정의 다양한 표출 방식 또한 이 소설이 놓치고 싶어하지 않는 중요한 부분이다. 과거의 엘리만이 겪었고, 어쩌면 현재의 나와 동료들이 겪고 있는 지도 모르고, 소설 바깥으로 넘어와 실재하는 인물 얌보 우올로구엠이 겪었던 일들이 여기에 속한다.
“... 결국 엘리만은 누구였을까? 그는 식민지화가 만들어낸 극단의 비극적 결실이야. 식민지화의 성과 중에서 아스팔트 깔린 도로들과 병원고 교리문답 학교보다 훨씬 훌륭한 가장 눈부신 성공이었지... 하지만 엘리만은 바로 그 식민지화가, 끔찍할 수밖에 없는 그 과정이 피식민자들 안에서 무엇을 파괴했는지 보여주는 상징이기도 해. 엘리만은 백인이 되고 싶었고, 하지만 세상은 그에게 너는 백인이 아니라고, 아무리 뛰어난 재능을 지녀도 결코 백인이 될 수 없다고 알려준 거야. 엘리만은 백인이 되려고 모든 문화적 담보물을 제시했는데 세상은 그를 흑인의 자리로 돌려보냈지. 그는 어쩌면 유럽인들보다 유럽에 대해 더 통달한 사람이었는데. 그런 그 끝은? 엘리만은 익명으로 사라졌고 지워졌어. 너도 알다시피 식민지화는 피식민자들에게 황폐와 죽음과 혼돈을 심어. 하지만 그보다 더 심한 건―식민지화가 이루는 가장 악마적인 성공은―바로 자신들을 파괴하는 바로 그것이 되고 싶다는 욕망을 심는 거야. 엘리만이 그랬어. 소외의 슬픔이지.” (p.496)
시작 즈음에는 흥미로운 지점이 많아 쉽고 빠르게 읽을 수 있지만 어느 정도 진행이 되고 나면 오히려 읽기가 더뎌진다. 형식적으로 다층의 구조를 택하고 있으며, 서술의 방식 또한 친절하지 않다. 여러 인물이 모두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고 때때로 아니 자주 현학적이기도 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서유럽과 아프리카의 관계가 일본과 우리의 관계와 닮아 있어 그 이해가 막연하지 않다는 점인데, 어쨌든 읽는 동안 간간이 굉장하다, 는 감탄이 나오곤 했다.
모하메드 음부가르 사르 Mohamed Mbougar Sarr / 윤진 역 / 인간들의 가장 은밀한 기억 (La plus secrete memoire des hommes) / 엘리 / 550쪽 / 2022 (2021)
“작품에 다가가기, 그 흔적을 따라가기는 확실한 죽음의 명백한 징표이다… 결국 작품은 더는 어쩔 수 없이 홀로 무한 속의 여정을 이어간다. 그리고 어느 날 작품이 죽는다. 세상 모든 것이 죽듯이… 그리고 인간들의 가장 은밀한 기억이 꺼지듯이.”- 로베르트 볼라뇨, 『야만스러운 탐정들』
서두의 이 글귀는 『인간들의 가장 은밀한 기억』이 걸어가게 될 여정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오래전 비평가들의 공격을 받고 사라진 ‘얼굴 없는 작가’ T.C 엘리만과 그의 작품의 생성 기원을 찾아가는 젊은 작가 디에간의 여정이 주요 골자라고 볼 수 있다.
흥미로운 전개와 분량 면에서 일주일이면 충분히 읽겠다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중간 중간 책을 덮어야 했고, 머릿속에 떠오르는 질문들을 소화시키는 여정이 더 길었다. 문학의 본질과 본령, 폐기 후에도 여전히 살아남아 풍문으로 세계를 떠도는 책의 기이한 물성, 상처 입은 작가의 자의식, 식민주의의 흔적이 여전한 시대, 변방 작가들이 겪는 고뇌, 세네갈의 정치적 문제 등 굵직한 테마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무엇보다도 마음을 끈 건 이 책이 작가와 작품이라는 테마의 가장 본질적이고 보편적인 부분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작가는 살아가면서 오직 한 권의 책을 마음에 품고 살아간다고 말한다. 이는 엘리만의 『비인간적인 미로』가 신비성과 주술성을 넘어 그의 삶 일부였고, 결국은 그로 하여금 -고통스러울지언정- 자신의 삶을 살아내게 했음을 보여준다.
대개 작가의 창작 행위가 신비적인 면을 가지는 것을 경계하는 편이지만 때로는 작품 쓰기가 의식 너머의 어딘가에서 ‘다가’온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기에 엘리만에 얽힌 수수께끼를 지극히 문학적인 눈으로 풀어가는 여정이 흥미롭고 즐거울 수밖에 없었다.
특히 주인공인 디에간과 그의 길잡이 역할을 하는 시가 D, 그리고 엘리만은 언뜻 모두 작가의 일부처럼 보이는데, 게토라고 불리는 소수문단에서 디에간과 그의 동료들이 겪는 고뇌가 낯설지만은 않다. 그들은 돌파구를 찾고 있고, 또한 오랫동안 그 일에서 철저하게 패배해왔다. 소설 안과 밖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지점으로, 다소 낯선 배경의 이야기들이 현실에 단단히 발 딛게 하는 지반이 된다. 같은 면에서, 마지막에 디에간이 엘리만의 유언에 대처하는 태도도 지극히 온당하다.
읽고 나면 책과 읽기와 쓰기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책들이 있다. 제임스 미치너의 『소설』도 그러했는데, 『소설』이 집요하고 힘차게 그 과정을 파나가는 책이라면, 이 책은 수많은 꿈의 미로 속을 거닐며 단서를 찾아가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창작을 하는 이들은 반드시 읽기를 권하고 싶고, 그렇지 않더라도 충분히 흥미로운 여정을 선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