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오래 계셨던 분들은 논외로 치고, 대다수 사람의 심정이 이러합니다.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위화감에 기분이 착잡하고, 조것만 내 삶에서 사라지면 좋을 텐데 하며 속을 끓이고, 요것이 이렇게 흘러가면 좋을 텐데 하는 application(신청서)이 속에 있습니다.
뭔가 형용할 수 없는 구름떼가 마음속에서 서성거리지요.
그 말인즉슨 행복하지 않다는 겁니다.
그러니 처음에 주지한 바와 같이 이런 구름떼를 걷어내려면 인간이란 무엇인지, 나란 무엇인지를 먼저 깨쳐야만 합니다.
--- p.47
하늘은 스스로 살길을 구하는 자를 돕는다.
Heaven helps those who help themselves.
이것이 만고불변의 진리임을 믿으십시오.
누가 나를 지켜 주겠거니 기대하지 말고 스스로를 지키십시오.
남에게 의지하지 마십시오.
하나님마저 부처님마저 의지처가 아닙니다.
그래서 제가 늘 입이 닳도록 말하지 않습니까.
스스로 살길을 구하는 방도를 가르쳐 주겠다고.
--- p.118
여러분이 왜 여태껏 이 지경으로 살았는가.
타력본원(他力本願), 행운과 건강을 타력에 의탁했기 때문입니다.
영어가 되는 분들은 들으십시오.
셰익스피어가 쓴 희극 《베니스의 상인》에 진리를 응축한 대사가 나옵니다.
?The quality of mercy is not strained. It droppeth as the gentle rain from heaven.’
?자비란 달라고 구하는 것이 아니다. 자비는 받을 만한 이에게 자연히 내려지는 것이다.’라는 뜻입니다.
덧붙여 막스 뮐러라는 철학자가 한 말입니다.
?He that is to be fed at other's hand may stay long ere he be full.’
?순전히 남의 힘에 의존한 채 스스로 아무 노력도 하지 않으며 살아가는 인간은 행운의 문턱을 영영 넘지 못한다.’라는 뜻입니다.
말에 묘미가 있지요. 결국 행운 속으로 들어가지 못한다는 겁니다.
이 두 가지 격언을 좌우명으로 삼고 무엇을 하든지 큰 일이라고 두려워 말고 작은 일이라고 만만히 보지 마십시오.
--- p.192
병 고치는 일을 자기 업의 본질로 삼는 의사는 진정한 의사가 아닙니다.
의사로 예를 드니 이해가 안 가는 겁니다.
스님을 예로 들면 이해가 빠를 겁니다.
스님은 보시를 받고 불경을 외고 망자의 장례를 인도하고 고인의 명복을 비는 법요를 베풉니다만, 이 소임들이 스님이란 업의 본질입니까?
그리 생각하는 스님들은 안 계십니다.
그리 생각한다면 땡중입니다.
스님이란 업의 본질은 오랜 세월 수행하여 깨달은 종교의 본령을 설법과 포교를 통해 전하여 방황하는 사람들을 건져내 안심입명의 대경애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스님이란 업의 본질이자 목적입니다.
보시를 받아 불경을 외고, 보시의 많고 적음에 따라 많이 외고 적게 외는 것은 어디까지나 additional, 부차적인 소임이지요.
의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 병을 고치는 것은 의사 업의 본질이 아닙니다.
치료는 의사의 additional occupation, 곁따르는 업입니다.
그렇다면 의사 업의 본질이자 진짜 목적은 무엇인가.
인류가 질병에 걸리지 않도록 연구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의사란 업의 숭고한 목적입니다.
허나 목적대로 살자면 입에 풀칠하기 힘듭니다.
병에 걸렸지만 죽지 않는, ?황금알을 낳는 환자들’이 사라집니다.
--- p.216
반대로 소극적인 마음가짐이라면, 마음가짐이 숭고함과 강인함과 올바름과 깨끗함에서 멀어진 딱한 처지에 놓여 있다면 식물심의 작용 역시 약화되어 제구실을 못 합니다.
마음가짐이 생명 존재에 미치는 중대한 파급력과 결과를 이제 아셨을 겁니다.
생명을 책임지는 근간, 식물심(植物心)과 식물심의식이 인간에게 있습니다.
이 능력을 발휘해야 할 인간들이 좋은 약을 지어 먹느니, 이름난 의사의 진료를 받으러 가느니, 죄다 본질을 놓치고 있습니다.
결괏값만으로는 사람은 행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면 반성할 법도 한데 여전히 두루두루 보지 못하고 한쪽만 보는 겁니다.
“소문난 의사를 찾아가고 값비싼 약을 먹는데 왜 낫질 않는 거야.”
약발이 없어서, 의사가 돌팔이라서 안 낫는 게 아닙니다.
약이든 의술이든 차도가 없게끔 만드는 장본인은 본인입니다.
그러면서 건강해지길 바란다면 헛꿈 아니겠습니까.
--- p.270
자주자율(自主自律), 이것도 설명하지 않으면 모르는 사람들이 있는데, 한 사람도 몰라서는 아니 되니 설명합니다.
자기 생명을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자기 생명과 운명을 오롯이 스스로 감독하고 스스로 지배하며 사는 것이 자주자율입니다.
제 것이라면 저 스스로 감독하고 지배하고 제어하고 운용하는 것이 당연지사 아닙니까. 이것이 자주자율입니다.
그러나 당연지사임을 알면서도 자기 도야를 게을리하면 당연지사가 당연하지 않은 것이 됩니다.
--- p.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