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피쉬, 우리가 물고기를 기억하는 또 하나의 방법
지구의 70퍼센트는 물로 채워져 있고, 인간은 매년 강과 바다에서 1억 톤 이상의 물고기를 건져올리고 있다. 지금 이 순간 열대의 바다와 메마른 사막, 거친 급류와 얼어붙은 강에서 펼쳐지는 물고기 사냥은 인류에게 남은 마지막 수렵의 현장이다. 인간과 물고기의 목숨을 건 사투(死鬪). 21세기 첨단 문명의 시대에도 여전히 인간은 지구라는 대자연 속에서 생태계 먹이사슬의 일부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물고기는 그저 물을 따라 흘러왔을 뿐이다. 살기 위해 알을 낳고 살기 위해 물길을 따라 헤엄쳐왔다. 인간 역시 마찬가지다. 그저 살기 위해 그물을 치고, 작살을 만들었다. 살기 위해 물고기를 잡았고, 굶주림에 대비해 남은 물고기를 소금에 절여 보관했다. 그런 단순한 일들이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 ‘역사’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고, 우리는 그 역사를 ‘새로운 이야기’로 기록하기 위해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세계 24개국을 탐험하고 촬영하였다.
뜨거운 사하라에서 차가운 바람이 살을 에는 노르웨이 바렌츠해,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한 메콩강 급류에서 원시림 가득한 콩고강, 단풍진 캐나다 미라미시강과 광활한 옐로스톤 국립공원, 얼어붙은 알래스카와 영하 30도의 아무르강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여정은 고난의 연속이었지만 아름다운 자연과 낯설고 경이로운 풍경 속, 인류에게 남겨진 마지막 수렵의 현장을 충실히 기록하고자 애썼다. 앞으로 2,3년 후면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릴지도 모를 그 순간을 카메라에 담는 것은 자연과 인류의 유산을 기록하는 아주 값진 작업이 될 것이라는 사명감이 우리 어깨 위에 더해졌기 때문이다.
물고기, 그들은 아름답고 경이로운 생명체였다. 마트의 진열대에서 대가리가 잘려져 진공 포장된 살코기로, 혹은 통조림이나 회 조각으로 만나기 이전에 드넓은 강과 푸른 대양을 오가던 살아 숨쉬는 존재였다. 이 책이, 인간의 오랜 동반자였던 물고기를 새롭게 인식하는 작은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_송웅달(KBS 프로듀서, 슈퍼피쉬 기획·연출) ---「지은이의 말」
마탄자는 거센 파도를 배경으로 피가 사방으로 튀는 가운데 참치들과 벌이는 치열한 전투다. 전투를 지휘하는 대장을 ‘ 라이스Rais ’라고 부르는 것은 이 모든 의식이 이슬람에 기원을 두고 있음을 암시한다. 마탄자의 시작과 끝을, 그물이 언제 열리고 닫힐지를, 죽음의 방 입구를 여닫을 배의 위치를 그가 결정한다. 마탄자는 스페인의 투우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죽음의 무대가 바다라는점이 다를 뿐이다. ---p.19
가족들은 기름에 바짝 튀겨낸 물고기로 모처럼 포식을 한다. 일 년 중 유일하게 신선한 물고기를 맛볼 수 있는 날이니만큼 모두가 최후의 만찬을 즐긴다. 이 소박한 식사에서 그들은 건기의 마지막 나날을 버틸 힘을 얻는다. 일 년에 단 하루 허락되는 물고기잡이 축제. 그것은 먹을 것이 귀한 건기까지 식량을 잘 보존하기 위한 도곤족의 생존 지혜이다. ---p.44
인간의 물고기 사냥, 그 시작은 언제였을까? 또 물고기를 향한 인간의 욕망은 어떻게 진화해나갔을까? 아프리카 콩고Congo(Democratic Republic)의 셈리키Semliki강 유역에서 발견된, 뼈로 만든 작살은 인류 초기 어업 활동의 시작을 최소 9만 년 전으로 되돌린다. ---p.71
이제 ‘참치 카우보이Tuna cowboy’들이 나설 차례다. 참치 카우보이란, 소 떼를 지키는 목장의 카우보이처럼 바다에서 참치 떼를 지키는 잠수부를 말한다. 참치잡이 선단에는 배를 운항하는 선장과 기술자 외에 참치 카우보이들이 항상 배에 같이 오른다. 위험한 해역에서 상어와 폭풍우로부터 안전하게 참치를 지키는 일이 그들의 임무다. ---p.82
쌈냥은 우기가 시작되기 전, 낡은 케이블과 밧줄로 급류를 가로지르는 줄을 설치했다. 거센 물살을 가로지르는 한 가닥 줄 위에 자신의 모든 것을 싣고 강을 건너는 이 남자. 미끄러지면 끝장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살이 떨릴 지경인데, 그의 표정은 덤덤하다. 위태로운 모습이 오히려 경건해 보일 정도다. ---p.96
인류의 역사는 비린내와 함께 시작했다. 인간은 바람과 햇볕, 연기를 이용해 금방 썩는 물고기를 저장하는 지혜를 발휘했고, 소금에 절인 염장 생선은 그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강렬한 미각의 세계를 열어주었다. 풍요의 시대, 신선한 날생선을 어디에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오늘날에도 수르스트뢰밍, 프라혹, 하칼, 더치 하링 등 냄새나는 저장 생선은 여전히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물고기가 없었다면 인간도 없었을 것이다. 오랜 세월 인류를 구해온 물고기. 그래서 그들의 비린내는 위대하다. ---p.158
‘스시’는 쌀을 먹는 문화에서 만들어진 음식이다. 쌀과 생선을 동시에 얻을 수 있는 열대, 아열대 지방의 온도와 습도가 적합한 환경에서 탄생한 것이다. 초기의 스시는 식초를 살짝 뿌린 밥에 신선한 생선 살 한 점을 올리는 지금의 스시와는 전혀 달랐다. 과거 생선이 발효되면서 남기는 특유의 진한 맛은 오늘날 스시에서 식초를 첨가한 밥의 시큼한 맛으로 살아남았다. ---p.200
313년 로마 제국에서 공인된 그리스도교는 1000년경 동으로는 우크라이나의 키예프Kiyev, 북으로는 노르웨이의 트론하임Trondheim, 서로는 아일랜드의 더블린Dublin에 이르기까지 전 유럽으로 확산된다. 금요일에 고기를 금하는 풍습 역시 함께 퍼져나가면서 이제 전 유럽에는 거대한 생선 수요가 생겨나게 되었고, 이는 유럽인의 삶에 커다란 변화를 몰고왔다. ---p.266
오늘날, 거의 모든 사람들은 여전히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다고 믿고 있다. 매년 10월 12일, 미국 전역에서는 콜럼버스가 첫 도착한 날을 기념하여 큰 축제를 벌인다. 하지만 신대륙을 발견한 진정한 주인공은, 대구를 쫓던 이름 모를 어부들이었을지 모른다. 새로운 바다, 더 많은 물고기를 찾아 목숨 건 항해에 나섰던 어부들. 그들은 진정한 탐험가였다. ---p.309
지금 우리가 처해 있는 상황이 바로 이것이다. 인류가 세상에 존재하기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바다에서 얻는 음식의 미래가 없어지게 생겼다. 물고기가 없었으면 인류의 역사도 없었을지 모른다. 과연 물고기가 사라진 지구에서 인간은 살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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