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세상과 마주할 때마다 우리는 타고난 순수함과 선함을 무언가로 은폐하곤 한다. 우리 중 많은 이들은 어린 시절 누군가에게 비난받고, 무시당하고, 오해받고, 학대당한 경험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 안에 빛나는 황금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의심하거나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 성장하면서 우리는 사회적 판단과 가치를 계속해서 내면화했고, 그 결과 자신의 순수성과 창의성, 부드러운 내면과 접촉할 기회를 점점 잃어버리고 말았다. 우리는 끊임없이 사회와 타인의 인정을 추구하면서 우리의 가치를 알아달라고 매달려왔고, 그 과정에서 내면의 반짝이는 황금을 망각하고 말았다.
---「들어가는 글」중에서
우리가 층층이 덮개를 쌓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그 덮개를 자기 자신과 동일시하며 내면의 가치를 알아볼 수 있는 눈을 가리고 말았다. 하지만 눈으로 직접 황금을 보지 못할 때조차 진정한 본성에서 나오는 아름다운 빛과 사랑은 흐려지지도, 더럽혀지지도, 약해지지도 않는다. 그것은 주변 사람들과 관계 맺길 원하는 열망과 현실을 이해하고자 하는 충동을 통해, 아름다움에 기뻐하는 본성과 타인을 도우려는 천성적인 욕구를 통해 매일 큰 소리로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다. 우리는 분리되고 고립된 자아라는 정체성 너머에 광대하고, 신비스럽고, 성스러운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을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직감하고 있다.
---「들어가는 글」중에서
조셉 골드스타인Joseph Goldstein은 내 첫 번째 위파사나 명상(Vipassana Meditation, 통찰 명상, 마음챙김명상이라고도 부르는 불교 명상법-옮긴이) 지도자였는데, 그가 했던 말이 지금도 종종 떠오른다.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저는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합니다.” 이 간단한 지침이 일상의 수많은 상황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많은 경험을 통해 깨달았다. 어떤 상황에 ‘문제’라는 꼬리표를 붙일 때마다 우리는 쉽게 ‘부정적인 감정’에 사로잡히고 만다. 마음은 경직되고, 오직 한쪽의 관점에서만 상황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정적인 프레임을 놓아버리는 순간, 이전과는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 또한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이해하는 새로운 열쇠를 움켜쥘 수 있다.
---「‘문제’라고 말하지 않는 것」중에서
짜증이나 근심, 우울감 같은 부정적인 기분에 사로잡힐 때마다 ‘나는 무엇을 믿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면, 내가 결핍감이나 무가치한 느낌에 사로잡혀 있다는 사실을 자각할 수 있다. 그러면 나는 ‘사실이지만 진실은 아니다’라는 문구를 떠올린다. 그렇다. 생각과 느낌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나에게 무언가 잘못된 것이 있다는 신념이 정말 진실일까? 단순히 이 질문을 던지는 것만으로도 신념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또한 비좁고 두려움에 찬 생각 주변으로 공간이 형성되면서 다시금 조화로운 현실 감각을 되찾게 된다.
---「사실이지만 진실은 아니다」중에서
나를 처음 ‘영적 여정’으로 이끈 것도 바로 이와 같은 결핍감과 고립감이었는데, 이런 감정이 찾아올 때마다 나는 현존을 회복하고 가슴을 누그러뜨려야 한다는 사실을 떠올리려 한다. 또한 고통스러운 감정에 짓눌리는 경험을 할 때마다 내 삶을 근본적으로 뒤바꿔놓은 만트라인 ‘치유를 원한다면 먼저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는 통찰로 되돌아가려 간다. 자기비판으로 가득했던 그날도 몇 분 동안 고요히 앉아 ‘제발 나를 친절하게 대하자.’는 말을 되뇌었다. 감정이 격하게 휘몰아칠 때 자신에 대한 친절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생각을 잠시 멈추고 감정에 충실해야 한다. 그리고 ‘이 느낌은 알맞은 자리에 있다.’고 되뇌어야 한다. 그날도 이런 과정을 통해 짜증을 내고 근심했다는 사실 자체는 잘못되지 않았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스스로에 대한 사랑이 우리를 치유한다」중에서
타인을 위로할 때는 가슴을 열고 상대의 고통과 슬픔을 함께하는 것 말고는 아무 말도,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 수피교의 스승인 피르 빌라얏 인얏 칸Pir Vilayat Inayat Khan은 고통을 함께한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에 관한 심오한 통찰을 들려준 바 있다. 그는 “세상의 모든 고통을 가슴속에 품고 다니는 ‘세상의 어머니(Mother of the World)’가 있다면, 우리 각자는 그 심장의 한 부분을 차지한다. 따라서 우리는 모두 고통의 일부를 짊어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고통을 함께 나누는 행위는 우리 모두가 살아가는 동안 고통을 겪는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단지 ‘함께 있음’을 통해 고통을 연민으로 감싸 안을 수 있는 능력을 확장할 수 있다.
---「고통을 함께한다는 것」중에서
불교에서는 두 종류의 행복이 있다고 가르친다. 하나는 삶이 원하는 대로 풀릴 때, 즉 날씨가 아름답거나, 누군가와 조화로운 관계를 맺거나, 일에서 성과를 내거나, 몸과 마음의 상태가 건강할 때만 일어난다. 반면, 다른 종류의 행복은 삶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기대지 않는다. 이 ‘이유 없는 행복(Happy for No Reason)’은 무조건적으로 현존하면서 깨어 있는 열린 자각 속에서 휴식을 취할 때 느끼는 ‘자유’다. 이때 우리는 삶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상관없이 모든 것이 다 괜찮다고 느낀다. 보름달과 함께 찾아온 깨달음 이후 ‘이유 없는 행복’이 내 산책 습관 속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이유 없는 행복」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