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선생, 미래라도 보여?” 요시무라 선생님이 물었다.
“네?” 얼굴에 경련이 이는 걸 억누를 수 없었다. 상대는 그걸 다른 뜻으로 받아들였는지, “그렇게 걱정하는 눈으로 보지 마. 초자연파 같은 건 아니니까” 하고 말을 이었다.
아아, 생각났다. “드시지 말라고 했던 건 아니고, 굴을 먹다 탈이 날지도 모르는 시기니까 조심하라는 식으로 말씀드렸죠. 결국 안 드셨어요?”
“듣고 보니 식중독에라도 걸릴까 봐 무섭더라고. 친구랑 상의해서 다른 걸 먹었어.”
“맛있기는 하지만요.”
“얼마 전에 오픈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이 있길래 얼른 예약해서 다녀왔지.”
“어쩐지 죄송하네요.”
“웬 사과? 다음 날 그 굴 식당, 지방 뉴스를 탔잖아. 못 봤어? 식중독에 걸린 사람이 나왔대.”
“뉴스는 못 봤지만, 아무튼 굴 요리를 안 드시길 잘하셨네요. 결과가 좋으니 다 잘됐다고 할까요.”
가벼운 투로 말했지만 속으로는 다행이라고 안도했다. 식중독을 막았다. 사람을 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렇게 작은 충족감을 쌓아 올림으로써 평소의 무력감을 조금이라도 덜어내고 싶었다. (…) 그때 요시무라 선생님이 복통으로 괴로워하는 미래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 후에 굴 요리를 먹으러 가신다길래 굴 요리 때문인지도 모르겠다고 추측한 거죠. 그렇게는 설명할 수 없었다. 무슨 소리냐고 호기심으로 가득한 질문 공세를 당할 뿐이다.
--- pp.24~26
오후 8시가 지나자 갑자기 머리가 멍해지기 시작했다. 뇌에 피가 몰리는 건지, 머리가 확 뜨거워지면서 정신이 흐리멍덩해졌다. 그리고 빛이 났다. 섬광 같은 것이 번쩍번쩍 터졌다. 지금 내가 원래 보고 있을 터인 거실은 뒤편으로 물러나고, 다른 영상 화면이 끼어들듯 눈앞을 막는다. 지난번에 이걸 보고 1주일쯤 지났으니까, 오랜만이라면 오랜만이었다.
등받이가 보인다. 신칸센 좌석이다. 그 재채기 때문에 감염됐을 가능성이 높으니까 이건 사토미 다이치가 보는 장면이다. 즉, 그가 신칸센 좌석에 앉아 있는 것이다. 3인용 좌석이고 옆에 사람이 있다. 가족과 여행을 가는 걸까 생각했을 때, 그 장면이 크게 흔들렸다. 차체가 비스듬해질 만큼 크게 기울었다. 어디선가 페트병이 날아왔고 천장에 가까운 수하물 선반에서 가방이 굴러떨어졌다. 차멀미 비슷한 감각에 휩싸이더니 스크린이 깜깜해졌다. 스위치가 눌린 것처럼 장면이 사라졌다. 그 대신 거실이 다시 눈앞에 펼쳐졌다.
--- pp.34~35
“시안 씨가 끙끙대며 걱정하든 말든 세상의 미래는 바뀌지 않는다고요.”
“넌 아무것도 몰라.”
“모르는 게 약이라잖아요. 시안 씨는 늘 병을 걱정하죠. 알레르기였던가요?”
“집진드기와 집먼지. 그건 걱정 없지만 녹내장과 지방간이 있어.” 말하자마자 러시안블루는 몇 개월 전 안과에서 받은 시야 검사 결과가 생각나서 기분이 침울해졌다. 심각하게 악화되지는 않았지만, 시야는 천천히 좁아지고 있었다. “술은 한 방울도 안 마시는데 간에서 지방이 줄질 않네. 비알코올성 지방간이라고 알아? 운동을 하라는데 효과가 있으려나. 이대로 간경화나 간암으로 발전하지는 않을까 무서워.”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고 있는 거죠? 그럼 걱정해봤자 소용없으니까 신경 쓰지 말고 사는 게 좋지 않을까요? 인생은 유한하니까요.”
--- p.44
“방범카메라는 어떻게든 할게요. 나중에 삭제할 수 있다나 봐요. 부탁해놨어요.”
“누구한테? 그나저나 아메쇼, 어째서 자세한 사항을 미리 알려주지 않는 거야?”
“시안 씨는 미리 알려주면 분명 온갖 걱정을 다 할 테니까요. 가사도우미를 매수해서 침입할 준비도 해놨다고 하면 ‘그 가사도우미는 믿을 만해?’ ‘바쓰모리가 다시 매수했으면 어떻게 해?’ ‘가사도우미가 우리에 대해 다 털어놓을지도 몰라’ 하면서 또 입버릇이 나오겠죠.”
“입버릇? 그런 거 없는데.”
“없기는요.” 아메쇼는 그렇게 대꾸한 후, 한숨을 푹 쉬며 “어휴, 이제 끝장이야” 하고 러시안블루를 흉내 냈다. “이거요. 분명 시안 씨가 지구상에서 ‘이제 끝장이야’라는 말을 제일 많이 하는 사람일걸요. 대체 몇 번이나 끝장난 거예요?”
--- pp.47~48
“시간을 좀 주세요. 좀처럼 믿기 힘든 이야기이고, 저도 누가 이런 소리를 하면 상담을 받아보라고 권하고 싶을 거예요. 다만 어디까지나 진실이니까 그렇다고 말씀드리는 수밖에요. 아무튼, 저는 남의 미래가 보입니다. 비말 감염에 의한 ‘선공개 영상’이라고 부르죠.”
“‘선공개 영상’이요?”
“아버지가 그렇게 표현하셔서 저도 그렇게 불러요. 부모님 말고 다른 사람에게 이 이야기를 하는 건 오늘 밤이 처음입니다.”
--- p.97
“나는 누군가 쓰고 있는 이야기, 예를 들면 소설 속 등장인물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시안 씨는요?”
“없어.” 러시안블루는 즉시 대답했다. “그딴 생각은 안 해.”
“아아, 그런가요.” 어쩐지 동정심이 묻어나는 말투였다.
“요컨대 네가 어떻게 될지는 전부 다른 누군가의 뜻이라는 거야?”
“그렇죠. 소설을 쓰는 누군가, 뭐 프로 작가인지 심심풀이로 노트에 끄적이는 중학생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이걸 쓰는 누군가가 있다는 뜻이에요.” 아메쇼는 한순간 위쪽에 시선을 주었다. 하늘 위에 그 ‘필자’가 있다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그럼 어떻게 되는데?”
“전부 정해져 있는 거죠. 제가 어떻게 될지도, 시안 씨가 어떻게 될지도.”
“지금 네가 이렇게 말하는 건?”
“이것도 정해진 대사일지 모르죠.”
--- pp.113~114
“재미있었어.” 이건 솔직한 감상이었다. 황당무계한 판타지 같은 부분이 있긴 했지만, 두 고지모 사냥꾼의 놀랄 만한 활약은 읽으면서 나름대로 유쾌했다.
“감사합니다.”
이야기가 거기서 끊기는 게 거북해서 나는 “덧붙여 한 가지 요청해도 될까?” 하고 말을 이었다.
“요청이요? 뭔데요?”
“소설과 관련된 거야. 비관적인 시안 씨와 낙관적인 아메쇼의 모험. 두 사람은 수완가겠지?”
“수완가?”
“두 사람은 가해자를 찾아내서 심판해. 아무리 기습이라지만 상대에 따라서는 쉽지 않겠지. 신체적으로 강하지 않으면 임무를 완수하기 힘들지 않겠어?”
“뭐, 강하겠죠.”
자기가 창작해놓고 남의 작품처럼 말하지 않으면 좋겠다.
“그 강력함을 독자도 느낄 만한 장면이 있으면 좋지 않을까 싶었어.”
--- pp.116~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