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연 가족을 가로질러 새로운 가족의 구성을 모색하는 문미순의 장편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은 어쩌면 새롭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작가의 대담하고도 치밀한 이야기 능력은 불운의 잇단 습격 속에 악전고투하는 이혼녀 명주가 연금 때문에 어머니의 죽음을 숨기는 반(反)도덕을 독자로 하여금 승인하게 만들거니와, 기구한 이웃 청년 준성마저 아버지의 죽음을 은폐하도록 유인하니, 이 소설은 어느덧 도덕의 피안이다. 그럼에도 소설은 밝다. 명주가 모든 시간과 화해하며, 준성과 함께 서울의 임대아파트에서 충북 증평(曾坪) 시골집으로 이사 가는 결말은 아름답다. 국가라는 장치가 퇴색하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民 스스로 새로운 공동체를 구성는 희망의 정수박이가 빛나는 이 소설은 가장 비천한 현실 속에서 가장 고귀한 인간적 진실을 길어 올리는 소설의 본령에 문득 다가서던 것이다.
- 최원식 (문학평론가)
이 소설은 개인의 차원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불운과 절망, 고통으로 시작된다. 그것은 겹을 이루면서 두 주인공을 극한으로 내모는데, 그 과정에서 발생되는 윤리적 딜레마가 독자를 혼돈에 빠뜨린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잔혹한 현실은 역설적이게도 인간적인 연대와 온기를 발견해가는 과정으로 전환된다. 이야기를 추동하는 힘과 작가의 신념 혹은 배짱이 인상적이다.
- 은희경 (소설가)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은 이야기가 불가능한 곳에서 이야기의 길을 내고, 삶의 가능성이 소진된 곳에서 한 줌 빛을 찾아내는 소설이다. 길 없는 길을 포복하듯 나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소설의 끝에 이르면 정교하게 설계된 희망의 서사 앞에 흠뻑 마음을 적시게 된다. 가혹한 이야기를 감싸고 있는 이상한 명랑과 온기는 설명하기 힘든 희망의 기술이 이 작가에게 있다는 믿음을 갖게 한다. 끈질긴 관찰과 긴 사유를 뒤에 두고 있는 정직하고 정확한 언어들의 박진감도 희망의 기술을 돕는다.
- 정홍수 (문학평론가)
신문 지상의 사건란에 엽기적인 죄목과 이니셜로만 남겨졌을 인물들을 소환한 작가는 그들의 일상을 담담하게 뒤따라간다. 임대아파트에서 벽을 맞대고 이웃으로 살아가는 명주와 준성, 그들은 조금씩 조금씩 궁지로 내몰리고, 마침내 잔혹한 현실이 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우리는 그들의 선택에 수긍할 수 있을까. 스스로 자신의 생존을 챙길 수밖에 없는 야만의 시대에 윤리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소설 속 인물들과 다를 것 없이 야만의 계절을 보내고 있는 지금의 우리에게, 딱 필요한 질문이다.
- 하성란 (소설가)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은 일본 마이니치신문 취재반이 쓴 『간병살인』을 읽었을 때보다 더욱 충격적이었다. 간병과 돌봄의 무거움을 홀로 감당하고 있는 인물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내 안의 무엇인가가 무너져 내렸다. 이런 비극은 그냥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가족으로 인해 받는 고통은 과연 무엇으로 극복할 수 있을까. 피할 수 없는 미래를 담담하게 보여주는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은 최근에 읽은 어떤 소설보다 감동적이었다.
- 강영숙 (소설가)
“아!” 하는 작품을 만났다. 귀한 경험이었다. 작가가 혹독한 수련을 했겠구나, 싶었다. 한순간도, 자신이 하려는 이야기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랬다. 손에 쥔 정보를 어디서 풀어놓고, 어떻게 거둬야 하는지 잘 안다는 점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것은, 어둡고 중량감 있는 이야기를 장악하는 작가의 악력이었다. 빠르고 힘 있게 이야기를 몰아치다가 툭 던지는 무심한 유머로 숨 쉴 틈을 마련해주기도 한다. 이야기의 끝엔 감동과 여운, 그리고 묵직한 질문이 기다린다. 신선하면서도 노련하다는 점에서, 그 밖에 여러 면에서, 군계일학이었다.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을 읽을 수 있었던 건 행운이었다. 당선작으로 결정되었을 땐, 마치 내가 쓴 소설인 양, 어리둥절한 자부심마저 들었다.
- 정유정 (소설가)
첫 문장을 읽는 순간부터 마지막 문장을 읽는 순간까지 이 책에 대한 내 자유의지는 완전히 박탈당했다. 극적인 사건에 반하는 절제된 감정들, 세공된 표현에 더해진 빈틈없는 설계, 그에 따른 긴장감과 몰입감 때문만은 아니었다. 간병노동의 사각지대에 고립된 주인공이 불법의 위험과 패륜에의 비난을 무릅쓰고 감행하는 결단과 실행이 마치, 자신이 따라야 할 것은 국법이 아니라 마음의 법이라며 왕명을 거슬러 오빠의 장례를 치러주었던 안티고네의 상황만큼이나 절박하고 철학적이었기 때문이다. 각자도생, 각자도사. 각자 열심히 산 대가가 불행의 거미줄에 포박당한 채 범법자가 되거나 패륜아가 되는 일뿐이라면 그것은 그들의 실패일까 공동체의 실패일까. 쉽게 답할 수 없는 문제다. 그러나 진창과 폐허에서도 설득력 있는 희망을 만들어 낸 이 소설이 인간 존엄과 사회 제도에 대해 중요한 질문을 던지는 데 성공했다는 것만큼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 박혜진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