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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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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문미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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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며칠 전 작업한 그대로 아마포에 둘러싸여 있었다. 둘러싼 모양이 거칠어 보이긴 해도 아마포에 진물이 밴 흔적 같은 건 없었다. 나무관 바닥 안에 뿌려놓은 과탄산소다와 베이킹소다, 방부제와 탈취 기능이 있다는 숯과 침향나무 조각들도 제 역할을 다하고 있는 듯했다. 명주는 엄마의 상태를 꼼꼼히 확인한 후, 나무관 뚜껑을 닫았다. 혹 자신의 코가 무뎌진 건 아닐까, 의심이 가기도 했지만 큰 이상은 없어 보였다. 명주는 공기청정기에 반쯤 채워진 물통을 비우고 방 안 곳곳에 편백나무 수액을 뿌린 뒤 작은방을 나왔다
--- pp.10~11 연금 100만 원에서 한 달 생활비를 제하면 28만 원이 남았다. 명주는 몇 번이고 다시 계산을 한 뒤 28만 원에 동그라미를 쳤다. 28만 원은 엄마의 진료비를 내고, 병원 약, 기저귀와 패드, 영양 캔과 속옷 들을 사던 금액이었다. 이젠 그런 지출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었다.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돈이 손에 쥐여진다는 얘기였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었다. 명주는 엄마가 남겨준 풍요와 여유가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 p.52 명주는 눈을 떠 창밖을 내다보았다. 가난하지만 누구보다 성실하고 따뜻했던, 자신들의 생활비를 덜어 명주의 병원비를 보태주었던 동료들을 떠올렸다. 지금쯤은 조금이라도 나아졌길 바랐는데 모두가 명주가 지나온 전철을 밟아가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았다. 아직도 이 지겹고 지겨운 가난 스토리를 반복하나 싶어 짜증이 났다. 하지만 어느 순간 가족이 있는 집으로 총총히 돌아가는 그들을 보니 마음 깊은 곳에서 알 수 없는 감정이 꿈틀거렸다. 누구보다 자유롭고 홀가분하다 생각했는데 불쑥 엄마가 보고 싶었다. 그토록 지긋지긋해 마지않던 엄마가 사무치도록 그리웠다. --- pp.91~92 ─아버지가 이 정도는 아니었거든요. 운동도 열심히 하고 식사도 잘 하셨는데. 마트에 다녀왔더니 아버지 몸에서 냄새가 나는 거예요. 실수한 줄도 모르고 계속 텔레비전을 보고 계시더라고요.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처음 쓰러진 건 고등학교 때라고 했다. 처음엔 한 달 만에 회복하고 좋아지셨는데 몇 년 후 뇌졸중이 재발했고, 그 후유증으로 점차 말과 행동이 어눌해지면서 기력과 인지력도 떨어졌다고 했다. 걷는 연습을 하면서 화장실 출입은 하는 정도인데 알코올성 치매기가 있어 맘을 놓을 수 없는 상태라고 했다. ─건축일 하면서 술을 많이 드셨거든요. 명주는 얼마 전 술을 사 오던 노인과 마주친 일이 떠올랐다. ─요양등급 신청을 하면 평소엔 어리바리하다가도 심사 나온 분들 앞에서는 얼마나 대답을 잘하는지 등급도 받을 수가 없어요. --- pp.121~122 이건 세상이 내게 준 모욕과 멸시에 대한 보상이야. 이 세상이 내게 갚아야 할 빚이야. 사죄야. 명주는 마음이 비로소 흡족하다 느껴질 때까지 보상받으리라, 그때에야 미련 없이 가리라 결심했었다. 하지만 지금 명주는 고개를 세차게 내젓고 있었다. 자신이 원한 것은 그렇게 거창하고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원한 것은 그저 한 끼의 소박한 식사, 겨울 숲의 청량한 바람, 눈꽃 속의 고요, 머리위로 내려앉는 한 줌의 햇살, 들꽃의 의연함, 모르는 아이의 정겨운 인사 같은 것들이었다. 자신이 아직은 더 보고 싶고 느껴보고 싶은, 아직은 죽지 않고 살아 있고 싶은 이유였다. --- p.138 ─뇌졸중 후유증이 있던 몸에 화상을 입어 치료가 어려웠대요. 생식기와 허벅지, 발등까지 다 데었거든요. 의사가 일반병실에서 요양병원으로 옮겨 계속 치료받으라 권했지만 치료비와 간병비를 감당할 수 없어 집으로 모셔 왔어요. 그동안 하던 대리운전도 접고요. 제가 잘 돌봐드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하지만 꼬박 아버지 옆에 붙어 하루에도 수차례 드레싱을 해주고 이리 누였다 저리 누였다,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어요. 젊은 저도 이렇게 힘든데 누가 이 일을 할까 싶었어요. 다행히 피부는 잘 아물었는데 걸으려면 처음부터 다시 재활운동을 해야 해요. 다시 처음부터요. --- pp.169~170 준성은 먼저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아 욕실을 훈훈하게 데워놓았다. 그리고 아버지를 부축해 욕실 앞까지 갔다. 막상 욕실로 들어가 옷을 벗기려 하자 아버지는 마음이 바뀌었는지 갑자기 안 하겠다고 소리를 지르며 몸을 비틀었다. 아버지가 욕실에 설치한 손잡이를 잘 잡고 서 있어도 준성이 아버지를 변기에 앉히거나 세울 땐 여간 긴장을 하는 게 아닌데 몸부림을 쳐대니 제어하기가 힘들었다. 간신히 아버지의 어깨를 잡고 두 발로 몸을 지탱하며 다시 세우려는데, 아버지가 두 손을 뻗쳐 올리다 준성의 팔꿈치를 툭 하고 쳤다. 준성은 갑자기 손목이 시큰해지며 손아귀 힘이 풀려 아버지를 놓치고 말았다. 순간 아버지는 고장 난 관절인형처럼 무릎이 꺾이고 연달아 머리가 세면대와 변기에 부딪히면서 바닥으로 무너져 내렸다. --- pp.188~189 ─엄마, 저번에 봤던 그 나무상자 말이야. 은진은 안부 인사도 없이 불쑥 이상한 말을 꺼냈다. ─그 안에 혹시 할머니 있는 거 아냐? ─뭐? 그, 그게 무슨 말이야? 명주는 숨이 턱 막혔다. 너무 놀라 말까지 더듬었다. ─뭘 그렇게 놀라? 사실인가 보네? 은진은 명주가 말을 더듬는 걸 듣곤 깔깔깔 웃어댔다. ─너 그게 할머니를 두고 할 소리야? ─농담이었어, 농담. 근데 엄마, 엄청 흥분하네? 은진은 명주를 놀리는 것이 재밌다는 투였다. --- p.193 ─하루 하고도 반나절쯤 잤나 봐. 갑자기 구토가 나고 머리가 지끈거려 잠에서 깼는데 계속 토하고 어지럽더라고. 반나절을 그렇게 비몽사몽으로 헤매고 있는데 엄마 핸드폰으로 문자가 온 거야. 뭔가 싶어 열어보니 연금이 입금됐다는 알림 문자였어. 그걸 본 순간 마음이 이상하게 요동치더라고. 엄마가 돌아가셨는데 들어오는 연금이라니. 웃기지. 피식피식 웃음이 나면서 다시 살고 싶더라. 나는 한 번도 날 위해 이만한 돈을 써본 적이 없었어. 이 세상에 별 미련도 없지만 이 돈이라도 맘껏 써보고 죽자 했지. 그래서 조금 더 살아보기로 했어. 엄마와 같이 살아가기로. 엄마의 죽음을 조금 유예시킨다고 해서 그게 그렇게 잘못은 아니잖아. 돌을 던질 테면 던지라 그래. 누가 나에게 돌을 던질 건데? --- p.208 ─품위 있는 삶까지는 바라지도 않아. 생존은 가능해야 하지 않겠어? 나라가 못 해주니 우리라도 하는 거지. 살아서, 끝까지 살아서, 세상이 우리를 어떻게 하는지 보자고. 그때까진 법이고 나발이고 없는 거야. 명주는 집으로 돌아가는 준성의 어깨를 툭툭 쳐주었다. 준성 앞에선 자신도 모르게 말이 많아졌다. 어쩌면 서로가 서로에게 죄책감을 상기시키지 않도록 이렇게 부산을 떠는 건지도 몰랐다. 어느새 명주의 머릿속엔 두 구의 시신을 엄마의 고향 땅에 묻기 위한 계획이 세워지고 있었다. 준성에겐 모든 것이 확실하게 준비된 다음 얘기해주기로 마음먹었다. --- p.218 |
“모든 건 그렇게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되고,
돌봄은 남겨진 누군가의 몫이 되지.” 명주는 1년 반 전 치매가 심해진 엄마와 살기 위해 엄마의 임대아파트로 들어왔다. 이혼 후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 발에 화상을 입고 그 후유증으로 일자리를 구할 수도 없어 선택한 길이었다. 100만 원 남짓한 엄마의 연금에 의지해 엄마를 간병하며 살아가던 명주는 갑작스러운 엄마의 죽음에 자신의 삶도 끝내려 하지만 실패한다. 명주는 마음을 바꿔 엄마의 시신을 미라로 만들고 당분간 엄마의 연금으로 살기로 한다. 하지만 시신에서 냄새가 나기 시작하고 엄마의 친구라는 할아버지와 이혼 후 떨어져 살던 딸 은진이 접근해오자, 매장이 시급해진다. 화상 후유증을 진통제로 달래면서 매장할 장소를 고민하던 명주는 피를 묻힌 채 복도로 뛰쳐나온 옆집 청년 준성과 마주친다. 명주의 옆집에 사는 준성은 고등학교 때부터 뇌졸중과 알코올성 치매가 있는 아버지를 돌보며 사는 스물여섯 살의 청년이다. 물리치료사가 되어 병원에 근무하는 것이 꿈이지만, 매일 아버지를 운동시키고 살림에 대리운전까지 하는 그의 나날은 녹록지 않다. 아버지를 회복시키려는 그의 노력에도 몰래 술을 사 마시는 아버지에게 절망하던 차, 집에 불이 나 아버지가 화상을 입게 되고, 준성마저 손님의 외제차에 손상을 입혀 거액의 수리비가 나온다. 준성은 병원비를 감당할 수 없어 아버지를 집으로 모셔 오고 수리비를 재촉하는 차주의 압박전화에 시달리며 점점 피폐해져간다. 그러다 아버지를 목욕시키던 중, 실수로 아버지를 놓치고 마는데……. 손에 피를 묻힌 채 뛰쳐나온 준성을 급히 집 안으로 데리고 들어간 명주. 욕실 바닥에 피를 쏟고 누워 있는 노인을 보고 119를 부르려는 순간, 난 이제 감옥에 가느냐며, 이제껏 내 인생은 뭐였는지 모르겠다고 울부짖는 준성을 본다. 평소 준성을 안쓰럽게 여기던 명주는 준성이 경찰 조사와 재판을 받고 죄책감에 폐인처럼 살아갈 모습을 떠올리며 그를 위한 최선이 무엇일지 고민한다. 긴 간병의 터널 끝에서 두 사람은 마침내 결단을 내린다. 분명한 것은 누구도 그들의 결정에 돌을 던질 수 없으리라는 사실이다. 품위 있는 삶까지는 바라지도 않아. 생존은 가능해야 하지 않겠어? 나라가 못 해주니 우리라도 하는 거지. 살아서, 끝까지 살아서, 세상이 우리를 어떻게 하는지 보자고. 그때까진 법이고 나발이고 없는 거야. (본문에서) “저건 뭐야? 꼭 관처럼 생겼네? 그 안에 혹시 할머니 있는 거 아냐?” 엄마의 부재에 대해 거짓에 거짓을 보태고 임기응변으로 위기를 모면하는 명주의 일상은 스릴러 소설을 보는 듯한 긴장감을 유발한다. 명주는 나무관에 누운 엄마의 상태를 매일 관리하며 주변의 시선을 예의 주시한다. 어머니 잘 계시냐는 이웃의 가벼운 인사에도 의심의 촉수를 세우고, 제각각의 이유로 집을 방문하는 사람들을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철저히 경계한다. 무엇보다 신경 쓰이는 것은 엄마의 친구라며 계속해서 안부를 물어오는 진천할아버지와 돈을 뜯어내기 위해 막무가내로 접근해오는 딸 은진의 존재다. 엄마와 제주 여행을 가기로 했다는 진천할아버지는 엄마의 쾌유를 빌며 계속해서 문자와 선물을 보내고, 눈치 빠른 은진은 작은방의 나무관을 본 후 “그 안에 혹시 할머니 있는 거 아냐?”라며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말을 내뱉는다. 생각지도 않은 복병들의 눈을 피하려면 하루속히 엄마를 흙으로 보내드려야 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명주는 골칫덩이 은진과 티격태격하다 그 방법의 실마리를 찾게 된다. 엄마가 사놓은 땅은 대지 80평에 건물이 17평 정도 되는 작은 시골집이었다. 엄마는 폐가로 나온 집을 늙어서 살 요량으로 사놓은 것 같았다. (…) 명주는 이제야말로 작은 동아줄이라도 잡은 기분이 들었다. (본문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희망을 품지도 않았지만, 살아 있는 한은 살아야 할 이유가 있었다.”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은 가족을 간병하는 일의 정신적, 육체적 고통과 경제적 어려움, 그로 인해 일상이 무너져가는 모습을 무서우리만치 생생하게 묘사한다.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된 엄마의 치매에 명주는 처음엔 “밖에서 겪는 모멸감에 비하면 내 엄마를 간병하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기지만, 그것이 착각이었음을 깨닫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결국 하루하루는 지옥이 되고 인간의 존엄이란 바닥으로 떨어진다. 준성의 처지도 마찬가지다. 현실은 벗어나려 할수록 발이 빠지는 진창이고, 미래는 꿈꿀 여지가 없다. “개인의 차원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불운과 절망”으로 시작된 소설은 두 주인공을 극한 상황으로 내몰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잔혹한 현실은 역설적이게도 인간적인 연대와 온기를 발견해가는 과정으로 전환된다.”(은희경) 임대아파트 벽 하나를 사이에 둔 이웃인 명주와 준성은 서서히 서로의 처지에 공감하며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된다. 명주가 준성에게 연민을 느끼고, 준성이 명주에게 동조하면서 둘은 서로를 의지해 앞으로 나아간다. 공포와 죄책감을 떨쳐내고 큰일을 함께 치른 두 사람은 어느덧 새로 형성된 가족처럼 보인다. 그리하여 두 사람을 태운 트럭이 두 구의 미라를 싣고 눈이 펑펑 쏟아지는 고속도로를 헤쳐 나가는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이제 그들이 혹한의 겨울을 지나 온기 가득한 계절로 진입하고 있음을 아름답게 보여준다. 가슴속에서는 오라고, 어떤 운명도 상대해줄 테니 오라고 나지막이 속삭이고 있었다. 준성은 지금 바닥으로 떨어진 제 인생을 가까스로 일으켜 세우는 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가 아버지의 인생을 아버지의 방식대로 살아냈듯이, 준성은 제 나름의 방식으로 싸워가고 있다고. (본문에서) 문미순 작가는 2013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하여 2021년 심훈문학상을 수상했다. 몇 해 전 뇌졸중으로 쓰러진 남편을 간병하며 가족을 돌보는 일의 고통을 알게 되었다는 그는 우리 사회의 주요 이슈로 대두된 돌봄 문제를 소설로 다뤄보기로 결심했다. 가족 돌봄에 지쳐 우발적으로 벌어지는 간병 살인이나 간병으로 인한 파산, 실직이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시대, 이것이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사회 현상이 되어간다면 이는 공동체가 함께 논의하고 해결책을 모색해야 할 문제임을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말하고 있다. |
혈연 가족을 가로질러 새로운 가족의 구성을 모색하는 문미순의 장편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은 어쩌면 새롭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작가의 대담하고도 치밀한 이야기 능력은 불운의 잇단 습격 속에 악전고투하는 이혼녀 명주가 연금 때문에 어머니의 죽음을 숨기는 반(反)도덕을 독자로 하여금 승인하게 만들거니와, 기구한 이웃 청년 준성마저 아버지의 죽음을 은폐하도록 유인하니, 이 소설은 어느덧 도덕의 피안이다. 그럼에도 소설은 밝다. 명주가 모든 시간과 화해하며, 준성과 함께 서울의 임대아파트에서 충북 증평(曾坪) 시골집으로 이사 가는 결말은 아름답다. 국가라는 장치가 퇴색하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民 스스로 새로운 공동체를 구성는 희망의 정수박이가 빛나는 이 소설은 가장 비천한 현실 속에서 가장 고귀한 인간적 진실을 길어 올리는 소설의 본령에 문득 다가서던 것이다. - 최원식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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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개인의 차원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불운과 절망, 고통으로 시작된다. 그것은 겹을 이루면서 두 주인공을 극한으로 내모는데, 그 과정에서 발생되는 윤리적 딜레마가 독자를 혼돈에 빠뜨린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잔혹한 현실은 역설적이게도 인간적인 연대와 온기를 발견해가는 과정으로 전환된다. 이야기를 추동하는 힘과 작가의 신념 혹은 배짱이 인상적이다. - 은희경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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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은 이야기가 불가능한 곳에서 이야기의 길을 내고, 삶의 가능성이 소진된 곳에서 한 줌 빛을 찾아내는 소설이다. 길 없는 길을 포복하듯 나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소설의 끝에 이르면 정교하게 설계된 희망의 서사 앞에 흠뻑 마음을 적시게 된다. 가혹한 이야기를 감싸고 있는 이상한 명랑과 온기는 설명하기 힘든 희망의 기술이 이 작가에게 있다는 믿음을 갖게 한다. 끈질긴 관찰과 긴 사유를 뒤에 두고 있는 정직하고 정확한 언어들의 박진감도 희망의 기술을 돕는다. - 정홍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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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지상의 사건란에 엽기적인 죄목과 이니셜로만 남겨졌을 인물들을 소환한 작가는 그들의 일상을 담담하게 뒤따라간다. 임대아파트에서 벽을 맞대고 이웃으로 살아가는 명주와 준성, 그들은 조금씩 조금씩 궁지로 내몰리고, 마침내 잔혹한 현실이 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우리는 그들의 선택에 수긍할 수 있을까. 스스로 자신의 생존을 챙길 수밖에 없는 야만의 시대에 윤리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소설 속 인물들과 다를 것 없이 야만의 계절을 보내고 있는 지금의 우리에게, 딱 필요한 질문이다. - 하성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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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은 일본 마이니치신문 취재반이 쓴 『간병살인』을 읽었을 때보다 더욱 충격적이었다. 간병과 돌봄의 무거움을 홀로 감당하고 있는 인물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내 안의 무엇인가가 무너져 내렸다. 이런 비극은 그냥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가족으로 인해 받는 고통은 과연 무엇으로 극복할 수 있을까. 피할 수 없는 미래를 담담하게 보여주는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은 최근에 읽은 어떤 소설보다 감동적이었다. - 강영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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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하는 작품을 만났다. 귀한 경험이었다. 작가가 혹독한 수련을 했겠구나, 싶었다. 한순간도, 자신이 하려는 이야기 밖으로 나가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랬다. 손에 쥔 정보를 어디서 풀어놓고, 어떻게 거둬야 하는지 잘 안다는 점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것은, 어둡고 중량감 있는 이야기를 장악하는 작가의 악력이었다. 빠르고 힘 있게 이야기를 몰아치다가 툭 던지는 무심한 유머로 숨 쉴 틈을 마련해주기도 한다. 이야기의 끝엔 감동과 여운, 그리고 묵직한 질문이 기다린다. 신선하면서도 노련하다는 점에서, 그 밖에 여러 면에서, 군계일학이었다. 『우리가 겨울을 지나온 방식』을 읽을 수 있었던 건 행운이었다. 당선작으로 결정되었을 땐, 마치 내가 쓴 소설인 양, 어리둥절한 자부심마저 들었다. - 정유정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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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문장을 읽는 순간부터 마지막 문장을 읽는 순간까지 이 책에 대한 내 자유의지는 완전히 박탈당했다. 극적인 사건에 반하는 절제된 감정들, 세공된 표현에 더해진 빈틈없는 설계, 그에 따른 긴장감과 몰입감 때문만은 아니었다. 간병노동의 사각지대에 고립된 주인공이 불법의 위험과 패륜에의 비난을 무릅쓰고 감행하는 결단과 실행이 마치, 자신이 따라야 할 것은 국법이 아니라 마음의 법이라며 왕명을 거슬러 오빠의 장례를 치러주었던 안티고네의 상황만큼이나 절박하고 철학적이었기 때문이다. 각자도생, 각자도사. 각자 열심히 산 대가가 불행의 거미줄에 포박당한 채 범법자가 되거나 패륜아가 되는 일뿐이라면 그것은 그들의 실패일까 공동체의 실패일까. 쉽게 답할 수 없는 문제다. 그러나 진창과 폐허에서도 설득력 있는 희망을 만들어 낸 이 소설이 인간 존엄과 사회 제도에 대해 중요한 질문을 던지는 데 성공했다는 것만큼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 박혜진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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