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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화가 카라바조
양장
고종희
한길사 2023.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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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top100 3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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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카라바조에 빠진 한 연구자의 결실 | 책을 펴내며

Ⅰ 화가를 꿈꾸다

1 고향과 가족
2 도제 시기

Ⅱ 로마인을 사로잡다

1 청년 카라바조의 로마 입성
2 인물화, 정물화, 풍속화
3 성화

Ⅲ 로마의 스타가 되다

1 공공미술
2 그림을 훔치다
3 테네브리즘의 기원을 찾아서
4 교황 바오로 5세와 불행의 시작
5 가난한 사람들을 그리다
6 가톨릭개혁 미술과 바로크 양식의 탄생

Ⅳ 하늘의 별이 되다

1 살인과 도주
2 나폴리
3 섬나라 몰타
4 시칠리아
5 다시 나폴리 그리고 사망

카라바조에 대한 오해와 진실 | 책을 마치며
카라바조의 이동 경로
도판 목록
참고문헌
카라바조 연표

저자 소개1

1983년 이탈리아 국립피사대학교 미술사학과에서 서양미술사를 전공했으며 1993년 동 대학 문과대학에서 르네상스 판화를 주제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한길사에서 펴낸 『명화로 읽는 성서』 『르네상스의 초상화 또는 인간의 빛과 그늘』 『미술사학자 고종희와 함께 이탈리아 오래된 도시로 미술여행을 떠나다』 『명화로 읽는 성인전』 『모든 것은 사랑이었다: 조각가 전뢰진의 삶과 예술』을 비롯하여 『고종희의 일러스트레이션 미술탐사』 『미켈란젤로를 찾아 떠나는 여행』 『천재들의 도시 피렌체』가 있다. 공저로는 『인생교과서 미켈란젤로』 『서양미술사전』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줄
1983년 이탈리아 국립피사대학교 미술사학과에서 서양미술사를 전공했으며 1993년 동 대학 문과대학에서 르네상스 판화를 주제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한길사에서 펴낸 『명화로 읽는 성서』 『르네상스의 초상화 또는 인간의 빛과 그늘』 『미술사학자 고종희와 함께 이탈리아 오래된 도시로 미술여행을 떠나다』 『명화로 읽는 성인전』 『모든 것은 사랑이었다: 조각가 전뢰진의 삶과 예술』을 비롯하여 『고종희의 일러스트레이션 미술탐사』 『미켈란젤로를 찾아 떠나는 여행』 『천재들의 도시 피렌체』가 있다.
공저로는 『인생교과서 미켈란젤로』 『서양미술사전』 등이 있다. 옮긴 책으로는 줄리오 페라리의 『형태와 색채의 양식』(전 4권), 스테파노 추피의 『깊게 보는 세계 명화』가 있으며, 한길사에서 펴낸 조르조 바사리의 『르네상스 미술가 평전』(전 6권)에 해설을 썼으며 르네상스 미술 관련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2015년 밀라노세계엑스포를 기념해 밀라노국립미술대학의 마리아 만치니(Maria Mancini) 교수와 ‘THE WOLF AND THE TIGER’를 밀라노 주립미술관에서 개최한 것을 비롯해 다수의 전시를 기획했다.
현재 한양여자대학교 명예교수이며, 한국천주교주교회의 문화예술위원회 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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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08월 08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420쪽 | 2134g | 240*280*35mm
ISBN13
9788935678365

책 속으로

당시 로마는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관광객들로 북적였기 때문에 기념품과 그림 등을 판매하는 상점들이 성업 중이었는데 로렌초의 공방은 이들 상점에서 판매하던 복제 그림을 제작하여 납품한 것으로 보인다. 카라바조는 이곳에서 초상화 복제 일을 했는데 복제한 초상화는 ‘위대한 인물들’이라 불리던 고대부터 르네상스에 이르는 철학자, 황제, 시인 등의 초상화로서 원작은 티치아노를 비롯한 르네상스 거장들의 작품이었다.
--- p.36

지혜로운 사람에게 헛된 경험이란 없는 듯하다. 카라바조의 천재성은 기존의 작품을 다른 시각으로 접근하여 완전히 다른 장르로 탄생시킨 데에 있었다. 르네상스 초상화가 인물의 재현에 포커스를 맞췄다면 카라바조의 인물화는 주인공을 통해 이야기를 만들어냄으로써 지금까지 흔히 볼 수 없었던 풍속화라는 새로운 유형의 그림으로 다시 태어났다.
--- p.43

갈릴레이는 1633년 지동설을 철회해야 했고, 1641년 사망할 때까지 종교재판소의 감시하에 있었다. 그러니까 카라바조의 자연주의는 바로 이런 우주와 자연에 대한 과학적 탐구가 활발했던 아주 짧은 기간 동안에 꽃피웠던 빛나는 미술 양식이었다.
--- p.51

17세기 바로크 시대에는 ‘콘체르토’라는 제목의 그림이 유행했다. 테이블에 사람들이 둘러앉아서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며 유쾌하게 놀고 있는 그림이다. 이들 그림을 그린 화가들은 대부분 카라바조의 추종자들로 ‘카라바지스티’라고 불린다. 동시대 의상을 입고 있는 남녀노소의 생생한 인물 묘사와 강렬한 명암법 등이 특징이다. 한 작가의 이름을 딴 유파가 생긴 것은 처음 일어난 현상으로 카라바조가 미술계에 미친 영향을 짐작케 한다.
--- p.66

카라바조의 정물화가 당대인들은 물론 오늘날까지 관객의 눈을 사로잡는 이유는 정교한 사실 묘사 외에도 정물화를 장식용 그림으로 여긴 것이 아니라 정물화에 인간의 생로병사와 철학적·신학적 의미를 입혔기 때문이다.
--- p.92

카라바조가 초기 작품에서부터 시도한 투명 화병과 거기에 비친 사물의 모습은 검은 거울과 방패를 거쳐 마침내 호수의 물에 이르렀다. 회화 기법의 측면에서 볼 때 투명한 유리병과 그 안에 담긴 물과 다시 거기에 비친 물체를 재현하는 작업은 숙련된 기술을 요하지만 카라바조에게는 자신의 회화적 능력을 마음껏 자랑할 기회였다. 이 작품을 그린 연대는 1600년경이니 카라바조가 로마에 온 지도 어언 10년이 되었다. 이제 그에게는 보다 큰 캔버스가 필요한 시점이다. 바로 누구나 볼 수 있는 공공장소의 벽이다.
--- p.111

그림 속 빛은 실제 현장에서 이 그림을 볼 때 비로소 그 의미를 알 수 있다. 현장에서 보면 이 그림이 걸려 있는 교회의 창에서 실제로 빛이 들어오는데 그 방향과 각도가 그림 속 빛과 거의 일치한다. 그림의 빛을 현장의 빛과 일치시킴으로써 이 장면이 실제로 눈앞에서 벌어지는 것처럼 보이게 한 것이다.
--- p.132

카라바조를 비롯한 바로크의 거장 루벤스와 렘브란트는 단순히 형태를 모방하는 데 급급했던 것이 아니라 회화를 풀어나가는 근본 개념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자신들의 작품에 적용해나갔다. 미켈란젤로의 벽화에서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관객을 향하고 있는 베드로의 시선을 카라바조는 놓치지 않았다. 위대한 미켈란젤로를 따라 하되 자신만의 방식으로 교묘하게 바꾸는 것. 이것이 바로 카라바조식 그림 훔치기의 노하우다.
--- p.190

이 작품을 거부한 이들이 내세운 이유는 형상의 ‘부적절성’이었다. 그들은 더 이상 개혁을 추진하지 않았기에 개혁정신을 대변한 카라바조의 작품에 동감하지 않았으며 가난하고, 주름지고, 때에 전 하층민이 등장하는 성화를 원치 않았다.
--- p.225

카라바조의 극사실적 표현과 테네브리즘으로 알려진 강렬한 명암 대비법에 의한 회화는 바로크 양식을 받치는 또 하나의 기둥으로서 이후 리베라, 라투르, 벨라스케스를 비롯한 유럽의 바로크 화가들로 이어졌다.
--- p.273

카라바조에게도 운명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바로 살인 사건이다. 이후 그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교황, 추기경, 귀족들의 칭찬과 후원을 받던 로마 최고의 스타작가 카라바조는 하루아침에 도망자 신세가 되어 생애 마지막 4년 동안 이탈리아 남부를 전전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카라바조의 비극적인 운명은 이 살인 사건에서 시작되었다.
--- p.277

목이 잘린 골리앗은 다름 아닌 카라바조의 자화상이다. 다윗이 자른 골리앗의 머리가 화가의 자화상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다. 극한 상황이 아니고서는 자신의 모습을 목이 잘린 모습으로 그릴 수는 없을 것이다. 골리앗의 머리를 쥐고 있는 다윗의 찡그린 표정에서 슬픔과 연민이 느껴진다. 사실은 목을 자른 다윗도 화가의 자화상이란 설이 있다. 그렇다면 자신이 자른 목을 자신이 보고 있다는 뜻이다. 모든 비극의 시작이며 되돌릴 수 없는 운명이 되어버린 로마에서의 살인 사건을 후회하는 모습을 그린 것일까.
--- p.374

7월 31일 수요일, 로마의 공고. 유명 화가 미켈란젤로 다 카라바조가 공고에 따라 교황성하의 사면을 받기 위해 나폴리에서 로마로 가던 중 에르콜레 해변에서 사망하였음.

--- p.385

출판사 리뷰

카라바조의 특별한 생애와
바로크 회화를 탄생시킨 새로운 그림 양식

“그림은 장식이 아닙니다. 그림은 진실입니다!”

★ 바로크 양식의 창시자


미켈란젤로 이후 이렇다 할 스타 화가가 없었던 16세기 말~17세기 초에 나타난 카라바조는 로마 귀족과 시민들을 열광케 했다. 그가 당시 로마에서 주목받았던 이유는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스타일의 그림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당시 유행하던 플랑드르의 과일 그림은 정확한 재현과 먹음직스러움을 중요시했지만 카라바조는 시들고 벌레 먹고 병든 과일 그림을 그렸다. 그는 정물화를 장식용으로 여긴 게 아니라 정물화에 인간의 생로병사와 철학적·신학적 의미를 입혔던 것이다.

가식과 권위, 위선과 장식이 없는 카라바조의 그림은 진짜보다 더 진짜처럼 보였다. 그의 그림은 신분에 상관없이 보는 이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는 유쾌함이 있었다.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잔혹하게 목이 잘린 그림들도 당대인들은 환호했다. 미술사에서는 이를 카라바조의 ‘자연주의’(Naturalism)라고 명명했다. 카라바조는 안니발레 카라치와 함께 17세기 바로크 양식을 탄생시켰다. 카라바조의 극사실적인 표현과 테네브리즘(Tenebrism)으로 알려진 강렬한 명암 대비법으로 그려진 회화는 바로크 양식을 받치는 하나의 기둥이다.

바로크 양식을 대표하는 루벤스, 렘브란트, 벨라스케스를 비롯한 거장의 작품들은 카라바조 없이 존재할 수 없다. 카라바조의 자연주의를 각자의 독자적인 스타일로 발전시킨 이들 바로크의 거장들이야말로 카라바조의 자연주의를 전 유럽으로 확산시킨 카라바조의 진정한 후배들이다.

★ 꾸밈도 장식도 없이
평범한 사람의 진실만을 그리다


『불멸의 화가 카라바조』는 카라바조가 살았던 16~17세기 이탈리아의 정치적·종교적 배경 속에서 탄생한 작품 이야기를 세밀하게 엮어서 들려준다. 맨발의 가난한 서민들이 등장하고, 찢어진 옷을 입고 있는 성인을 표현한 카라바조의 작품은 루터의 종교개혁 이후 가톨릭 교회가 직면한 개혁 정신을 시각화한 것이다. 카라바조의 그림은 당시의 시대정신과 맞아떨어졌다.

하지만 그로부터 불과 몇 십 년 후인 17세기 후반 카라바조에 대한 관심은 사라졌다. 16세기 초·중반부터 1세기 이상 지속된 가톨릭교회의 개혁 정신은 사회가 다시 안정을 되찾게 되면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이전의 먹고 마시고 즐겼던 시절로 되돌아간 것이다. 미술양식도 카라바조의 있는 그대로의 자연주의가 아니라 미화하고 장식하는 고전주의로 복귀했다. 고종희 교수는 고위 성직자들의 식탁 위에 있는 메뉴도 달라졌다는 흥미로운 사실도 짚어낸다.

현실의 화려함을 즐기는 교황 바오로 5세가 선출되면서 카라바조는 설치한 지 한 달도 안 된 「뱀의 마돈나」를 철거당하는 등 큰 영향을 받는다. 더 이상 개혁을 추진하지 않았기에 개혁 정신을 대변한 카라바조의 작품에 동감하지 않았으며 주름지고 때에 전 하층민이 등장하는 성화를 원치 않았다. 카라바조의 생애를 살펴보면 개혁의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위대한 작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불멸의 화가 카라바조』에서 저자 고종희는 위대한 화가는 재능만으로 탄생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카라바조는 선배나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을 참고하여 자기 작품으로 새롭게 탄생시켰다. 저자는 3부의 「그림을 훔치다」에서 카라바조의 독창적인 모방법을 설명한다. 같은 주제라도 3D 프로그램을 다루듯 원작을 회전시키거나, 복잡한 풍경을 없애고 인물에게 집중시키는 것이다. 특히 미켈란젤로가 그린 「시스티나 경당 천장화」 속 남자가 카라바조의 「세례자 요한」 「승리자 큐피드」가 되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재구성해서 보여준다.

또한 위대한 예술가는 누구를 후원자로 만나는지가 중요하다. 카라바조에겐 일찍부터 로마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귀족과 고위 성직자들이 있었다. 콜론나 가문, 보로메오 가문, 만토바의 곤자가 가문과 메디치 가문도 카라바조의 후원자였다. 이들 가문에서는 카라바조의 그림을 구입해 경제적으로 안정을 찾을 수 있게 함은 물론이고, 카라바조가 살인을 저지른 후에 안전하게 도피할 수 있는 거처를 마련해주었고 사면받을 수 있게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다.

고종희 교수는 『불멸의 화가 카라바조』에서 카라바조를 후원한 가문들과의 관계를 알기 쉽게 정리했다. 카라바조는 어린 시절을 보낸 카라바조 마을의 영주 빈첸초 주스티아니를 통해 밀라노 대주교 페데리코 보로메오를 알게 된다. 그를 통해 델 몬테 추기경과 메디치 가문 사람들을 비롯한 최고 권력자, 최고위층 성직자들과 인맥을 확대해간다.

카라바조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물심양면으로 불운한 화가를 돕고 보호한 가문은 콜론나였다. 그래서 저자는 『불멸의 화가 카라바조』에서 콜론나 가문의 중요한 인물들을 소개한다. 이탈리아 역사상 가장 기억될 만한 전쟁인 레판토 해전을 승리로 이끈 마르칸토니오 2세 콜론나와 미켈란젤로의 소울메이트로 알려진 비토리아 콜론나도 이 가문 사람이다. 이들 가문의 도움으로 도피 생활 중에도 카라바조는 주옥같은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이 책은 바로 카라바조뿐 아니라 그의 후원자들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 카라바조에 대한 오해와 진실

『불멸의 화가 카라바조』에서는 그동안 알려진 카라바조에 대한 중대한 오해를 풀어낸다. 카라바조의 이름은 ‘카라바조 출신의 미켈란젤로 메리시’(Michelangelo Merisi da Caravaggio)에서 비롯됐다.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그의 고향은 카라바조로 알려져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2007년 한 미술 애호가에 의해 카라바조가 태어난 곳이 밀라노라는 사실이 밝혀져 미술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한국에서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이 책에서 자세히 밝힌다.

카라바조의 사망 역시 알려진 사실과 달랐다. 카라바조가 감옥에서 출소 후 로마로 가는 배를 타려고 선착장을 찾다가 에르콜레 해변가에서 고열로 사망했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져왔다. 하지만 실제로는 병원으로 이송되어 사망했고, 사인은 말라리아로 인한 고열 또는 살모넬라균에 감염된 식중독으로 현대 의사들은 진단한다. 고종희 교수는 최근 10여 년 이내에 밝혀진 새로운 정보와 연구 성과들을 『불멸의 화가 카라바조』에서 소개한다.

이 같은 결실은 고종희 교수가 미술사학자는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현장에서 작품을 감상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이탈리아 북부에서 남부까지, 출생에서 사망까지 카라바조가 거쳐간 멀고먼 길을 오랜 시간에 걸쳐 찾아다닌 발품 덕분이다. 그의 고향으로 알려졌던 카라바조, 도제 생활을 했던 밀라노, 전성기를 보낸 로마와 살인 후 피신처였던 팔리아노, 나폴리, 몰타, 시칠리아까지 모두 직접 방문했다. 카라바조가 테러를 당한 체릴리오 식당 앞 골목도 직접 확인하고, 지역 사람들을 취재하면서 자료를 모았다. 이 책은 40년 동안 카라바조에게 매료되어 미술사 공부를 한 고종희 교수가 발로 뛰고 가슴으로 쓴 기념비적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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