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답사를 직업으로 삼기로 한 것은 2017년 여름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전국을 구석구석 다니고 있습니다. 답사를 시작했을 당시에는 서울과 경기도 주변의 몇몇 도시 정도만 들여다볼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도시를 걸어다니다 보니, 도시 속에 남아 있는 농산어촌 시절의 마을 구조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1960년대부터 택지 개발된 서울 강남구 양재동·도곡동에는 전근대의 말죽거리 마을 구조가 잘 남아 있습니다. 수도권 전철 2호선 강남역 동쪽의 언덕바지를 걷다 보면, 웃방아다리 마을과 아랫방아다리 마을이라는 옛 농촌 마을의 경관이 아직도 선명하게 그려집니다.
---「첫 문장」중에서
저는 한국의 도시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주공 아파트 단지로 세 곳을 꼽습니다. 철거가 끝난 서울 서초구의 반포 주공 아파트와 충청북도 청주시 봉명 주공 1단지 아파트, 그리고 이 부산 연제구 연산동의 망미 주공 아파트입니다. 특히 봉명 주공 1단지와 망미 주공은 각각 실험적인 미학을 추구한 아파트 단지였지요. 봉명 주공 1단지가 철거된 마당에 망미 주공만이라도 오래오래 감상하고 싶었지만 2022년 12월에 답사를 갔더니 역시나 아파트 단지의 재건축이 추진되고 있더군요. (부산 연제구, 망미 주공 아파트, 2022년 12월)
--- p.59
서울 중구의 회현 시민 아파트. 1960~1970년대에 많이 지어진 시민 시범 아파트 가운데 유일하게 남아 있는 시민 아파트죠. 〈세탁물을 널지 말라〉는 경고문 옆에 세탁물이 널려 있는 게 참 한국적인 모습이었습니다. 꼭 금연 경고문
옆에서 담배 피우는 사람들도 있죠. (서울 중구, 회현 시민 아파트, 2012년 10월)
--- p.99
서울 용산구 용문동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일본인들이 집중적으로 거주하던 지역입니다. 이곳을 답사하면서 인상적으로 다가온 일식 가옥을 2014년 1월에 촬영했고, 6년 후인 2020년 5월에 다시 촬영했습니다. 한 채의 건물에 주인이 두 명이었던 것 같아서, 그 6년 사이에 건물의 외관이 절반씩 다른 모습으로 바뀌었습니다. 식민지 시기의 건물에서는 이런 현상을 흔히 봅니다. (서울 용산구, 일식 가옥, 2014년 1월」)
--- p.146
전라북도 임실군 관촌면. 식민지 시기에 보관했다가 여름이 오면 얼음을 꺼내 팔았던 얼음 창고. 이제는 전국에 딱 두 개 남아 있다고 합니다. 광복 후에는 민간에 불하되어 양어장으로 쓰였습니다. 양어장을 경영하던 분의 아드님을 우연히 만나서 귀중한 증언을 들었습니다. (전북 임실, 덕천리 얼음 창고, 2022년 4월)
--- p.171
도시가 쉼 없이 그 모습을 바꾸고, 농산어촌이 도시로 바뀌고, 예전에 번성했던 시가지가 다시 적막해지는 과정을 관찰함으로써 인간 사회를 이해하는 것이 답사의 본질임을 깨닫습니다.
--- p.195
재건축·재개발·택지 개발 사업이 본격화되어 주민들이 퇴거하고, 펜스가 쳐지고, 길과 건물이 철거되기 시작하는 시기에 답사를 해야 확인할 수 있는 것도 많습니다. 재개발 사업을 둘러싼 시민들 간의 갈등, 어떤 건물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뒷집의 온전한 모습, 평소에는 주민들이 살고 있어서 자세히 살피지 못한 건물과 마을 풍경, 그리고 사람들이 떠나면서 버려진 오브제들.
--- p.198
지금 내가 보고 기록한 이 경관도 가까운 미래에는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고. 따라서 이제까지 내가 보지 못한 경관을 아쉬워하기보다는, 앞으로 수십 년간 이어질 나의 답사를 통해 전국 구석구석을 기록하면, 그 작업은 생각보다 멀지 않은 미래에 의미를 갖게 될 것이라고.
--- p.199
인천 신흥동은 식민지 시기에 일본인 부자들이 살던 부촌이었습니다. 얼마 전부터 이곳을 재건축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는데, 인천시장 관사가 문화재로 지정되면서 그러한 움직임에 일부 제동이 걸린 상태입니다. 하지만 재건축 사업과는 무관하게 이곳의 일식 가옥들은 하나둘씩 철거되고 있습니다. 집으로 들어서는 계단이 인상적이던 사진 속의 건물도 어느새 헐려 있더군요. (인천 중구, 일식 가옥의 변화, 2019년 1월)
--- p.206
낙동강과 바다가 만나는 어귀에는 섬과 등(嶝)이 많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등〉이란 모래가 쌓여 언덕을 이룬 것으로 대마등, 장자등 같은 곳이 유명하지요. 사취등은 섬과 등이 이리저리 묶어 만들어진 북쪽 대저동과 남쪽 명지동의 중간쯤에 위치하는 등으로서, 이곳에는 사취등 마을이라는 이름의 자연 마을이 있었습니다. 이 사취등 마을 사람들은 대략 삼백 년 동안 이곳에서 살아온 것 같지만, 최근 명지동에서 명지 신도시가 개발되면서 이주했습니다. 사취등 마을은 에코 델타 시티라는 이름의 신도시에 편입되어 사라졌고, 사진 속의 마을 비석과 사취등이라는 이름의 버스 정류장만이 마을의 기억을 남기고 있습니다. (부산 강서구, 사취등 마을, 2023년 7월)
--- p.2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