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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3년 11월 03일
쪽수, 무게, 크기 392쪽 | 496g | 140*210*30mm
ISBN13 9788954696241
ISBN10 8954696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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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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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속력을 늦춘 배가 뉴욕항에 들어서자, 열일곱 살의 카를 로스만은 진작부터 지켜보던 자유의 여신상이 갑자기 더 강렬해진 햇빛을 받은 듯 그쪽으로 시선을 주었다. 하녀의 유혹에 넘어가 임신을 시킨 일로 그의 가난한 부모가 그를 미국으로 보낸 길이었다. 칼을 든 여신의 팔은 마치 새로 돋아난 것처럼 우뚝 솟아 있었고 여신의 형상 주위로는 싱그러운 바람이 불었다.
--- p.9

“그건 가만히 앉아서 당하고만 있어서는 안 될 일이죠.” 카를이 흥분해서 말했다. 그는 자신이 미지의 대륙 연안에 정박한 어느 배의 꺼림칙한 밑바닥에 있다는 느낌도 거의 잊고 있었다. 그만큼 여기 화부의 침대 속은 고향처럼 아늑하게 느껴졌다.
--- p.15

하지만 이 모든 광경의 뒤편에는 뉴욕이 있었고 마천루의 수십만 개 창문으로 카를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렇다, 이 방에 들어오면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었다.
--- p.20

이렇게 적敵은 예복 차림에 당당하고 활기찬 모습으로 나타났다. 장부 한 권을 옆구리에 끼고 있었는데, 보나마나 화부의 급여 지급 목록과 작업 보고서였을 것이다. 그는 넉살 좋게도 한 사람 한 사람의 기분을 무엇보다 먼저 확인하고 싶다는 뜻을 내비치면서 모두의 눈을 차례차례 바라보았다. 일곱 사람은 과연 모두 그의 편이었다.
--- p.30

“스스로를 지켜야 해요. ‘예’와 ‘아니요’를 분명히 말해야 하고요. 안 그러면 사람들이 진실을 전혀 알 수 없어요. 내 말대로 하겠다고 약속해야 돼요. 여러 가지 이유로 내가 더이상 당신을 전혀 도울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래요.” 그렇게 말하더니 카를은 눈물을 흘리며 화부의 손에 입을 맞추었다. 그러고는 갈라 터지고 시들시들한 그의 손을 자신의 뺨에 갖다대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포기해야 하는 어떤 보물을 대하는 듯했다.
--- p.45

외삼촌은 갓 들어온 이민자들을 잘 알고 있었는데, 그중에는 가령 이 훌륭한 원칙에 따라 행동하는 대신 며칠씩 발코니에 우두커니 서서 길 잃은 양들처럼 거리를 내려다보기만 하던 자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반드시 혼란에 빠지기 마련이지! 일에 쫓기며 사는 뉴욕의 분주한 하루를 하는 일 없이 고독을 씹으며 넋이 나가 바라보기만 하는 생활은 유람객에게나 허락되고 또 어쩌면 무조건은 아니어도 한번쯤 권해볼 만한 것일 수 있겠지만, 이곳에 머물러 살아갈 사람에게는 파멸의 길이라는 것이다.
--- p.51

외삼촌과 카를이 문밖으로 나오는 순간 수습사원 하나가 살그머니 들어가 그동안 작성된 종이를 가지고 나왔다. 가운데의 넓은 공간에서는 일에 쫓긴 사람들이 끊임없이 왔다갔다했다. 아무도 인사를 나누지 않았다. 인사는 금지였다. 누구나 앞서가는 사람의 발걸음을 뒤따라 바닥을 보면서 되도록 빨리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거나, 손에 들고 뛰듯이 걷는 바람에 펄럭이는 서류에서 아마 단어나 숫자 몇 개만 눈으로 파악하는 중이었다.
--- p.59

텅 빈, 평탄한 그 길이 그를 맞이할 준비를 하고서 강렬한 소리로 그를 부르고 있었다. 폴런더 씨의 친절한 모습과 그린 씨의 혐오스러운 모습이 흐릿해졌고, 그는 담배 연기로 자욱한 이 방에서 벗어나 이 집을 떠나도 된다는 허락을 받는 것 말고는 바라는 것이 없었다. 폴런더 씨와는 이제 끝이라는 느낌이었고 그린 씨에 대해서는 전의가 느껴지긴 했지만, 사방에서 밀려든 막연한 두려움이 그를 가득 채워 그 타격으로 눈앞이 흐릿해졌다.
--- p.92

카를은 그들의 취약한 현재 상태를 이용하고자 했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내 이름은 카를 로스만이고 독일인입니다. 이제 같은 방을 쓰게 되었으니 당신들의 이름과 국적도 말해주세요. 또 이 자리에서 분명히 말씀드리면, 늦게 온데다 잠잘 생각은 전혀 없으니 침대를 하나 내놓으라는 요구 같은 건 하지 않을 겁니다. 게다가 내가 좋은 옷을 입었다고 언짢아할 필요는 없습니다. 완전히 빈털터리에 장래성도 없는 놈이니까요.”
--- p.114

새벽 네시가 지나자, 카를이 절실하게도 바라던 평안이 조금 찾아왔다. 그는 승강기 옆 난간에 무거운 몸을 기대고서 천천히 사과를 먹었다. 첫입을 베어 물자 진한 향이 물씬 풍겼다. 그러면서 식품저장실의 커다란 창문들로 둘러싸인 채광정 안을 내려다보았다. 창문들 뒤로 주렁주렁 매달린 바나나 송이들이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 p.175

“그만둬.” 브루넬다가 말하면서 들라마르슈의 손을 막았다. “그는 우리 곁에 머물 거야.” 그러고서 그녀는 카를을 더욱더 세게 난간으로 밀어붙였다. 그가 벗어나기 위해서는 그녀와 드잡이라도 해야 할 판이었다. 설사 드잡이에서 이긴다 해도 그것으로 무엇을 얻을 수 있겠는가. 왼쪽에는 들라마르슈가 있었고, 오른쪽에는 이제 로빈슨이 있었으니, 그는 꼼짝없이 갇힌 셈이었다.
--- p.278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라고 번듯한 사무실에 채용되지 못하리라는 법은 없었다. 그도 언젠가는 그런 곳에서 사무직원이 되어 자기 책상에 앉아 어제 아침 안마당들을 지나면서 보았던 그 사무실 직원처럼 마음 편히 한참 동안 열린 창문 밖을 내다볼 수 있으리라는 것이 아예 가당치도 않은 희망은 아닐 것이다.
--- p.297~298

그러나 카를에게는 무척 유혹적인 내용이 벽보에 있었다. “누구나 환영합니다”라는 구절이었다. 누구나, 그러니까 카를도 해당되었다. 그가 지금까지 했던 일은 모두 잊혔고, 그 때문에 그를 비난하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수치스럽지 않은 일자리, 오히려 공개적으로 모집할 수 있을 정도로 떳떳한 일자리에 그가 지원해도 되는 것이다! 그리고 지원만 하면 그도 채용될 거라는 듯한 약속 역시 공개적이었다.
--- p.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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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평 추천평 보이기/감추기

이 책의 주인공 카를 로스만은 영원히 소속감이라는 바위를 헛되이 굴리는 현대의 시시포스다.
- 알베르 까뮈
카프카에게 모든 사건은 야누스적인 모습을 띠는데, 한편에서는 아주 오래전 일어난 일로 보이고, 다른 한편에서는 아주 최근 일어난 일처럼 현실성을 띠고 있다.
- 발터 벤야민
여기서 카를은 어리석게도 모든 일이 공정하고 품위 있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요구하나, 정확히 그 어떤 요구도 충족되지 않으며 거의 모든 곳에서 그의 존재는 실패하고 있다.
- 지크프리트 크라카우어
카프카의 웃음은 함정이며, 서커스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정치적이다. 카프카는 미래를 점치는 점쟁이다.
- 질 들뢰즈
세계와 작품은 경쟁관계에 있다. 카프카는 이런 싸움, 이런 긴장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 롤랑 바르트
카프카의 이야기들은 문학 가운데 너무도 어둡고 절대적인 파탄에 극단으로 못 박힌 작품들에 속한다. 희망은 금지되는 게 아니라 금지되지 않기에, 희망에 가장 처절하게 고통을 가하는 작품들이다.
- 모리스 블랑쇼
카프카는 권력 문제에 관한 최고의 전문가이자 권력의 온갖 양상을 체험하고 형상화한 작가다.
- 엘리아스 카네티
카프카가 쓴 글 중에 특별한 감동이나 놀라움을 주지 않는 대사는 단 한 줄도 없다.
- 라이너 마리아 릴케
카프카의 작품들은 비논리적이고 답답한 꿈의 우행을 정확히 따라 하면서 삶의 그로테스크한 그림자놀이를 비웃는다. 보다 높은 동기에서 나온 그 애처로운 웃음이 우리에게 남은 최선의 것임을 생각한다면, 카프카의 이 시선에서 나온 작품들이야말로 가장 읽을 가치가 있는 세계문학으로 평가받을 것이다.
- 토마스 만
고뇌에 찬 20세기의 위대한 고전 작가.
-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이 작품에서 가장 아름다운 점은 소설을 관통하는 깊은 멜랑콜리다. ‘삶은 불가해하다’는 누군가의 말이 틀리지 않은, 아주 드문 경우가 여기 있다.
- 쿠르트 투홀츠키
카프카의 예술은 모든 문학을 뛰어넘어 독자의 심장을 강타하는 진실을 드러낸다.
- 발터 무슈크
『실종자』는 (자정에 열두 번 종이 치면 주인공이 벌을 받게 되는) 요정 이야기의 요소를 지닌 모험소설이지만, (오클라하마 야외극장이 상징하는) 실낙원과 복낙원의 신화이기도 하며, 무엇보다 인구가 밀집한 미국이 무인도를 대체한 로빈슨 크루소의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다.
- 마르트 로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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