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다양한 풍경들이 이루는 지형들에 대해 사람들은 나름대로 이름을 붙여 분류를 해두었다. 움푹움푹 파인 구덩이들에는 그리스어로 컵이라는 뜻의 ‘크레이터’라는 이름을 붙였다. 맨눈으로도 보이는 달의 어두운 무늬들은 어째서인지 아주 오래전부터 바다라고 불렀다. 나머지 지형들은 지구와 비슷하다. 산도 있다. 어떤 산은 섬처럼 외따로 떨어져 있는가 하면 장대한 산맥도 있다. 만, 골짜기, 절벽, 계곡… 지구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 달에도 거의 다 있다. 다소 모호한 부분도 있기는 하지만, 사람들은 오랫동안 달을 관측하면서 달 지형을 몇 가지로 분류하여 이름을 붙였다.
--- p.15~16, 「망원경으로 본 달」 중에서
달의 지형에 붙인 이름들은 지구상의 지역이나 신화에서 따온 것들도 있지만, 역사 인물들의 이름을 딴 것이 단연 많다. 이름을 붙이는 데는 나름대로 규칙이 있다. 예를 들어 달에는 원칙적으로 사망한 지 3년 이상 된 과학자, 천문학자, 수학자, 탐험가 등의 이름을 붙인다. 몇몇 우주 비행사들은 우주 개발의 공로를 인정받아 예외적으로 살아 있는 동안 달 크레이터에 자기 이름을 올리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는데, 아폴로 11호의 우주 비행사인 암스트롱과 올드린, 콜린스는 생전에 ‘고요의 바다’에 있는 세 개의 작은 크레이터에 각각 자신의 이름을 올렸다.
탐사선들을 통한 행성 탐사가 진행되면서 수성, 화성 등과 같은 다른 행성의 지형에도 이름이 많이 붙여지게 되었는데, 이 역시 나름대로의 원칙에 따라 이름을 붙인다. 예를 들어 수성의 크레이터에는 바흐, 베토벤, 바이런 같은 예술가들의 이름을 붙이고, 금성에는 미의 여신 비너스(Venus)라는 이름에 걸맞게 여성의 이름을 붙이도록 하고 있다.
한편 화성에는 화성 연구에 공을 세운 과학자와 소설가의 이름을 붙이며, 작은 크레이터에는 특이하게도 지구상에 있는 소도시들의 이름을 붙인다. 수성에는 정철과 윤선도, 금성에는 신사임당과 황진이, 그리고 화성에는 나주와 진주라는 이름을 가진 크레이터가 있다. 아쉽게도 달에는 아직 우리나라 사람의 이름이 오른 바 없다. 참고로, 이 이름들은 단순히 어떤 지형을 구별하기 위한 것으로, 영유권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 p.50~51, 「크레이터에 이름이 붙여지기까지」 중에서
달은 월령별로 보이는 모습이 다르기 때문에 월령별로 관측해야 하지만, 그것이 꼭 초승달부터 순차적으로 찾아가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또 초승달에서 보름까지 보이는 크레이터들은 보름에서 그믐까지 순서대로 다시 볼 수 있으므로 보름 이후 늦게 뜨는 달을 애써 기다릴 필요도 없다. 하늘이 맑고, 달이 떠 있고, 망원경을 들고 나갈 여유가 있다면 언제든 즉시 나가서 관측하면 된다. 다만 월령은 1일부터 순차적으로 시작하지만, 월령 4일 이전의 달은 고도도 낮고 일찍 지기 때문에 자세한 관측이 어렵다. 이 시기의 달은 오히려 보름 전후에 관측하는 편이 낫다.
--- p.59, 「본격적인 관측에 앞서」 중에서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와 함께 서양 철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 중 하나로, 어쩌면 주류 서양철학 그 자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는 천문학자나 수학자는 아니었지만, 그의 우주론은 아주 오랫동안 우주에 대한 인간의 생각을 지배했다.
그가 우주론에 미친 가장 큰 영향은 도형과 입체를 통해서였다. 원운동이 가장 완벽하다는 주장과 정다면체가 5개뿐이라는 사실은 우주의 운동과 형상이 이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결론으로 귀결되었다. 프톨레마이오스가 〈알마게스트〉에서 천문학자의 사명을 우주의 모든 현상이 원운동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설명하는 것이라고 한 것도, 케플러가 정다면체를 겹겹이 쌓아올린 멋지지만 바보 같은 우주 모형에 집착하게 된 것도 모두 플라톤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플라톤이라는 이름은 그리스어로 ‘넓다’ 또는 ‘평평하다’라는 뜻이다. 그의 이름이 붙여진 크레이터는 이름의 뜻에 꼭 들어맞는 모습을 하고 있다. 비의 바다 북쪽 가장자리, 산지가 약간 모여 있는 지역에 위치한 플라톤의 모습은 직경이 100km가 넘는 둥근 분지를 용암이 말끔히 채워 마치 잔잔하고 큰 호수 같아 보인다.
플라톤의 외벽은 대체로 경사가 급하게 보여서 마치 땅이 동그랗게 그대로 가라앉은 것 같다. 표면은 아주 매끄러워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3~4개의 작은 크레이터들이 드문드문 하얗게 보인다. 플라톤의 서쪽 가장자리 쪽은 크게 무너져내린 흔적이 보여서 전체적으로는 반지를 연상케 하기도 한다.
--- p.118~119, 「검고 고요한 호수, 플라톤」 중에서
천왕성 발견 이후 ‘아마추어 천문학자’ 허셜의 승승장구는 말할 필요도 없다. 영국 왕실의 포상과 왕립학회 회원, 왕실 천문학자 임명에 더하여 국제적인 명성도 얻는다. 그가 발견하고 정리한 성운·성단·은하의 목록은 후대의 보충을 더해 NGC목록이라는 이름으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그가 직접 정리한 천체목록 가운데 주요한 천체 400개를 골라 모은 ‘허셜 400’은 현대의 아마추어 관측자들 사이에서도 고수 인증용으로 여전히 통용된다. 계산이 아니라 관측으로 밤하늘에 다가가는 사람, 매일 망원경을 들여다보며 하나하나 밤하늘의 신비를 발견하는 사람-우리가 어릴 때 꿈꾸었던 천문학자는 바로 그런 사람이 아니었나?
위대한 아마추어 관측자 허셜의 이름을 딴 크레이터는 달의 한복판, 프톨레마이오스 크레이터 정북쪽에 떡하니 버티고 있다. 그리 크진 않지만, 다 무너져가는 달 중앙부의 여느 크레이터들에 비해 동그란 모습이 선명하고 중앙산도 뚜렷해서 훨씬 젊고 쌩쌩해 보인다. 북동쪽 외벽은 두 겹으로 보이며, 바닥은 사발같이 둥그스름하지만 매끄럽지 않고 굴곡이 많이 져 보인다.
윌리엄 허셜 외에도 아들 존 허셜과 여동생 캐롤라인 허셜의 이름을 딴 크레이터도 있는데, 성으로 명칭이 붙다 보니 J. Hershel과 C. Hershel로 이름이 붙여져 있다.
--- p.154~155, 「위대한 아마추어 천문학자를 기리며, 허셜」 중에서
티코의 크레이터는 그야말로 장대하다. 직경 85km의 크레이터를 남긴 충돌의 흔적이 생생하다. 선명한 중앙산과 흠 없이 뚜렷한 외벽, 여러 겹으로 층이 진 내면과 평평한 바닥, 그리고 월면 전체를 가로지르는 장장 1,500km에 달하는 레이까지, 그야말로 크레이터의 왕이라 할 만하다. 너무나 장대하고 인상적이어서 긴 설명이 필요 없다. 자그마한 망원경이라도 보름에 달을 보면 바로 “아, 저게 티코구나!” 하게 된다.
티코의 레이는 심지어 지구조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다. 생성된 지 8,500만 년가량 되었다니 티라노사우루스의 먼 조상뻘이 될 만한 공룡들은 달을 거의 쪼개놓을 것 같았던 이 충돌의 현장을 보았을 수도 있겠다.
--- p.193, 「크레이터의 왕, 티코」 중에서
지금까지 소개된 인물들을 달 위에서 모두 만났다면, 아마도 저마다 마음속에 그다음으로 찾아보고 싶은 인물과 크레이터가 생겼을 것이다. 예를 들어 갈릴레이와 뉴턴이 있다면 아인슈타인이나 보어 같은 사람의 크레이터는 없을까? 당연히 있다. 아인슈타인과 보어의 크레이터는 달의 북서쪽 가장자리에 서로 가까이 위치해 있는데, 워낙 가장자리라 찾기가 힘들다.
퀴리 부인도 있다. 남동쪽 가장자리라서 관측이 거의 불가능하지만 120km가 넘는 큰 크레이터에 그녀의 이름이 붙여져 있다. 특히 남편의 성인 퀴리가 아닌 ‘스클로도브스카’라는 원래 성으로 붙여져 있으며, 남편인 피에르 퀴리와 사위인 프레데릭 졸리오 퀴리의 크레이터도 있어 허셜 일가와 마찬가지로 가족이 함께 달에 이름을 올려놓았다.
달의 북극 근처에는 북극탐험가인 로버트 피어리의 크레이터가 있으며, 남극 부근에는 남극점 정복을 놓고 생사를 건 경쟁을 벌였던 아문센과 스콧의 크레이터도 있다. 80년대 유명 가수인 올리비아 뉴튼존의 외할아버지도 달에 이름이 올라 있다. 그녀의 외할아버지는 노벨상을 받은 독일의 물리학자이자 수학자인 막스 보른이다. 막스 보른의 크레이터는 랑그레누스에서 동쪽으로 약간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 p.238~239, 「에필로그-나만의 크레이터를 찾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