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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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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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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3년 12월 07일
쪽수, 무게, 크기 216쪽 | 140*210*13mm
ISBN13 97911570694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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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라면 으레 직업윤리와 신념을 가지고 있을 줄 알았는데, 막상 기자가 되고 보니 기자들은 권력 앞에 공손하고 자본에는 깍듯했다. 그 틈에서 나는 살아 있는 권력과 여러 차례 충돌하면서 기자란 국민에게 어떤 존재여야 하고, 기자가 지켜야 하는 가치는 무엇인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책에 내 이야기를 담담하게 썼다. 나에게 기자 그렇게 하는 것 아니라며 손가락질했던 이들에게 보내는 답장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프롤로그」중에서

지역감정과 혐오는 수십 년이 흘러도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국민 통합은 선거 때마다 등장하지만 허울 좋은 구호로 소비될 뿐이다. 만약 내가 전라도에서 태어났다면 경상도 출신들에게는 내가 보도한 기사가 다르게 읽히기라도 했을까. 그들의 바람대로 내가 홍어였다면 그들은 나에게 뭐라고 했을까. 홍어는 또 무슨 죄인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갈라치기부터 하려고 드니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이래서 타이레놀을 끊을 수 없다.
---「너는 홍어는 아니구나」중에서

선생이 쓴 〈기자풍토 종횡기〉와 〈직업수필〉은 나의 기자 생활 지침서였다. 합동통신 국제부와 조선일보 국제부에만 13년간 있던 선생이 어떻게 이렇게 기자의 생리를 꿰고 있는 건지 놀라웠다. “자네만 오게”라는 다섯 글자로 기자와 권력이 공생관계가 되는 장면과, 선배 기자에게 타락했다고 비판하던 수습기자가 어느 날부터 “골프는 사치가 아니”라며 구습에 동화되는 모습을 통렬하게 비판하는 선생의 글을 읽고 있으면, 마치 과거에서 타임머신을 타고 온 스승에게 호되게 혼나는 느낌이었다.
---「나의 사표(師表) 리영희」중에서

2022년 9월 미국 뉴욕에서 귀국하자 많은 이들이 나에게 ‘바이든 날리면’ 영상을 도대체 어떻게 처음 발견했느냐고 물었다. 문제의 발언은 윤 대통령이 무대에서 내려와 퇴장할 때 나왔기 때문이다. 단순한 궁금증으로 물어온 사람도 있었지만 나를 비난하기 위해 음흉한 의도로 물어온 사람도 있었다. 한술 더 떠 내가 문제의 현장에 있었다거나, ‘바이든 날리면’ 발언을 발견하고 큰 소리로 쾌재를 불렀다거나, 지라시와 캡처 영상을 만들어 뿌렸다거나 하는 전혀 사실이 아닌 얘기를 유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내가 더불어민주당과 내통했다는 허무맹랑한 말도 돌았다. 모두 사실이 아니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허위 사실과 가짜뉴스를 믿고 있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그래서 그날 뉴욕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먼저 설명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어떻게 ‘바이든 날리면’ 발언의 최초 발견자가 된 것일까.
---「최초 발견자와 퍼스트 펭귄」중에서

‘바이든 날리면’ 사태가 터진 지 석 달 만인 2022년 12월, 외교부가 나서서 MBC를 상대로 정정보도 소송을 냈다. 판사가 진실의 종을 울릴 수 있을지 궁금하긴 하지만 솔직히 나는 소송 결과에 별로 관심이 없다. 국민의 귀를 재판한다는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판사가 내리는 판결은 나에 대한 수사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러나 그에 상관없이 나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계속 외치기로 했다. 진실은 영원하고 권력은 유한하기 때문이다. 어쩌다 보니 나는 벌거벗은 임금님을 지목한 소년에서 갈릴레이로 진화하고 있었다.
---「나도 날리면으로 듣기로 했다」중에서

그날도 다수의 기자들이 캐주얼한 차림이었고 나를 포함한 방송기자들만 양복을 입고 있었다. 대통령께서 곧 도착하신다는 공지를 들은 뒤 평소처럼 슬리퍼를 신고 복도에 나온 기자들도 많았다. 그래서 슬리퍼 논란이 불거지자 나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해 자신도 슬리퍼를 신고 있었다고 양심고백을 한 기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논란이 커지자 기자들 대부분이 침묵했다. 평소 도어스테핑 때 슬리퍼를 신던 기자들, 그날 슬리퍼를 신었던 기자들 모두 입을 다물었다.
---「슬리퍼는 죄가 없다」중에서

정치 칼럼을 쓰는 논설위원급 기자들은 선을 넘는 능력이 탁월하다. 소위 누가 더 이빨이 센지 경쟁하듯 독한 칼럼을 쓰다가 돌연 정치판에 뛰어든다. 한번 정계에 입문했다가 자리를 잃으면 언론으로 복귀해 기사나 칼럼을 다시 쓴다. 그리고 종편 패널을 전전하며 기회를 엿보다 정계에 재도전한다. 마치 변태를 마친 뒤 벗어놓은 허물로 돌아갔다가 다시 변태를 시도하는 신기한 매미라도 된 것 같다.
---「상상초월 신문 칼럼」중에서

책을 쓰는 동안에도 마음이 가볍지 않았다. 스스로 답을 찾지 못한 적이 많았다. 하지만 복종을 강요당하는 시대에 어려움을 당한 것이 나만은 아닐 테고, 합리적 의심마저 자기 검열로 내몰린 시대에 고독해진 것 또한 나만은 아닐 것이다. 평범한 일상을 살다 갑자기 힘든 처지에 놓인 많은 이들이 온기를 나누고 위로하다 보면 힘든 시기도 이겨낼 수 있을 것이다. 폭압적으로 변해버린 세상에서 자유를 잃고 슬픔에 빠진 이들에게 이 책이 조금이라도 응원과 힘이 된다면 기쁠 것 같다.
---「에필로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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