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정판 작가의 말 7
prologue 이건 그냥 하는 농담이지만 11 1부 실연당하는 게 끔찍할까, 시나리오 쓰는 게 더 끔찍할까? 눈물병 21 늙는다는 것 29 길티 플레저 35 모든 행동에는 이유가 있잖아요, 아저씨 41 사고의 전환 49 잠 53 행복이 가득한 집 55 내 귓가의 노랫소리 61 버펄로 이론-세상이 공평할 거란 기대를 버려 69 불타는 싫은 마음 77 내가 여자라서 85 내가 여자라서 그런가 분노 87 diary 92 2부 나를 가지고, 나를 웃겨서, 내가 위로받은 잘돼가? 무엇이든 99 미쓰 홍당무 107 비밀은 없다 111 임부 경찰 ‘마지’ 119 어느 여름의 시작 123 궁극의 휴머니즘 129 장보기와 시나리오 137 올해의 결심 142 감독님 때문에 145 가로 프레임 148 아랫집 157 진퇴유곡 161 diary 165 3부 어쨌든, 가고 있다 아빠1 171 아빠2 175 아빠와의 대화 177 이런 나 179 엄마1 183 엄마2 185 엄마3 187 인사가 뭐라고 189 사랑하는 아빠 191 아프니까 엄마 생각 197 엄마 문자 205 반신욕 219 가족 223 결혼1 225 결혼2 227 필수와의 대화1 231 필수와의 대화2 235 태도의 발견 236 문화 차이 240 결혼 준비 246 결혼식을 마치고 251 새집 253 diary 257 4부 아빠, 미안해하지 마 분당서울대병원 265 아빠와의 메일 273 너한테 내가 꼭 필요할 때 291 약속 297 필수와 나 299 몽키 302 괜찮아 310 파리에서, 아녜스 바르다 317 |
저이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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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신 아빠의 마지막 말씀은 ‘괜찮아’였다. ‘잘돼가? 무엇이든’과 아빠의 유언에는 겹치는 글자는 단 한 개도 없지만 나는 ‘잘돼가? 무엇이든’ 뒤에 늘 ‘괜찮아’를 혼잣말처럼 넣어두었기에 그 말씀이 참 좋았다.
--- p.9 인생 참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이 사실을 농담으로 넘기지 못하면 숨 막혀 죽을 것 같아서 혼자 끼적였던 지난 15년의 부끄러운 기록들을 모았다. 이제 나의 철없고 부실한 농담들이 계획대로 나아가지 않는 삶에 지친 누군가에게 작은 웃음이 되면 참 좋겠다. 그럼, 덕분에 나도 정성 들여 크게 웃고 다음 인생으로 넘어가보겠다. --- p.13 마음 깊이 우러나오는 존중도 아름답지만, 때로는 정말 싫은 마음을 완벽하게 숨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일도 아름다운 존중이다. 진짜 싫은 상대를 위해 이 불타는 싫은 마음을 숨기는 게 얼마나 힘든데. --- p.79 ‘갈대밭을 베며 걸어가는 팔자’라고 아저씨가 그랬다. 나는 진짜 열 받았다. 인생에 큰 굴곡은 없었지만 늘 미래가 안 보이니까 답이 없고 무서웠다. 대학 졸업하고 취직을 했다. 남들 보기엔 안정적인 세팅인데 나는 미래가 안 보였다. 회사 그만두고 다시 학교 들어가니 이젠 남들 보기에도 불안정한 세팅에 미래는 계속 안 보였다. 주변을 둘러보면 다들 열심히 답을 적고 있는데 나만 빈 시험지를 붙잡고 시간은 계속 흐르는 시험장에 앉은 기분이었다. --- p.106 길고 지난한 작업 과정에서 스스로에게 한계를 느낄 때마다 ‘본분을 지킨다는 것이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기준으로 삼고 일어섰다. 그리고 여태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그렇게 일어서겠다. --- p.116 그래서 나는 염치 불고하고 조금 행복한 편이다. 언제까지 ‘행복한 내일’을 꿈만 꿀 것인가, 세상을 바꿀 수 없으니 내가 생각을 바꾸는 수밖에…… --- p.130 남한테 칭찬을 받으려는 생각에는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숨어 있다. 혼자 의연히 선 사람은 칭찬을 기대하지 않는다. 물론 남의 비난에도 일일이 신경 쓰지 않는다. --- p.141 쓰레기를 쓰겠어! 라고 결심하니 써지긴 써진다. 매일 다짐해야겠다. 쓰레기를 쓰겠어! --- p.144 두렵다. 실패를 경험하게 될 시간은 언제나 두렵다. 그런 날이 올 때면 운전석에서 절망했던 산동네 재개발 지역 좁은 비탈 골목 안에서의 그날 밤을 떠올려야겠다. 차 밖으로 나와서 멀리 떨어져 보니 불과 몇 분 전의 내 패배감이 작게 느껴졌던 그날 밤. --- p.164 엄마는 자기 전에 ‘편안히 잘 자라’라는 문자를 지금도 자주 보낸다. 어둡고 긴 터널을 외롭게 지나던 시절이 있었다. 약도 안 듣는 지독한 불면증에 시달렸다. 누구에게도 마음을 털어놓지 않고 혼자 견뎠다. 입은 꼭 다문 채 점점 마르고 새까맣게 변해가는 나를 본 뒤로 엄마는 매일 밤 “편안히 잘 자라” 문자를 보내주었다. 어두운 망망대해 위에 혼자 남은 기분으로 잠자리에 들 때, 엄마의 문자는 그날 밤을 버틸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빛이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저 문자를 가만히 보고 있으면 눈물이 난다. --- p.218 가끔 사람이 이렇게 무너질 때가 있잖아요. 그날 그런 날이었다고 이해해주세요. 항상 아빠가 절 지켜보고 걱정하신다고 생각하면서 살고 있어요. 잘 할게요. 걱정 마세요. --- p.288 우리 아빠는 단 한 번도 나의 성취를 두고 기분 좋게 칭찬해주신 적이 없었다. 내가 데뷔작〈미쓰 홍당무〉로 그해 청룡영화상에서 신인감독상과 각본상을 수상했을 때도 아빠는 내 속을 다 뒤집어놓으셨다. 너는 더 배워야 하는 사람이니 자만하지 말고 박찬욱 감독의 스크립터를 한 번 더 하는 게 좋겠다고 하셨다. 내가 어떻게 겨우 감독이 됐는데! --- p.315 이 순간을 기록으로 남겨야 했다. 나는 핸드폰 카메라를 켜고 비디오를 찍으면서 달려갔다. 이것은 〈새색시〉를 향해 달려가는 나의 여정이고, 아녜스 바르다에게 도달하면 나는 〈새색시〉를 찍을 수 있을 것이라는 주문을 제멋대로 걸었다. --- p.319 |
“나의 혼잣말이 책이 될 줄 알았다면
이만큼 솔직하지 못했을 것이다." 〈미쓰 홍당무〉 〈비밀은 없다〉 〈보건교사 안은영〉 영화감독 이경미의 첫 번째 에세이, 5년 만의 개정증보판 새로운 글과 삽화로 만나는 2018년 이후 5년간의 이야기 “나는 염치 불고하고 조금 행복한 편이다” 불같이 화내고 큰 소리로 웃고 나면 함께 행복해지는 지친 당신을 향한 농담 같은 안부 2018년 이후의 이야기, 새롭게 추가된 4부 ‘아빠, 미안해하지 마’ ‘잘돼가? 무엇이든’은 이경미 감독이 영화학교 졸업 작품으로 만든 단편영화의 제목이기도 하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던 시절의 이야기를 담아낸 이 영화로 2004년 미장센 단편영화제 최우수 작품상을 비롯해 많은 상을 받았으며,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박찬욱 감독과 인연을 맺기도 했다. “미래에 대한 작은 기대도, 설레는 희망 한 조각도 없이 그저 살아야 되니까 살던 그 시절의 나에게” 안부를 묻는 마음으로 만든 영화의 제목이 첫 책의 제목으로 다시 등장한 것은, 영화와 함께해온 자신에게, 처음 시작할 때의 그 마음으로 되묻는 안부가 아닐까. 삶은 여전히 힘들고 그리 아름답지도 않지만 그래도 농담 같은 그 시간의 기록이 우리를 웃게 하고, 그 웃음의 힘으로 또 계속해서 살아갈 수 있다면 꽤 괜찮지 않으냐고 말이다. 이 책은 총 네 개의 부로 구성돼 있으며, ‘가족’과 ‘영화’ ‘사랑’ 등 이경미 감독의 중요한 일부인 이야기는 물론이고,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과 나이가 들어가는 것에 대한 고찰, 주변의 상황과 사회적 현상 앞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등 자신의 외면과 내면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특히 이번 개정증보판에 추가된 4부는 한편으로는 큰 변화를 맞이한 듯하지만 한없이 여전하고, 더욱 깊어진 영화와 가족과 삶에 대한 내용들로 채워졌다. 감독의 동생인 이경아 그림 작가 역시 웃음과 눈물을 담은 삽화들을 글에 맞춰 새로이 선보인다. 이경미 감독이 20년 가까이 쌓아온 기록을 좇으며 함께 화내고 크게 웃다 보면 우리는 어느 페이지에선가 지금, 혹은 지나온 자신의 모습을 맞닥뜨릴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순간, ‘잘돼가? 무엇이든’ 하며, 이경미 감독이 건네는 농담 같은 안부가 들려올 것이다. 그리고 여기 어울리는 대답 두 가지가 책에 담겨 있다. 2003년에도 2010년에도 그가 적었던 일기처럼 “어쨌든, 아주 조금씩 가고 있다”라는 대답과 새롭게 수록된 작가의 말 중 ‘돌아가신 아빠의 마지막 말씀은 ‘괜찮아’였다. ‘잘돼가? 무엇이든’과 아빠의 유언에는 겹치는 글자는 단 한 개도 없지만 나는 ‘잘돼가? 무엇이든’ 뒤에 늘 ‘괜찮아’를 혼잣말처럼 넣어두었기에 그 말씀이 참 좋았다.”라는 대답이다. 어느 쪽이든, 그중 지금 나 자신의 상황에 더 필요한 대답을 되뇌어보면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잠시라도 웃음 짓고, 조금은 행복해지고 예측할 수 없어 불안한 삶마저 기대하게 되지 않을까. 어쨌든, 아주 조금씩 가고 있고, 다 괜찮을 거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