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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번 넘게 읽어준 그림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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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2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248쪽 | 135*200*20mm
ISBN13 9788956254630
ISBN10 895625463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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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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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 방학 때, 한 중학교 도서실에서 아이들 열다섯 명과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나흘간 수업을 했습니다. 수업 제목은 ‘그림책과 함께하는 원예 교실’. 원래 원예수업은 여자아이들이 많은데 대부분 남자아이들인 게 이상해 사서 선생님께 여쭤보았더니, “학교 생활기록부에 들어간다고 했더니, 남자아이 엄마들이 많이 신청했더라고요.”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방학인데 늦잠도 못 자고 오전 10시에 억지로 나온 아이들 표정에는 불만이 가득했습니다. 제가 그림책을 꺼내들자, 아이들의 시큰둥한 표정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어디 한번 읽어보시지. 내가 재미있어 하나 보라고!’
--- p.4

저는 첫날 『꽃을 좋아하는 소 페르디난드』 (먼로 리프, 로버트 로슨, 비룡소)를 읽어주었습니다. 페르디난드가 늘 친구들과 안 어울리고 혼자 나무 밑에서만 지내자, 어느 날 엄마는 걱정하며 괜찮은지 묻습니다. 하지만 페르디난드는 지금 이대로가 좋다고 하고, 엄마는 아들을 믿고 뒤돌아섭니다. 순간 여기저기에서 남자아이들의 볼멘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나도 그냥 내버려두면 좋겠어요.”
“우리 엄마는 왜 안 그러냐고요.”
단지 그림책 몇 쪽을 읽어줬을 뿐인데 저는 금세 아이들과 같은 편이 된 듯했고, 그 덕분인지 목요일까지 대부분 아이들은 수업에 열심히 참여하였습니다.
--- p.5

왜 그림책을 읽어주어야 할까요? 그림책 한 권을 읽어주는 짧은 시간 동안 그림책에서 빠져나온 글과 그림은 공중을 돌아다니며 어른과 아이처럼 다른 세대를 이어주기도 하고,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처럼 여러 시공(時空)의 나를 이어주기도 합니다. 그런 시간을 거치며 우리는 조금씩 진짜 나를 알아가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 p.7

『거미 아난시』는 한 유치원에서 3주에 걸쳐 연속 세 번을 읽어준 적도 있습니다. 분명 지난주에 읽어주었는데, 아이들은 “거미 그림책 또 읽어주세요.”를 외쳤고, 그 다음 주에도 또 “거미 그림책 읽어주세요.”를 외쳤습니다. 아마 제가 말리지 않았다면 학기 내내 계속 읽어주어야 했을지도 모릅니다.
--- p.9

그날 이후로 마지막 열세 번째 수업을 할 때까지 저는 아이들과 매번 숨바꼭질을 했습니다. 아이들도 즐거워했지만 어쩌면 제가 더 즐거웠는지도 모릅니다. 때로는 서너 번 이어서 숨바꼭질하다가 시간이 부족해 그림책을 못 읽어줄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놀다 보면 “선생님, 이제 그림책 봐요.”라든가 “오늘은 무슨 식물 심어요?”라고 늘 아이들이 먼저 말해주었습니다. 그날 저와 해야 할 수업 내용을 잊지 않고 있었던 겁니다. 수업은 강사가 아닌 아이들의 힘으로 이끌어간다는 걸 새삼 깨달은 소중한 시간들이었습니다.
--- p.21

“선생님! 그럴 때는 걔한테 빽 하고 큰소리 한번 질러줘야 돼요.”
--- p.49

선생님! 저는 『엄마 잃은 아기 참새』 평생 볼 거예요.
--- p.75

아이들은 어리다는 이유로 대부분의 시간을 어른의 보호와 지도를 받으며 지냅니다. ‘어른과 아이’라는 수직 관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하지만 실제로 아이들이 성장하는 건 ‘아이들끼리’라는 수평 관계 속에 있을 때입니다
--- p.114

외로움은 어른들보다 아이들에게 더 자주 찾아오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는 꼭 친구가 필요합니다. 저와 만나는 아이들 모두 동성이든 이성이든 마음에 드는 친구를 만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서로에게 ‘너만 알고 있어’라고 속삭이며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p.144

나 정말 아팠겠다.
아이 아니요. 하나도 안 아팠어요.
나 선생님 같으면 아파서 막 울었을 텐데.
아이 아니요. 전 하나도 안 울었어요.
--- p.174~175

지난주에 시원이에게 미운 감정이 들었어도 이번 주까지 그 감정을 가져오지 않으려 했고, 수업 중간에 틈날 때마다 귓속말로 칭찬을 많이 해주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갑자기 시원이의 수업 태도가 달라지진 않았습니다. 잊을 만하면 어김없이 떼를 쓰고 친구들을 괴롭혔습니다. 하지만 초반처럼 수업 분위기를 엉망으로 만드는 일은 확실히 줄어서, 저는 훨씬 편하게 수업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열세 번의 수업을 모두 마치고 시원이와는 헤어졌습니다. 지금은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을 시원이. 귓속말로 칭찬을 해주면 제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는 자기 식물을 조심스레 만지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 p.209

‘사다리’나 ‘가위바위보’나 저는 똑같이 운이라 생각했는데 아이들은 그렇지 않았나 봅니다. ‘사다리’는 남이 그어놓은 선을 그저 따라가는 것뿐이니 운이고, ‘가위바위보’는 무얼 낼지 스스로 고민해서 정하니까 운이 아니라고 생각한 걸까요? 아무튼 아이들은 열심히 ‘가위바위보’를 했고, 결과에 깨끗하게 승복하며 자신만의 칼랑코에와 만났습니다.
---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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