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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없는 현실

현실 없는 현실

: 인공지능의 시대, 새로운 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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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03월 04일
쪽수, 무게, 크기 276쪽 | 358g | 140*210*20mm
ISBN13 9791191114577
ISBN10 1191114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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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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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을 가상의 시뮬레이션으로 대체하는 배후에서는 권력과 비즈니스가 바삐 계산기를 두드리며 손익을 따져댄다. 현실에 충실하려는 자세야말로 인간다움을 지켜낼 전제조건이다. 이 책으로 나는 마치 최면이라도 거는 것처럼 우리를 미성숙함으로 퇴행시키려는 디지털화 과정, 계몽이 우리의 손을 이끌어 빠져나오게 한 미몽으로 다시 되돌려놓으려는 과정에 맞서 싸울 의지를 다지고자 한다.
--- p.8

젊은 세대는 다양한 이유로 현실을 갈수록 힘겨워한다. 많은 젊은이가 아예 현실에 등을 돌리고 인터넷 가상공간, 이른바 ‘소셜미디어’, 온라인 스트리밍, 그마저 시들해지면 ‘메타버스’에 빠져든다. 이런 추세가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는 불보듯 빤하다. 인간 냄새가 나는 현실세계를 지켜주고 그 생태를 구해줄 사람의 손길은 턱없이 부족해진다.

물론 기후 보호를 외치는 운동가가 세간의 이목을 사로잡기는 하지만, 이들은 젊은 세대의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디지털 혁명을 선도해 막대한 돈을 버는 첨단기술 기업의 최고경영진은 현실세계가 이미 구조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졌다고 주장한다. 바꿔 말해서 모든 힘을 동원해 현실세계를 되살리려는 노력은 디지털·미디어 기업에 별 이득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 p.15

현실의 삶을 하찮게 보라는 요구를 감수하고 피안을 우러르며 위로를 구하는 대신, 인간은 서로 연대하며 운명을 스스로 감당하려 노력하면서 현실세계의 곤궁함을 직시하고 더 나은 세상, 살 만한 가치를 가진 세계로 바꾸려 힘을 모아야 한다는 깨달음 역시 계몽이 베푼 선물이다.

물론 이런 혁명적 변화를 위해서는 달콤한 이야기가 주는 위안에 빠져 ‘어딘가 다른 곳’에 기대는, 시대를 막론한 인간의 성향을 떨쳐내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런 각성을 위해 우리는 현재에 충실한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용기 있게 감언이설을 떨치고 이성을 회복해 현실을 냉철하게 바라볼 수 있어야만 한다.
--- p.21

인간을 두뇌로만 보려는 시도는 디지털 광팬과 몇몇 철학자가 특히 선호하는 상상, 숱한 논란을 불러온 상상에 불을 지폈다. 이른바 “통 안의 두뇌”는 자양분을 풀어놓은 수조 안에 둥둥 떠서 생존하는 두뇌를 그린다. 자연의 생물적 몸을 무시하고 얕잡아보는 것이야말로 디지털 신비주의의 핵심이다.

(…) 인공지능 기계와 다르게 인간은 생물로 살아가기 위해, 또 생각할 줄 아는 능력을 유지하기 위해 늘 외부 현실과 교류해야 한다. 반대로 컴퓨터는 창문 하나 없는 어두운 공간에서도 몇 년이고 잘 작동한다. 인간은 몸과 마음이 건강하기 위해 다른 사람과 함께 있어야 한다. 인공지능 컴퓨터는 전혀 다르다. 컴퓨터는 다른 컴퓨터가 없어도 잘 작동한다.
--- p.36~37

과거에 다른 사람과 했던 경험은 인간의 내면에 확실하게 뿌리를 내린다. 이런 경험은 오래가는 후유증처럼 유전자에 영향을 미친다. 그 상대가 이미 오래전에 주변에서 사라졌거나 심지어 사망했어도 영향력은 좀체 지워지지 않는다.

사회관계는 뜨거운 공기처럼 훅 사라지는 게 아니다. 사회관계는 인간이 생물로 살아가는 현실의 일부이다.31 다른 사람과 만날 때마다 우리는 서로 상대를 어떻게 대해주느냐에 따라 유전자를 달리 활성화한다. 물론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상대방의 친절함은 스트레스 유전자를 진정시킨다. “인간은 많은 것이 없이도 그럭저럭 지낼 수 있지만, 더불어 사는 인간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 p.45

다른 사람과 교류를 나누고 싶다는 갈망이야말로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에 매달리게 만드는 결정적 동기이다. 하지만 스마트폰과 소셜미디어는 이 갈망을 충족시키기는커녕 정반대의 불행을 부른다. 의학과 심리학은 이미 몇 년 전부터 연구를 통해 이런 부작용을 확인해왔다.

어째서 디지털 기술은 우리를 불행에 빠뜨릴까? 어떤 다른 사람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작동하는 스마트폰은 우리의 머릿속에 다음과 같은 무의식적 작용을 불러일으킨다. 마주 앉은 상대는 나에게 온통 주의를 집중한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이 사람의 관심은 확실히 내 것이라고 믿는다. 그 관심은 잃을 리도 없고, 발이 달려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스마트폰에 들어오는 메시지 또는 통화의 수신음은 지금 당장 확인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그것을 잃을까 두렵다. 놓쳐서는 안 되기에 나는 조바심부터 낸다.
--- p.75

데이비드 차머스는 우리가 시뮬레이션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아예 이것이 사실이라고 명확히 선포한다. “아마도 우리 자신이 시뮬레이션인 경우도 배제할 수 없다.”

(…) 일론 머스크 역시 같은 의미의 발언을 한 바 있다. (…) 인간이 시뮬레이션 현실에서 살면서 동시에 나름대로 시뮬레이션 세계를 창조할 수 있다면, 창조에도 여러 단계의 위계질서가 성립해야 한다. 데이비드 차머스 역시 이런 위계질서의 성립을 부정하지 않는다. 쉽게 말해서 우리가 사는 시뮬레이션 세계는 상위의 시뮬레이션 세계가 만들어낸 작품이라고 보아야 한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것은 오로지 “최고 레벨의 주민”뿐이다.
--- p.146~47

의학 분야에서 인공지능은 개인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 도식적인 진단과 처방으로 외려 치료를 방해할 수 있다. 더욱이 환자와 의사 또는 간호사 사이의 인간적인 관계가 인공지능 탓에 약해질 수밖에 없다. 인간은 컴퓨터가 아니라 사회적 존재이다. 치유 과정은 환자와 의사의 약해진 관계에 강한 영향을 받는다.
지금 거론한 모든 분야에서 무엇보다도 심각한 문제는 인공지능이 개인들을 특정 집단으로 분류하고 어떤 그룹에 속하느냐에 따라 이익을 줄지 불이익을 줄지 결정한다는 점이다. 특정 집단만 우대하고 다른 집단은 차별하면서 개별 사례를 고려하지 않는 인공지능은 사회를 심각하게 위협할 수 있다.
--- p.178

나르시시스트는 자존감이 불안한 나머지 외려 자신을 부풀린다. 나르시시즘의 핵심 문제는 바로 이 불안한 자존감이다. 나르시시스트는 인간을 애써 깎아내리고, 자연보호라는 중요한 의제를 외면하면서 종말의 분위기를 퍼뜨린다. 있는 그대로의 우리 인간은 아무런 가치도 없는 존재임을 믿으라고 나르시시즘은 윽박지른다. 그 뒤에 숨겨놓은 메시지는 이런 것이다. 디지털 상품을 소비하고 디지털 기술에 사로잡히는 군중심리를 조장해야만 우리의 처지가 개선될 수 있다!

군중이 혹할 장관을 연출하기 위해 ‘디지털 교황들’은 디지털 신제품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마다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마치 천상에서 내려온 것처럼 호들갑을 떨며 자신을 부풀린다. 이보다 더한 나르시시즘이 또 있을까.
--- p.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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