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전문가가 아닌 행정가들이 위생 개혁을 주도한 이유는 위생 상태를 개선하지 않고는 더 이상의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의 발전이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사회경제적 발전이 뒤늦었던 독일에서는 사정이 달랐다. 독일 의사 루돌프 피르호Rudolf Virchow(1821~1902)는 사회적, 환경적 요인에 의하여 질병이 발생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1848년에 발생한 독일 실레지아 지방의 장티푸스 유행을 연구하여 빈곤과 거주 환경을 원인으로 파악하였다. 그래서 의학은 장티푸스 감염을 밝히는 생물학적 의학이면서 동시에 그 예방을 위해서는 빈곤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사회과학이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의학은 이후 ‘사회의학social medicine’이라 불렸다. 사회의학은 한 세기 후에 건강의 사회적 결정론social determinants of health과 건강증진이론으로 재발견되었다. 19세기 위생개혁운동 또는 사회의학운동의 공헌은 비위생적인 사회적 환경과 물리적 환경은 구조적 문제이며 이를 방치할 경우 궁극적으로 질병 또는 불건강을 초래하게 된다는 점을 사회구성원들이 인식하게 만든 점이다. 역으로 당시 발전하던 임상의학은 불건강(건강하지는 않지만 아직 병이 아닌 상태와 질병 상태를 포괄하는 개념)의 구조적 원인은 제쳐 두고 그 결과인 질병 치료에만 몰두하였는데 당시 사회개혁가들은 건강을 논하려면 질병 발생 이전의 구조적 원인에 주목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당장 질병에 걸리지 않았더라도 구조적인 보건위생 문제가 장기적으로 건강 위험을 악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의 결과 20세기 들어와 공중보건학이 발전하면서 단순히 질병이 없는 것보다 그 이상의 건강위험 관리 역량 측면에서 건강 개념을 규정하게 된 것이다.
유럽의 사회의학은 다분히 국가가 주도하여 국민의 건강을 관리한다는 국가주의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위생개혁 사상은 미국에도 전파되었지만 미국의 상황은 유럽과 달랐다. 당시 미국은 산업혁명이 늦게 진행되었기 때문에 그로 인한 도시화와 위생 악화 문제가 덜 심각하였다. 또한 중앙집권화된 국가의 힘이 약했고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였기 때문에 국가가 주도하는 위생개혁보다는 개인 또는 지역사회와 단체가 위생개혁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거나 개인을 건강 지향적으로 교화시키는 보건교육이 활성화되었다.
---「사회의학의 탄생」중에서
최근 의사 수 증원 문제를 둘러싸고 의견이 엇갈렸다. 여기서 OECD의 보건 통계가 쟁점이 되었다. 이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인구 1,000명당 2.6명의 의사가 있다. 이 통계에는 한의사도 포함되어 있어 이를 제외하면 OECD 최하위 수준이다. OECD 평균은 3.6명 수준이다. 공공의료가 발전한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는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4명이 넘고, 의사 수가 비교적 적은 영국과 프랑스도 3명이 넘는다. 우리보다 적은 의사 수를 가진 나라는 멕시코, 브라질, 튀르키예 등 우리보다 경제 수준이 낮은 나라들이다. 적정 의사 수는 의사인력의 생산성, 제공되는 의료서비스의 양과 질, 의료전달체계의 구조 등 여러 요인의 영향을 받는다.
정부와 보건학계에서는 의사 수가 크게 부족하며, 특히 내과, 소아과, 산부인과, 외과 등 필수의료 부문, 공공 부문 및 의료취약지에서 일할 의사들의 수급 문제가 시급하다고 주장한다. 의사인력의 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며, 의사 증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반면 의사회는 우리나라 의사들의 근무시간이 길고, 열심히 일하여 더 많은 환자를 진료하기 때문에 의사 수가 부족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지방에 의사가 부족한 것은 의사 증원으로 해결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의사를 증원해도 다시 수도권으로 몰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문제는 의사 증원과 관계없이 의사에 대한 인센티브 제공 등 별도의 정책으로 해결할 사안이라고 주장한다. 종합하면 외국의 예에 비추어 보아도 의사인력의 절대수가 부족한 것은 사실이며, 의사 수 증원과 함께 의사의 근무 방식과 보상체계 등을 전반적으로 개선하고 합리화하지 않고는 의사 부족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의사는 부족한가」중에서
건강노화healthy aging는 나이 듦에 따라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 안녕을 유지하며 건강하게 나이 든다는 개념이다. 노년기에 자연적으로 감소되는 내재적 능력intrinsic capacity을 유지하고, 외부 여건을 긍정적으로 조합하여, 기능상태functioning와 삶의 질을 증진시키는 것을 건강노화라고 한다. 건강노화는 기능적으로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는 독립적인 생활(혼자 이동하고, 식사준비를 하고, 위생관리를 하고, 적절한 의사결정을 하는 것)을 하는 정상노화 궤적이다.
건강노화의 개념은 내재적 능력과 환경의 조합으로 노년기 건강(기능상태)이 결정된다고 본다. 건강노화는 그 시점의 달성 가능한 최적의 건강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내재적 능력은 개인의 타고난 고유한 능력으로 연령에 따라 변화한다. 환경이란 개인을 둘러싼 여건으로 물리적 환경과 사회적 환경(인간의 행동양식에 영향을 주는 관심, 제도, 규범 등)을 포함한다. 내재적 능력이 감소되는 생의 기간에도 환경의 지원을 받아 노년기 건강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건강노화는 다양한 요인에 영향을 받는다. 하나의 영역만으로 건강노화를 유지·증진할 수 없다. 건강노화의 결정 요인을 체계적으로 문헌 고찰한 연구5에서는 신체적 측면, 정신과 인지 측면, 사회적 측면의 10가지 건강노화 결정 요인으로 정리했다. 신체적 측면으로 신체활동, 식이요법이 영향을 주고, 정신과 인지 측면으로 자기인식, 전망·태도, 평생학습, 신앙이 영향을 준다. 사회적 측면으로는 사회적 지지, 경제적 안정, 지역사회 참여, 자립이 영향을 주었다. 건강노화는 모든 결정 요인의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건강관리는 동거 가족이 있는 고령자와 독거 고령자의 건강관리 패턴이 다르게 나타난다. 독거 고령자의 경우에 건강관리가 좋지 않아 건강노화를 위협받을 가능성이 높다. 건강관리 항목으로 아침 식사, 적정 수면, 규칙적인 운동 그리고 건강검진을 대표적으로 다루는데 모든 항목에서 독거 고령자가 더 안 좋은 양상을 보인다. 건강검진 수검률은 2015년 66.7%에서 2019년 69.9%로 개선되고 있지만 아직 최적의 상태로 보기는 어렵다. 건강검진을 통해 조기에 질병을 발견하고 낮은 수준에서 치료함으로써 치료에 따른 신체적·정신적·경제적 부담을 줄일 수 있다.
---「건강노화 결정 요인」중에서
안락사euthanasia는 자살의 특수한 형태로 볼 수 있다. 2016년에 개봉한 영화, 〈미 비포 유Me Before You〉는 안락사를 소재로 한 로맨스 영화이다. 스포츠를 즐기던 사업가인 남자 주인공이 사고로 전신마비를 겪게 된다. 그는 간병인으로 취업한 여자 주인공의 도움으로 사고 이후 내내 머물던 자신의 방에서 나와 사회적 행사와 모임에 참여하는 등 변화하게 된다. 그러나 주인공은 전신마비를 겪으면서 이미 안락사 날짜를 받아 놓은 상태였고, 결국 스위스에 가서 생을 마감한다. 이 영화가 암시하듯이 대부분의 안락사는 질병이나 사고로 신체적 고통이 매우 커서 견디기 어려운 상태에서 의사의 조력을 받아 자의로 사망하는 경우를 말한다.
안락사가 환자의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한 선택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환자를 죽이는 행위이기 때문에 많은 논쟁이 있다. 스위스 등 몇몇 나라에서는 안락사를 합법화했으나 다른 많은 국가에서는 이를 살인으로 간주하여 처벌한다. 안락사를 찬성하는 사람들은 질병이나 사고로 극심한 통증이나 신체활동의 제한을 받게 되어 인간다운 삶을 살기 어렵게 되었고, 회복 가능성도 없다면 당사자와 가족에게 안락사할 수 있는 선택권을 주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본인은 물론 옆에서 지켜보는 가족의 고통과 치료비나 돌봄에 필요한 경제적 부담을 줄여 줄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반대 측은 환자가 정상적인 판단을 할 수 있을 만큼 온전한 정신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하는데 이것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에 주목한다. 특히 우울증 환자의 경우 충동적 결정의 위험이 있다. 또한 안락사를 시행하는 의사는 사람을 살리도록 직업윤리를 배우는데 안락사는 이 원칙에 위배될 수 있다. 또한 대부분의 종교는 인간이 임의로 목숨을 끊는 것을 금하고 있다. 철학적으로도 인간이 자기 인생의 종말을 맞을 시간과 상황을 결정할 권리가 있는지 분명치 않다. 완화의료palliative care를 충실하게 받으면 통증을 줄여주고 존엄한 임종을 맞이할 수도 있다. 이렇게 안락사에 반대하는 의견도 굳건한 논리를 갖추고 있다. 우리나라 국민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76%의 국민이 안락사 혹은 조력자살assisted suicide 합법화에 찬성하는 것으로 조사된 적이 있다. (후략....)
---「안락한 죽음을 선택할 권리?」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