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르네상스인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가 회화의 기원을 나르키소스에서 찾았다. 흥미로운 사실이다. 그것이 무슨 의미일까? ‘수면 위에 비친 나르키소스의 환영이 그림과 본질적으로 같다’는 점을 강조했다는 것이다. 인간의 망막에 맺힌 상은 평면적이지만 뇌의 작용으로 사물을 입체적으로 해석한다. 그러나 회화는 다르다. 보는 사람이 그림을 현실처럼 느끼게 하려면, 특수한 작도법이 필요하다. 이른바 회화의 평면성을 속이고, 착시효과를 유도하는 선원근법이다.
--- p.18
르네 마그리트는 〈유클리드의 산책〉에서 평행선 공준을 부정하려 했다. 이를 위해 창밖에 탑과 큰길 모두 삼각형 형태로 나란히 배치했다. 실제 원뿔형 탑은 그림처럼 그 끝이 꼭짓점으로 모인다. 하지만 오른편 큰길이 실제로는 평행선을 이루는데도, 탑의 꼭짓점처럼 서로 만나는 것으로 묘사했다. 한마디로 유클리드 기하학의 왜곡이다. 하지만 이것이 마그리트의 잘못은 아니다. 지구 표면이 휘어져 있기에 나타날 수밖에 없는 곡률이다. 따라서 “(현실에서) 모든 평행선은 결국, 무한원점에서 만난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 p.37
조심스러운 성격의 오시안더는 자신의 서문을 익명으로 책에 끼워 넣었다. 마치 코페르니쿠스 본인이 쓴 글처럼 보였다. 서문에는 태양중심설이 천문학적 가설일 뿐이라고 규정했다. 그리고 “이를 사실로 믿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입문할 때보다 더 한심한 바보가 되어 이 학문을 떠나게 될 것”이라고 썼다. 그래서인지 학자들은 코페르니쿠스의 글에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책을 받아 본 교황 바오로 3세와 교회에서도 금서로 분류하지 않았다. 사후 300여 년이 지난 19세기 후반이 되어서야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는 세상의 빛을 받았다. 따라서 코페르니쿠스가 비겁했다기보다는 오시안더의 배려 덕분에 평안했다고 보는 것이 옳겠다.
--- p.79
케플러는 자신이 계산한 값과 브라헤의 관측 결과를 비교하니 10개의 데이터에서 2분(30분의 1도) 내 오차를 보였지만, 나머지 두 개의 데이터에서는 8분(15분의 2도)의 오차가 발견됐다. 무시할 수 있을 법한 오차 범위였다. 그러나 브라헤의 오차 범위보다 두 배나 크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다. 케플러는 끝없이 다시 계산했다. 브라헤의 자료는 거짓말하지 않았다. 결국, 케플러는 자신의 이론이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화성은 원형이 아니라 약간 일그러진 타원형 궤도를 돌고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지상의 세계에서나 가능하다고 여겼던 운동 방식이었다.
--- p.107
원자를 둘러싸고 벌어진 논쟁으로 인해 볼츠만은 그만 가위눌리고 말았다. ‘관측할 수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실증주의 에른스트 마흐와 그의 추종자들의 비판은 모질었다. 볼츠만은 천박한 인신공격을 당한 것은 물론이고, 학술지로부터 논문이 거절당하는 지경에도 이르렀다.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한 그는 휴가 중이던 1906년 9월 5일, 이탈리아 트리에스테 근처 두이노에서 아내와 딸들이 수영하는 동안 스스로 목을 맸다. 그의 내성적인 성격과 우울증도 작용했으리라 추정한다. 안타까운 일은 1년 전 아인슈타인이 이미 원자의 존재를 증명하는 논문을 발표했다는 사실이었다.
--- p.207
영국의 스탠리 에딩턴은 서아프리카 프린시페섬에 가서 1919년 5월 29일 개기일식 때 히아데스성단의 사진 촬영에 성공했다. 그리곤 6개월 전 태양이 하늘 반대편에 있을 때 같은 곳을 찍은 사진 속 별의 위치와 비교했다. 그해 11월에 결과를 발표했는데, 별의 위치는 변동이 발생해 있었다. 개기일식 때 태양이 공간을 구부려 지구와 별 사이를 지나는 빛의 경로를 휘게 함으로써 발생한 오차였다. 그리고 별의 이동 거리는 아인슈타인의 방정식 값과 정확히 일치했다. 당시 영국과 독일은 적국으로 갈려 싸웠기에 더욱 극적인 발표였다. 〈뉴욕 타임스〉는 “하늘의 모든 빛이 구부러져 있다”라는 표제로 기사를 송고했다.
--- p.227
한 연회에서 옆자리에 앉은 나치 정부의 교육부 장관 베른하르트 루스트에게 “유대인의 영향력에서 해방되었는데, 괴팅겐 대학의 수학과가 잘 되어 가느냐?”라는 질문을 받았다. 대답은 역시 힐베르트다웠다. “괴팅겐 대학 수학과요? 이제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수학은 과정의 합리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학문이다. 김민형 교수는 저서 『수학이 필요한 순간』에서 “수학적으로 사고하면, 도덕적으로 그릇된 답을 피할 수 있다”고 알려준다. 늦지 않았다. 인생에서 오류를 줄이고, 과정을 즐기는 지혜를 수학에서 구하시라.
--- p.234
1927년 10월, 제5회 솔베이 회의에서는 ‘코펜하겐 해석’이라고 불리는 양자물리학의 두 가지 주류 이론이 발표되었다. 먼저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다. 입자의 위치를 알면 정확한 속도를 모르고, 속도를 알면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없다는 이론이다. 초기 조건을 안다면, 입자의 운동 방향과 결과를 예측할 수 있다는 고전역학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이론이다. 다른 하나는 보어의 상보성 원리다. 어떤 문제에 접근하는 두 가지 방법이 겉으로는 서로 모순을 보여도 궁극적으로는 하나에 속한다는 개념이다. 물질을 구성하는 소립자들이 입자임에도 불구하고 기묘하게 파동처럼 행동한다는 의미로 사용했다. 둘 중 하나이기를 고집하는 인간 앞에 ‘입자도 아니고 파동도 아닌’, 혹은 ‘입자이면서 파동인’ 모호한 존재가 등장했다.
--- p.240
빅뱅 후 10-32초에 일어났던 미세한 양자 요동으로 인한 편차가 우주의 씨앗이 되어 밀도가 조밀한 곳에서 최초의 별이 탄생했고, 이어 은하를 형성했다. 피자 반죽이 균일하지 않고 군데군데 작은 덩어리와 주름이 생긴 것과 같은 모습이었다. WMAP가 알려준 또 하나의 놀랄 만한 결과는 우리 우주가 온통 암흑천지라는 사실이다. 우주에는 우리가 아는 물질이 4퍼센트밖에 없고 나머지는 암흑 물질이 22퍼센트, 암흑 에너지가 74퍼센트를 차지한다. 이를 암흑이라 일컫는 이유는 어두워서이기도 하지만, 정체를 몰라서이기도 하다. 그중 암흑 에너지는 기묘하게도 음의 척력을 가지고 있어 우주의 매우 빠른 팽창을 돕는다.
--- p.306
중생대 마지막 시기에 다시 한번 지구에는 커다란 사건이 발생했다. 오늘날의 멕시코 유카탄 부근에 거대한 운석이 떨어졌다. 그때 지구 전체 생물의 75퍼센트가 멸종했고, 공룡의 시대가 막을 내렸다. 신생대는 포유류와 조류의 시대다. 마침내 지구 탄생 46억 년 막바지에 인류의 조상이 탄생했다. 이렇게 생명체들의 38억 년의 역사를 개관해 보면, 세균에서 곤충에 이르기까지 34억 년이란 장구한 세월이 흘렀다. 반면 곤충에서 인간에게 이르기까지는 약 4억 년이 걸렸을 뿐이다. MIT 로봇연구소장 로드니 브룩스는 이렇게 평가한다. “이것은 곤충 수준의 지능이 절대 사소하지 않음을 암시한다.”
--- p.312
세포와 돌멩이 모두 같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유독 세포가 집단적인 거동을 하면서 생명 혹은 의식이 창발한다. 큰 수수께끼다. 불가피하게 슈뢰딩거는 과학의 기본 개념을 확장해야 했다. 이후 이론물리학자에 의한 인간 의식에 관한 양자적 접근은 로저 펜로즈로 이어졌다. 한편 당시 슈뢰딩거의 강연 내용에서 신선한 충격을 받은 생물학자가 있었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 캐빈디시연구소 소속 프랜시스 크릭과 제임스 듀이 왓슨이다.
--- p.317
윌버포스 주교가 장황한 논리를 펼친 다음, “누가 동물원의 유인원이 자기 조상이라고 한다면, 얼마나 불쾌하겠느냐?”고 지적했다. 그리고 헉슬리를 쳐다보면서 “만약 당신이 원숭이 후손이라면, 할아버지 쪽이요, 아니면 할머니 쪽이요?”라고 물었다. 인간의 우월성을 믿는 편견에 기댄 질문이었다. 700명이 넘는 청중이 일제히 폭소를 터뜨리면서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헉슬리가 멋지게 되받아쳤다. “나는 우리가 원숭이의 후손이라고 해도 전혀 수치스럽지 않습니다. 그러나 교양과 웅변의 재능을 편견과 오류를 조장하기 위해 악용한 사람의 후손이라면, 매우 수치스러워할 것입니다.”
--- p.323
지금으로부터 2억 5,000만 년 전 페름기 말에 대멸종 시기가 있었다. 모든 종의 95퍼센트가 사라진 것으로 추정한다. 흥미롭게도 이로부터 약 1억 년이 지난 쥐라기 말부터 식물이 꽃을 피운 뒤 씨를 안으로 맺는 속씨식물이 등장했다. 속씨식물은 오늘날 전체 식물의 약 90퍼센트를 차지한다. 동물과의 공진화 덕분이다. 이 갑작스러운 사건을 찰스 다윈은 '지독한 신비'라고 했다.
--- p.345
약 120만 년 전에서 70만 년 전 사이 호모 에렉투스가 아프리카를 떠났다. 이와 관련해서도 많은 주장이 난무하지만, 현대 인류와 가까운 새로운 직립 원인(原人)이 이때쯤 아프리카를 떠난 것은 정설로 받아들여진다. 이들은 열대 지역인 아시아의 남부와 남동부 지역까지 퍼졌다. 그러나 생각만큼 엄청난 모험은 아니었다. 1년에 평균 130미터라는 기막힌 속도로 이동했다.
--- p.353
동양은 서양보다 사회발전 지수에서 1,200년을 앞서다가 18세기에 들어서면서 추월당했는데, 이언 모리스는 그 전환점이 바로 영국의 산업혁명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인류는 창조적이지만, 태생적으로 폭력적이기도 하다. 제1차, 제2차 세계대전 사이인 1920~1930년대에 과학과 기술이 집중적으로 융합하기 시작했다. 국가가 주도하는 형태로 군사기술의 혁신이 일어났으며 그 결과 전투기, 잠수함, 전차 등 새로운 무기가 개발되었다. 자연스럽게 과학기술에서 윤리 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되었다.
--- p.360
2017년 6월 페이스북 측에서 놀라운 소식을 전해왔다. AI(인공지능)가 자신들이 만든 언어로 대화를 나누었기에 시스템을 강제 종료했다는 내용이다. 언어는 호모 사피엔스가 먹이사슬 맨 위에 설 수 있게 한 동력이다. 이제 언어를 학습한 로봇이 인간보다 뛰어난 두뇌를 갖게 되는 것은 시간문제로 여겨진다. 기계에 질투를 느끼는 대신, 로봇을 인간 친화적으로 대할 필요가 있다. 2016년 인공지능의 선구자 마빈 민스키가 타계했다. 그는 "인간은 생각하는 기계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리고 덧붙여 말했다. "장차 로봇이 지구를 물려받을 것인가? 그렇다. 하지만 서운해할 것 없다. 그들이 바로 우리의 후손이기 때문이다."
--- p.3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