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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라디오

: 우리는 내내 외로울 것이나

아무튼, OO-071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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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24년 10월 07일
쪽수, 무게, 크기 168쪽 | 188g | 110*178*15mm
ISBN13 9791188343744
ISBN10 1188343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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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렵 MBC FM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쇼〉와 MBC AM 〈이문세의 별이 빛나는 밤에〉의 인기는 굉장했다. 주말에는 두 프로그램 다 청취자와 함께하는 공개방송을 편성했는데, 다음 날 늦잠을 자도 되는 토요일의 〈별밤〉 공개방송은 끝까지 들을 수 있었으나 일요일에 방송되었던 〈밤의 디스크쇼〉 공개방송은 다음 날 등교에 대한 부담 때문인지 듣다가 잠들어버릴 때가 많았다. 때문에 프로그램 시작할 무렵 아예 녹음 버튼을 눌러놓고 편히 졸곤 했다.
--- p.27

이게 무슨 일이야. 워크맨이라니. 새 워크맨이라니. 엄마가 쓰던 걸 물려받은 기존의 트랜지스터라디오는 국산 인켈 제품으로 안테나도 있고 가로 15센티미터, 세로 10센티미터쯤으로 크고 두껍고 무거웠다. 일련의 사고로 새로 득한 워크맨은 가로 10센티미터, 세로 7센티미터 정도로 작고 가볍고 얇은 최신형 오디오 기기였다. 그리고 내가 소유하게 된 최초의 외산 제품으로 무려 일제 ‘메이드 인 재팬(Made in Jaan)’이었다. CD 플레이어가 나오기 전까지 무려 7-8년 동안 나는 그 아이와(AIWA) 워크맨을 24시간 들고 다니며 애지중지했다.
--- p.37

매일 대단한 오프닝 멘트나 코너 원고를 쓰고 싶다는 욕심도 자연스레 내려놓게 되었다. 근사한 단어 하나를 찾고 싶은 마음은 여전하지만, 그보다는 선거 다음 날 “거리의 소란스러움이 잦아든 오랜만의 이 아침 적요가 반갑다”라든가 “전국이 장마권이란 예보에 챙겨 들고 나온 작은 우산 하나가 하루를 든든하게 만든다” 같은 소소한 말들로 마음을 다독이거나 어떤 순간을 상상하게 하는 일이 더 즐겁다.
--- p.65

광고음악은 어떤 사람이 라디오 애청자인지 아닌지를 판별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유독 라디오 광고로 유명한 CM 송을 안다면 뭐 더 말할 것도 없이 외칠 수 있다. “오! 라디오 좀 들으시는군요! 좋아요!”
--- p.75

이후에도 지인들은 포기하지 않고 “영화 〈접속〉의 동현(한석규 역) 같은 PD가 너와 딱일 텐데”(정작 나는 ‘동현’ 캐릭터가 별로였는데), “〈봄날은 간다〉에서처럼 같이 일하고 헤어지기 전에 ‘(우리 집에서) 라면 먹을래요?’를 PD에게 시전해봐라”, “드라마 〈라디오 로맨스〉 보니 DJ와 연애해도 너무 좋을 것 같다. 너라고 못 할 이유가 있냐. PD 말고 DJ와 연애해라”를 비롯해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이 개봉했을 때는 “그 영화 보고 네 생각 나더라, 너도 방송으로 고백해라”까지 라디오를 소재로 한 로맨스물이 주목받을 때마다 나는 상대역도 없는 주인공으로 그 작품 속 역할에 불려 나가 라디오 종사자와 연애하고 결혼하라는 밑도 끝도 없는 강력한 조언에 시달려야 했다.
--- pp.87~88

라디오 작가는 둘 중 하나다. 어디에 있든 무언가를 ‘들어야 하는 사람’이거나 일하지 않을 땐 ‘아무것도 듣지 않는 사람’. 우리 모두는 ‘들어야 하는 사람’이었다. 연주회에 간 것처럼 라디오에서 나오는 소리를 귀 기울여서 감상하는 건 아니지만 ‘(라디오를) 켜두어야 안심하는 사람’인 것은 분명 했다. 직업병이라 해야 할까? 병이라 할 정도는 아니니 직업적 강박 정도가 맞겠다. 차에 타면 일단 라디오를 켜고, 채널을 맞췄다. 누군가의 집에서도 마찬가지. 라디오부터 켰다.
--- p.94

나는 이 일을 사랑했다. 일을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나를 두고 한 선배는 “일을 너무 재미있어 하는 사람 특유의 반짝반짝한 눈빛으로 다니면서, 이렇게 즐거운 일을 하는데 돈도 주다니 완전 너무 신나 그런 에너지를 막 뿜었지”라고 했다. 정말 그랬다. 방송 일을 시작했을 때는 자라며 보고 들어온 바로 그 방송의 현장에 내가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만 했고, 시간이 조금 지나 코너 원고를 쓰던 시기에는 사수의 원고 타박이 스트레스이긴 했으나 내가 쓴 글이 방송 전파를 타는 것이 놀라웠다. “누군가의 한숨처럼 쓸쓸한 바람이 불었던 하루였어요”라고 원고를 쓰면 그 원고가 DJ나 MC의 말이 되어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게 감동적이었다.
--- p.119

우리에게 ‘위로’는 얼마나 간절하고, 또 의미가 큰 것일까. 누군가의 사연이나 DJ의 멘트, 청취자 채팅방 속의 대화가 내게만 건네는 말이 아닌 걸 알면서도 위로를 얻는다. 어느 시절 들었던 노래 역시 위안이 되어주기도 한다. 정확하게 내게 오는 위로가 없어서 허공에 떠도는 말을 가져와 나의 위로로 삼아야 했던 어느 시절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더 열심히 누군가를 위로하고 응원하고 싶었다.
--- p.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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